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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만의 전투
피잉!
실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슈의 잽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연은 그런 상황에도 안색하나 변화시키지 않은체 침착히 백호검을 잽의 아래에서 사선으로 쳐올렸다.
스윽.
하지만 검끝에서 느껴지는 감각 따위는 없다. 그저 바람을 가른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을 느낌과 동시에 요연은 뒤로 스텝을 밟으며 도약했다. 요연이 벴던 슈가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지면서 용아병과 얼음기사가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시간축을 비트는 회피술. 아니, '맞았다는 사실'을 '피했다는 사실'로 뒤바꾸는 시간의 대마법사만이 쓸 수 있는 절세의 비술이다. 일반적인 공격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
요연이 혀를 차며 뒤에서 각종 병기를 휘두르는 용아병과 얼음기사들의 공격을 부유하는 현무검으로 가볍게 막아냈다. 그 때, 요연의 시야에 슈가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의 뒤에서 청동솥을 바닥에 내려놓은 체, 영창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이나마 요연의 가슴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저것과 비슷한 광경을 일본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최강자의 기세. 오른손의 청룡검을 병사들에게 던져버리고 주작검을 잡아들었다.
사방신의 유해로 만들어진 사신검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진 검, 주작검. 검에서 뿜어져나온 기세가 주변을 뒤덮은 군세를 일거에 소거시키면서 요연이 슈에게 돌격했다.
하지만, 늦었다.
"오너라! 66개의 군단을 통치하는 동쪽의 왕! 최고의 악마 바엘!"
콰과과과과광!!!!!
주작검이 영창이 끝난 슈의 바로 앞에 작렬했다. 하지만, 슈와 요연의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손은 생채기 같은 상처외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요연은 위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며 거대한 그것을 바라봤다.
거대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언뜻보면 인자하기까지한 그 모습에는 경외감까지 드는 외모였다. 왼쪽 어깨에는 개구리의 얼굴이, 오른쪽 어깨에 고양이의 얼굴이 있더라도 그것은 확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도 무색할정도로 요연 스스로는 너무나도 침착했다.
그녀는 씹어뱉듯이 그것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바엘... 당대 최고의 마법사, 솔로몬이 사역했던 일흔 둘의 마신 중 최강 최고의 자리를 가진 대악마... 어느새 이런 것을 쓸 수 있게 된 겁니까."
바엘. 그것은 슈는 물론이고 초기 이사장실 패밀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악마였다. 신소누를 구출할 때 싸웠던 최종보스였으며, 요가 불완전한 광진의 사용으로 물리쳤던 악마이기도 했다.
슈는 여왕의 증표를 손에서 지우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요연도 알거야. 삼대 대마법사의 마법은 솔직히 그거 하나로는 버티기 힘들어. 나처럼 극성에 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요연처럼 어중간한 상황이라면 다른 기술도 익힐 필요성이 있지."
요연은 본디 공간계 대마법사의 정식 제자가 아니다(정확히는 삼대 대마법사의 제자를 두지 않겠다는 약조 덕에 슈나 소야도 정식제자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과외받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요연은 완전한 선대 대마법사와 공간계를 약소하게나마 익힌 자신을 보며 지금 슈가 언급하는 점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나도, 처음부터 전부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간의 마법은 공간계와 조금 달라서 응용범위가 특이 해. 그래서 꾸준히 익혔지. 한번 교전해 본 적이 있는 게 다행이었어."
그것은 지금 요연도 느끼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점은 지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슈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시간마법의 약점. 그것은 대군전. 그러니까 일 대 다수의 전투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공간마법이 그렇 듯, 일단 시간마법 또한 마력 소모량이 엄청나다. 물론 황룡의 피를 이은 요연이나 선대 공간의 대마법사가 인정한 소야의 경우에는 예외지만 일반적인 마력량(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몇 십배는 많지만)을 가진 슈로서는 여러번 사용하기에는 힘들다. 그것뿐이라면 상관없었겠지만 공간과 시간은 작용범위가 다르다.
애초에 공간은 범위고 시간은 대상지정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비트는 것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소비되는 마력과, 학교를 완전히 둘러싸는 공간의 막을 형성하는 것. 마력의 소모는 같다.
슈는 양팔을 가슴께의 앞에 돌처럼 굳건하게 세웠다. 그녀 특유의 공격을 중시한 파이트 스타일이다. 그것과는 반대되게 뒤의 바엘은 양팔을 넓게 펼치며 마치 왕처럼 자신의 마력을 위세했다.
요연은 슬쩍, 자신의 발을 뒤로 내딛었다. 후퇴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주작검을 휘두르기 위한 거리가 필요 했을 뿐.
"죽일 각오로 덤비십시오. 그러지 않는다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난 죽지 않아. 회피에는 자신 있으니까."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요연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격이 맞을 경우의 이야기. 아무리 세다고는 하지만 피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허나... 그것에 대응책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결심한 맹세를 부수게 되는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요연은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맹세,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그만이지요. 요님 또한 이상을 위해 자신의 의지 따위는 가볍게 꺾을 수 있는 분이니까."
낮게 말한 요연은 사신검을 수호자처럼 자신의 사방에 세우고 양주먹을 마주쳤다. 그녀의 발 아래에서부터 금빛의 마력이 창공으로 용천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슈는 그것의 정체를 입에 올렸다.
"용신화...!"
용신화. 보통은 인간이 용에게 하사 받은 힘을 발현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지만 요연의 경우에는 달라도 한참은 달랐다.
요연은 하사 받은 힘이 아닌 용자체와 융합한, 마인에 가까운 몸. 용신화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
바엘의 손이 변신 할 틈을 빼앗기 위해 요연의 머리위에서 운석처럼 떨어져내렸다.
파앙...
빨래라도 터는 것만 같은 낮은 소리와 함께 바엘의 손이 청룡검에 가로막혔다.
힘 겨루기 따위는 없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벽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에, 바엘의 전신에 무력감이 방문했다.
금빛의 비늘이 전신을 뒤덮고, 2미터에 육박하는 신체를 가진 요연이 아직도 밀어내려 힘쓰는 바엘의 팔을 쳐냈다.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슈의 양팔에 기이한 무늬가 연달아 그어지기 시작했다.
무늬가 그어지는 팔에서 치이익하고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림에도, 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입을 열었다.
"나도 비장의 무기는 꺼내겠어. 하지만, 죽이지는 않을거야."
어린애의 투정과도 같은 그녀의 의지에 요연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후후, 좋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은 것.
"그 의지부터 꺾어드리지요."
마력이 가지는 오오라가 공명하면서, 복싱의 공처럼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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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
아이젠이 10회전 선수를 쓰러트리고 포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