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29화 (12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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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우리가 다니는 수상고등학교는 나무처럼 생긴 건물이나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들을 더 들이기 위한 것처럼 여타 학교보다 조금 넓었다. 그렇다보니 문화제는 참으로 돌아다녀 볼 곳이 많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서도.

"응? 아아. 요연~!"

운동장과 나무모양 건축물에 세워진 각 CA와 동아리의 건물들을 둘러보고 교내로 들어오던 중, 먼저 학교에 온 것인지 자판기의 앞에서 캔커피를 마시고 있는 요연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내가 오자 뭐라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날 향해 눈을 흘긴다. 내가 무엇이라도 잘 못 한 것 같은 눈초리다.

"...아, 요님이었군요."

그냥 날 알아보지 못 한 거였나...... 그럴리가 없는데?

용의 능력은 그리 쉽사리 볼 것이 아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내가 요연이란 것을 인지 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서 요연이 알아보지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캔커피의 빈 캔을 조금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던 요연은 쓰레기통에 무심하게 집어던지고 내가 있는 곳으로 느릿하게 걸어왔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그냥 구경을 조금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구경거리를 오랫동안 보는 타입이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리거든요."

그래서 일찍 집을 나왔던 것인가.

"그리고..."

요연이 살짝 말을 덧붙이면서 나를 바라봤다. 얼굴은 무표정한데 살짝 붉게 달아오른 것이 상당히 귀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요연이 말을 이었다.

"데이트 장소를 물색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볼 까 해서 온 겁니다."

부끄러운 소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하는 요연이 무서울 정도지만 지금 살짝 눈매가 꿈틀거린 것을 보아하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요님은 벌써 다 돌아보신 겁니까?"

"응, 그럭저럭. 자자, 교실로 들어가자. 여기 둘만 있다간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질라."

정말로 이러고 있다간 또 슈의 지지자들의 발바닥을 한꺼번에 관람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 다시 포박되서 여러가지로 심문을 받을지도. 어느쪽이든 괴로울 것임에는 틀림없다.

요연의 등을 밀며 우리는 교내로 들어섰다. 평소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복도와 교실의 문이 여러가지 포스터와 꽃장식, 천등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게 눈길을 끌고 있었다. 교외만 둘러봐서 그런지 지금의 저런 장식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부서의 장식들을 구경하며 교실에 도착하자 우리 둘 보다 일찍와서 맞아주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 요 왔어?"

슈 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슈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어째서 지금 시간에 있는 것인지가 이상했다.

슈가 늦게 일어나거나 지각이 잦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교실에 일찍 오는 편도 아니다. 보통 슈의 등교시간은 지금부터 약 20분 뒤. 그녀의 평소 등교치고는 상당히 빨랐다.

슈는 내가 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지 깨달은 듯 자신의 손을 맞잡으면서,

"능파가 부탁했어. 나라면 믿을 수 있다면서 요를 책임져달래."

능파가 말했던 '보험'이란 바로 슈를 말함이었나보다. 확실히 슈라면 이미 한번 크게 일을 치룬 장본인이니 믿을 만 할 것이다. 게다가 능파는 엄마의 연적(그래봤자 아빠를 좋아하는 마음이지만)이라고 할 수 있는 슈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고, 재미는 재미다. 이렇게 놀려먹을 소재가 있는 데 그냥 날려버리기에는 아깝다.

나는 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개미가 일렬로 길을 만들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야 멈춘 난, 갑작스런 접근으로 얼굴을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린 슈의 턱을 부드럽게 붙잡으면서, 느끼한 목소리를 입에 올렸다.

"하지만 말이야... 슈~? '책임'이라니, 너무 야릇하잖아?"

"에에에, 우, 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런 의미라는 건 무슨 의미인 걸 까나~."

"요, 못 됬어."

슈가 느끼하게 말하는 나를 밀어내며 삐친 것처럼 말했다. 내가 '미안'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이내 불만과 부끄러움으로 부풀린 볼을 가라앉혔다.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요연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제 데이트에도 끼어드실 생각입니까?"

"... 응."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슈의 눈빛에는 연적의 옆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않겠다는 철혈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요연은 그녀의 그런 반응에 얼굴을 구기면서 혀를 찼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그녀의 행동에 슈도 놀란듯, 한발자국 물러섰다.

오늘은 요연도 단단히 작정한 것일까, 평소에는 이쯤이면 물러나서 절충안을 내놓을 텐데 더욱 발을 앞으로 딛으며,

"이번에는 단 둘만의 데이트입니다. 껴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슈는 더 없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받아쳤다.

"...미안. 그렇다면 더더욱 그럴 수 없어. 능파가 물러나지 않으면 강하게 밀고 나가라고 했으니까."

능파는 이번에 요연을 완전히 눌러놓을 속셈인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설마 보험을 저리 강력하게 달아둘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요연을 의심하고 있단 걸 슈에게 말 할 정도라니. 아군을 의심한다는 이야기는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가장 믿을 만한 능파(호지도 있으나 이런 면에서는 별로다)가 깨버리다니.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가 나서야 할 것을 직감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자. 그럼 둘 다 같이 다니자. 어차피 요연이 싫다고 해도 슈는 따라다닐테니까. 안 그래?"

내 말에 슈가 수긍하듯이 고개를 상하로 운동 시켰다.

"응, 절대로."

요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얼굴을 구기면서 거칠게 말을 뱉어냈다.

"쳇, 아주 잠깐이면..."

"뭐가?"

요연의 혼잣말을 내가 받아들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말을 듣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격려하는 것처럼 탁탁 내려치면서,

"너무 혼자서 품고 있지는 마. 만일 남이 있는데서 말하기 힘든거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볼테니까."

"...!"

내가 무슨 말을 잘 못 한 것일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봤다. 너무나 강렬한 시선에 내가 뒤로 물러날 때가 되어서야 요연은 표정을 바로 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걱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나름 걱정의 표시로 내보인 성의를 담담하게 묻어버린 요연은 등을 보이며 교실 밖으로 발을 옮겼다.

"어디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겠습니다."

뚜벅뚜벅.

여느 때보다도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요연은 문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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