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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육아일기-127화 (12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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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곧 있을 학교의 문화제 안건을 대충이나마 끝낸 후, 집에 돌아온 나는 문화제에 관한 것과는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고민하게 된다는 그것. 바로 이과와 문과의 갈림길에 서는 것이다. 미래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는 나에게는 여러모로 선택하기가 힘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역시 이과려나..."

생각해보면 이과가 가장 무난했다.

내 마법은 상상력을 통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아닌, 고속연산을 기초로 하는 마법인지라 이과로 가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수리쪽을 그나마 잘하기도 하고.

이과계의 수업에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적당히 접어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것과 동시에 요연이 캐쥬얼한 옷차림을 한 체, 방으로 들어왔다.

"어, 뭐 잊은 것 있어?"

"아니요, 이것을."

단호한 어투로 요연이 내미는 그것은 여러가지 색이 혼합된 금속제의 가면. 루그로에게서 되찾았던 사신검주의 가면이었다. 그것을 무심히 내려다보던 나는 요연에게 되물었다.

"이걸 어쩌라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더니, 가면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가지고 계십시오. 지금의 저에게는 필요 없습니다."

"응? 하지만 위급상황 같은 것이 닥치면 쓸만 할 텐데?"

요연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이상의 반론은 불허한다는 말투로,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위급상황이 올 일 따위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갖고 있으면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지고 계십시오."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연은 더이상의 용건은 없는지 돌아서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때, 마침 생각난 화제를 입에 올렸다.

"그러고보니 요연."

"...무슨 용건이라도?"

방 밖에 있으면서 내 목소리는 잘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도 이과나 문과를 선택해야 하잖아? 뭐하기로 했어?"

침묵. 질문자체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요연이 질문을 듣지 않고 가버린 건지 의아한 침묵이 계속되자, 불안해진 나는 문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행히도 못 들은 것은 아닌지 등을 보이면서 서 있었다.

내가 등을 본 것을 기점으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타다닥. 차분한 그녀로서는 드물게 빠른 걸음으로 안방에 들어가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신경을 쓰지 말라니... 말이 되냐고요."

"아니요. 말이 되는 소리죠. 안 그런가요 할아버지?"

쥐도 새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을 받아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그 목소리가 나온 곳을 쳐다봤다. 역시나랄까, 능파가 내 침대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능파는 요연이 그 날밤 오지 않겠다고 했던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이니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지만 아군인 요연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능파.... 너무 요연을 나무라는 것 아냐? 그 당시에는 다른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요연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능파의 말에 동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상반된 감정을 한꺼번에 품게 할만큼, 그 날밤 이후의 요연은 이상한 점이 많았다.

때때로 멍하게 있는 것을 시작으로 가끔씩 이상한 질문을 하고 내 반응에 청천벽력을 맞은 것 같은 얼굴을 하지 않나, 참으로 다양했다.

이럴 경우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음모, 죠?"

내 생각을 짐작해내 답을 말하는 능파에게 나는 난처한 미소 밖에 지어줄 수 없었다.

음모라고 능파가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요연은 공간계 마법사의 직속제자면서 머리쓰는 데 그다지 능하지 않다. 덕분에 검을 익혔고, 검술 면에서는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검술 전문. 즉, 그런 그녀가 생각하는 음모라고 해봤자 진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자고 있는 사이에 죽여버리는 건 어떤가요? 저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엄마라면 기습으로 충분히 순살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 수는 없지. 내 생존확률을 얼마나 깎아먹고 싶은 거야?"

일전에 정보에 능한 유운에게 이 일을 상담했을 때, 유운이 말하기를, 삼검주 중에는 요연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니 별 일 아닐 것이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적이라면 사신검주가 삼검주의 안에 있지는 않을 터.

능파가 혀를 찼다.

"사신검주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묻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에요, 아니면 알면서 무시하는 거에요?"

"... 뭐를?"

능파가 무엇을 언급하고 싶은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번 되물어봤다. 능파는 숨을 들이키면서 한꺼번에 말을 쏟아냈다.

"그 예언에 나온 삼검주는 요연이 아니에요. 정확히는 '사신검주'죠. '요연일 필요는 없는' 거라구요. 사신검이라는 것만 들고 있으면 사신검주인 거죠.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이미 생각했던 적이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남에게 직접 들으니 역시 충격이 크다.

그렇다. 예언에 나온 것은 누구 개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칭호가 예언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수교체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다음 번대의 사신검주가 요연 이상이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듣자하니 사방신은 황룡의 제자 비스무리 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룡의 힘을 이은 요연만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쓸데없는 도박은 필요없다.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능파의 의사를 부정했다.

"알고 있다만, 역시 네 생각은 기각. 너도 알고 있다시피 그건 위험요소가 높아. 게다가 요연이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기전까지 행동은 금물이다."

"...여전하시네요. 하지만 요연이 적으로 돌아선다면..."

"그 때는 내 손으로 죽인다. 내 각오를 얕보지 마라."

이것은 진심이다. 그녀를 두둔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군일 경우의 이야기. 적이라면 나는 직접 그녀를 죽일 것이다. 무감동한 나날에 활력이 생긴 새로운 행복을 빼앗는 다면 가루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일 터.

뭐, 실력의 고하는 제쳐두겠지만.

"후후, 기대할께요."

요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능파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침대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었다. 방 밖으로 옮기려던 발이 멈췄다.

"아, 잊은 것이 있었는데요. 엄마는 여러가지로 일이 있어서 공방에서 잘 모양이에요. 할아버지랑 요연을 단 둘이 재울수는 없으니 요연은 제가 데리고 있을테니 간만에 혼자 주무셔야 할 거에요."

"신경 쓰지 마. 내 마음의 도량은 바다보다 넓으니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주보다 넓으니 더욱 슬프겠네요."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 밖으로 두다다다하는 발소리를 내며 나가는 능파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대로 침대에 걸터 앉은 나는 소유로 인해 살아남았다는 천왕에 대한 것을 머릿속에 투영했다.

알지도 못하고, 현대의 왕(육왕, 영왕)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최고의 왕이였다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 했을 것인가. 오히려 운명이 틀어졌기 때문에 행복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나도 참, 갑자기 감상적이 되어서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감상적인 생각은 버릴 수 있었지만 운명이란 대목은 넘기기가 힘들었다.

소유로 인한 그 당시의 운명파괴는 현대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천왕은 그 이름을 벗는데에만 상당한 양의 마수들을 희생시켰다.

그렇다면 나는?

피식, 하고 실소했다.

그런 것을 생각 할 필요 따위는 없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되는 거다.

"그만 잘까. 이제 곧..."

문화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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