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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평일 학교의 일상적인 시간이 끝난 후. 소위 방과후라는 시간이 찾아오자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서인지 창밖에서 붉은 석양의 빛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임에도 아직 많은 학생들이 학교 내부에 남아있었다. 야자가 없는 우리학교의 학생들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앞으로 며칠 남지 않은 문화제 때문이었다.
다른 학교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교육부에서 제정한 CA활동을 기점으로 여러가지 이벤트를 준비한다. 덕분에 반끼리가 아니라 CA끼리 모여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조금 난감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식명칭으로는 특이문화 감상부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것은 새빨갛다 못해 시커먼 거짓. 실재로는 마법 학습부, 혹은 카타스트로피 대응반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여하튼 그런고로 우리는 전혀 부 이름에 맞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 문화제 때는 CA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내용들을 전시하기도 하는데 전혀 준비 할 것이 없...긴 하지만 그것은 소유가 준비했고 문제는 각 동아리나 CA에서 해야 할 이벤트(먹거리를 판다거나 등등)다.
이사장실의 공동에 둘러앉아있던 우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일상에 신경 쓸 틈이 없었는데 이런데서 뒤통수를 치다니.
"뭔가 하고 싶은 것 있는 사람?"
보다 못 한 하여가 말했지만 하기싫어라는 단 한가지 사념을 공명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무르구나 하여.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도 잘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시키면 하지 않는단다. 모든 것은 타율에 맡긴 상태지."
소화가 내 말에 사족을 달았다.
"남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하하하. 함께 웃던 우리는 그대로 한숨만을 바닥으로 뱉어냈다.
정말로 할 것이 없다. 뭔가 준비한 것도 없고, 남들처럼 평소에만 열중하기에는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이 너무 많았다.
끼이이익...
우리가 여전히 할 것 없이 한숨만을 내쉴 때, 문이 쇳소리를 내면서 외팔이 남자를 하나 들여보냈다. 그는 평소와 같은 미소로 웃었다.
"음? 모두들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아아. 너도 와서 고민해 봐. 우리 동아리는 뭘 할까 생각하는 중이야."
소화가 손짓하며 그렇게 말하자 유운은 고개를 까딱이는가 싶더니 의아한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마치 왜 그런 것으로 고민하는 듯 한 투다.
"왜 걱정하는건데? 뭐 하고 싶은 것 있어?"
"그럴리가 있냐. 의무래잖아. 우리는 준비 한 것이 전혀 없는데 학교에서는 하라고 하니 일단 생각이나 해보던 참이야."
소화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유운은 손가락 두개를 펼쳐보였다.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 둘 중 어느 것부터 들을래?"
대뜸 등장해서 불길한 대사를 내놓는 유운의 말을 듣더니 모두가 갑자기 나를 주시했다. 갑작스레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닭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야 그 눈은."
"으응? 아니, 네가 선택하는 것이 가장 괜찮을 것 같아서. 이사장실에서의 그 포스는 굉장했었고. 마법보단 그거가 놀라웠다니까."
경홍이 그렇게 대답하자 우와 슈, 운을 제외한 모두가 갖가지 이유를 대며 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우나 운은 당연하다는 듯이, 슈는 그저 '님의 뜻대로'라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거절 할 거리를 찾지 못 하겠다.
"그럼, 안좋은 소식부터."
좋은 것은 마지막으로. 좋은 것이 마지막이라면 그것은 해피엔딩이니까.
유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고형물질로 된 투명한 직사각형의 봉투(겉보기로는 그렇게 생겼다)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내용물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고형물질, 얼음이 깨져나가면서 내용물을 밖으로 토해냈다. 유운은 그것을 들어올리면서,
"편지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의뢰서...라고나 할까요. 정확히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의뢰섭니다. 누가가도 상관없지요. 하지만..."
"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정확합니다. 기본적으로 하여, 나, 소화, 소누, 운, 우는 갈 수 없습니다."
뭐랄까, 그 것 참 내가 아니면 갈 사람이 없다.
내가 눈짓하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용을 설명했다.
"저는 일단 이곳에 남아야 합니다. 저번처럼 이곳을 비웠다가 국내의 누가 피해를 입으면 안되니까요. 소화는 제가 없으면 힘을 발휘 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 하여는 컬러나이츠의 일원이기 때문에 만일 해외 출장 중에 죽기라도 하면 공석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운은 정신계라 전투에는 쓸모가 없고요. 소누는 전투능력이라기보다 백업에 가까운데다가 그녀가 포섭하러 갔던 마물들을 기다려야 하고 우는 만일을 위해 짝이 되는 소누를 지켜야하죠. 그녀 또한 삼왕과 더불어 최고 표적이니까요. 경홍은 말 할 것도 없겠지요?"
뭐 하나 반박하기 힘든 것들이라 나는 한숨을 내쉬는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결과가 이미 정해진 대화였잖은가. 어차피 갈 수 있는 사람은 나 정도 밖에 없으니 결국 내가 그 의뢰를 받아야만 하는 것. 한숨 나오는 이야기였다.
슈가 손을 들었다.
"에, 저기. 그거 나도 참가가 불가능 한 일인거야?"
"...아니요. 오히려 당신에게 권장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운명 따위는 부숴줄테니까요."
슈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을 상기했음이 분명하리라. 덕분에 나도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살인마. 뭔지도 모르는 의뢰서를 디밀고 뭐하는 짓이고? 최소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도는 말해주어야 할 꺼 아니노."
아직도 유운이 마음에 안드는지 살인자가 들어도 불쾌할 어조로 말 한 운의 말을 유운은 반짝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은 얼굴로 맞대응했다.
"물론이죠. 그런데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실수로 당신의 목을 전봇대 위에 걸어놓는 불상사가 없기 위해서는 말이죠."
상큼한 얼굴로 끔찍한 말을 늘어놓는 유운에게서 멀어지려는 듯, 운은 무릎을 기는 것처럼 움직여 우의 뒤에 숨어버렸다. 그 광경을 목도 한 유운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그곳에 적힌 검은 것이 강조 되는 것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검은 것을 가리키면서 유운에게 질문했다.
"...헤브라이어?"
아니, 그 이전에 문자가 맞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글자(?)다. 마치 어린아이가 붓을 쥐고 대충 휘두른 것만 같은, 그림이다.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아니오. 이것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건 그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 이것자체가 가지는 뜻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요연이었다. 역시나 황룡 할아버지를 둬서인지 용들의 생태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유운은 맞장구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종의 마법진이죠. 그들은 태생부터 이능을 다루는 것이 능숙했으니까요, 문자를 필요로 하지 않죠. 하여튼, 이것은 용이 보낸 의뢰섭니다."
"이름은?"
나의 반문에 유운은 한쪽 눈을 살짝 감고 대답했다.
"빙룡 자비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