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22화 (12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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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타앙.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이사장실의 문이 굳게 닫혔다. 이사장실의 주인인 소유도 이미 가버렸고 그곳에 있어봤자 의미가 없기에 나온 것이다. 나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겨 학교 밖을 향해 나아갔다. 친구들 또한 아무 말도 없이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나를 따라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뚜벅. 실내화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기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우리들의 정적을 치장했다. 운은 언뜻 들으면 아름답다고도 느껴질 이 소리가 불쾌하기라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가? 대충은... 기반지식은 우리 할배에게 들었다안카나.... 근디, 네가 죽는다니 무슨 소리고?"

모두가 입을 다물고 회피해오던 화제를 입에 올린 운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를 마주 본 체 평소처럼 미소지었다. 그리고, 멱살을 잡힌 체 벽에 디밀어졌다.

터억.

등에 갑작스레 터진 씁쓸한 통각이 조금은 멍한 정신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운은 그렇게 릴렉스하고 있는 나의 얼굴을 노려보며 외쳤다.

"장난하지마! 죽는다고? 분명 몇년이나 못 만나온 너이기는 하지만 넌 내 친구다! 네가 절망하든 뭐든 받아줄 수 있다고. 그런데... 넌 왜 평소랑 다를바 없어!?"

화가 임계점을 돌파한 탓인지 가짜 사투리에서 표준어로 돌아온 그 말투에 나는 다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행동이 더욱 화를 돋운 것인지 목에서 느껴지는 손의 압력이 프로테인이라도 섭취한 것처럼 더욱 강해졌다.

이러다가 카타스트로피가 아니라 운에게 죽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목이 아려올 쯤에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 우가 운의 손목을 잡아내린 것이다.

"그만해라. 너한테 죽겠다. 그래도... 솔직히 너와는 같은 심정이야."

우의 시선이 나에게 돌아왔다. 솔직히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눈빛에 나는 뒤에 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뒤로 발을 옮겼다.

"너에게도 생각이 있을테니 딱 하나만 물을께.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냐?"

뭔가 의미심장한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끝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이 판세를 역전시키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지. 안 그래?"

죽음 따위는 이미 몇번이나 뒤집어왔다. 소누를 지키던 그 때도, 요연에게 구해지던 그 때도, 일본의 신과 싸우던 그 때도, 루그로 때도. 나는 항상 살아남아 왔다. 내가 겪어온 그 순간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절체절명의 순간. 이제와서 죽어줄 생각 따위는 없다.

"됐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네. "

내 의도를 파악한 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돌아섰다. 나 또한 쓴웃음을 내뱉으며 학교 밖을 향해 계속해서 발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슈가 막아선 것이다.

"슈..."

"포기하지마. 나, 요를 계속해서 좋아할테니까! 앞길을 막는 운명 따위는 내가 부숴줄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포기하지마...."

대담한 소릴 당당하게 외치는 슈의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대게 하며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쓸어내리는 손끝으로 그녀의 불규칙한 호흡이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죽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나는 감상적인 기분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죽지 않을테니까.

'이미 한번 부숴졌던 운명'은 더이상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얹혀진 운명은, 방법은 모르지만 반드시 피할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유운을 바라봤다.

"유운, 설명해줘."

"역시나. 너무 순순히 받아들인다 했죠. 역시나 알고 있었군요. 여기 있는 분들 중... 경홍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기억하시겠지요, 소유의 과거."

일동은 침묵을 지킨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둘러본 유운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시의 천왕은 죽을 운명이었음에도 천수를 누렸죠. 그것이 바로 이례. 소유라는 '변수'가 계입함으로서 운명이 변한 겁니다. 즉, 예언이 절대는 아니란 거죠. 본디 그것 덕분에 손을 때란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만... 어차피 참가를 하지 않으면 사망. 이왕 이렇게 된 것, 손 닿는 데까지 도와주기를 부탁드리죠."

"아아. 물론이지. 그러니까 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까지 소리지를 일은 아니야."

그녀는 나의 말에 내 가슴에 머리를 박은 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슈의 등 뒤에 보이는 하여에게 눈짓했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내 행동의 진의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알아채고는 장난스런 아저씨처럼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야아~. 뜨겁구나~ 호이호이. 우헤헤헤, 아가씨. 좋아한다고 그렇게 소리지름 곤란하줴... 쿠헤헤헤."

...분명히 분위기를 조금 환기할까 싶어서 그녀에게 부탁한 것이었지만 설마 저렇게 강력한 캐릭터성 훼손을 일으키다니. 분위기 메이커로 그녀를 선택한 것은 조금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슈는 황급히 내 곁에서 떨어져나가며 손을 휘저어가며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과보다도 붉어진 얼굴이 가려질리가 만무. 그런 슈의 주위를 하여가 빙글빙글 돌면서 계속해서 자극했다.

내가 부탁한 일이기는 하지만 덩달아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그만해 하여. 우우우, 그만하라니까."

"왜 그래? 깨가 쏟아져서 좋기만 하구먼. 쿠헷헷헷"

슈의 가녀린 제지도 하여의 아저씨 같은 반응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계속해서 손을 휘저으며 하여를 말리는 슈와, 여러가지 추임새를 넣으며 도망치는 하여의 웃기는 추격전을 보면서 작게 실소할 때, 내 어깨를 누군가가 붙잡았다. 돌아보니 요연이 나를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능파를 찾았다. 능파는 그 추격전을 보면서 슬그머니 웃고 있었다. 아마 저 광경 때문에 요연의 동태를 놓친 모양이었다.

요연은 내 양어깨를 붙잡으면서 진지하게 물었다.

"요님. 죽음을 이겨낼 자신은 없으신겁니까."

그것은 우가 했던 질문. 아까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나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판세를..."

"그것은 두려움.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입니다."

그러고보니 질문이 미묘하게 달랐지. 나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능파는 이미 요연을 적으로 확정하고 있었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나란 존재는 원수의 가족. 그녀가 이해 해줬다고는 하지만 쌓아두었던 감정이 갑자기 폭발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고.

그녀가 가진 분노의 본 대상도 같으니 나는 그녀에게 미묘한 동질감을 가진 체다. 요연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진지한 얼굴인 것은 물론이고 약간이지만 잔경련이 무표정한 얼굴 표면에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분노가 강하지 않은 상태로 보였다. 나의 사망선언이 조금 불안한 것인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내 가슴을 텅텅 쳐보였다.

"당연히 살아남지. 신이라해도 날 죽일 수는 없어."

그녀는, 나의 당당한 대답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의 그런 반응에 나는 황급히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걱정말고 힘내란 의미로 대답한 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쳐도 지금 반응은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요연은 나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일그러진 표정을 왼손으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조금 피곤 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가 있도록 하지요."

그런 말을 남기고는 팟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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