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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뭘 그리 굳었어? 아니, 의외로 멀쩡한 사람도 몇 있네. 예를들면 저기 있는 백발 꼬마라던가. 그 흑룡과 싸울 때는 상당히 멋졌어."
적경홍은 피로한 듯이 인상을 쓰고 있는 능파에게 미소지었다.
평소와 같은 말투, 분위기로 말하고 있는 그녀는 어딜봐도 적경홍이다. 우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학교 안의 마법사와 관계자는 자신들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인사하다니.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이곳에 참가하게된 일련의 과정을 모조리 다 알고 있는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경홍은 못 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나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 어때?"
"그것에 대해서는 제가 말해도 되겠죠, 할아버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 친구분."
능파가 나 대신 경홍의 말을 받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확실히 머리가 좋은 능파라면 내가 보낸 전언(이라기엔 너무 조잡하지만)을 받고 모든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내 목이 나왔을 때는 조금 혼란스러워한 것 같기는 했지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능파는 심호흡을 몇 번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잘 도망치던 중. 아니, '도망치는 방법' 덕분에 이름도 모르는 친구분이랑 만났겠죠. 설마하니 할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끌어들인 것은 아닐테고요. 그리고 '힌트는 이사장실 패밀리'. 그것은 할아버지가 창안한 단어였지요."
정답이다. 이사장실 패밀리라는 단어는 내가 창안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론 이사장실 패밀리 중 다른 누구에게 그 단어를 말 한 적은 없다. 알아채기 힘든 그 힌트를 눈치채다니. 과연 능파다.
경홍은 놀란 눈치로 손뼉을 쳤다.
"우와. 굉장해! 그런데 내 이름은 적경홍이야. 백발 꼬마."
은근슬쩍 자신의 이름을 어필하는 경홍을 보며 능파는 인상을 찌푸렸다.
남에게 별로 친근하게 굴지 못하는 능파가 느끼기에는 남을 잘 대하는 그녀만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능파는 평소보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백발 꼬마가 아니라 백능파랍니다. 붉은(적) 거울(경) 큰 기러기(홍) 아가씨."
옛날의 날보는 것만 같은 능파의 개그(랄까, 위협이랄까, 거부랄까)에 경홍은 대답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벙찐 표정을 유지했다.
능파는 그런 경홍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마 저 아가씨에게 못 이겨서 협력도 받을 겸 도시주변에 이상한 말뚝 진을 설치했죠. 평소라면 광진의 패널티로 병원에 있을텐데 말이죠."
이것 또한 정답.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주변으로 말뚝소리가 퍼져나갔지만 루그로는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광진에 일격을 허용 할 수 밖에 없었다.
능파가 한마디 덧붙였다.
"슈도 알고 있었죠? 할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
능파의 말에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슈를 바라봤다. 슈가 멋쩍은 듯이 볼을 긁었다.
"으응. 도시에 설치된 진식은, 내가 가르쳐 준거야. 그래도 목이 튀어나왔을 때는 놀랐어. 작전은 실패했나~ 하고."
귀엽게 말하는 그녀를 향해 호지가 눈을 부라렸다. 왜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듯한 눈초리다.
슈는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
"하, 하지만 알아낸 건 소유와 대담한 뒤였고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 오지 않았는 걸. 그리고, 연락하면 안될 것도 같았고."
자신의 생각을 완강히 주장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호지는 혀를 찼지만 딱히 물리적 제재(평소라면 볼을 잡아당긴다)를 가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기 자신이 알았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거란 걸 아는 모양이었다.
소유가 크게 헛기침했다.
"뭐, 지금 이 자리는 여기서 파하지. 자세한 내용들은 다음 학교에서 말하면 될테고."
지금 당장 육왕이라던가 불사라던가하는 이야기를 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이었지만 기회는 많았다. 벌써부터 경각심을 세워줄 필요는 없으리라.
소유의 말에 경홍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아직 남은 사람이 있거든요. 춘운 언니~~~!"
버라이어티 쇼에서 사회자가 게스트를 부르는 듯한 말투로 그녀는 자기 호위의 이름을 외쳤다. 호위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언급되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춘운?"
그가 이름을 입에 담은 동시에. 그의 머리위로 망토같은 것을 둥글게 달아 기품있는 아가씨의 모습을 한 여성이 떨어져내렸다.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기세였으나 그의 머리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쪼르르 그녀를 향해 달려간 경홍이 춘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뜻 보면 상하관계가 뒤바뀌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경홍이 고용인의 입장이란 것이다.
"간만이지요, 소유?"
"우음. 역시나 가춘운인가. 컬러 나이츠는 분명히 소집전까지는 행동을 금한다... 고 하지 않았나?"
우리들은 모르는 과거의 인연을 언급하는 소유에게 춘운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한발을 들어올리고, 바닥에 찍으면 지진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일격을 소유의 머리에 먹였다.
꽈앙!
10 킬로그램 폭탄을 맞아도 흉터 하나 없이 멀쩡 할 소유의 용비늘이 우그러졌을 것만 같은 거친 폭음에 우리는 귀를 틀어막았다. 틀어막은 손과 귓바퀴 사이로 소유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땅에 틀어박힌 소유의 머리위로 춘운이 발을 계속해서 짓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말했죠?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옛날에 용이라는 것으로 자만했다가 당한 일들이 수두룩 하면서 그 점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죠? 아니, 그 이전에 채봉은 어디갔어요? 그녀라면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텐데."
"윤은, 이 일이 있기 전에 시골로 돌아갔다. 아마도 내일 밤 쯤에는 돌아오겠지. 그 날은 그녀의 아버지가..."
소유가 말을 미쳐 끝마치기도 전에 춘운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채봉'이 선생님을 뜻하는 것쯤은 알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본명(어느쪽이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을 쓰지 않는 거지?
나의 의문은 옆에서 터져나온 소리로 인해 사라졌다.
"아앗! 언니,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러면 안되죠. 이사장님, 괜찮아요?"
경홍이다. 그녀가 땅에 얼굴을 들이박은체 눈만 껌뻑이는 소유의 비늘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춘운을 쏘아봤다.
그러고보니 경홍이 교주를 구출하기 전에 소유랑 만나는 것을 봤을 때는 누가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소녀틱 했다. 경홍의 집에서 말했는데도 그녀의 반응이 별로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소유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서로를 향해 꽥꽥 소리를 지르는(춘운은 어디까지나 고용인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로) 둘과 사이에 낀 용 하나를 두고 우리는 등을 돌렸다.
"요. 내일은 놀토라서 학교 안 가니까, '우리' 좀 도와줘."
각자의 집으로 향하기 위해 갈라지기 전. 소화의 제안에 집으로 향하는 것을 뒤로 하고 모두가 그녀의 말에 경청했다.
"유운도 내일은 돌아온다고 했고 그 때 문화제에 있을 비품을 사러간다고 했거든. 이미 우들에게는 말해뒀지만 너에게도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애초에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열기로도 했고."
소화의 말투로 보아하니 내가 같이 갈 것이란 것은 이미 확정된 모양이었다.
이번 일로 도움도 받았고 어차피 내일부터는 할 일 없이 무료한 고등학교 인생의 재림이니 도우러 가더래도 상관 없으리라.
내가 가겠다는 의사를 고개로 표현하자, 내 팔 하나를 점령한 호지가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나도 갈래!"
"저도 같이 가요."
그에 더불어 능파도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손을 들어보였다. 아마도 이번 일 덕분에 내가 걱정되는 것이리라. 이왕 이렇게 된 것, 데려가는 것도 좋겠지.
소화는 호지와 능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접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 슈, 하여, 나, 호지, 능파, 린, 요, 아마 요연도 같이 갈테고 나까지 합하면 도합 열명이네. 이렇게 됬으니 우리집 빵 재료도 사러가야지~."
인원수를 세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소화를 보고는 우린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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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입니다.
여러모로 짧았던 사망편이었습니다. 다음편은 문화제편이 되겠습니다.
예고대로라면 사막편이 되어야겠지만 여러가지 순서를 생각해 봤을 때 문화제편이 중간에 있는 것이 더 좋겠더라구요.
그리고 초반은 살짝 무게를 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아일기를 세 파트로 나눌 때 중후반에 속하는 부분이니까요.
어쨌든, 재밌게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