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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요연
어디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은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추측인데다가 어차피 부를 거라면 급박한 상태로 포장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어디까지 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결전의 날까지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풀 가르는 소리가 멎었다.
"요님이, 납치당했다고 하셨습니까?"
되물어오는 그녀를 향해 작게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잠시 말을 하지 않더니 코웃음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퍼졌다.
"지금 그 말은 신종 장난전화입니까? 장난도 가지가지 하십시오. 당신에게 있어서는 연적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말을 흐린 것이 조금 걸렸지만 지금은 비상사태. 쓸데없는 데에 신경 쓸 정신 따위는 없다.
능파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수화기에 대답했다.
"거짓말은 하지않았어. 정말로, 납치됬어. 지금 학교에 그런 소식이 왔고, 앞으로 사흘 후. 오늘만 지나면 이틀 후에, 놈과 결판을 낼거야. 할아버지가 쉽게 잡혀버린 이상 엄마나 소유가 쉽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아. 그러니까, 하던 것은 멈추고 돌아와."
반론은 허용하지 않을 생각으로 능파가 있는 힘껏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요연은 즉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기를 몇분, 너무나 무거운 침묵에 능파가 의문을 떠올렸다.
분명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에 그녀가 할아버지께 보여주었던 감정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당연한 일. 하지만 지금 그녀의 침묵을 보자면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하는 것 같다.
능파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수화기에서 답신이 왔다.
"저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이 정지한 것마냥 능파의 모든 행동이 멎었다. 심지어 기본적인 생존에 포함되는 호흡마저도. 그야말로 시간이 멎은 것처럼.
능파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의심이 들어맞은 것에 의아해하며 수화기가 견디지 못 할 것 같은 자신의 말을 쏟아냈다.
"무, 무슨 소릴? 할아버지가 걱정되지도 않아? 아니면 아버지를 좋아한다던 소리는...!"
거기까지 말한 능파는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학 때 학교에서 되돌아오면서 요의 생명반응이 완전히 사라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서 집에 돌아왔고, 요연도 있으니 별 상관없겠지하고 안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이상, 슈와 같은 선례가 있는 이상 모두를 아군으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능파의 목소리가 명검에 비견될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네년이냐."
능파의 물음에대한 대답은 수화기에서 빠르게 튀어나왔다.
"아닙니다! 제가 왜 그 사람을..... 아니, 전 이미 중국에 있단말입니다! 그리고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사모하고 있는 제가...."
요연의 벼랑끝에 매달린 것 같은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며 능파는 코웃음쳤다.
지금까지 모인 정보들은 요연이 목적을 가지고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붙어있다는 결론밖에 도출하지 않는다. 요는 어떤결단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설사 친족이라도 용의선상에 올리는 사람이다. 처벌에는 관대하지만.
그런 사람을 보아오면서 기른 그녀의 두뇌는, 요연이란 믿을 수 없는 패는 이미 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능파의 머리는 새로운 전략으로 보이지 않는 적의 대응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능파는 잔인하게 요연의 말을 끊어버렸다.
"닥쳐라. 넌 이제 우리의 가족이 아니야. 우리의 구심점조차 버려버리는 여자 따위를 믿을까보냐. 그대로 중국에서 돌아오지마. 네년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두번 다시 사모 같은 소리는 꺼내지도 마. 이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이다. 단 한번. 말 할 기회를 주지."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능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요연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을 하려는 순간, 능파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시간이 너무 많았지? 이것으로 끝이다."
능파는 수화기를 악력으로 부숴버리면서 잔해를 허공으로 흩뿌려 마력으로 강제발화시켰다. 허공에서 녹아버리는 수화기의 파편들이 불꽃의 요정처럼 공중에서 춤췄다.
능파는 그녀가 자신의 입에 있기라도 한 것인냥 이를 갈았다. 그렇게라고 하지 않으면 분노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할아버지, 요가 요연과 죽을 각오로 붙어서 겨우 오해가 풀리고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던만큼 요도 요연을 믿었다. 나이와 신체 같은 여러가지 그녀들이 따라갈 수 없는 점에 대해서는 호지 이상의 신뢰도를 보였다.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신뢰를 음심으로 답해? 또 다시 열화가 뻗쳐 능파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쳇, 그런 것보단 할아버지가 문제인데...."
능파는 속을 끓이는 요연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의 구석으로 쳐박아두고 요의 의도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뻔하지. 분명히 절체절명의 순간 튀어나와서 뒤통수를 칠거야."
불만스런 말투로 말했지만 그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폼 잡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끝을 냈다고 생각한 순간 사람은 가장 방심하게 된다. 그랬기에 요와 능파가 체스를 두었을 때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이미 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판을 뒤집을 최고의 턴'
그 말만큼은 까다로운 능파도 멋지다고 생각 할 정도였으니 말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역마 사냥밖에 없으려나. 앞으로 이틀. 최대한 준비를 해야 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생각해둔 바를 행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집의 대문이 열리며, 무슨 공사를 하는지 무언가가 바닥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호지가 들어왔다.
눈을 보니 살짝 부어오른 것이 울었던 것 같다. 이미 어째서 우는지 알고 있는 능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찡해졌다.
분명히 자신이 부탁했던 케잌의 심부름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완벽히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완벽히 부정 할 수는 없으리라.
"능파야...!"
호지가 내달려서 능파를 끌어안았다. 능파의 여린 어깨위로 호지의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능파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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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 특별 연재.
문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1. 살았다(살았다면 어떻게?)
2. 죽었다(죽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주인공을 등장시킬 것인가?)
... 가벼운 문제입니다.
이번 편은 제가 뿌린 '부활' 떡밥들이 일거에 회수되는 편이죠. 사실상 육아일기의 1부 마지막이라 봐도 좋을 편입니다.
여러 편들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등장 할 지 맞추시는 분이 있다면, 현 비축분의 반. 즉, 8연참을 하겠습니다.(설마 진짜로 맞추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