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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싸악 굳어버린 나의 안색을 본 루그로가 안심하라는 듯이 고개를 휘저었다.
"아아. 걱정마. 이 아이가 호문쿨루스인 것은 맞지만 약간 편법을 써서 만든거거든. 뭐, 무진장 강하기는 하지만 신의 영역에 손댈만큼은 아니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비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진짜로 저게 제대로 된 호문쿨루스였으면 나는 이길 수 없다. 밖으로 빼낸 호문쿨루스가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을 만들어낼만한 자라면 유리구슬만한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도 어려울 것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않다고 시인했다. 정신적인 우위를 스스로 버린 것이다. 의도적인건지, 아니면 멍청한건지. 개인적으로는 후자이길 바라면서 풍백을 거둬들였다.
쓸데없이 정신력을 낭비해봤자 지금 싸움에는 해만 될 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널 죽이러왔는데 그냥 죽어주면 안되겠나? 아아. 안되겠지. 그러니까. 나랑 내기를 해보자. 그리 어려운건아니야. 너는 목숨을. 나는.... 비에고와 레테를 걸고 하는거지."
그가 그렇게 말하며 옆쪽 소녀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자아가 없는지 상당히 불쾌해 할만한 언동과 행동에도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기라. 글쎄? 이쪽은 그다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런 아가씨가 있어봤자 이쪽은 그다지 좋을 것도 없고 남자는 그다지..."
저기있는 소녀도 미인이지만 내 근처에는 호지에, 요연에, 슈에, 능파까지. 미인이라면 질리도록 보아왔고 조금 아슬아슬한 관계에 있는 아이(슈)도 있으며 나머지는 동거까지 하고 있다. 나에게 미인계 따위는 소용없다. 게다가 레테라는 청년은 상당히 약해보인다.
나의 반응과 말에 그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화를 냈다.
"뭐야! 내 자식들을 준다는데 불만이라고? 너 따위에게는 하나도 안어울려!"
흠, 솔직히 나도 호지가 그딴 취급을 받으면 광진으로 갈기고 봤겠지.
나는 양손을 내저으며 실언을 철회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목숨인데 왜 당신은 목숨을 걸지 않느냐는 얘기야."
그의 표정이 확하고 풀어졌다.
"뭐야, 그런의미냐? 대답해주지. 네가 내기에서 지더라도 나는 죽거든. 그저 시간이 조금 늘 뿐. 너에게 안죽더라도 윗놈들에게 단물쓴물 다 빼앗기고 죽을테지. 살인멸구라고나 할까. 내 머리에는 뇌충이 박혀있어서 말이야. 설사 제거해도 뇌의 일부분에 동화된 상태라 뇌사는 피할 수 없지."
이 남자는 죽지않기위해 따르는 건가? 그의 생(生)을 향한 갈망은 나처럼 호지나 요연에게 감싸여 편하게 싸워온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을 주마. 어차피 관리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테고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도 없고. 육왕은 괜찮은 놈이라는 소문을 들었거든. 백치이기는 하지만 기타 생리에 필요한 것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딱히 힘들지는 않을거다."
왠지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괴로운 표정을 짓는 그가 땅에 주저앉아버렸다.
쓰러졌다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앉은 것으로 보였다.
"얼마 시간이 없군. 모든 것을 터 놓고 대화하지 않겠나? 너는 나에게서 카타스트로피의 정보를. 나는 그대의 사적인 일을. 어때?"
조금 고민하다가 나도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수긍의 빛을 보이자 그가 기쁜 듯한 미소를 지으며 핵심을 찌르는 말을 날렸다.
"하하하. 좋은생각이야. 그런데 자네, 이레귤러(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일반인을 지칭)지? 아니, 이레귤러였군?"
억하는 소릴 입밖으로 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은 외부세력이 정보원을 심을 수 없는 몇안되는 안전지대 중 하나다. 그런데 내가 이레귤러였던 것을 안단 말인가? 앞서 말했다시피 정보원은 불가. 그렇다면 내 반응일텐데 나는 나름 틈을 보이지않는다고 자부했었다. 그렇기에 감성은 전자이길 빌었고 이성은 후자이길 빌었다.
"자네는... 생각이 몸을 앞서나가더군. 머리는 나보다도 빠른 회전을 보이지만 정작 몸은 주춤하고 있지. 안면근육은 어떻게든 컨트롤하는 모양이지만 손과 다리는 그렇지않거든."
그의 말에 양팔로 다리를 짓눌렀다. 그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하늘을 묵묵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있는 이쪽 조직의 이름은 카타스트로피라고 한다네. 번역하자면 파국이라고나 할까. 자네의 검주 중 하나가 카타스트로피의 흑기사단 하나를 궤멸시켰지. 이때는 상당히 놀랐어. 마수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대적할만한 자가 있을 줄은."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청룡의 배후이자 가면을 가지고 있던 자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중 하나인 흑기사단.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있다.
'마수'로 이루어진 집단. 설마 소유나 아쥴이 포함된 조직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마수들은 누구누구가 있습니까? 요주의 인물은?"
"마수들에 대해서는 위험한 자들을 얘기해줄 때 차근차근 말해주지. 요주의 인물은 대표적으로 케이슨이 있다. 초기맴버 중에는 유일하게 마수가 아닌, 인간이다. 그들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더욱 굉장한 인물임을 알 수 있지."
그들의 목적.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고민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쳐부수면 그만. 조금 안일한 생각이기는 하나 이것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던 부분이었다.
'인간'은 관여하길 꺼리는 '목적'. 흥미가 동했다.
"목적은?"
그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깨무는 것 같은 느낌이 잠시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루그로 같이 착한(확증은 없으나 이것이 진실이라면 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이라면 왠지 무거운 내용일 것 같았다.
"인간의 말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인간의 전성시대다. 핵미사일 몇개면 나라하나가 날아가는 시대다. 그런 인간의 시대에 말살? 무섭거나 놀랐다기보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나도 이해하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야. 케이슨에게 진심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 같은 범인은 상상도 못할 계획을 하고 있을 공산이 높아."
내 표정을 읽어낸건지 그가 이해한다는 투의 말을 내뱉었다. 그가 말한 계획이 마음에 걸렸다. 그쪽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준비를 했을 터. 그것이 알지도 못하는 계획.
어째서인지 계획이라는 단어가 진흙처럼 떨쳐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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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간만에 작가말을 올리는 군요. 요즘은 바빴으니 말이죠. 비축분 덕에 살았지만.
그건 그렇고, 리플이 필요합니다. 죽을 것 같아요.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어...!
이만 물러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