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87화 (87/340)

0087 / 0340 ----------------------------------------------

에필로그

푸르게 타오르는 만월을 보며 곶에 다리를 걸쳐 우리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내 옆에 슈가 다리를 끌어안으며 나를 새침하게 노려봤다.

"요,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했어?"

그녀의 질문이 바라는 대답은 무엇 때문에 아버지가 구출되어 있느냐는 것을 미뤘느냐이리라. 슈의 물음에 나는 헛웃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위해 그랬다고 하면 아마도 뺨 맞지 않을까. 대답하기가 매우 곤란한 터라 우물쭈물할 때, 슈가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웃음이 지금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것만 같다.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고 싶어 진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그랬지. 설마 죽이려들지는 몰랐지만. 하하하."

"바보."

그렇게 말하며 내 볼을 주욱 늘렸다. 생각외로 아팠지만 눈물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슈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몇분, 배가 아플정도로 웃고는 슈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고 물었다.

"우리가 소유랑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속인거야? 이만한 마법을 쓸 정도라면 소유가 못 알아볼리가 없을텐데."

슈가 말없이 아버지가 줬다던 투구모양의 반지를 건넸다. 만져보니 알 것 같다. 마력이 빨려드는 것 같은 엄청난 은폐력이다. 이정도면 슈의 마력은 물론이고 요연이나 호지의 마력도 감출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반지를 둘러보던 도중, 마력의 흐름이 조금 기이하게 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안다. 연금술을 배우고 있으니까.

"이거, 개조됬네."

정확히 짚어냈는지 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페르세우스의 투구. 심안에서조차 벗어날 수 있는 투명화의 투구야. 하지만 그런 능력은 필요없으니까 아빠가 개조해줬어. 마력 은폐형으로. 받아. 지금의 나에겐.. 필요없는 물건이니까."

내 손바닥에 페르세우스의 투구를 쥐어주었다.

과연 슈의 아버지이자 시간의 대마법사. 신화시대의 물건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바꾸다니. 게다가 엄청난 변이를 반지에 겪게 했음에도 반지의 마력이 전혀 낭비되지 않는다.

"시간의 대마법사는 다르구나."

"...그런데 요가 그걸 어떻게 아는거야?"

그녀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빠가 시간의 이명을 가진 것을 어떻게 아느냐구."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삼대 대마법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일본의 어느 호텔. 그 때는 나와 요연, 호지밖에 없었으니 그녀가 알리가 만무하다.

곶으로 다시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요연에게 들었지. 그녀석도 같은 삼대 대마법사의 제자니까."

슈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도 시선을 돌려 달을 올려봤다. 창백한 달빛이 오늘따라 아름답다.

시선을 힐끔, 슈에게 주었다. 슈가 입술을 약하게 깨물고 있었다. 잔경련이 보이는 게 어쩐지 심상치 않은 말을 할 것 같다.

"요는.... 전화받기 전부터 나인줄 알고 있었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슈의 목소리.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단 한글자로 표현할 수 있다.

"응."

솔직히 그녀가 일반인이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솔직히 반신반의 하는 정도였지만. 그녀는 역시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그 이상의 대답을 원하는 모양이다.

한숨을 내뉘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 이상을 느낀건 요연 때. 일반인이 다짜고짜 죽이겠다고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뭐, 요즘은 초등학생도 그런 소릴 지껄이는 시대라 그냥 사랑...에 맛이 갔구나하고 넘어갔지."

사랑에라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의 반응에 슈도 고개를 끌어안은 다리안으로 넣으며 얼굴을 가렸다.

열이 오른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두번째는 마법 빙뢰옥. 그건 상당히 유력한 증거였지. 솔직히 우리같은 이레귤러는 마법의 중요도를 모르거든.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지."

일반 마법사들(대표적으로 일본의 하나)은 보통 개인이 쓰는 마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리가 강하다. 특히 폐쇠적인 결사일수록 더더욱. 슈도 그런 편이었다. 마법을 쓰는 것은 자주 보여줬지만 사용법은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

몇가지 더 있지만 말하기 전에 슈가 입을 열었다.

"요. 그그그그, 그... 알고 있었어..? 그, 마으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뒷말을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길게 끌었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했다.

슈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냐는 얘기다. 그야 뭐, 나만 알고 있었을뿐인가. 우리반의 학우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내가 배짱이 좋아도 난생 처음받은 고백에 이성적으로 답하기란 무리가 있다.

그녀가 더욱더 다리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 행동에 부끄러움이 물신 묻어나온다. 곶을 점령한 핑크빛의 분위기에 취한 것처럼 껴안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거린다. 고개를 돌려서 최대한 본능의 영역에서 물러났다.

하늘의 달에게 시선을 주자 아까까지의 본능은 벌써 마음의 구석에 쳐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정된 가슴을 가볍게 톡톡치며 눈을 감았다. 본능을 누를 수 있는 건 이성뿐. 나는 최대한 다음에 있을 일을 생각했다. 그러자 최악의 생각이 마음속에서 부상했다.

아쥴과 주아의 일. 그것은 마음을 바꿨다고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나 수아라는 녀석은 죽이려들지도 모른다.

팔이 다시 붙는다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팔은 '잘려'나간게 아니라 '뜯겨'나간거니까. 의학지식이 없어도 어렵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거의 다 내출혈이니까 그나마 치료하기 쉽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호지라도 힘들 것이다.

"만약, 정말로 죽이려든다면 내가 막지 뭐."

내가 '왕'인데 '왕사'라는 작자가 죽이지는 못하겠지. 적당히 그렇게 고민을 넘겨버리자 슈가 말을 걸어왔다.

"요. 나를... 봐주겠어?"

달을 보던 시선을 슈에게 주었다. 보이는 것은 백인종 특유의 흰피부에 회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이었다.

예상했던 광경과 다른 배경에 헛소리가 나왔다.

"어?"

입술이 가볍게 압박되면서 뜨거운 온기가 남겨졌다. 슈가 점점 멀어지면서 부끄러운 듯 혀를 내밀었다. 그제야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내가 그 행동에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할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요, 좋아해."

"어버버버버...?"

너무나도 직설적인 그 말에 나는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슈가 나보고 좋아한다고 한건가? 그 부끄러움을 잘타는 슈가?

"당황하지마. 그... 참고 있는거란 말이야."

"으응."

슈가 용기를 내서 말해줬는데 내가 당황하면 안된다. 그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대답은 어떻게 해야하지? 고백받는 것은 난생처음인데. 최대한 진심을 담아,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는 순간, 그녀가 손을 들어 나의 말을 제지했다.

"대답은... 호지나 요연의 마음도 정리할 수 있을 때 해줘. 헤헷, 내가 정리당하려나?"

볼을 긁으며 서글픈 듯이 말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워 나도 모르게 껴안아버렸다. 그녀가 품안에서 조금식 비틀거리다가 이내 추욱 늘어지며 몸을 맡겨왔다.

어떡하지. 그냥 귀여워서 호지를 대하던 것처럼 껴안았는데. 머릿속으로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할지 계속 탐색했지만 연애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몸이 가는데로 하기로 했다.

품안에 쏙 들어온 슈의 머리를 빼내며 그녀의 이마에 작게 키스했다.

"이정도로 참아줘. 다음에는 좀 더 진도나갈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나에게 최고의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건 그렇고 역시나랄까, 내 몸이 반응하는 '여자'란 호지로 설정되어있구나. 달을 올려다보면서 손을 뻗었다.

멀리있기에 손안에 들어올 것만 같은 작은 달. 옆의 슈가 어깨에 달처럼 조그마한 몸을 기댔다. 호지나 요연이 화낼 것을 알지만 이렇게 있기로 했다.

조금씩이지만 달이 지구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