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 / 0340 ----------------------------------------------
난입
밖의 세상이 비쳐보이는 폐쇠공간의 안에서 요연은 먹구름에서 거대한 몸체를 꿈틀거리는 청룡을 보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저자는 청룡이다. 무려 호지의 기억에 있을만큼.
용은 감각이 무디다. 오랜세월을 살아가는 만큼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늘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청룡은 나이를 측정이 불가능한 상대. 그것은 호지가 증명해준다(마력개방을 아는 것만봐도 확실히 어머니는 나이가 많을 것이다).
청룡은 분명히 욕심은 다 사라졌을 나이가 분명할 터.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인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상한 점은 이상한 것이고... 청룡이 적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이죠."
사고를 정지하며 청룡검을 왼손에, 백호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현무검과 주작검은 하늘에서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호위하듯 돌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준비를 마친 요연이 호지를 돌아보면서 작전을 말하려다가 호지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호지는 상당히 어려진 상태였다. 어느정도냐 하면 약 일곱살정도. 게다가 피부는 매우 새빨갛다. 머리에는 뿔처럼 생긴 자그마한 뼈 두 개가 이마 양쪽에 붙은체 기이한 마법진으로 둘러져 있었다.
요연의 시선을 느낀탓인지 호지가 약간 가시돋은 말투로 말했다.
"아빠한테 말하면 죽을 줄 알아. 조금쯤은 커지지 않으면 아빠는 날 제대로 봐주지 않을테니 체형을 바꾼것뿐이니까."
요연으로서도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고요는 묘하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일정선을 제대로 지키는 남자였다.
어떨때는 대담하게, 때로는 물러난다. 그렇기에 상당히 어려운 남자였다. 그는.
"집중해. 지금은 청룡과 싸우는 게 먼저니까. 백업은 이쪽에게 맡기고 네가 전위(前衛)를 하도록 해. 그것이 최선이야."
요연이 말하려했던 전술을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호지를 그녀의 뒤에 두면서 아직 머리를 드러내지 않은 청룡을 마주섰다.
청룡을 올려보던 그녀는 오래전에 잊고 있던 감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부상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경외.
어렸을 적, 할아버지를 처음보았을때 느꼈던 감정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상위존재의 압박감. 황룡이 된 뒤로 잊었다고 그녀는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은 자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손에 쥔 검을 고쳐쥐었다. 그 때, 하늘이 울었다.
강대한 뇌명을 울리며 청룡의 거대한 머리가 드러났다. 상당히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은 청룡이 이쪽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이상하네."
"무엇이 말입니까?"
요연의 투기를 깔아뭉개는 것 같은 말투의 호지를 불편한 눈으로 쏘아봤다.
"미간의 저것... 기분이 이상해. 나쁜것이 아냐. 이상해."
고개를 돌려 청룡의 미간을 올려보았다. 천리안이나 다름없는 시선이 멀리있는 미간안의 물체를 정확히 잡아냈다.
가면이다. 은백색의 가면.
저것을 보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기분이 나쁘다는 마이너스 감정도 아니고 좋다는 플러스 감정도 아니다.
"뭐죠. 저건?"
"글쎄. 기억에 있기는 한데, 기능을 모르겠어. 알고 있는건 정해진 주인이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폭주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청룡을 죽여야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호지의 몸이 태양같은 따스한 빛에 휘감기고 그 빛의 편린이 요연의 몸에 닿았다.
요의 누나인 소야와 싸웠을 때 운천에게 걸었던 비술. 그것이 지금 요연에게 펼쳐졌다. 강대한 힘이 요연의 몸속으로 파고들며 전신을 얽어매었다.
"자,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와. 아빠를 빨리 구하러가야 하니까."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도록 하죠."
그녀의 몸이 청룡에게 화살처럼 쏘아져나갔다.
-----------------------
무녀를 호위하며 싸우는 결사들의 전장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이었어야 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그저 피만을 흩뿌리는 기괴한 전장이 되었다.
청룡회원은 이지를 상실한 자들이라 맞아도 물러서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서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장의 중심에, 다른 별세계인 것처럼 무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리토가 부적을 위로 쏘아보냈다. 위로 뻗어나간 5개의 부적이 빳빳하게 펴졌다.
"흑룡부주, 수탄(水彈)."
부적에서 뿜어져나온 물이 공의 형태를 이루면서 방어선이 뚫린 곳을 파고드는 청룡회원에게 물의 탄환을 선사했다.
뻥!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청룡회원이 방어선밖으로 튕겨나갔다. 그틈을 타서 뚫린곳을 재빠르게 다른 결사의 인원이 매꾸기 시작했다.
리토는 한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드는 가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강화를 걸틈이 없었던지라 단단한 가면의 파편이 가면밖으로 빼낸 주먹곳곳에 박혀있었다. 그에 반해 청룡회원은 그저 뒤로 몇발자국 물러난것이 끝이다.
"젠장!"
더이상은 힘들다. 청룡을 이겨도, 악신을 이겨도, 결사가지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생각외로 죽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저들의 공격이 집요하게 무녀만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선신으로 악신을 대적한다는 것을 눈치챈것이리라. 실수로라도 무녀가 죽으면 게임 끝. 결사의 패배다.
패색이 짙은 전장을 보며 리토의 얼굴에 절망을 드리웠다.
퍽!
"크억....!"
잠시 딴 생각을 했던 탓 일까. 복부에 눈앞의 청룡회원의 주먹을 허락했다. 밀려드는 고통에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리토를 쓰러트리며 무녀를 향해 달려가며 마력개방을 전개했다. 번개처럼 뻗어나가는 적을 보며 순수하게 리토는 감탄했다.
듣기는 들었지만 정말 굉장한 능력이다. 어지간한 강화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의 기술. 저런 적이라면 잡을 수 없다.
하지만 몸은 이성보다는 의무를 따랐다. 체념한 손을 멀어져가는 적에게 뻗으며 눈을 감아가는 그 순간.
탕탕탕탕탕탕타앙!
그치지않는 총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떨어져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의뢰는 받아들였지만, 딱히 결사를 지켜달라는 의뢰내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낮지만, 그렇기에 전장을 짓누르는 목소리. 전에 고요를 비롯한 이사장 패밀리가 만난적있던 인물, 루카다.
그가 사일런스의 동료들을 이끌고 결사들의 전쟁에 발을 디뎠다. 그들 사이에서 고든이 웃으며 무녀를 향해 달려든 적에게 뛰어들며 나이프로 목을 잘라버렸다.
날아오르는 목을 다른 방향으로 걷어차서 또 다른 적의 머리통에 맞춰 버렸다. 고든이 그러는 사이에 밀리고 있던 승기는 어느틈엔가 결사들로 기울어져 있었다. 겨우 열남짓의 용병이 청룡회의 반을 쓸어버린 것이다.
"드디어 왔군요.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온 그의 형, 츠카사가 말하자 쓰러져있던 리토가 광속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통각을 지우는 마법을 배에 사용하며 자신의 형이 말하는 이상한 발언을 되새김질했다.
"무슨 소리야? '드디어'라니."
"음? 아아, 모르나?"
그가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워올렸다. 전장에서 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지금은 전설의 용병부대 숭례문의 하위조직인 사일런스의 십인대가 지원을 왔다. 게다가 이미 적의 3분의 2는 다 몰살당한 상태. 이정도 여유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츠카사가 느긋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어제 막 이곳에 해외의 원군들이 지원왔을때 나에게 말씀하시더군. 전화 좀 빌려달라고."
츠카사의 말에 리토는 긴장했던 마음이 저도 모르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화?"
힘 빠진 말에 대답하는 츠카사의 말은 힘찼다.
"그래, 전화. 핸드폰을 드리니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그것이."
"그것이?"
"숭례문의 총수였다.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총수에게 전화한 후 바로 하위조직인 사일런스로 통화해서 그들에게 의뢰했다. 청룡회의 몰살을."
리토는 감탄했다. 어떻게 총수와 인연이 있는지는 넘어가더라도 방금전처럼 밀릴것을 예상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게 감탄하면서도 그는 눈치채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시간. 이곳으로 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설의 용병부대라해도 다른 나라에 있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할 터. 하지만 불가능을 넘어 고요는 그것을 해냈다.
일전에 누나에게서 받은 열자루의 텔레포트 나이프. 고요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그것을 일본에 오기전 소유에게 넘기면서 부탁했다.
운천에게 전달할 것과 그리고 운천의 전화번호를 얻을 것.
그 두가지. 그것으로 간단하고도 쉬운 방법으로 십인의 마법사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덕분에 중간전투에서 공간이동으로 싸울 수 없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그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분을 본받을 만한 것은 따로 있어."
거의 신뢰에 가까운 그 칭호에 리토가 실소하며 되물었다.
"그런 녀석의 어디가?"
"의뢰비를 자기가 부담했거든. 정확히는 종주회의에서 뽑아낸 돈이지만."
루카가 의뢰라고 했으니 분명히 의뢰비가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정도로 그런 과분한 호칭을 쓴다는 것은 리토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아? 솔직히 아깝기는 하겠지만 못할일은 아니잖아?"
"의뢰비가 모자랐지. 회의에서 얻은 돈으론. 그래서 그분은 자비를 털었다. 우리들에게 되도록 피해를 주기 싫었던거겠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짧은 틈에 자신의 희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가장 어려운 전투를 그들이 부담했다.
존경받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리토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이런 이런. 남은 대리로 싸워주고 있는데 여기서는 담소라.. 불만이 생기는군요."
생각을 파고들며 뇌리로 찔러넣는 한마디에 리토가 사고를 정지하며 소리의 근원을 돌아보았다. 전장은 이미 전장이 아니었다.
전장이 아니게된, 피로 얼룩진 땅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청룡회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사이에서 사일런스의 십인대가 여유롭게 각자의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겨우 열명의 인원이, 200이 넘는 인원(결사가 싸웠으니 조금 적었겠지만)을 몰살시킨 것이다. 그 사이에서 금발의 남자, 루카가 이쪽으로 걸어와서 말을 걸었다. 츠카사가 능청스럽게 되받아쳤다.
"후후.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루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면서 하늘로 고개를 돌리기에 츠카사도 따라서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챈 리토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하늘은 과히 신들의 전쟁(라그나뢰크)이었다.
거대한 투신의 일격에 하늘이 불길로 갈려나간다. 그 일격에 조그마한 뇌신이 일격을 두개로 가르며 투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투신도 녹록치 않은지 그것을 피해낸다.
이런 광경이 반복된다. 마법사라도 일생에 보기힘든 광경에 리토는 눈을 때지 못했다.
"이거 참. 이만큼 실력이 늘었을 줄은 몰랐군요. '폐하'의 힘은 아직도 성장도중이란말입니까.."
하늘을 보던 루카가 알지못할 소리를 내뱉으며 전투를 계속주시했다.
이 전투가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폐하'... 우리에게, '이례'를 보여주십시오. 과거에도 해주셨으니 이번에도 그런 미래를 보여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슬픈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며 작게 탄식했다.
================================
아이젠입니다.
저번편은 코멘이 없더군요. 배갯자락을 눈물로 적시...
장난은 여기까지. 드디어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완벽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수준의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본편이 끝나고서 부터는 아마 이 소설의 본질에 가깝게 진행될겁니다.
그건 그렇고, 바다편을 집필중인데 현재 막바집니다. 주인공이 거의 탐정이 다 되어가는군요.
모소설에서 탐정은 결과와 시작을 보고 가운데를 추리해내는 직업이라던데 그 말이 지금 가슴에 확실하게 와닿고 있어요.
어찌됬든, 본편을 계속 즐겨주세요.
나가시기전에 코멘하나씩 달아주고 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