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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
리토의 손에서 무언가를 감싼 듯한 종이부적을 이쪽을 향해 쏘아올렸다.
흰종이에 먹으로 휘갈겨 쓴 한자가 아니었다면 백기로 판단할정도로 아무런 특징이 없는 부적이라 자칫하면 전투자세를 풀 뻔했다.
부적에 마력이 없기는 했으나 상대는 상당한 실력자. 아무런 이유없는 수를 쓰지는 않을 터.
그가 손을 몇번 움직이며 인을 맺었다.
"흑룡부주, 수화포!"
두 마디의 진언에 종이부적에서 대량의 물이 폭포수처럼 나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에 멈추지않고 발 앞꿈치로 바닥에 인을 새겼다.
동양의 주술이 아닌, 슈에게서 몇번이나 보았던 룬이다.
"하갈라즈(H)! 나우디즈(N)!"
얼음을 상징하는 하갈라즈와 속박을 상징하는 나우디즈의 문자가 허공에 떠오르면서 나를 향해 퍼붓는 문자에 스며들었다.
강력한 냉기를 유지하며 물이 얼지 않은 것이 그의 실력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리토가 품안에서 청동솥을 빼들었다.
저도 모르게 말도 안되는 소리가 나왔다.
"그만 좀 해라! 뭘 그리 많이 쓰는 거야?"
그는 나의 말에 아랑곳않고 청동솥의 뚜껑을 열며 외쳤다.
"오너라! 29군단의 지배하는 공작, 42번의 악마 베파(vepar)!"
청동솥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며 점점 인어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유영하는 인어, 베파가 손짓하자 물줄기가 정지했다.
또 다시 손짓하자 물이 생명체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죽여버려라!"
그의 손짓과 함께 베파의 손끝이 나를 향했다. 강력한 냉기를 품은 물줄기가 머리위로 떨어져내렸다. 모두 내가 패배 할 것을 의심치 않으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호지가 코웃음쳤다.
"바보들. 이제 아주 추한 퇴장이 이루어질텐데."
애석하게도 이해하지 못했다.
호지가 읖조린 것은 능숙한 일본어였다. 뭔지는 모르지만 호지를 상당히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째서 일본어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뒤로 미루고 물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이 정지했다.
"엇... 베파!"
이상함을 느낀 리토가 다시 베파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베파가 아무리 손짓해도, 명령해도 듣지 않았다.
고조선의 세명의 신 중 한명인 우사.
겨우 물의 악마따위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베파가 존재하는 72악마 중 최강인 바엘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 손에 무너졌다.
최소한 아스모다이정도는 데리고 오지않으면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칫..!"
그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흑룡부주의 마력을 끊으려했지만 내가 그의 마력을 현상태보다 조금 무리하는 상태로 바꾸어버렸다.
"익... 이게, 어째서!!"
흐름을 조작하는 운사의 힘.
상대방의 내부를 이쪽에서 강제로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지금 상태로는) 마법을 쓴 상태라면 다르다.
내부와 외부의 벽을 스스로 허물었으니 내 우사에게는 좋은 먹이라 할 수 있다.
"물을 얼렸다면 조금은 오래버텼을텐데."
그랬다면 우사는 오래 걸려서 못썼겠지.
리토의 몸이 서서히 수척해져갔다.
계속 몸을 불리는 냉수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작은 방 하나를 덮을만큼 커지고서야 몸을 불리는 것을 멈추었다.
흑룡부주의 부적을 이미 형체를 알 수 없게 터져버렸고 베파는 사라졌다.
마력이 고갈된것이다.
"흠, 꽤 괜찮은 상대였어. 그러니까."
살짝 다음에 할 말을 고심했다.
"잘 가."
물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리토의 머리위로 떨어져내렸다. 마력도 남지않은 그가 맞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
죽일 생각은 없으니 물길을 틀었다. 그래도 중상은 피할 수 없겠지.
콰아아!
거대한 나무같은 것이 그와 물줄기 사이를 가로막았다.
광. 그가 막았다.
"광..?"
"여기까지다, 해외의 원군. 난 주제를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이지 죽이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우사를 사용해 물을 기화시켰다. 공동의 습기가 올라가며 온도가 내려갔다.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죽일 생각은 없었어. 팔 한쪽을 날려버릴 의향은 있었지만."
"...리토가 쓰는 마법에는 인을 맺는 것이 중요한 마법도 있다."
"이런. 한 우물도 파기 힘든데 따를 것까지 넘본거야? 파문해야 하는 것아냐?"
광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며 몸에 맞은 물을 털어냈다. 주저앉은 리토의 뒷덜미를 물어 일으켜 올렸다. 그는 넋이 나간채 허공만을 보았다.
광이 혀를 찼다.
"오늘은 이만 파하겠다. 쉴곳은 하나, 네가 바래다주어라."
"예!?"
뜨악한 표정을 짓는 캐쥬얼차림의 단발머리 여성이 우물거리다 내 쪽을 힐끔 보았다. 내 시선과 맞부딫혔다.
어떻게 판단했는지는 몰라도 광을 향해 힘없이 대답했다.
"예.."
그녀가 이쪽으로 다가와 작게 목례하고는 따라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나를 따라가면서 카페밖으로 나왔을때는 와타누키가 자동차에 앉아서 인사하고 있었다.
그녀가 조수석에 앉고 우리가 뒷자석에 앉자, 자동차가 출발했다.
"감사합니다. 동생을 혼쭐내주어서."
그의 말에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가 이내에 깨달았다.
"아, 리토? 와타누키씨의 동생이었나보죠?"
그녀석의 이름은 와타누키 리토가 되는 건가?
"예. 저는 재능이 없었지만 리토는 재능이 넘쳤으니까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께 관심 받았고 타지에서 명강사라 부를 만한 마법사들의 자제로 들어가다보니까 상당히 오만해졌죠. 아마 요님을 상당히 싫어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맞습니까?"
"돗자리깔아도 되겠네요."
"...?"
"잘 맞추신다는 이야기예요."
그가 살짝 웃음지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리토는 여러 마법사들의 문하로 들어간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마법에만 얽매이지 말라는 부모님의 명이기도 했지만 리토로서는 좀 더 강해지는 수단이었겠죠. 그래서 세상을 어린나이에 주유하며 스승들을 맞이 했습니다. 그런데, 딱 2분, 정확히는 두 '종류'의 마법사에게 문하가 되는 것을 거절당했습니다. 첫번째는 세명의 대마법사. 이분들은 뭐, 애초부터 방랑하시기 때문에 찾지 못했지만 두번째인 한국은 다릅니다."
여러 마법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대충 예상은 했지만.
질투인가?
"한국인이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간혹 특이한 마법을 많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마법들은 어떠한 마법에도 잘 녹아드는데다가 강력하기까지 하니 마법사들에게 한국어 열풍이 불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죠. 동생도 한국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마법사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만 말입니다."
쇄국정책만을 펼치는 것은 아니었던가.
삼가의 인간에대해 재평가를 하는 나를 백미러로 쳐다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리토는 나름 머리를 굴렸죠. 한국이 외국인에게 마법을 넘기는 조건이 없이 기분에 따라 넘겼으니까요. 아니, 이쪽만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간에는 그렇게 정의 내려져 있습니다. 리토는 그래도 약한사람보다는 강한사람이 낫겠지라며 마지막행선지를 한국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절당했군요."
그가 씁쓸하게 대답을 내뱉었다.
"예. 이유를 몇번이나 물었지만 묵묵부답. 열흘이나 그러자 하군이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머리스타일, 피, 능력. 모두 다'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이것은 핑계였을 겁니다. 일본인이라도 마법을 받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덕분에 귀환하고나서는 한국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조금 흔한가요?"
호지가 딱잘라 대답했다.
"응, 무지. 고전 드라마에도 안 뜰 소재네."
버릇없이 대답하는 호지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호지가 히잉하며 품에 안겨들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좋은 신음으로 바뀌었다.
와타누키가 우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뭐야, 그 눈초린?
"묻는 것을 잊었는데 말입니다, 두 분은 무슨 관계십니까?"
"아빠와 딸사이랍니다."
호지의 즉답.
와타누키의 표정이 또 다른 당혹에 물들었다.
"몇살... 아니, 몇세신가요?"
이전에도 정중했지만 지금은 아주 뼛속까지 웃어른을 대하는 투다. 속으로 킥킥거리며 말했다.
"17살. 이쪽은 만으로 세면 16살정도?"
"...따님은 몇세신지요?"
호지는 겉보기에는 중학생이지만 시간적으로는 아직 갓난아기다. 만으로 따지면 한 살을 넘어서 반년도 안된다. 뭐라 말할까 고심할때, 호지가 말했다.
"한 살?"
의문형의 대답. 자신이 말하고도 머쓱한지 볼을 긁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는 이해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핸들을 꺽었다.
몸이 약간 호지쪽으로 쏠렸다.
"인간이 아니었군요.. 뭐, 그만한 실력은 인간이 낼 수 있을리가 없지만요."
"저는 인간입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조수석에 앉은 하나의 눈빛이 백미러를 통해 나랑 마주쳤다.
못 볼 것이라도 본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왠지 모르게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호텔에 머무는 것은 알겠는데, 그곳에 머물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일단은 그곳에서 머무시면서 결사에서 연락이 올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사대천왕의 발생은 주기적이기는 하나, 장소는 일정치못하거든요."
"그녀석들의 현계시간은?"
와타누키가 발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대천왕은 일종의 영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현계시간이 있을 터.
"약 두 시간정도 입니다. 그리고 발생 예정일은 내일입니다. 오늘은 막 오셨으니 푹 쉬시고 내일은 열심히 싸워주세요."
와타누키가 웃으면서 말했다. 딱히 그것에대해 공포는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것들을 물리쳐줄것이라는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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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