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아기고양이와 마법사의 상관관계
“리암? 방에 있나?”
케이든은 리암을 부르며 방문을 열었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달갑진 않은 풍경에 케이든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렸다.
오늘따라 그린 듯한 봄 날씨라 날도 맑고 따뜻해 같이 걸으면 좋을 텐데, 문제는 리암이 지금 어디 있는지 도통 알기가 어려웠다.
누구는 두 시간 전 리암을 서쪽 정원에서 보았다고 하고 누구는 한 시간 전에 3층의 서재 앞에서 보았다고 했다. 빨빨거리며 성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니 오늘도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아 다행이긴 했다만 예정에 없던 술래잡기를 시작한 입장에선 그가 슬슬 모습을 드러내 줬으면 했다.
혹시나 리암이 자기 방에 있을까 봐 여기로 와 봤는데 텅 빈 방을 보니 아무래도 꽝인 듯했다. 다음은 어디를 뒤져 봐야 할지 골치가 아파 팔짱을 낀 채 케이든은 열린 창문을 노려봤다. 리암이 또 멀쩡한 문을 내버려 두고 창문으로 출입한 모양이었다. 성의 창문을 다 막아 버릴 수도 없고, 골치 아팠다.
수도의 저택에선 안 그러더니 아미르 성에 온 후로는 성이 너무 커서 어디 갈 때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리암은 창문을 통해 나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케이든의 입장에선 별로 달가운 버릇이 아니라 볼 때마다 잔소리했지만 그래도 리암은 꿋꿋하게 창문으로 나다녔다. 리암은 평소엔 케이든의 말을 잘 듣는 듯해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그의 기준에서 납득이 안 되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보기에 안 좋으니 창문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케이든의 잔소리는 유감스럽게도 리암을 설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여간에 방에 없으니 다음은 식당 쪽을 찾아봐야겠다 싶어 몸을 돌리던 케이든은 침대 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짐승 소리에 멈칫했다.
아무래도 열린 창문으로 새라도 들어온 것 같았다. 새가 들어온 게 맞으면 잡아서 내보내려고 침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던 케이든은 얇은 이불 아래로 보이는 동물의 형체에 멍해져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양이?”
낯선 소리의 정체는 새끼 고양이였다. 까만 털에 푸른 눈을 가진 새끼 고양이는 케이든이 다가가자 그를 피해 몸을 숨기듯 이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왔단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성에 동물을 데리고 왔으면 일과를 전부 케이든에게 조잘거리는 리암의 성격상 말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 말은 이 새끼 고양이가 이 침대에 입성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오늘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쁘더니 그 와중에 고양이도 주워 온 모양이었다.
“리암 이 녀석은 고양이만 여기 두고 어딜 간 거야.”
“먁.”
“……?”
야옹보다 병아리가 삐악거리는 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케이든의 말에 호응하듯 이불 밑에서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호응에 멈칫한 케이든은 몸을 숙여 고양이를 자세히 살폈다.
이불 아래의 새끼 고양이는 케이든을 경계하던 것도 잠시였고 가까이 온 인간이 궁금한지 몸을 돌려 그를 슬쩍 보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삐죽삐죽 튀어나온 까만 털이 보송보송했고, 멍한 파란 눈도 귀여웠다.
“고양이도 저 같은 걸 주워 와선…….”
갑자기 웬 고양인가 싶긴 했다. 키우고 싶었나? 그런 기색은 딱히 없었는데? 그래도 어차피 성에 데리고 들어왔으니 키우고 싶다고 말하면 허락해 줘야겠다.
“그나저나 리암은 어딜 간…….”
“먁.”
케이든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이 고양이 아까부터 리암의 이름에 반응하는 것 같은데.’
“리암.”
“먁.”
“고양이.”
“…….”
“먹이.”
“…….”
“리암.”
“미애액.”
“산책.”
“…….”
“…리암?”
“미얔.”
케이든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이 고양이……?’ 순간적으로 든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케이든은 이마를 짚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하지만, 시간을 되돌아가고 남과 섞이는 건 말이 돼서 벌어진 일이란 말인가?
하필이면 새끼 고양이의 털과 눈 색도 리암과 같아서 사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천천히 고양이에게 손바닥을 뻗었다.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냉큼 그의 손 위로 올라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끼 고양이의 태도에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었다.
케이든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지, 이 고양이가 리암이겠냐.’라는 이성과 ‘혹시 모르니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또 다른 이성의 다툼 속에서 고민하다가 우선 성을 한 번 더 수색해 본 후 마탑에 연락해 보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고양이로 변해…….”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불신에 케이든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리암.”
“먁!”
“…그래. 마탑에 연락해 볼 테니 얌전히 있어.”
“네에? 저 불렀나요?”
“……!”
예고 없이 창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케이든은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심장 떨어지는 기분이란 게 뭔지 제대로 체험한 케이든은 벌렁이는 가슴을 붙들고 창문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케이든이 열심히 찾던 사람이 바깥에서 창문을 붙들고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창가에서 빛을 받는 그 얼굴이 옛 신화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요정 같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멀쩡한 문을 내버려 두고 바깥에 둥둥 떠서 창틀에 팔을 올린 채 안을 보는 그 꼴이 어처구니가 없고, …조금 전의 그 추태를 들킨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그대,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문으로 다니래도.”
“급해서……. 그런데 케이든, 조금 전에 저 부르지 않았나요?”
“착각인 것 같군.”
“역시 그렇죠? 비행하니까 바람 소리 때문에 다른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어? 케이든, 얼굴이 빨개요. 더워요? 시원하게 해 줄까요?”
“아니, 됐어.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케이든의 말에도 리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 어린 시선을 던졌지만 금세 표정을 수습한 케이든에게서 다른 기색을 찾지 못했는지 그는 냉방 마법으로 방 온도만 좀 더 낮추며 무슨 일로 자신의 방에 왔느냐 물었다.
“날이 좋으니 산책이나 할까 해서. 그런데 이 고양이는 뭔가?”
“방에서 책 읽고 있는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그 고양이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몰라도 저기 나뭇가지에 매달려 울고 있더라고요. 떨어져서 다칠까 봐 잠깐 방에 들여놓고 엄마 고양이를 찾고 있었어요.”
리암은 제 방 앞에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저 작은 몸으로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건지 모르겠다고 감탄했다.
케이든은 리암이 나무를 보며 새끼 고양이의 체력에 감탄하는 동안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사람이 무슨 수로 고양이가 된다고…….’ 리암이 다시 고개를 방으로 돌렸을 땐 그새 태연한 얼굴을 가장한 케이든이 물었다.
“어미는 찾았나?”
“네. 얘랑 똑같이 생긴 고양이 가족이 저기 덤불 뒤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데려다주려고 창문으로 들어왔죠.”
멀쩡한 문을 놔두고 창문으로 출입한 것에 한 소리 들을까 봐 슬쩍 변명해 두는 말이 철저했다. 부끄러움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그것이 웃겨 슬쩍 웃은 케이든은 창으로 다가가 손에 든 고양이를 리암에게 건네주었다.
“얼른 어미에게 데려다주는 게 좋겠군.”
“네에. 다녀올게요!”
고양이를 받아 든 리암이 천천히 비행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리암이 향한 덤불이 그가 말한 고양이 가족이 사는 덤불인 듯했다. 그가 덤불 앞에 조심스레 새끼 고양이를 내려놓고 몇 발자국 뒤로 가 딴청을 피우니 곧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재빨리 덤불에서 튀어나와 새끼의 냄새를 맡곤 목덜미를 물어 서둘러 데리고 들어갔다.
케이든은 그 광경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여전히 가시지 않는 수치스러움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리암이 제대로 못 들어서 다행이지. 이게……. 하…….
사랑에 눈이 멀면 이성이 마비된다지만 방금은 좀 심했던 것 같다. 케이든은 본인의 비이성을 반성하며 줄을 당겨 시종을 불렀다.
“새끼 고양이들이 어미에게서 독립할 무렵까지 뜰에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 좀 가져다 놓게.”
“네. 주인님.”
시종에게 물러나도 된다고 손짓한 후 눈을 창문으로 돌리자 일을 마친 리암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이야 서두른단 핑계라도 있었지, 지금은 대체 왜 창문으로 출입하는 것이냐고 잔소리하려다 관두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일 한다고 돌아다녔는데 굳이 잔소리해 의기소침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창문으로 출입하는 버릇을 고쳐 놔야 리암이 집 안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가 좀 더 쉬울 텐데……. 키가 큰 이후로 창문으로 오가는 게 어려워졌다고 툴툴거리는 리암에게는 미안하지만, 케이든은 그가 키가 커진 후로 창문 출입이 부쩍 줄어든 것이 반가웠다.
배우자의 복잡한 속내도 모르고 마냥 신이 난 리암은 활짝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케이든의 곁에 다가왔다. 케이든의 손을 잡은 리암은 눈을 빛내며 그를 재촉했다.
“우리 어디 산책할까요?”
그러며 문 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자신이 정원에서 방으로 들어올 땐 빠른 길을 골랐으면서 같이 가는 건 오래 걸리고 더 붙어 있을 수 있는 코스를 고르는 속내가 뻔해 우습고 귀여웠다.
케이든은 자신의 손을 잡은 큰 손을 깍지 껴 잡아 주며 그의 종알거림을 담아 듣다가 아무것도 아닌 척,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슬쩍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들은 동물로 변신할 수 있나? 개나 고양이 같은?”
“음, 종을 바꾸는 변신 마법……. 신체 일부만 바꾸는 건 되는데 종 자체는 아직 무리일걸요? 관심 있나요? 제가 만들어 볼게요!”
“아니. 그냥 물어본 거네. 리암, 하지 마.”
케이든은 리암의 의욕 넘치는 대답에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드물게 질색하는 티를 잔뜩 내며 거절하는 남편의 행동에 어린 마법사는 갸웃거리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아미르 성은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