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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돈이 없어 (2/13)

Chapter 2. 돈이 없어

회귀를 멈춘 지 한 달째,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

‘돈이 없다.’

진짜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 전 재산을 다 털어 봐야 케이든의 만년필 잉크값도 안 나오는 수준이었다.

돈이 없으면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자기 어려운 현실에서 아주 비극적인 이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굳이 찾자면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도 정신을 놓고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 나는 한 번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었다. 2월 말 무렵, 리암 카터는 꽤 큰 건수의 일을 해내 보수를 풍족하게 받았고 나는 내 이전의 리암 카터가 벌어 둔 돈을 차근차근 까먹으며 지내던 날 백수였다.

그동안 내 재정 상태에 문제가 없었던 건 언제나 소지금을 다 쓰기도 전에 회귀해 버리던 내 특수 상황 덕분이었다.

초반 회차에서야 혹시 모르니 아꼈었지만, 패턴이 정해진 후반 회귀에서는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돈을 써 버리곤 했다. 그래 봐야 어차피 회귀 때문에 언제나 3월로 되돌아갔으니까! 덕분에 나는 마흔두 번의 회귀를 거치는 동안 내 재정 상황에 대해 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회귀가 멈춘 지금, 나는 더 이상 생각 없이 희희낙락할 수가 없었다. 공작가에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차분히 전 재산을 계산해 본 나는 작금의 사태에 저절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집 보증금을 빼면 3골드가 추가되고……. 좋아, 이제 케이든 만년필 정도나 살 수 있겠군.”

케이든이 나를 공작저로 데려오면서 가져다준 짐을 전부 탈탈 털어 보아도 70실버가 다였다. 이제 여기에서 지내니 필요 없어진 집의 보증금을 빼면 3골드가 추가로 들어오긴 할 테지만……. 이게 전 재산이라 생각하니 진땀이 흘렀다. 내가 빈털터리라니.

사실, 공작가에 들어온 이후로 돈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때 되면 밥 주고 옷 주고 필요한 건 사용인한테 말해 놓으면 늦지 않게 가져다주다 보니 내 주머니의 돈이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부로 사정이 달라졌다. 왜냐면 내게 닥친 현실은 케이든의 돈으로 해결할 수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있으면 케이든의 생일이었다!

케이든의 생일 선물을 그의 돈으로 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리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정신 나간 놈이어도 그렇지, 애인 선물을 애인 돈으로 사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케이든의 돈으로 생일 선물을 산다는 건……. 케이든의 물건을 그냥 내가 대신 구매했다가 전달해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당장 닥친 비극을 부정해 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서 선물을 하는 데 꼭 돈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속삭임이 들려왔지만 단호하게 그 간사한 목소리를 내쳐 버렸다. 그건 케이든이 나한테 할 때나 멋있는 소리지 사지 멀쩡한 성인 남성인 내가 하기엔 너무… 가오 떨어지는 합리화이지 않나.

확실한 건 내가 방 안에 얌전히 앉아 있다고 해서 돈이 천장에서 떨어지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케이든의 생일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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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반환 서류를 작성하고 나오니 하늘에 해가 쨍하니 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게 돈은… 없었다! 보증금 반환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집 상태를 확인하고 뺄 건 빼고 준다나.

될 대로 되라고 늦장 부리다가 나중에 돈이 필요해졌을 때 부랴부랴 제출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어쩐지 오늘은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일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칭찬의 말을 날려 주고 나서 현실을 곱씹어 보니 여전히 수중에 있는 돈은 70실버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있었다. 큰일인데.

“어쩔 수 없다…….”

결국, 참담한 현실 앞에 놓인 나는 이 세계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노동이란 걸 시작해 보기로 했다. 안녕, 탕자 같던 지난 나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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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지루했다. 벌써 세 시간 넘게 대기 중인데 대체 나는 언제쯤 부르려는지.

내가 지금 온 곳은 일명 길드 사무소로 불리는 곳으로 잡다한 심부름부터 토벌 의뢰까지 들어와 일자리와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곳이었다. 이곳은 왕궁에서 오는 일자리도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곳이라 수도에서 일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나는 이곳에 오면 금방 일을 잡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나는 지금 일을 받기는커녕 용병 신분증 재발급만 세 시간째 기다리는 중이었다.

“언제 끝나…….”

다시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소홀히 건사했던 리암 카터의 용병 신분증을 애저녁에 분실한 것이 큰 실수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얌전히 재발급 대기표를 받고 의자에 앉아 대기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지금, 나를 세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범인들은 필요 서류를 놓고 왔으니 돌아가란 말에 발끈하며 직원과 싸우곤 하는 내 앞의 민원인들이었다.

지금도 봐라, 직원이 이 서류는 안 되니 돌아가라 하자 이 서류에 무슨 문제가 있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내 앞에서 20분이나 시간을 끌고 있었다. 슬슬 그냥 내가 저 사람을 끌어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내가 저 사람의 뒤통수를 옆에 있던 의자로 내려치기 전에 호출받고 불려 온 길드의 경비원들이 남자를 끌고 갔다.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소리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귀가 아팠다.

“165번. 165번 고객님 계십니까?”

드디어 나였다. 혹시라도 내 번호를 지나칠까 봐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자 직원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신분증과 작성한 서류를 달라고 하였다. 의기양양하게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건네자 직원은 사무적으로 읽어 내리다가 물었다.

“마탑 출신이라고 적으셨는데 증명 서류 가져오셨습니까?”

“여기 인장 반지가 있습니다.”

내가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 건네자 직원은 떫은 표정으로 답했다.

“바로 재발급하시려면 이건 안 되고, 마탑의 직인이 찍힌 증명 서류를 발급받아 오셔야 합니다.”

“예?”

이건 또 무슨. 마탑에서 수여한 인장 반지야말로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구기며 주먹을 쥐고 말았다. 곧이어 직원이 텅 빈 눈동자로 규정을 설명하였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했다.

“마탑의 직인이 찍힌 서류만 바로 승인이 가능하고 인장 반지를 통한 재발급은 2주 정도 걸립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일반 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나중에 마법사 승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주, 그냥 지금 마탑까지 달려가서 서류를 받아 오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순간 앞선 사람들이 왜 안 된다는 말에 그렇게 난동을 피웠는지 조금 이해가 갔다. 아주 조금.

“…일반 용병 신분증으로 재발급받겠습니다.”

“네. 추후 마법사 승인을 받으시려면 필요 서류를 발급받아 오신 후 담당자에게 다시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직원에게서 일반 신분증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이를 갈고 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난동을 피웠다가는, 내일 아침 신문에 ‘케이든 공작의 예비 신랑, 길드 사무소에서 난동 끝에 경비대에 끌려가다.’ 같은 기사가 날 게 분명했으므로 순순히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시작이 아주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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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신분증으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었다. 그것도 오늘 단기로 해치울 만한 일인데 페이가 괜찮은 건 더더욱 말이다.

길드에 붙은 일거리들을 보며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보수가 괜찮다 싶은 건 최소 사흘짜리였고, 나는 잠깐 외출하고 온다고 말하고 온 것이어서 늦어도 저녁쯤엔 집에 들어가 봐야 했다.

슬쩍 눈을 돌려 마법사를 찾는 일거리들을 보니 쉬운데 보수도 괜찮고 날짜도 맞는 것들이 꽤 많아 배가 아팠다. 나 마법사 맞는데, 내가! 케이든도 인정한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마법산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손에 들린 것은 일반 신분증이었고, 내가 이 신분증으로 할 만한 일거리 중에 페이와 시간이 맞는 일은 굴뚝 청소밖에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며 헛된 꿈을 꾸었지만, 더는 버틸 수 없던 나는 죽상으로 굴뚝 청소에 자원했고 담당 직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려 주었다. 굴뚝 청소는 처음인데,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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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지 않았다.

굴뚝 청소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마법으로 쓱쓱 닦아 내는 쉬운 일이 될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처음이라 바람 마법을 요령 없이 쓰는 바람에 굴뚝의 검은 먼지들을 한순간에 뒤집어쓰고 말았다. 까만 재들이 내게 떨어질 때 그 기분이란……. 최악이었다.

일 자체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일을 마친 후 내 몰골은 아주 끝내 주게 엉망이 되었다. 케이든이 지금 나를 보면 굴뚝을 혹시 청소 솔이 아니라 몸으로 닦아 냈느냐고 물을 만한 모양새였다.

한번 묻은 재는 물로도 잘 안 씻겨서 의뢰인의 집을 떠나기 전 얼핏 거울을 보니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재투성이가 된 꼴에 성질이 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겼다가 그나마 깨끗하던 이마까지 검댕으로 얼룩덜룩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그저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집 들어가기 전에 청결 마법 쓰고 들어가야겠다…….’

당장 마법을 쓰기도 귀찮아 담벼락에 기대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길 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길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 게 몇 년 만인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은 늘 다음 에피소드는 어떻게 해결해야 끝까지 진행될지 고심하느라 정신없었으니까.

풍년제 이후 내게 벌어진 모든 일은 모두 기존의 에피소드에 없던, ‘처음’ 생긴 일들이었다. 어떤 건 기쁘고 어떤 일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곱씹어 보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약간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짤랑―

내가 지난 기억을 되뇌느라 넋을 놓던 중 내 앞에서 동전 두어 개가 맞부딪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내 허리에도 오지 않을 여자아이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동전을 내 발끝에 슬쩍 던져두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아이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가 두 주먹을 꽉 쥐고 힘내라는 듯 한 번 흔들어 준 다음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던 엄마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내 앞에 나란히 놓인 동화 두 개와 아이를 칭찬하는 엄마를 보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믿기지 않았다. 잠시 굳어 있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감과 동시에 황당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나 거지 아니라고…….’

내가 넋이 나간 채로 앉아 있는 동안 서너 명의 사람들이 나를 가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동전을 던지고 갔다. 아무리 나라도 맹세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자존심은 자존심이고 사람들이 자진해서 던져 주는 불로 소득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풀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받은 동전들을 올려놓았다.

이제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춘 거지가 되고 말았다. 이 꼴을 케이든에게 들키면 이번에야말로 나를 지하 감옥에 확실히 감금할 것에 얼마 되지 않는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바닥에 죽치고 앉아 있자 제법 쏠쏠했다. 내가 굴뚝 청소를 하고 받은 돈이 10실버였는데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선 한 번씩 던져 주고 감사 인사를 하고 받은 돈이 11실버였다.

원래 이렇게 수도 사람들이 인심이 후했던가? 가끔 내 얼굴을 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 못 하는 사람들도 있어 이 돈에 순수한 호의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별 피해는 없으니 아무렴 어떻겠냐마는.

그러나 옛말에 화려한 꽃은 10일을 못 간다고 했던가, 내 화려한 구걸 생활도 두 시간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몰랐는데 거지들 사이에서도 구역 다툼이란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앉은 곳이 목이 좋은 곳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수입이 좋으니 자리가 탐이 났는지 몰라도 남루한 행색의 거지 두어 명이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뭡니까?”

내 질문에 돌아온 것은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과 삿대질이었다. 길거리에서 얼마나 생활했는진 몰라도 이빨이 거의 썩어 문드러져 까맣게 된 거지가 쉰 목소리로 나를 걷어찰 듯 발을 휘적거리며 나를 몰아세우고 옆의 거지는 나를 때릴 듯 주먹을 추어올렸다.

이쯤 되자 당황스러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화도 말이 통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말을 건네도 웬 고함만 되돌아오니 얼이 나가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싸움? 이건 일방적인 몰아세움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꺼져라, 하나뿐이었다. 이것도 정확히 알아들은 건 아니고 삿대질과 드문드문 들리는 말로 유추해 낸 것이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내가 망토와 돈을 챙기고 뒷걸음질로 주춤주춤 자리에서 물러나니 그대로 내 자리를 차지한 거지들이 나한테 얼른 마저 안 꺼지냐고 욕지거리를 한 것으로 봐서는 말이다.

일단 급히 자리를 피하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살다 살다 거지랑 자리싸움을 다 해 보네……. …그리고 그걸 또 졌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방금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니 인생에 자괴감이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인생아, 진짜.

이대로 서 있다가 괜히 또 거지로 오해받을까 봐 우선 청결 마법으로 몸에 붙은 먼지와 재들을 닦아 내고 골목에서 좀 떨어진 커피 하우스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분수대 근처의 커피 하우스는 날이 좋아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주문하겠냐 묻는 직원에게 일단 커피를 주문한 후 오늘의 수익을 정산해 보았다.

[오늘의 수입 총 21실버.

정신적 피해, 계산할 수 없음.]

어쩐지 돈은 벌었는데 손해 본 기분이었다. 직원이 가져다준 커피에 설탕을 넣고 휘적거리며 썩은 생선 같은 눈깔로 앞을 멍하니 바라봤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속 이래야 하나……. 아니,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더는 이런 수모를 감내할 수 없었다. 기필코 내일 당장 마탑으로 뛰어가서 증명서를 떼 오고야 말 것이다.

이를 갈곤 내일을 기약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감미로운 기타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음유시인의 악기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광장의 구석에서 기타를 치며 건국왕 서사시를 부르는 음유시인이 보였다. 듣고 있자니 꽤 훌륭한 솜씨였다.

물론 이야기 자체야 엉성하고 음유시인의 노래보다 케이든이 가만히 바깥을 보고 있는 얼굴이 더 서사가 있는 수준이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의 목소리는 꽤 괜찮았다.

평소였으면 음유시인의 노래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나에게 보이는 건 조금 달랐다.

음유시인 앞에 놓은 기타 케이스, 그리고 그 안에 쌓인 돈. 그래, 저거였다!

나는 내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활짝 웃으며 남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난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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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앞에 서서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분수대에서 튕겨 나오는 물들이 한곳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작은 돌고래들의 형상이 되어 겅중겅중 뛰어다니다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돌고래들 사이로 거대한 배가 나타나 출렁거리자 돌고래들이 번갈아 그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배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하였다.

햇빛을 받자 물로 된 돌고래들은 수정처럼 반짝이며 광장을 환하게 빛내었다. 그 광경에 광장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 광경이 신기한지 가까이 다가온 꼬마 아이에게 돌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듯 살랑이며 다가갔다가 아이의 손에 톡 부딪히고 물방울로 변해 다시 한번 흩어졌다.

아이가 흩어진 물방울을 향해 애타게 손을 뻗자 사방으로 흩어진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비눗방울로 변해 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가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눗방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비눗방울들이 두둥실 떠올라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배 주위를 돌던 돌고래들이 구경꾼들에게로 흩어져 그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놀다가 다 같이 한 번에 흩어진 후, 큰 무지개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일곱 빛깔의 투명한 빛무리가 아름답게 자리 잡은 하늘 아래, 분수대가 다시 한번 크게 솟아오르며 사방에 물보라를 뿌렸다.

“와아―!”

놀란 아이들이 입을 벌리며 감탄을 쏟기에 바빴고 눈을 크게 뜨고 무지개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그리고 나는, 열렬한 성화와 함께 내 앞에 쌓이는 돈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작에 이럴걸!

이래서 사람이 돈을 벌려면 기술을 배우라는 것인가 보다. 20분도 안 된 마법 공연으로 번 돈이 얼추 살펴보아도 1골드 가까이 되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돈이 쌓인 망토를 챙기려고 몸을 숙였다. 오늘 내내 한 고생은 이것을 위한 액땜이었나 보다. 돈을 보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신이 나 짐을 챙기는데 이상하게 앞쪽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묘하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자 사람들의 틈 사이로 경비대원 두 명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경비대원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뭐, 뭐지?

급히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공연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근처에서 함께 길거리 공연 중이던 사람들은 다 온데간데없었다. 순간 등골이 싸해졌다. 설마, 이거.

“광장에선 공연 허가증이 있는 사람만 공연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허가증을 받으셨습니까?”

“…저 말고도 공연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작은 목소리로 말을 돌리며 변명하자 경비대원이 광장을 쓱 둘러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없는 걸 어쩌겠냐는 반문이 들려오는 듯했다. 젠장. 다들 경비대가 순찰하기 전에 공연하고 사라졌는데, 나만 눈치 없이 이러고 있던 거였나.

액땜은 무슨, 가끔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는데, 그게 오늘인가 보다. 연속된 불운에 조금, 아주 약간 울고 싶어졌다.

말없이 진땀만 줄줄 흘리고 있는 나에게 경비대원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빨리 끝내자는 듯 손짓했다.

“경비대까지 동행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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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추웠다. 별로 넓지 않은 유치장 내에는 대낮부터 취해 경비대에 끌려온 사람들과 소매치기를 하다 잡힌 사람들 등등 여러 사람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돌아가며 자신을 잡아 온 경비대원의 욕설을 하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에 처박힌 나는 최대한 몸을 옹송그렸다. 오늘 하루 왜 이러지 진짜.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가 공연을 해서 번 돈을 뺏기진 않았단 것이고, 불행 중 불행이라면 과태료로 10실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땀 흘려 얻은 노동의 과실을 내놓으려니 피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싫으면 감옥에 가시든가, 로 나오는 경비대원의 앞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과태료를 내고 보호자가 인계 서류를 작성하러 올 때까지 대기하라는 경비대원의 말대로 얌전히 유치장에 들어갔다.

케이든… 와 주겠지? 내가 보호자로 케이든 아미르를 적자 이 녀석이 제정신인지 아니면 공작이랑 아는 사이라고 허풍을 치는 사기꾼인지 의심하는 눈길로 나를 보던 경비대원이 생각나 조금 불안해졌다. 경비대에서 소식을 보내긴 했겠지?

“추워…….”

이제 10월이 넘어가다 보니 낮은 선선한 수준이어도 저녁은 쌀쌀했다. 더군다나 유치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불을 피워 줄 만큼 경비대는 친절하지도 않았다.

근래 따뜻한 곳에서 고생 없이 지낸 몸이 온갖 불편을 호소했다. 좁고 추운 곳에 처박혀 있으니 기분이 우울해져 무릎에 얼굴을 박고 소리 없는 몸부림을 쳤다. 인생아, 진짜!

우울감에 몸서리칠 때쯤 유치장의 소음을 뚫고 내 귀에 규칙적인 구두 소리와 신사들이 외출 시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땅과 맞닿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착한 이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경비대원의 공손한 말소리가 옆에서 곁들여지자 인식은 생각보다 빨랐다.

유치장의 문 너머로 몸 선이 잘 드러나는 정장 차림에 금장식이 올라간 밤색 지팡이를 든 밝은 금발의 미남이 굳은 눈으로 유치장 안쪽을 훑고 있었다.

매서운 붉은 눈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만 빼든 나를 발견하자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가늘어졌다. 동시에 삐뚜름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에 재빨리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시선을 피하였다.

그가 유치장을 담당하던 경비대원에게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뭐라 말하자 유치장 문을 열고 들어온 경비대원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손한 태도로 나에게 나오시라 굽신거렸다.

반쯤 걷고 반쯤 경비대원의 손에 끌려가며 내 시선이 절로 아래로 향했다. 그냥 지금이라도 혀 깨무는 게 더 나으려나…….

“내 어린 신랑께서는 참으로 공사다망하시니 행적을 종잡을 수가 없군.”

유치장에서 반쯤 끌려 나오는 나에게 케이든이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네었는데 이상하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어설프게 웃으며 그와 눈을 마주하다가 삭막한 붉은 눈을 발견하고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큰일이다. 지금 열받았는데 참고 있구나.

내가 땅에 단단히 심어진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자 나를 데리고 나온 경비대원이 의아하게 보는 것이 느껴져 엉거주춤 그의 곁으로 갔다.

케이든이 자신의 옆에 다가온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 진땀이 흘렀다. 이상하다. 유치장 안은 되게 추웠는데 나오니까 되게 덥네.

케이든과 조금이라도 늦게 독대하고 싶은 내 심정과 관계없이 내 신병 양도는 척척 진행되었다.

“추가 절차가 필요한가?”

“아닙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케이든의 옆에서 몸을 굽히다시피 한 경비대장에게서 추가 서류는 됐고 케이든이 어서 경비대에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여실히 느껴졌다.

아마 그들도 지금 꽤나 긴장될 것이다. 그냥 광장에서 법을 어기고 공연을 하던 마법사를 잡아 왔을 뿐인데 그게 하필 아미르 공작의 혼약자라니, 참 운수도 없지.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더 필요한 절차는 없다는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인 케이든은 바짝 긴장하여 굳은 내 손을 잡았다.

“이만 돌아가지.”

“네에.”

“그대는 대답만은 참 잘해.”

뼈 있는 칭찬에 나는 눈을 데굴 굴리다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나 케이든 말은 잘 듣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경비대를 나오자 케이든이 타고 온 아미르가의 마차가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대기하던 시종이 우리를 보고 마차의 문을 열어 주자 케이든은 내가 마차에 올라타기 쉽도록 손을 다시 잡아, 에스코트해 주었다. 내가 제대로 마차 안에 앉은 것을 밖에서 확인한 케이든이 마차에 성큼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내 건너편에 앉은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는 잘생긴 그 얼굴이 몹시 심란해 보였다. 그 심란함을 일으킨 범인으로서 할 말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한동안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이 사태의 변명을 해 볼까 해서 입을 열던 나를 그가 막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게 입을 벙긋하자마자 턱에 괸 손을 펴 검지를 입에 댄 그의 손짓에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앉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생각을 정리한 듯 자세를 바로 하며 입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얼굴을 구석구석 보던 케이든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참 문제란 말이지.”

“네에? 케이든이 왜요?”

“그대 얼굴을 보면 화가 풀려 하려던 이야기를 다 못 하겠으니 문제일 수밖에.”

그대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잘생겼다는, 욕 같은 칭찬이 뒤따랐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배시시 웃으며 그를 보자 케이든이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

“돈이 필요했나?”

“네에…….”

“돈이 필요했다면 그대의 몫으로 책정된 안주인의 예산을 썼으면 됐을 텐데 왜 길거리 공연을 한 거지?”

“그렇지만, 그건 케이든의 돈이잖아요.”

“부부가 될 사이에 그런 걸 따질 만큼 내가 옹졸한 사내로 보였던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가 내 몫으로 책정해 놓은 예산을 본다면 누구도 케이든 공작에게 옹졸하다, 같은 헛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을 위해선 케이든의 돈을 쓸 순 없었다. 결혼식 전에 마지막으로, 그리고 모든 회귀 중 처음으로 내가 온전히 준비한 것을 그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입술을 잘근잘근 물다가 입을 열었다. 잠긴 목소리엔 약간의 물기가 배어 있었다.

“저는 그냥, 처음으로 챙기는 케이든의 생일이니까, 제가 온전히 다 준비한 걸 주고 싶었어요.”

“나는 그대가 무엇을 줘도 기뻤을 거야.”

“당신은 그렇게 말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자기만족이에요. 제가 당신에게 주고 싶었어요.”

내 대답에 케이든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펼 때마다 보이는 정돈된 손끝에 시선을 빼앗긴 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그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했네. 내가 과민했어. 하지만 그대도 이해해 주게. 소식을 듣고 경비대로 가는 내내 그대가 이런 고생을 했단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거든.”

그의 눈이 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내 몸을 내려다보자 온종일 돌아다니고 유치장에 갇혀 있는 동안 잔뜩 구겨지고 먼지가 묻어 더러워진 내 옷이 보였다. 이제야 눈에 들어온 엉망인 몰골에 머쓱해져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가 살짝 그의 시선을 피하자 건너편에 앉은 그의 몸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희고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한 손으로 의자를 짚은 그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가볍게 잡고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의 상냥한 눈이 내 얼굴 곳곳을 살폈다. 멍하니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 그의 엄지가 내 턱선을 가볍게 쓸었다.

“그 짧은 사이에 얼굴이 상했어. 속상하게.”

상냥한 말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심스레 그의 기색을 살피고 내 얼굴을 잡은 그의 손등 위에 손을 겹쳤다. 그의 손에 얼굴을 가볍게 문지르며 그를 바라봤다.

“오늘은 유독 날이 별로였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럼, 앞으론 이런 일 없겠지.”

그가 내 말에 짓궂게 웃으며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이미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여유로운 기색으로 자리에 도로 앉은 그가 다리를 꼬며 내게 말했다.

“그대에게 어울리는 일자리가 마침 하나 생겼거든.”

“잠시만요 케이든, 저는 제가 번 돈으로…….”

팔짱을 낀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억울하여 입술을 비죽이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단호한 태도에 투정 부리듯 말이 튀어 나갔다.

“하지만 케이든, 이건 제가 원하는 일이라고요. 저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내일 마탑에 가서 신분 증명서도 떼 올 테니 오늘 같은 일은 이제 없을 거예요.”

“더 양보는 못 하겠군. 그대도 내 입장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어.”

어떻게 더 졸라 볼 틈도 주지 않는 대답에 입을 꾹 다물었다. 손만 꿈지럭거리며 불만을 표하는 나를 보던 그가 엄한 표정을 풀고 피식 웃으며 나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리암, 그대가 이 일을 좋아할 거라 장담하지.”

“…뭔데요?”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솔깃하여 되물었다. 그가 이 정도로 확신하다니, 대체 무슨 패를 들고 왔길래?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내 옷시중을 들 사람이 필요하거든.”

“아, 이런.”

확실히, 내가 좋아할 것이라 장담할 만했다. 나는 내면에서 득달같이 몰려들며 당장 승낙하라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승냥이 떼의 웅성거림을 꾹 내리누르며 눈을 굴렸다. 거절하기엔 너무 매혹적인 제안이었지만 그래도 내 목표가……!

“그대가 아니면 이 일을 맡길 사람이 없는데도, 싫은가?”

“…할래요!”

이런 말까지 들었는데 내가 어떻게 제안을 거절하겠는가. 유혹적인 제안에 고개를 쳐든 내가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맞잡자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여 내게 윙크했다.

내 볼이 붉어지자 케이든이 크게 웃으며 나를 그에게로 잡아끌었다. 입술에 와 닿는 따뜻한 감촉에 눈을 내리깔며 달라붙자 작은 웃음소리가 그에게서 새어 나왔다.

내 허리를 붙잡은 단단한 손이 느껴졌다. 곧 서로의 입술 사이로 삼켜진 웃음소리를 대신하여 질척이는 소리가 마차 안에 조용히 퍼져 나갔다.

상당한 고생을 동반하였지만 결국 마지막엔 근사한 결과물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 내 험난한 일자리 탐색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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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거듭하는 동안 한 번, 케이든과 잠자리를 가진다면 과연 내 포지션은 무엇일지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든도 나도 건장한 남자에 일단 원래 스토리에선 둘 다, 음. 섹스할 때 포지션이 겹치는 쪽이었으니까.

그때는, 회귀의 특수성을 빼고 나면 케이든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이런저런 경험도 많을 테니까……. 그러면 역시……. 케이든이 위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암만 생각해도 내가 아래인 게 상상이 안 돼서 이상한 생각은 때려치우고 그 이후 의식적으로 그런 종류의 생각을 지웠었다. 고백도 안 하면서 저런 생각은 왜 하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술김에 고백 후 케이든과 자고 나서 정신을 차렸을 때 기절초풍한 와중에도 더욱 놀란 것은 케이든이 순순히 내게 위 포지션을 양보했단 것이었다. 내 기억상 그에겐 박히는 취향이 없었기에 더 놀라웠다.

그래서 상황이 좀 안정되고 난 후 케이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술 취한 마법사 하나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내가 그에게 올라탈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이유가 무엇이냐고.

내 질문을 들은 케이든은 자신이 무엇을 들은 것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그는 곧 내가 진지하게 물어본 것을 깨닫자마자 이마를 짚고 크게 웃었다. 그는 한참을 웃다가 내가 불퉁해져 입술을 삐죽 내민 것을 보고 나서야 웃음을 멈추고 답해 주었다.

“내 위에서 끙끙거리며 허리 짓 하는 어린 애를 이겨 먹어서 뭐 하겠나.”

여유롭던 케이든의 말이 다시 떠오르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뜨끈한 얼굴에 손으로 부채질하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돌리자 그곳엔 아닌 밤중에 갑자기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하게 만든 아찔한 광경이 펼쳐졌다.

사실 이 광경의 주인공은 별생각 없을 텐데 나 혼자 머릿속이 음란함으로 가득 차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문제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광경을 천천히 바라봤다. 갓 목욕을 마치고 나온 케이든이 천천히 샤워 가운을 벗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목울대가 저절로 움직였다.

케이든이 내게 맡긴 취침 전 옷시중을 드는 자리는 생각보다 더 고된 위치였다. 케이든은 애꿎은 일로 시종을 괴롭히지 않는 친절한 주인이었기에 몸은 더없이 편했지만, 인내력이 이렇게까지 많이 닳을 거라곤 시작하기 전엔 상상도 못 했다.

케이든의 잘 뻗은 어깨와 날개뼈로 저절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돌려 케이든 너머의 욕실 문을 보며 다리를 꼬았다. 아랫배가 당겼다. 첫날부터 이러다니 큰일이었다.

“그대, 옷시중은 언제 들 셈인가?”

애써 눈을 돌리고 있는 내 심정은 모른 채 언제 옷시중을 들 거냐고 독촉하는 케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 있는 걸 보면 이미 그도 내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벽에 붙은 거울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이리저리 얼굴을 돌리는 내 모습이 거울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을 자각하자마자 부끄러움에 온 얼굴이 붉어졌다.

나를 보며 웃고 있던 케이든의 미소까지 거울 속에서 발견하자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나이트가운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뒤에서 가운을 펼치자 자연스럽게 그가 소매에 팔을 넣었다. 이어서 가운을 그의 몸에 씌워 주었다. 그 후 뒤를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자 케이든이 웃으며 나를 은근히 독촉하였다.

“나를 이대로 계속 세워 둘 셈인가?”

“아, 아뇨…….”

내가 진짜 시종이었다면 분명 케이든이 샤워를 마치고 나온 순간 잘렸을 것이다. 나에게만큼은 유독 자비로운 고용주인 케이든이 지금만큼은 조금 원망스러웠다.

내가 머뭇거리며 그의 등 뒤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운의 허리끈을 앞으로 뻗었다. 그와 정면을 마주 보고하면 훨씬 일이 빨리 끝날 테지만 지금 정면을 마주했다간 볼썽사나운 아랫도리 사정을 들킬 성싶었다.

케이든은 어깨가 넓은 반면 허리는 상대적으로 가는 편이라 팔을 벌리니 그의 허리가 품 안에 수월하게 들어찼다.

허리춤을 안고 있으니 비누 향과 섞인 케이든의 체취가 선명하게 맡아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긴장에 떨리는 손을 애써 멈추고 허리끈을 손끝의 감각으로 묶으려는 찰나 손등에 미세한 간지럼이 느껴졌다.

손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놀라 손에 쥐고 있던 끈을 떨어뜨리고 굳은 채로 서 있자 그 손길은 놀리듯 내 손바닥을 간지럽히고 자연스럽게 내 손목 안쪽을 엄지로 가볍게 문지르며 올라왔다.

따뜻한 손길이 나를 희롱하듯 내 손을 문지르자, 어쩔 줄 몰라 멈추어 선 나를 놀리듯 케이든이 내 손을 놓고 내 품 안에서 몸을 돌렸다.

바짝 굳은 나와 시선을 마주친 케이든의 눈매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가 내 머리에 가볍게 손을 올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였다.

“정말로 옷시중만 들고 방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웃으며 내 뒷머리를 살짝살짝 쓰다듬는 손길에 목덜미까지 뜨거워졌다. 입 안이 바싹 말라 입술을 벙긋거릴 때, 그의 다른 손이 내 옷 안으로 파고들어 내 배를 쓸고 등허리를 감쌌다. 동시에 내 머리를 잡아끄는 손길에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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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입을 맞추면서 무슨 정신으로 침대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목덜미에 입질하는 어린 짐승처럼 달라붙어 깨물며 그의 몸을 매만졌다.

케이든이 자신에게 매달린 내 등허리를 쓸어 올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단추가 다 뜯어져 어느새 엉망진창으로 풀어 헤쳐진 내 셔츠를 반쯤 벗기며 케이든이 내 귓가와 뺨에 연달아 입 맞추며 속삭였다.

“리암, 옷을 벗게나. 그대의 몸을 더 잘 느끼고 싶군.”

그 말에 귓불이 달아올랐다. 붉어진 얼굴로 상체를 일으켜 반쯤 벗겨진 셔츠를 완전히 벗었다.

아래를 보자 침대로 오며 이미 가운을 벗어 팽개친 케이든의 완벽한 알몸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의 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흡족한 얼굴로 그의 위에 올라탄 나를 보며 웃었다.

그의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에게 키스하였다. 혀를 얽으며 서로를 깊이 탐하는 중에도 우리는 둘 다 눈을 감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 어린, 나를 향한 허기가 느껴졌다.

그 눈을 보니 이미 뻐근하게 발기한 성기가 아프도록 발정이 일었다. 시선과 함께 혀가 섞이며 질척이는 소리가 침실에 퍼져 나갔다.

서로 잡아먹을 듯 이어지는 키스는 케이든이 숨이 차다며 나를 밀어내며 잠시 마무리되었다. 언제까지 키스만 할 거냐고 놀리듯 내 목덜미를 쓰는 손길에 나 때문에 잔뜩 달아오른 붉은 입술을 아쉽게 노려보다가 고개를 내렸다.

고개를 내려 흥분에 바짝 선 케이든의 유두 주위를 깨물었다.

“흣.”

그의 가벼운 신음이 기꺼워 그의 가슴에 달라붙어 핥았지만 아무리 가슴을 빨아올려도 간지럼 이상은 느끼지 못한 케이든은 허리를 틀며 내 어깨를 살살 때렸다.

아쉽게도 그는 첫 번째 섹스 때부터 가슴으로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처음 섹스할 때보단 좀 더 느끼는 거 같은데 조금만 더 해 보면…….

내 아쉬운 몸짓을 느낀 케이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뒷머리를 쓸며 속삭였다.

“리암, 나는 가슴으로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걸 알잖나.”

“그치만……. 조금만 더 해 보면 안 돼요?”

내 말에 답이 되돌아오진 않았지만 내 뒷머리를 당기는 손길에 힘이 살짝 더해진 걸 보니 더 달라붙었다간 케이든이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쉬움을 담아 케이든의 유두 끝을 이빨로 살짝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흠칫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내려 케이든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열기에 찬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내 아래에서 발기해 꺼떡이던 케이든의 성기를 보고 있자니 새삼 감탄이 일었다. 남자 성기를 보면서 잘생겼단 생각을 할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크고 모양새 좋은 성기에 감탄하며 그것을 부드러운 손길로 잡아 위아래로 문질렀다. 내 몸과 맞닿은 그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흐읏, 아, 리암. 흣.”

“좋아요? 케이든?”

내가 그의 성기를 문지르자 반사적으로 케이든이 내 어깨를 잡았다. 내 어깨에 느껴지는 가쁜 손길에 배시시 웃고는 그의 성기 밑동을 가볍게 문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으읏, 리, 암. 응!”

그의 것을 삼키자 곧 그의 체취가 한 아름 느껴졌다. 축축한 입 안에 넣은 케이든의 성기가 꿈틀대며 더 깊숙이 들어오려고 움찔거렸다. 이미 전부 발기했다고 생각했던 성기가 내 혀와 문질러지며 더욱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힘이 들어간 내 아래의 허벅지가 떨렸다. 내 입 안에 당장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이 느껴져 그의 것을 빠듯하게 삼키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 움직임에 자극이 일었는지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더해졌다.

“흣, 아, 그대. 잠, 시 으읏.”

참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낮은 신음이 듣기 좋았다. 그의 성기에서 시큼한 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체취가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좋아 그의 성기의 밑동을 문지르던 엄지에 힘을 주어 가볍게 압박한 뒤 손을 떼었다.

그 손길에 신음을 흘리던 그가 내 손이 떨어지자 무언가를 느꼈는지 나를 떼어 내려 상체를 일으켰다.

급히 나를 보는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가볍게 눈웃음을 지은 뒤 목구멍을 벌리며 그의 성기를 끝까지 삼켰다. 숨이 막히고 턱이 아프도록 벌어지는 감각에 오히려 자극되어 나 역시 내 좆을 꺼내 문지르며 자위를 시작했다.

“흑, 아……! 아! 더, 아읏!”

고개를 움직여 케이든의 성기를 자극하며 볼이 움푹 패도록 그것을 빨았다. 성기에서 느껴지는 쾌감에 케이든이 입술을 물며 신음을 억누르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 억눌린 신음이 섹시했다. 내 목구멍에 가득 찬 그의 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리암, 아! 고개를, 흣, 들게. 흐으…….”

입을 연 그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장이라도 내 입 안에 사정할 것 같은 충동을 억누르며 내 고개를 억지로 떼어 내려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의 다급한 손길을 놀리듯 나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것을 힘껏 빨았다. 숨이 막히도록 발기한 성기가 사정 직전에 움찔거리는 것이 입 안 전체에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목구멍 안에 소름 끼치는 감각이 울림과 동시에 비릿한 맛이 입 안에 퍼져 갔다. 연이어 한껏 발기한 내 것에서도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고개를 들, 라니까.”

사정 후의 쾌감에 말을 잠시 멈춘 케이든이 곧 숨을 헐떡이며 나를 타박했다. 여전히 사정의 쾌감에 잠겨 있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 역시 사정의 여운이 이어져 살짝 나른한 감각이 올라왔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 나는 고개를 들며 웃었다. 웃음과 함께 내 입에서 다 삼키지 못한 정액이 흘러나왔다. 내 혀와 그의 성기에서 길게 이어지는 하얀 액체를 본 케이든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좋았나요? 전 좋았는데.”

짓궂게 눈을 휘며 묻자 케이든이 손등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이 이미 한껏 붉어진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사정으로 인한 쾌락의 잔재가 남은 데다 부끄러움에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아래에 재차 열이 몰렸다. 나는 그의 탄탄한 배에 입 맞추며 그의 아래로 손을 뻗었다.

마법으로 침대맡의 젤을 가져오며 남은 손으로 그의 입구를 매만지다가 느껴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미 부드럽게 이완된 구멍은 벌름거리며 내 손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입을 벙긋거리며 케이든을 올려다보자 그가 내 눈을 피하였다.

“케이든, 설마 샤워하면서……?”

“그대는 정말로 옷시중만 들고 갈 생각이었나?”

되레 나를 타박하듯 이어지는 소리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그랬구나. 내가 눈치 없이. 어쩐지 케이든이 목욕 시중 없이 혼자 씻으러 들어가더라.

가져온 젤을 내 좆에 치덕치덕 바른 후 그의 구멍을 벌렸다. 이미 준비가 된 구멍이 무리 없이 내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손가락을 조여 오는 내벽의 움직임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것을 넣을 정도로 구멍이 풀어진 것 같아 손가락을 뺀 뒤 구멍에 내 좆을 갖다 대며 그와 시선을 마주하자 그가 눈을 휘며 내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흐읏! 아!”

천천히 그의 구멍에 내 좆을 집어넣자 그의 등허리가 긴장으로 굳었다. 그의 몸 곳곳에 입 맞추고 핥아 올리며 그가 긴장을 풀도록 유도하자 그가 심호흡하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성기를 삽입하다가 그의 가슴을 깨물며 단번에 좆의 뿌리까지 그의 안에 박아 넣었다. 그가 고개를 젖혔다. 내 허리에 감긴 그의 다리에 힘이 더해졌다. 내 것을 조여 오는 그의 내벽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 아읏, 흑, 흐읏!”

정신없이 안에 처박다가 성기를 단박에 깊숙이 박아 넣고 문지른 뒤 귀두만 남기고 거의 빼내었다가 다시 박아 넣으니 그가 침대의 시트를 엉망으로 잡으며 허리를 뒤틀었다. 쾌감에 고개를 젖히며 더욱 돌출된 목울대가 보기 좋았다.

“케이든, 케이든.”

정신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달라붙어 허리 짓을 할 때마다 그가 허벅지가 흠칫거리며 나를 조여 왔다. 조르는 것 같기도 하고 떨쳐 내려는 것 같기도 한 그 몸짓에 흥분하여 그의 안에 좆을 꽂으며 그의 목덜미에 머리를 문지르고 탄탄한 가슴에 입질했다.

좆이 구멍을 오갈 때마다 열기에 녹은 젤과 아래서 새어 나온 액체들로 질척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케이든이 좋아하며 특히나 느끼는 곳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엔간한 크기의 성기로는 닿지 않을 그곳을 좆으로 짓누르며 그에게 속삭였다.

“케이든… 느껴지나요? 케이든의 배 속이 나로 꽉 찼어요.”

그의 손을 잡아끌어 그의 배 위를 꾹꾹 눌렀다.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배 위에 그의 안을 채운 내 성기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의 손을 잡고 그것을 꾹 누르자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그가 몸서리를 쳤다. 나 역시 내벽이 눌리며 좆에 느껴지는 압박감에 작은 신음을 흘리곤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고 몸을 움직였다.

시트를 붙잡은 채 방황하는 다른 손을 맞잡고 깊숙한 곳까지 좆을 박아 넣으며 휘젓자 그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신음했다. 언제 사정했냐는 듯 바짝 선 좆에서 정액이 질질 흘렀다. 따뜻한 내벽이 거세게 내 것을 조여 왔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아 이를 악물며 속도를 한층 높였다. 사정하느라 굳은 몸이 내 몸짓에 따라 거세게 함께 흔들렸다. 내게 붙잡힌 손을 꿈틀거리며 그가 애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 하으… 리, 암. 사정 중이잖, 나 잠, 흐응. 잠시, 만. 응!”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그의 날렵한 턱에 입 맞추곤 그의 배를 꾹 누르며 안쪽 깊숙한 곳을 치받았다. 그가 느끼는 깊숙한 지점을 연속으로 쾅쾅 들이받는 순간 케이든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몸을 발발 떨며 그가 쾌락을 참지 못하고 신음했다.

“아아! 으읏……! 응! 아!”

“큿.”

정액을 제대로 토해 내지 못하고 오르가슴을 느껴 버린 그가 온몸을 비틀며 내게 매달려 왔다. 그 안에 들어간 성기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눈앞이 하얘지며 발끝까지 쾌감이 치달았다.

이내 그의 깊숙한 곳에 정액을 쏟아 내며 몸을 떨었다. 울컥 그의 안에 토해져 나오는 정액을 느낀 그가 숨도 제대로 몰아쉬지 못하며 바들거렸다.

정신없이 몰아친 쾌락에 숨을 헐떡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몸 안에 잔류하는 쾌락의 잔재에 잘게 몸을 떠는 케이든이 보여 입꼬리를 올려 웃자 그가 숨이 찬 와중에도 눈꼬리를 치켜뜨며 내 볼을 꼬집었다.

“멈추라고 했지.”

“아야야. 그치만 좋았잖아요.”

답 없이 내 볼을 꼬집은 손길에 힘이 더해졌다. 그는 내가 정말로 아프다고 우는소리를 내고서야 볼에서 손을 떼 주었다.

얼얼한 볼을 감싸며 몸을 움직여 그의 아래에서 좆을 꺼내니 하얀 정액이 젖은 구멍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그 감각을 느꼈는지 팔을 들어 얼굴에 올리며 케이든이 작게 신음하였다.

지친 기색이 물씬 흘러나오는 그의 얼굴을 아래에서 가만 올려다보고 있으니 슬쩍 팔을 들어 올린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려 웃어 주었다. 그 웃음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슴 안쪽이 봄날처럼 따뜻해지며 충만해지는 감각에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 곳곳에 입 맞추며 중얼거렸다.

“내 사랑. 사랑해요.”

케이든은 내 고백에 대답 대신 나를 껴안으며 내게 입 맞췄다. 그와 정신없이 혀를 섞으며 참을 수 없이 치닫는 충동에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내 손길을 느낀 케이든이 내 허리에 다리를 감으며 나를 그에게로 당겼다.

그와 정신없이 재차 엉키며 끊임없이 그에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고장 난 축음기처럼 한마디만을 내뱉는 나를 껴안은 케이든이 귓가에 ‘나도.’라는 작은 한마디를 속삭여 주었다. 그 한마디에 행복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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