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16화 (116/139)

§116화 결자해지(1)

갑자기 나타나 문을 잡는 손.

진행요원은 손의 주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구신지?"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주주라고 생각하려니 차림새가 너무 수상하다.

실내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코와 입 등 얼굴 절반을 가릴 만큼 큰 마스크를 썼다.

용모를 가리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고글 주주입니다."

짧은 답변에 진행요원은 눈을 연신 깜빡이다 직분에 맞게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주주총회 참석장과 신분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에 수상쩍은 남성은 접힌 종이와 함께 운전면허증을 건넸다.

무심결에 그걸 받아든 진행요원은 이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그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마스크를 내리고 선글라스를 벗어줬다.

"……."

넋이 나간 듯 신분증과 그 얼굴을 대조하는 진행요원.

남성은 피식 웃어준 뒤, 참석장과 신분증을 챙겼다.

"확인됐습니까?"

"…네, 네넷!"

남성은 지체 없이 대회의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혼이 나간 시선으로 진행요원은 바라보기만 했다.

"뭐 해? 시간 다 됐는데 문을 닫지 않고선."

다른 진행요원이 멍하니 있는 동료를 질책하며 닫히다 만 문을 마저 닫았다.

"말도 안 돼…."

방금 들어간 남성의 신분을 확인한 진행요원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대신 문을 닫아준 동료의 얼굴에 작은 의문을 남긴 채 흩어졌다.

* * *

털썩-

"음?"

비어있던 옆자리에 주저함 없이 앉는 남성을 돌아본 대런 체스터.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드러났다.

딱히 주인이 없는 비어있는 자리이니 아무나 앉는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의 복장이 무척 눈에 띄었다.

실내에서, 그것도 조명이 그리 환하지도 않은 자리에서 선글라스라니.

거기에 마스크?

보통 미국 사회에서 마스크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하다.

병에 걸린 환자들이나 쓰고 다닌다고 여겼으니까.

지난 코로나 19사태로 그에 대한 편견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생각보다 변화에 둔감한 미국 사회 분위기에 아직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런 외에도 주변 사람 몇몇은 그의 수상한 행색에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

남성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대런을 쳐다봤다.

"투자 전문기업 스피어에서 오신 대런 체스터 대표님 맞으시죠?"

나직한 그의 물음에 대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근 일 년 만에 다시 뵙는군요. 후후."

"……?!"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

대런은 곧바로 깨달았다.

바로 그가 아까 자신이 찾던 대상인 것을.

"저, 정말로 미…."

"쉿!"

남성은 마스크 앞에다 손가락을 갖다댔다.

"……."

놀란 대런의 얼굴을 슬쩍 쳐다본 남성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이제 시작하려나 봅니다."

그의 말대로 의장이 단상 위에 올라서더니 주주총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남성을 따라 대런도 고개를 단상 쪽으로 돌렸지만, 슬쩍 눈동자만 굴려 옆에 앉은 그를 몰래 살폈다.

'정말 살아있었구나.'

현시운이 말한 대로 말이다.

목구멍에서 솟구치려는 탄성을 대런은 애써 도로 삼켰다.

"……."

대런의 옆자리에 앉은 의문의 남성은 단상 바로 앞줄에 앉아 빙긋이 웃고 있는 해리 페이퍼를 말없이 지켜봤다.

잠시 후, 그의 마스크가 살짝 들썩인다.

그 안의 입꼬리는 어느새 위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사전에 통지된 식순에 따라 주주총회가 진행되었다.

상반기 매출 실적 보고에 이어 향후 시장 동향과 그에 따른 신사업 계획 등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여가 지났을 때, 본격적인 의결권 행사를 위한 안건들이 상정되었다.

몇 가지 소소한 사안이 지나가고 드디어 메인 주제가 의장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다음 안건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미하일 르빈 CEO에 대한 해임안입니다. 주주분들께서 참석장과 함께 동봉되었던 의결권 용지에 찬반 의사를 표기하여 투표함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웅성거림 뒤에 주주들은 줄을 짓듯 자신의 의결권 용지를 반으로 고이 접어 단상 아래에 있는 투표함에 집어넣었다.

해리 페이퍼와 그의 추종자들도 그러했고, 의문의 남성과 대런 역시 의결권을 행사했다.

개표에 이십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진행요원으로부터 합산된 결과지를 전달받은 의장은 단상에 다시 올라 종이를 펼쳤다.

"?!"

결과지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의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저 사람, 표정이 왜 저래?"

"그러게요. 꼭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입니다."

해리 페이퍼는 팔짱을 낀 채 의장이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 내용에 그는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음?"

과연 방금 들은 것처럼 의장의 낯빛이 무척 좋지 않았다.

이마로 식은땀마저 흘려대는 게 꼭 아픈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쯧!'

해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이곳은 자신이 다시 고글의 CEO로 복귀하게 되는, 만인의 축하를 받을 자리다.

의장이 짓고 있는 표정은 마치 자신의 복귀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언짢은 표정으로 의장을 바라보는데, 이를 알 리 없는 의장은 결과가 담긴 종이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짚어가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의장의 태도에 여러 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소음으로 번지기 전에 의장은 마이크에다 대고 결과를 발표했다.

"…이, 이번 미하일 르빈 CEO의 해, 해임안은 44.1%의 찬성과…."

예상했던 찬성 지분율에 해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의장의 말에 금세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4, 44.2%의 반대로 부결되었음을 아, 알려드립니다."

순간, 정적이 대회의실 안을 차지했다.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의장을 바라봤다.

그런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도 의장은 자신의 본분에 맞게 다음 말을 마이크에 대고 전했다.

"그러므로 해, 해리 페이퍼 이사의 CEO 선임안은 표결하지 못합니다."

의장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해리 페이퍼였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장을 사납게 노려봤다.

"의장! 지금 제대로 확인한 것 맞습니까? 부결이라니!"

해리의 외침에 동조하듯 뭇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게? 미하일 르빈의 13% 지분이 동결된 마당에 저런 결과가 나올 리 없잖아."

"합산하던 도중에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개표를 다시 진행하시오!"

순식간에 대회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 다들 정숙하여 주십시오!"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진정 시켜 보지만,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대다수가 흥분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해임안 결과에 따라 자신의 입지가 결정되는 해리는 그 정도가 더했다.

그는 단숨에 단상 위로 올라가 의장의 손에 쥐어진 결과지를 뺏어 들었다.

무례한 행동임이 분명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다들 의장이 잘못 발표했으리라 믿었기에.

"!!"

하지만, 해리가 확인한 내용 역시 앞서 의장이 발표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이게 무슨 장난질이야!"

해리는 개표를 진행했던 진행요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들이 잘못 합산한 결과일 거로 굳게 믿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때, 좌중 사이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결과에 승복할 줄도 알아야지. 해리 페이퍼."

"?!"

대런의 옆에 앉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외침에 모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이 목소리는…?"

"에이, 설마!"

불신 어린 시선들이 남성의 가려진 얼굴 위로 꽂혔다.

단상 위에 선 해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아닐 거야. 놈이 어떻게?!'

하지만, 분명 방금 목소리는….

"뭐야? 섭섭하게 벌써 내 목소리도 잊은 거야, 친구?"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에 모두는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르, 르빈 대표잖아!"

"살아있었어?"

그들의 말처럼 단상 위의 해리를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이는 고글의 CEO인 미하일 르빈이었다.

"네, 네가 어떻게…?"

"왜? 죽은 줄 알았어? 제대로 확인까지 하지 그랬어."

미하일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정비사를 시켜 내 경비행기에 장난만 칠 게 아니라."

미하일의 말에 또 한 번 회장은 시끄러워졌다.

그의 실종에 해리 페이퍼가 관여되어 있었다는 당사자의 확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친구 모습에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티를 내어선 안 된다.

해리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격렬히 대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잡아떼야만 한다.

이미 정비사는 거액의 돈을 받고 미국 땅을 떠났다.

미하일이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증거와 증인은 없었다.

바로 뒤이어 회장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벌컥-

대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캘리포니아주 경찰 배지를 단 경찰관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왔다.

그들에 둘러싸인 남성이 손가락을 들어 단상 위를 가리켰다.

"저, 저 사람이 시켜서 그런 겁니다!"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그는 바로 해리의 수족과도 같은 부하 직원이었다.

미하일의 경비행기에 장난을 친 정비사에게 직접 의뢰를 넣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지목에 앞쪽에 선 경찰관 둘이 단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CHP입니다. 해리 페이퍼. 당신을 미하일 르빈 살인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면서 수갑을 꺼내 드는 경찰관.

"아냐! 난 아니라고. 이건 다 음모야. 그래, 저 자식! 미하일 저놈이 꾸민 짓이라고!"

그의 악다구니에도 이미 정비사와 부하 직원으로부터 관련 증거들을 수집한 경찰관들은 해리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양쪽에서 팔을 붙잡았다.

"미하일! 미하이일!!"

대회의실에서 끌려나가는 옛 친구를 미하일은 싸늘하게 쳐다봤다.

만약, 사고가 난 그날.

우연히 근처 상공을 지나가던 수상비행기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미하일은 이번 일의 배후에 해리 페이퍼가 있음을 직감하고 몸을 숨겨 정비사를 찾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이탈리아로 출국하기 전에 그를 붙잡았고, 일을 의뢰한 해리의 수족까지 옭아맸다.

그 둘을 경찰에 넘긴 뒤 미하일은 주주총회가 열리기까지 이를 갈며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물론 그는 모르리라.

그날의 수상비행기가 우연이 아닌, 미하일의 사고를 사전에 알고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는 것을.

현시운과 윌리엄 라인하트, 그리고 노아 펠노러의 솜씨였다.

삼 장로의 파벌을 예의주시하던 윌리엄이 해리 페이퍼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던 게 한 달여 전쯤이다.

바로 현시운과 정보를 공유했다.

이에 현시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분으로 남겨뒀던 위기 알림 대상자 슬롯에 미하일 르빈을 올렸었다.

그리고 경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기 일주일 전, 위기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이후에는 윌리엄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미하일 르빈이 속한 파벌의 수장인 칠 장로 노아 펠노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노아는 미하일을 구할 수상비행기를 시기에 맞춰 보냈다.

미리 미하일의 위기를 알았지만, 노아 펠노러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해리 페이퍼를 아웃시킬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당사자가 사실을 알고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삼 장로를 역으로 엿먹이려던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었다.

미하일에게 일어날 일을 숨긴 덕분에 노아는 노렸던 바를 성공리에 이뤘다.

"다시 못 볼 광경이군."

죽은 줄 알았던 미하일 르빈의 생환과 해리 페이퍼의 몰락을 몸소 두 눈으로 목격한 대런 체스터의 짧은 감상이었다.

* * *

고글 본사 대회의실로 캘리포니아주 경찰관들이 들이닥칠 무렵.

다른 곳에서는 우로보로스의 장로 일곱이 모인 중요한 모임이 이뤄지고 있었다.

신임 장로의 선출이 완료되면서 다시 열릴 수 있었던 '찬반의 장'.

이곳 역시 예상과 다른 결과에 모두 놀랐다.

아니, 실제 놀라는 이는 정확히 두 명이었다.

새로운 일 장로, 루이스 베르너와….

"말도 안 돼!!"

이 장로로 서열이 오른 벤 로쉬찰트였다.

그는 벽면에 붙은 여섯 개의 모니터를 노려봤다.

찬반의 투표가 불과 1분 전에 이뤄졌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5대 2.

루이스와 자신을 뺀 모두가 찬성의 버튼을 눌렀다.

다섯 개의 모니터 주변에 들어온 파란빛에 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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