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00화 (100/139)

§100화 인도네시아(3)

놀란 표정의 토라 위라완에게 헬렌 리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5년 동안 매년 동일한 금액을 인도네시아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총투자금은 1,000억 달러가 되겠죠."

헬렌의 제안에 토라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1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매년 2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헬렌의 협상안에 토라의 눈이 빛났다.

"근데…, 아무리 투자법인이라고는 하지만 귀사에 그만한 자금이 있는 것이오? 티엔유라는 회사의 역량이 그 정도나 된단 말이오?"

대만의 티엔유라는 투자회사에 대해 토라가 들어본 바는 거의 없었다.

생소한 회사명인데도 이번 협상에 헬렌이 동참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미래 그룹이 추천하고 보증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티엔유만으로는 그만한 투자금을 마련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저희와 협력 관계를 맺은 다른 국가의 투자법인만 다섯 곳이나 됩니다."

현시운의 계획하에 설립된, 스피어를 비롯한 투자법인들을 말함이다.

"그 다섯 곳의 가용 자금까지 합친다면 방금 제시한 사업 투자금은 어렵지 않게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다섯 투자법인과 인도네시아 투자 건에 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해놓았다는 헬렌의 이어지는 설명에 토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간 성공적인 투자로 스피어를 비롯한 해외 투자법인의 총자산은 한화로 환산하면 100조 원에 육박했다.

물론 고객들이 예치한 자금까지 합한 액수였지만 순수 자기자본의 비율은 80%를 웃돌았다.

내년부터 해마다 22조 원의 투자금을 인도네시아에 할애한다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지난 일 년간 여섯 투자법인이 불린 돈이 그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앞으로 일 년 동안 또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돈을 벌면 된다.

현시운에게 유레카가 있는 이상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헬렌이 건넨 여섯 해외 투자법인의 간략한 자료를 확인한 토라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투자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들과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최대 난제였던 사업비의 대부분을 확보할 수 있다니….

'신수도 개발 사업처'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신수도 건설에 380억 달러가, 보르네오섬 인프라 구축에는 그 두 배의 돈이 들 것으로 예측했다.

총 1,140억 달러가량의 재원이 필요했는데, 헬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약 88%에 달하는 공사비를 얻는다.

'매년 200억 달러. 5년간 1,000억 달러.'

어차피 재원이 다 마련된다고 해도 단시간 내에 뚝딱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국가사업이 아니다.

공사 진척도를 가늠해서 연간 200억 달러를 집행한다면…, 많은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예상 총공사비와 차이를 보이는, 부족한 140억 달러 정도는 5년 이내에 충분히 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 모든 걸 염두에 둬서 보면….

무척 매력적인 제안이다.

"정부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귀사에서 그걸 매입하는 방식이란 말이오?"

"네, 각하. 저희는 연이율 5%에 10년 만기상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 신용도로 비추어봤을 때, 10년물 채권이 5%라면 거의 거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자가 저렴한 조건이다.

토라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시운과 헬렌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들은 사업가다.

정치인인 토라와 달리 이윤 추구가 목적인 부류였다.

손해를 보면서 일을 추진할 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만한 조건을 내민다는 건 본인들이 바라는 것도 들어달라는 의사 표현일 테지.

그리고 그건, 앞서 말했던 두 사업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허락일 거다.

"그 대신 고속도로 건설 사업권은 미래 그룹에, 보르네오섬 건엉 사란산의 구리 폐광 재개발을 미스 리우의 회사에 맡겨달라는 말이구려."

토라의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다.

두 사업에 관련된 자료들.

보르네오섬의 고속도로 건설은 수도 이전 사업의 파트너로 선정한 대한민국 정부에 사업자 선정부터 공사 진행까지 전적으로 맡기려고 했던 사안이다.

예정과 달리 그걸 한 기업에 몰아줘도 되는 걸까?

독점에 의한 폐해는 어찌 해결한단 말인가.

그리고 광산 개발은….

그라스버그 금광의 일로 토라는 해외 기업의 국내 자원 개발을 몹시도 꺼렸다.

1,000억 달러의 투자금에 섣불리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니었다.

토라는 고개를 들어 시운과 헬렌을 마주 봤다.

미래 그룹과 티엔유가 모종의 협력 관계에 있음은 협상 자리가 마련되는 초창기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들은 과연 자신의 우려를 어떤 식으로 해소할까?

토라는 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짐작한 시운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미래 그룹에 사업권을 준다고 해도 현장 감독관과 기술자들만 이곳으로 파견할 뿐, 현장 근로자와 중간관리자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채용할 생각입니다.

"흠…."

"예정 완공 시기인 2028년까지 대략 2만 개의 일자리가 확보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도로 건설에 들어가는 자재와 인건비는 합리적인 금액 선에서 견적을 낼 겁니다. 추후 견적 외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청구하지 않겠습니다."

내수 경기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고, 공사비 부풀리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운의 설명에 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도로 사업권에 대해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토라는 시선을 헬렌에게로 옮겼다.

시운 역시 헬렌을 바라봤다.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서 기대보다 이윤을 많이 남기지 못해도 괜찮다.

금광 확보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헬렌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구리 채굴이 목적이지만, 파푸아 주의 그라스버그 금광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라스버그 금광은 애초에 구리 채굴을 위해 개발된 광산이었다.

그때처럼 건엉 사란산의 구리 폐광에서 금맥이 발견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헬렌은 시운을 통해 이번 사업을 계획하던 초기부터 그곳에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고급 정보라며 시운은 출처에 대해 얼버무렸지만, 헬렌은 확신했다.

시운이 몸담은 비밀 단체에서 나온 정보일 거라고.

아직도 그녀는 시운의 배후에 막강한 세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미스 리우의 말대로요. 그라스버그 광산 경영권을 찾아오는 데 국민의 혈세가 많이 쓰였지. 건엉 사란산에서도 그라스버그 때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선 흔쾌히 수락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오."

토라의 말에 헬렌은 시운과 미리 의논하여 결정한 사항을 말했다.

"제가 말씀드릴 세부조건들이 대통령 각하의 그런 근심을 덜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흠, 말해보시오."

"우선, 인도네시아 국영 광산 업체인 '니알룸'과 공동 출자로 현지 법인을 설립하겠습니다. 대신 초기 투자 비용은 전액 저희 쪽에서 부담하지요. 그것과 상관없이 '니알룸'에 25%의 지분을 약속합니다. 채굴권에 대한 로열티는 순이익의 20%를 보장하겠습니다."

"…생각 외로 후한 조건이구려."

그라스버그 금광 때와는 달리 말이다.

고작 구리를 채굴해서 남겨봤자 금광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근데도 이처럼 많이 양보하면서까지 폐광 개발을 굳이 하려는 걸 보면….

'설마 거기에 금이 묻혀있기라도 한 건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인도네시아의 자력 개발은 당장 어렵다.

그 역시 돈이 드는 일이니 말이다.

토라는 만약의 경우는 배제한 채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이 제시한 조건과 1,000억 달러의 투자금이면 보르네오섬의 고속도로 건설과 광산 개발 사업권을 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예상보다 이른 사업 착수에 다들 기뻐하겠지.

"흠…."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적절한 미래 수익이 보장된 상황에서 눈앞의 이익도 취할 수 있는 마당에 이걸 거절한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토라는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미래 그룹과 티엔유의 제안을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각하."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로써 시운은 인도네시아에 온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건엉 사란산 구리 광산 채굴권을 획득할 수 있어 기뻤다.

언뜻 보기엔 많은 것을 양보한 것처럼 보일 거다.

순이익에서 20%를 로열티로 인도네시아에 떼어주고, 국영 광산 업체인 '니알룸'이 25%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시운이 가져갈 수 있는 건, 로열티를 뺀 80%의 순이익에서 다시 '니알룸'의 지분율만큼 제하면 나오는 60%.

구리 채굴로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최대 매장량의 금광이 발견될 곳이다.

연평균 6조 원가량의 채굴이 이루어지고 순이익은 3조 원을 넘어선다.

그것의 60%.

매년 1조 8천억 원에 가까운 순이익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유레카 덕분에 현재 여섯 해외투자법인은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시운이 금광에 신경을 썼던 건, 유레카의 도움 없이도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향후 금 시세를 움직이는 한 축을 손에 넣는 셈이기도 했고.

건엉 사란산 금광의 채굴은 시운이 회귀한 2038년까지도 활발히 이루어졌고, 당시 추정 매장량의 십 분의 일도 다 캐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시운의 입장에선 마르지 않는 금맥을 손에 쥔 것이다.

"차후 계약 진행과 상세 업무 협의는 실무자를 통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좋은 거래였소."

토라와 시운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 * *

2021년의 마지막 업무를 무사히 마친 현시운은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헬렌 리우 일행과 헤어졌다.

사흘 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매일 대련으로 정이 제법 들었는지 헬렌의 개인 경호원 덩위안과 강철완은 남자의 우정이 듬뿍 느껴지는….

하지만, 남들의 눈에는 꽤 불편해 보이는 진한 포옹을 나누고는 멀어졌다.

시운은 비행기에 오르기 전, 그룹 비서실에 연락하여 순조롭게 협상이 진행되었다고 알렸다.

동시에 셋업을 계획대로 추진하라고 비서실장 권재환에게 지시를 내렸다.

미래증권이 49%의 지분을 확보한 대한건설은 이달 중 상호를 바꾸고 미래 그룹 계열사로 편입된다.

인도네시아 사업부가 개설되고, 실무자가 현지에서 사전 준비를 모두 마치는 대로 고속도로 기초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예상 시기는 내년 2월 초.

보르네오섬 건엉 사란산의 구리 폐광 역시 헬렌의 지시로 현장 조사가 다음 달 초부터 이루어질 전망이다.

근 1년 이상 공을 들였던 사업의 체결에 시운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5시경에 공항을 출발할 비행기의 종착지는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하와이 대니얼 K.이노우에 국제공항이었다.

올해의 마지막 사업도 끝마쳤으니, 연말 휴가는 따듯한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보낼 심산이다.

"와…. 비행기마다 퍼스트클래스석의 모양이 다를 수도 있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

물론 수행비서인 강철완도 함께였다.

쉬는 것만이라도 혼자서 홀가분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강하민과 권재환은 그런 시운의 바람을 외면했다.

신기하다는 듯 좌석 이곳저곳을 살피는 강철완.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시운은 승무원에게 안대를 요청하여 받은 뒤, 머리에 쓰고 누웠다.

- 보스. 저도 보스가 속한 곳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취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신 헬렌 리우가 시운에게 조르듯 한 말이다.

인도네시아 사업 유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로 전날 호텔에서 작은 연회실을 빌려 일행들과 자리를 마련했었다.

헬렌의 말에 시운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되물었고, 그녀는 미스테리할 정도로 정확했던 시운의 투자 예측과 자신이 납치당했을 당시의 일을 예로 들며 배후 세력의 존재를 강하게 주장했다.

시운은 배후 세력 같은 건 없다며 헬렌의 추측을 전면 부정했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아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얼마 뒤, 뾰로통한 얼굴로 연회실을 나가버렸다.

당황한 장지옌이 뒤를 따랐고, 경호원인 덩위안까지 일어서며 자연히 연회는 끝나버렸다.

비밀이 있는 건 사실이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유레카.

비단, 헬렌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다.

'배후 세력이라….'

안대 아래로 드러난 시운의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런 게 존재하지는 않지만, 만약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미 헬렌은 그 세력의 일원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정말 그런 조직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우스운 공상이라 여기며 잠이나 청한다.

하와이까지의 여정은 인천에서 자카르타로 이어지는 것보다 훨씬 길다.

공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시운은 깊이 잠들었다.

구름 위로 날아오른 비행기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갔다.

시운은 미처 알지 못했다.

휴양차 들린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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