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91화 (91/139)

§091화 빚 청산(2)

최근 들어 작년처럼 이렇다 할 특종은 없었지만, 두 차례의 굵직한 고발 기사로 공신력을 얻은 '고발IN'의 판매 부수는 주간지 중 으뜸을 달렸다.

신명훈이 그 전에 몸담았던 연예계 이슈 전문 주간지, '스타 체이서' 역시 기존의 방침을 고수해오며 골수 애독자들의 충성 구매에 별 어려움 없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직원이 늘고,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정석대로 다루며 구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전처럼 대단한 특종은 없지만, 세간의 좋은 평을 받는 주간지.

그게 '고발IN'의 현재 위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명훈의 특종에 대한 갈증은 전보다 더 커졌다.

과거의 특종들이 하나같이 굵직했던 만큼 주위 사람들의 기대가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 이유가 다는 아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정보원의 도움 없이도 그에 못지않은 특종 기사를 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

그게 가장 컸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많은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잠입 취재와 밤샘 작업을 이어왔지만, 앞선 특종들만큼 파급력이 큰 기사를 낸 적은 없었다.

국내 정치와 경제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도 했고, 강력 범죄와 사회 문제가 크게 줄은 게 원인이다.

코로나 19 범유행 사태가 대한민국 내에서만은 이미 지나간 과거처럼 여겨졌다.

점차 활기를 띠는 사회 분위기.

그러나 작년과 크게 차이 없이 고요했다.

큰 문제가 없는 사회는 대다수가 바라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명훈과 같은 기자에게는 위기의 순간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려진 문제점을 찾아야 하는 게 그의 본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정민철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동시에 자신의 이메일로 날아온 하나의 자료.

"…젠장!"

지난 1년간 해온 노력이 무색하게도 정민철이 보내준 이번 자료 역시 특종임이 틀림없었다.

요즘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일본의 신임 총리와 작년 구원교 마약 밀매 사건에서 용케도 빠져나간 일본 제약회사 1위, 아신제약의 어둡고도 더러운 커넥션.

머리를 벅벅 긁은 신명훈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직원들 모두 퇴근한 사무실.

실내에서의 흡연은 원칙상 금지되어있지만, 이를 대놓고 나무랄 사람이 현재 아무도 없다.

급하게 한 개비의 담배를 모두 태운 신명훈은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핸드폰을 든 그는 단축번호를 눌러 누군가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두어 번의 연결음 뒤에 정민철이 받았다.

- 봤어?

"…네."

- 진행할 거지?

"……."

정민철의 물음에 신명훈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 그럼…?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신명훈은 애써 다른 핑계를 둘러댔다.

"아무래도 여기서 터트리기보다는 일본 현지에서 먼저 기사로 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 음…. 일본 언론의 자유는 문외한인 나도 알만할 정도인데. 그게 가능하겠어?

"뭐,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나름의 공신력이 있는 잡지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고발IN'과 협약을 맺은 일본 현지의 주간지가 존재했다.

지금 '고발IN'과 그곳은 지면의 일부분을 할애하여 양국의 사회 문제들을 기획 기사로 잡지에 싣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상대 나라의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기획 기사는 구독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한 게 바로 신명훈이다.

그나마 특종이라고 할만한 기사가 1년 가까이 없어도 이런 실적 덕분에 위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명훈이 알지 못하는 정보원, 현시운 역시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정민철을 통해 그에게 자료를 전달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언론사로 기사가 전해질 거란 걸 예상했다.

- 잘됐네. 일본 내에서 터지면 더 볼만 하지.

"근데 형님…."

- 응?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 말입니다."

-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정보원…."

- …….

"이제 저한테 알려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정민철이 밝힌 건 아니지만, HR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접대 스캔들과 삼정 그룹 신정문 회장의 해외 불법 비자금, 구원교 사태까지 모두 같은 정보원에게서 흘러나온 특종인 걸 신명훈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함께 일한 횟수만 이번 일까지 포함해서 벌써 네 번째다.

이젠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나?

-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누군지 말해줄 수는 없어.

"…네."

사실 모른다고 해서 신명훈이 손해거나 안다고 해서 이득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누구의, 그리고 어떤 의도에 의해 이런 대사건들을 다루는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한껏 풀이 죽은 신명훈의 목소리에 정민철은 잠시 고민을 하다 어렵게 입을 뗐다.

- 네 말을 전해는 볼게.

"네?"

- 그냥 말만 꺼내 본다는 거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그게 어디에요. 고맙습니다, 형님!"

- 그래. 암튼 이번 일도 잘 부탁할게.

둘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정민철이 정보원과 얼마나 관계가 돈독한지 알 수 없다.

아니, 아무리 친하다 해도 이건 섣불리 결정할 사안이 아닌 건 신명훈도 잘 알았다.

결국은 정보원의 의중에 달려있겠지.

신명훈은 정민철의 당부대로 절반쯤은 기대를 버린 채 첨부된 자료를 컴퓨터로 내려받았다.

이어서 내용을 더하거나 빼며 기사글 형식에 맞춰 정리했다.

일본에서 기사를 터트리면, 바로 이어서 '고발IN'에서도 기사를 낼 예정이다.

발간일이 하루 차이나는 주간지라서 가능한 일.

기사를 완성한 신명훈은 사본을 이메일에 첨부했다.

그리고 본문에 첨부한 내용을 요약하여 일본 협력사의 담당 기자에게 전송했다.

일본어로 변환하지도 않은 한글로 이루어진 사본의 기사.

"알아서 번역해서 싣겠지, 뭐."

다소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신명훈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신명훈이 일상생활 단어 몇 가지 외에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했거니와, 협력을 맺은 일본의 잡지사 대표가 재일 교포 3세로 그곳의 기자들 대부분이 같은 처지의 재일 교포들이다.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말이다.

일본 현지의 그 잡지사가 편찬하는 주간지의 이름은 '바쿠로(ばくろ)'.

한자로 표현하면 폭로(暴露)였다.

* * *

"흐흐흐."

술에 취하고 또 마약에 취한 하베 신이치는 손녀뻘의 어린 접대부 무릎을 베고 누워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총리관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처의 가옥 안.

어지러이 널려있는 술판은 그가 얼마나 요란하게 연회를 즐겼는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함께 자리했던 그의 심복들도 젊고 어린 접대부 한 명씩 이끌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 무리에는 얼마 전 퇴임한 하야시 전 총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좋아. 흐흐."

불과 1년 전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지지율과 야당 의원들의 날 선 공격에 진땀을 얼마나 흘렸던가.

그런 와중에 하야시가 솔선하여 묘안을 제시했고, 그 의견에 따른 하베는 1년 만에 성공적인 정계 복귀를 이뤄냈다.

총리직에 오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던 하야시의 바람도 들어주고, 그가 자신의 지난 실정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주었기에 홀가분하게 신임 총리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이젠 밝은 미래만이 남았다.

국내 민심을 헤아려 한국과의 무역 분쟁을 더욱 극대화하고, 중국과 북한의 군사 위협을 들먹이며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를 추진하기만 하면 되겠지.

이미 미 상원과 하원에 막대한 돈을 들여 로비해두었기에 평화 헌법의 개정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오히려 반길 거다.

안 그래도 중국의 군비 확장에 신경이 곤두섰으면서도 작년에 당선된 샘 셀든이 대 중국 융화책을 내세워 별다른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미 의회 내에서 불만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건 그들로서도 구미가 확 당길만한 방안이었다.

'군대 창설만 되었단 봐라.'

하베의 의중은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한국의 견제에 있었다.

아니, 견제라기보다는 더욱 불화를 조장하는 것.

자위대로만 국방력이 유지되는 현재에도 한국과의 군사력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정식 군대로 재편하여 군비를 늘린다면 그 갭은 금방 메워지고, 도리어 자국이 한국을 앞서게 될 거다.

또한, 이전부터 해군력만은 일본이 더 우수했다.

이를 동원해 한국이 강제로 점유한 다케시마를 탈환하는 게 하베의 마지막 숙원 사업이다.

그로 인한 양국의 갈등쯤이야 이룩해낸 이후의 효과에 비할 바 아니다.

'열등한 조선인 따위에게 대일본의 영토를 양보할 수는 없지.'

군대 창설과 다케시마 탈환 이후 일본 전 국민의 영웅으로 떠받쳐질 자신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훗날, 역사서에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토 히로부미와 비슷한 열에 세워질 걸 생각하니 절로 가슴 뿌듯해졌다.

"흐음."

하베의 음흉스러운 시선과 손이 다시 어린 접대부의 젖가슴을 향한다.

서서히 동하는 성욕을 느끼며 하베는 히죽 웃었다.

"각하!"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보좌관이 득달같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뭐, 뭐야?!"

하베는 화들짝 놀라며 접대부의 가슴에서 얼른 손을 뺐다.

술과 마약에 취해있었지만, 인사불성까지는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하지만 워낙 시급한 일이라…."

"허어, 이 사람! 뭐 때문에 이리 호들갑이야!"

"그게…."

보좌관은 말없이 오늘 오후에 발간된 주간지 하나를 펼쳐 하베 눈앞에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뭔데 그러는…, 헉!"

하베는 말을 잇다 말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베 신이치 총리와 아신제약 사이의 어두운 민낯]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실려있는 기사의 내용은 지금 하베가 즐기고 있는 마약 파티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입수한 건지 현장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에서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을 발견한 하베는 입을 열어 심정을 토해냈다.

"뭐, 뭐야. 이거!"

그의 고성은 가옥 전체에 울렸고, 각자 유흥을 즐기던 그의 심복들까지 놀라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 * *

일본 주간지 '바쿠로'의 발간일은 매주 일요일 오후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고발하는 이 주간지는 그간 일본 내에서 차별받던 재일 한국인들의 실태와 주요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당 정치인들의 비리와 스캔들을 메인으로 다뤘다.

덕분에 우익 단체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오물 테러를 받아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노선을 지켜왔다.

그런 와중에 협약을 맺은 한국의 시사 주간지 '고발IN'으로부터 이번에 역대급 특종을 전달받아 발간했고, 그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재일 조선인이 운영하는 잡지사라고 소문나 있어 평소에는 '바쿠로'를 찾아보는 이가 드물었다.

하지만, 표지에 새겨진 자극적인 제목으로 가판대에 놓인 '바쿠로'는 내놓기가 무섭도록 빠르게 동이 나버렸다.

하베 신이치 총리의 눈앞에 이 소식이 닿기까지 대여섯 시간이 걸렸다.

그다음 날 오전 아침 뉴스에서는 이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동시에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린 '고발IN'이 국내에 발간되었다.

한일 양국의 인터넷은 삽시간에 달구어졌다.

사실이네, 거짓이네.

하베 신이치의 지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설전이 벌어졌고, 사실 여부를 밝히려는 보도가 잇달았다.

극우 단체 몇은 날조된 기사를 사실인 것처럼 내놓았다며, 잡지사 건물 앞까지 달려가 무릎 꿇고 사죄하라며 불법 시위를 펼쳤다.

언론에 대한 통제력이 막강했던 민주자유당이지만, 이번 사태는 미리 손을 써보기도 전에 널리 퍼져버렸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고, 그걸 통해 사실을 알게 된 국민 대다수는 국내보다는 해외 매체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국내 언론에 대한 불신이 해외 언론에 대한 맹신으로까지 이어진 탓이다.

일본 제일의 제약업체와 현 총리 사이에 수년간 있었던 마약 상납 사건.

루머라면 몰라도 이미 민자당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한두 번 참석한 적도 있는 민자당 의원들은 제 살길을 마련하려 하베와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어냈다.

연루된 정치인 간의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고, 결국 총대를 메야 할 이들이 정해졌다.

희생양으로 뽑힌 이들은 당으로부터 차후 보상을 약속받았고, 매스컴 앞에 나와 지난 잘못을 뉘우쳤다.

- 하베 신이치 총리의 강압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상명하복식 관료주의를 들먹이며, 말미에 모든 책임을 하베 신이치에게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을 때는 순간의 향락이고 짜릿한 일탈이지만,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는 핵폭탄급의 악재다.

이는 하베 신이치와 더불어 당사자로 지목된 아신제약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신제약 대표, 아소다 겐세이. 사실무근이라며 수사 요청에도 극렬히 저항]

[현 총리와의 검은 커넥션에 아신제약 내부고발자 나타나]

[작년, 한국 구원교 마약 사건에도 아소다 겐세이가 직접 연루되어 있었다는 게 사실로 밝혀져 충격!]

재가공되어 올라온 인터넷 기사들을 읽어내리며 현시운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1년 동안 묵혀둔 만큼 파급력은 더욱 컸다.

이번에 구성된 중의원 의회에서는 내각불신임을 결의했고, 하베 신이치 총리 이하 내각 구성원들은 권한을 모두 잃었다.

이번 마약 스캔들에는 하베 신이치 뿐만 아니라, 전 총리인 하야시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상당수 정치인이 연루되어 있다.

그간 정치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본 국민이었는데, 이번 사태에는 이례적으로 발을 벗고 나섰다.

날마다 시위가 이어졌고, 시민단체들은 사법부에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하베 신이치와 측근들은 끈이 떨어져 버렸다.

민자당도 그들과 선을 그어버린 상황이라 일본 사법부는 모처럼 아무런 제약과 청탁 없이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 일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이 모두 연행되었고, 곧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시운은 정치에서 경제 카테고리로 눈길을 돌렸다.

[일본 니케이225, 역대급 정계 스캔들로 1,000포인트 이상 하락!]

[작년 3월 이후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며 9월 신저가 기록!]

장대 음봉을 기록하며 추락하는 일본의 증시 그래프.

이를 지켜보는 시운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이번 스캔들을 터트리기 전에 미래증권을 비롯한 해외 투자회사 여섯 곳 모두에게 일본 증시의 투자를 지시했었다.

물론, 하락과 관련된 보험과 파생상품에 말이다.

의아해할 만도 하건만, 그동안 보여왔었던 시운의 통찰력 덕분인지 다들 군말 없이 이에 따랐다.

하루, 이틀에 그치고 말 이슈가 아니다.

그런 시운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니케이225 지수는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큰 낙폭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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