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2차전(3)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비자금에 대한 기사라니!"
놀란 심경을 대변하듯 신수겸의 목소리는 점점 높게 올라갔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는 듯 신수겸은 성철우를 노려봤다.
그의 재촉하는 눈빛에 성철우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대답했다.
"그룹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달받은 내용입니다."
"믿을만한 이야깁니까?"
"네. 기사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장담하기는 어려우나, 여러 사람의 입에서 공통된 말이 나오는 거로 봐선…."
신수겸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라이벌인 신수근도 해외 비자금의 존재는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집안의 치부이다.
또한, 언젠가 물려받을 거로 여겼던 유산이다.
그렇기에 신수근 역시 파나마 계좌를 가지고 신수겸의 약점으로 잡으려 하지는 않았다.
부회장 자리를 뺏겼다고 해서 이렇듯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 위인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외부인의 소행이라는 건데….
'도대체 누가?'
눈앞의 성철우가 변절을 했을 리는 없다.
곧 계열사 사장 자리와 함께 한몫 재산을 움켜쥘 그가 이 시점에 와서 그런 짓을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이미 처리됐다고 들은 전 재무이사 측에서 새어 나간 건가?'
어쩌면 뒤처리하는 도중에 실수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느 신문사랍니까? 고려, 서울, 대동아? 그것도 아니면 한반도 일보?"
국내 메이저 4대 신문사.
그중 삼정의 광고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평상시 해왔던 대로 광고를 끊겠다고 압박하면 신문사에서 기사가 안 나오게끔 알아서 틀어막을 것이다.
그런 뒤에, 기사 내용의 사실 여부를 자체적으로 확인해봐야겠지.
만약 사실로 판명이 난다면?
그걸 취재한 기자의 입을 막고 자료를 파기할 생각이다.
"아닙니다. '고발IN'이라는 주간 매거진에서 그 기사를 다룬다고 합니다."
"고발IN?"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네. 창간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반년 정도 지났으니까요. 주로 시사 관련 문제를 다루는 잡지입니다."
이어지는 성철우의 설명에 신수겸은 혀를 찼다.
들어보니 딱히 뒷배도 없는 영세한 삼류 잡지사다.
그런 하찮은 곳에서 어디 겁도 없이 감히!
그러다 익숙한 단어가 나오자 신수겸의 눈썹이 꿈틀댔다.
"스타 체이서? 혹시 거기…?"
"네, 맞습니다. 작년에 HR 엔터테인먼트의 스캔들 기사를 냈던 잡지사입니다. 거기서 작년에 새로 만든 게 '고발IN'입니다."
스타 체이서 때문에 그동안 신수겸의 유흥을 책임져주던 고희준이 매장당해버렸다.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끔 중간에서 제대로 막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스캔들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여흥 거리 하나가 사라진 데 신수겸은 조금 아쉬워했었다.
물론, 고희준이 맡았던 포지션을 노리는 연예기획사 대표는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유흥을 즐기는데 무리는 전혀 없다.
"흐음…."
잠시간 이마를 짚은 채 고민하던 신수겸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성철우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엄 실장 부르세요."
"…엄석태 실장을 말입니까?"
"그래요. 이런 일을 맡기기엔 제격 아닙니까."
"……."
신정문 회장이 거둬들인 조직폭력배 출신의 엄석태.
아니, 지금도 강남 부근의 유흥주점과 클럽 여러 개를 관리하며 현역으로도 뛰고 있는 인물이다.
평소에는 그쪽 일에 매진하다, 삼정에서 처리하기 번거롭거나 불법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 불러서 일을 맡겼다.
삼정 그룹 오너 가에선 그와 그의 수하들을 사냥개, 혹은 청소부라 불렀다.
던져주는 뼈다귀에 일도 척척 해내고, 입에 자물쇠도 채우는, 충실한 하수인이다.
"뭐합니까? 어서 불러요."
"아,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 나가는 성철우의 등을 바라보며 신수겸은 혀를 찼다.
"호사다마라더니…."
신수근의 발악과 미래투자신탁 지분 매입 실패, 거기에 해외 비자금 관련 기사라니!
마가 껴도 너무 꼈지 않은가.
그중 신수겸의 골치를 썩이게 만드는 두 가지 일이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 * *
일을 마치고 잡지사를 나서는 신명훈은 오늘도 긴장이 되는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건물을 나와 야외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이 자꾸 주위를 살폈다.
야심한 시각.
임대료가 저렴한 변두리에 잡지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밤 9시만 넘어서면 주변은 인적이 끊긴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반.
일부러 회사에 더 남아있다가 지금에서야 나왔다.
누구든 쉽게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일주일 전부터 정민철이 세운 계획에 따라 행동했다.
전달받은 파나마 계좌 정보가 담긴 문서를 바탕으로 기획 기사를 완성해두었고, 고려일보 재직 당시 친했던 기자들 입을 통해 소문을 냈다.
'지금쯤이면 삼정 쪽으로도 흘러 들어갔겠지.'
절대 외부에 드러나선 안 될 해외 비자금이다.
삼정의 신 씨들은 이를 막기 위해 무슨 수라도 쓰겠지.
5년 전, 파나마에서 선배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후우. 오늘은 어떨는지…."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충분히 각오도 했다지만 겁이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정민철과 자신의 예상대로 사실 확인을 위해 납치와 감금 정도로 시작됐으면 좋겠다.
갑자기 덤프트럭이 달려와서 받아버리는 건 극구 사양이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 해도 자꾸 의식이 되었다.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주춤했고,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살피기 바빴다.
'근데 정말 누굴까?'
정민철에게 불법 비자금 정보가 담긴 문서를 전한 이가.
정체는 모르지만, 실로 대단한 사람이지 않은가.
국내 제일 기업의 총수가 꼭꼭 숨겨둔 비자금을 찾아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게다가 내용은 또 얼마나 알차던지.
마치 계좌 내역을 그대로 복사한 듯 자세하다.
삼정 내부의, 그것도 비자금 실체에 다가갈 수 있을 만큼 신정문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 돕지 않고선 나오기 힘든 문서였다.
"아님, 정보원이 정말 삼정 내부 사람일 지도…."
최근 장남 신수근이 부회장직을 동생 신수겸에게 뺏기고, 절치부심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가 가장 의심되기는 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아니,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의 입으로 들을 수 있을 리는 없겠지.
툭툭-
차 앞에 도착한 신명훈은 며칠 전 정민철에게 받은 구두로 괜스레 바닥을 두드려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구두지만, 양쪽 뒷굽에 소형의 녹음 장치가 하나씩 숨겨져 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자신이 변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이 구두만 발견된다면 흉수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신명훈은 그만한 각오로 이번 일에 임하고 있었다.
덜컥-
운전석에 올라탄 신명훈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꽝인가….'
자신에게 접근하려면 지금 이때가 가장 적기인데도 아무 일이 없었다.
안도와 아쉬움이 반씩 섞인 복잡한 심경이다.
신명훈은 입맛을 쩍 다시고는 차 키를 돌렸다.
이내 시동이 걸렸다.
며칠을 긴장의 연속으로 보냈더니 평소보다 더욱 피곤했다.
집에 가서 얼른 눈이라도 붙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차를 출발시키려 하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따끔거렸다.
"?!"
"소리를 지를 생각은 마쇼. 옆구리로 내장 다 쏟아내고 싶지 않으면."
낮고 차가운 목소리.
'어, 언제?!"
룸미러로 살펴본 뒷좌석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방금까지 기척도 못 느꼈는데?!
자신이 올 때까지 몸을 숨긴 채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잠입 취재가 많다 보니 회사 차량은 선팅이 짙게 되어있다.
그 때문에 신명훈도 차 안에 누가 숨어있는지 밖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말하는 장소를 내비에 찍으쇼.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보기보다 내 손이 빠르거든."
"……."
신명훈은 떨리는 손을 움직여 괴한이 불러준 장소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설정했다.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신명훈은 괴한의 지시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여전히 옆구리에 닿아 있는 날붙이의 서늘함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다짜고짜 죽이려 들지 않는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50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를 따라 신명훈의 차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방면으로 달려갔다.
"옳지, 잘하고 있군. 그렇게 내비 음성에 따라서 가기만 하쇼."
마치 놀리듯 옆구리를 향했던 나이프가 얼굴과 목을 오고간다.
그에 사색이 된 신명훈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괴한의 말을 따랐지만, 은연중 지어지는 미소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밤이라서 천만다행이군.'
어두워서 자신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불청객을 태운 신명훈의 차량은 파주의 한 인적없는 야산을 향해 내달렸다.
* * *
"?!"
오늘도 스타 체이서 잡지사 인근의 골목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잠복을 하고 있던 정민철은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위치 신호에 좌석에 기대었던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밤 10시 반 이후로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향할 것.
그게 정민철과 신명훈이 신정문 회장 해외 불법 비자금 기사를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정해놓은 루틴이었다.
근데 방금 그게 깨졌다.
정민철의 격한 움직임에 조수석에서 자고 있던 남성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실눈을 떴다.
"으음…. 뭐에요, 사장님?"
포크레인 흥신소 직원 중 한 명인 노성훈이다.
아마추어 복싱 전 국가대표 출신의 그는 과거에 맺은 정민철과의 인연으로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정민철은 무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사무실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하는 그를 이번 일에 참여시켰다.
"떴어!"
정민철의 짧은 외침에 노성훈은 눈을 번쩍 떴다.
사전에 설명을 들었기에 지금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정민철은 그에게 위치 신호 수신기를 건네고는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위치 신호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계속 불러줘."
그러면서 차를 출발시켰다.
오늘 같은 일을 대비해 신명훈의 몸과 차에 위치 신호 발신 장치를 붙여뒀다.
"수색역에서 왼쪽으로 틀었어요!"
"……."
그 방향으로 쭉 달리다 보면 나오는 건 현천IC다.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건가?'
정민철은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정 선배?
"어, 차 팀장. 오늘이야."
-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형사 시절 자신의 부사수였던 차성원은 현재 강남경찰서 강력2팀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민철은 미리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해둔 바 있었다.
차성원은 고맙게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요 며칠 새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게 대기를 타 주고 있었다.
"위치 정보를 계속 문자로 알려줄 테니 바로 와줘."
- 알겠습니다, 선배.
통화는 짧았다.
정민철은 핸드폰도 노성훈에게 건넸다.
"방금 통화한 번호로…."
"실시간 위치 정보 문자로 보내면 되는 거죠? 사장님은 운전에나 집중하세요."
"…그래."
둘을 태운 차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그리고 약 사십여 분 뒤, 한 야산 아래에 도착했다.
"사장님, 저기!"
도로에선 잘 보이지 않는, 나무로 가려진 위치에 신명훈의 차량이 서 있었다.
그 옆에 세워진 승합차에 정민철은 인상을 굳히며, 차에서 내렸다.
조심스레 다가가 차 안을 살폈지만, 두 대 모두 텅 비어 있다.
서둘러 위치 신호 수신기를 살펴봤지만, 뜨는 신호는 하나뿐이다.
차에 부착된 발신기였다.
오작동이든 도중에 망가졌든, 신명훈의 몸에 붙여놨던 발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젠장!"
차 보닛이 차갑게 식은 거로 봐선 못해도 십여 분은 지났다.
더 지체했다간 신명훈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어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낮은 야산이라도 다 뒤져볼 만큼 면적이 작지는 않다.
막막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정민철은 곧 등산로 입구를 발견했다.
"……."
왠지 신명훈과 그를 납치한 일당들이 저곳으로 향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올라가 보자."
"네?"
노성훈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사람을 납치해 산으로 데려온 놈들이다.
승합차를 타고 온 걸 보면 못해도 다섯 명 이상은 된다는 소린데….
"사장님 후배분이 경찰들 이끌고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하던데…, 합류해서 같이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직 쫓은 이들의 정체는 모르지만, 납치 장소가 야산인 걸 보면 보통 흉악한 놈들이 아니다.
괜히 둘이서 덤벼들었다가는….
자신은 몰라도 정민철은 크게 다칠지도 몰랐다.
"그 10분 안에 명훈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이미 많이 지체했다. 서두르자."
"…네."
정민철의 단호함에 노성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를 따랐다.
등산로 입구를 통해 산으로 들어선 둘은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정민철은 문자로 차성원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
산 중턱에 위치한, 운동기구가 즐비한 공터에 도착했을 때였다.
"너도 들었지?"
"네!"
등산로 우측의 숲속에서 분명 말소리가 들렸다.
워낙 소리가 작아 무슨 말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그마저도 정민철에겐 감지덕지했다.
정민철과 노성훈은 등산로를 벗어나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최대한 바위나 돌, 흙바닥만을 밟으며 소리를 죽인 채 나아간 둘은 곧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섯 명의 괴한들.
그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손전등의 불빛이 아래를 가리켰다.
"?!"
신명훈이다.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양손과 발이 묶인 채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신명훈을 발견했다.
아직은 무사하다.
다만, 괴한들 사이에 오가는 말이 험악했으며, 곧 누군가의 입에서 처리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무리 중 한 명이 삽을 들고나와 신명훈의 머리를 겨누며 위로 치켜들었다.
당장이라도 아래로 떨어져 신명훈의 목숨을 앗아갈 것만 같은 상황!
정민철은 다급히 챙겨온 호각을 빼 들어 힘껏 불었다.
삐이익!
그에 신명훈을 에워싼 괴한들과 덩달아 옆의 노성훈까지 기겁했다.
"뭐, 뭐야?! 지금 이거 무슨 소리야!"
밤공기를 찢듯 길게 울린 호각 소리에 당황한 괴한들은 신명훈에게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사람 한 명을 은밀히 묻는 행위.
목격자는 절대 없어야만 했으니까.
"사장님…."
힐난 섞인 노성훈의 눈빛에 정민철은 굳게 닫은 입을 열어 조용히 말했다.
"어쩔 수가 없잖아. 당장 명훈이가 어떻게 될 지경인데."
노성훈의 한숨과 동시에 정민철의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 어딥니까? 선배!
차성원과 그의 팀이 드디어 도착했다.
"등산로 입구를 따라 올라와. 운동 기구 있는 데서 길 오른쪽으로 들어오면…."
삐이이익!
옆에서 노성훈이 호각을 가져가 길게 불었다.
제 딴에는 도우려고 한 행동이겠지만….
정민철은 별 말없이 통화를 마저 했다.
"…방금 호각 소리 들렸지? 거기로 얼른 와. 나 죽기 전에."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또한, 둘이 숨어있던 위치도 들통났다.
어차피 들켰겠지만 좀 더 시간을 끌 수도 있었는데….
아쉬워해봤자 늦었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대처할 뿐이다.
저마다 손에 삽과 파이프를 들고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괴한들.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으며 정민철이 나직이 말했다.
"5분만 버티자. 그 안에 경찰들 올 거야."
"그냥 밑으로 도망가는 방법도 있어요."
"명훈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럴 순 없지."
"후우! 사장님. 나이도 있으시니,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저 혼자서도 시간 끄는 거야 손쉬우니까요."
노성훈의 너스레에 정민철은 픽 웃으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래, 5분만 버티자.
푸스슥-
정민철은 숨어있던 수풀에서 앞으로 뛰어나가며 소리 높여 외쳤다.
"다들 꼼짝 마! 경찰이다!"
시간을 끌기 위한 기만책이지만, 순간 형사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 * *
♪~ ♩♬~
자정도 지난, 야심한 시각에 울리는 전화벨.
평소와 달리 잠들지 않은 채 거실에 앉아있던 현시운은 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정민철입니다.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 목소리지만, 일단 무사한 것 같아 시운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쯤, 신명훈이 납치를 당했고 자신들이 그 뒤를 쫓고 있다는 정민철의 문자를 받은 뒤 한시도 진정할 수 없었다.
"다들 괜찮습니까? 기자님도 다친 데는 없고요?"
- 뭐, 작은 생채기 정도는 있지만 다들 무사합니다.
"하…. 다행입니다."
- 그리고, 계획은….
"……."
시운은 숨죽인 채 정민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좀 전보다 약간 밝아진 말투로 정민철이 말을 이었다.
- 성공했습니다.
시운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