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23화 (23/139)

§023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다(1)

"에이, 씨!"

몇 분여간 더 욕설을 퍼부은 신수겸은 손에 든 골프채를 신경질적으로 내동댕이쳤다.

탱-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반도체 파트 구매팀 전원은 어깨를 움찔했다.

그들을 노려보며 한동안 씩씩대던 신수겸은 짜증스럽다는 듯 손바닥을 내저었다.

"구매팀장 빼고 전부 나가봐요."

"네, 넷! 전무님."

1초라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려 우르르 몰려가는 그들의 모습에 신수겸은 인상을 썼다.

혼자 남은 구매팀장은 손을 앞으로 공손히 모은 채 바짝 긴장했다.

맹수 앞에 놓인 것처럼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막막해져만 갔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쉰 신수겸은 1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절로 났다.

"혹시 담배 있습니까?"

"아, 네, 네!"

우사인 볼트의 뺨을 후려칠 속도로 다가온 구매팀장은 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신수겸에게 내밀었다.

"쯧!"

싸구려 국산 담배인 것에 신수겸은 혀를 찼고, 구매팀장은 몸 둘 바를 몰라 얼굴만 붉혔다.

당장 니코틴이 절실했던 신수겸은 어쩔 수 없이 한 개비를 빼내 입에 물었고, 기다렸다는 듯 구매팀장이 라이터 불씨를 댕겨 불을 붙여줬다.

"스으읍! 후우-"

탁한 담배 연기가 둘 사이를 가로지른다.

약간의 어지럼증 뒤로 몸 안에 충만히 차오르는 니코틴에 신수겸은 흥분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아까 어디라고 했습니까?"

무엇을 말하는지 많은 단어들이 빠져있었지만, 회사 생활 11년의 구매팀장은 이를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미, 미래투자신탁이라는 투자회사입니다."

"투자회사라…."

매년 이어오던 공급 계약도 해지했고, 거래처를 압박하여 자신들처럼 거래를 끊게 했다.

그에 굴하지 않고 해외 판로를 개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에 돈으로 담당자를 매수하여 뒤통수까지 후려쳤다.

근데 엄한 곳에서 자신의 먹잇감을 낚아채 가버리다니!

투자회사라는 말에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자신의 경쟁자인 형, 신수근이었다.

신수겸은 싸구려 국산 담배를 재차 빨아들이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거기가 형의 비자금을 불리는 곳인가?'

하도급업체를 통해 가격을 부풀리거나 연말에 재고 중 일부를 망실 처리한 뒤 되팔아서 돈을 모으는 건 오늘날에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비자금 조성 방법이다.

그렇게 모은 비자금은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묵혀두거나 눈에 띄지 않을 투자회사 하나 세워 조금씩 불리기 마련인데….

삼정중공업 사장으로, 이미 건설과 중공업, 조선 쪽에 자신의 파벌을 형성한 신수근이다.

파악하지 못했지만, 꽤 많은 액수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을 테지.

삼정전자를 장악하기 위한 자신의 행보에 형이 훼방을 놓는 게 아닐까 신수겸은 의심했다.

'아버지가 일선에서 잠깐 물러난 사이에 어떻게든 전자를 손에 넣어야만 해.'

올해 일흔넷의 신정문 회장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병세가 최근 나빠지면서 그룹 일에서 잠시 손을 떼고 요양 중이다.

그의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장남인 신수근 삼정중공업 사장에게 그룹을 물려줄 거라는 소문이 안팎으로 돌고 있다.

신수겸 역시 소문을 들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은 소문대로 형이 그룹을 차지할 거란 것도 잘 알았다.

평소 신정문 회장의 의중은 장자 승계였으니까.

"쳇!"

"?!"

신수겸의 짜증 섞인 한 마디에 우두커니 섰던 구매팀장이 흠칫 놀랐다.

평소 태어난 순서가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던 신수겸에게 아버지의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여 그는 아버지의 의사와는 반대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삼정 그룹 핵심계열사인 삼정전자의 사유화를 말이다.

앞으로 삼정전자에서 생산할 차세대 제품에는 진성전자의 기술로 제조한 반도체가 필수로 들어갈 것이다.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열쇠인 셈이다.

신수겸은 사비를 들여 그 열쇠를 손에 넣고자 했었다.

신기술 특허를 쥐고 비자금으로 만든 여러 차명 계좌로 전자의 주식을 사 모아 지분을 늘린다면?

삼정전자는 자신의 것이 된다.

초창기 물류업으로 성장한 삼정 그룹.

1970년대에 삼정전자를 세우면서 오늘날의 재계 수위권으로 도약할 힘을 얻었다.

아무리 형이 그룹 회장이 된다고 해도 거기에 삼정전자가 빠진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신수겸은 최악의 경우, 대진자동차 그룹의 선례처럼 전자 부문만 계열 분리할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그룹 회장직에 욕심을 부렸다.

틱-

담배를 다 피운 신수겸은 필터만 남은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그만 나가봐요."

"아…. 네, 전무님."

진성전자와 관련하여 다음 지시를 내릴 거로 생각한 구매팀장은 잠깐 당황하다 물러났다.

잠시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신수겸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지시한 일을 실패한 사람을 그는 용서할 마음이 없다.

아마 다음 분기 인사발령 때 구매팀장은 이름뿐인 계열사의 한직으로 쫓겨나게 될 거다.

신수겸이 방금 그렇게 정했으니 말이다.

삐익-

- 네, 전무님.

"구 비서 좀 들어오라고 해요."

- 네, 알겠습니다. 전무님.

잠시 후, 문이 열리며 후덕한 인상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는 아수라장이 된 안을 슬쩍 지나가듯 보기만 할 뿐, 아무런 동요 없이 신수겸에게 다가갔다.

이미 전에 여러 번 본 광경이라 면역이 생긴 까닭이다.

"부르셨습니까, 전무님."

"구 비서. 미래투자신탁이라는 데를 좀 알아봐 줘요."

"어디에 중점을 두면 되겠습니까?"

"흠…."

구 비서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신수겸은 곧 입을 열었다.

"삼정중공업 신수근 사장과의 연결고리. 그걸 중점적으로 파봐요."

"네, 알겠습니다. 전무님."

지시를 받은 구 비서는 사흘이 지난 뒤, 결과를 들고 신수겸 앞에 다시 섰다.

"신수근 사장님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투자회사입니다."

"호오, 그래요?"

"네, 전무님."

그렇단 말이지.

"구 비서, 한 가지 일을 더 해줘야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전무님."

신수겸의 다음 지시에 구 비서는 강남구 신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 * *

"거절합니다."

단호한 강하민의 말에 마주 앉은 구 비서의 눈썹이 휘어져 올라갔다.

"제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은데…."

"아뇨, 그럴 리가요."

"……."

강하민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신수겸 전무의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하라, 이 말 아닙니까?"

직설적인 그의 표현에 구 비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참. 의외의 분이시군요."

"그렇습니까?"

구 비서는 오전 신수겸의 지시로 미래투자신탁에 방문했다.

회사의 지분을 세 배 가격에 팔고, 신수겸 전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

근데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단번에 거절당했다.

"수호증권에서 여러 해 일하셨다길래 이쪽 생리를 잘 아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너무 잘 알아서 탈이죠."

"대주주를 찾아가 제안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된다면,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강 대표님이 나서서 대주주를 설득하는 그림이 보기 좋을 것 같은데요."

"모르고 오셨나 본데, 대주주께서는 회사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저에게 일임하셨습니다. 그분 또한 이곳을 남에게 넘길 생각 따윈 전혀 없으시고요. 괜히 찾아가셔봤자 헛걸음만 할 뿐입니다."

어디까지 조사하고 왔는지는 모르나, 투자운용 2팀에서 일하는 시운을 대주주와 결부시키지는 못할 거다.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겠지.

저들의 상식으로는 회사의 실소유주가 일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걸 상상조차 못할 테니 말이다.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눈빛은 하나같이 차갑게 벼린 채.

"강하민 대표님의 의중은 잘 알았습니다."

더 말해봐야 소용없겠다는 생각에 구 비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쪼록 오늘 내로 생각을 바꾸시길 권합니다. 이건 제가 대표님과 여기 직원들을 염려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구 비서는 자신의 명함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강하민은 따라 일어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

"제가 일이 바빠서 멀리는 못 나갑니다."

"…실례가 많았군요."

구 비서가 방을 나가자 강하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 지시를 받고 온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냐.

하지만….

"기분은 더럽군."

꾸깃!

강하민은 구 비서가 두고 간 명함을 무참히 구긴 뒤에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똑똑-

"…누구십니까?"

설마 구 비서가 다시 돌아왔나?

"접니다, 대표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현시운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음…. 갑자기 계획에도 없는 손님이 찾아왔다길래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게다가 삼정전자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시운이 진행한 진성전자 지분투자와 관련된 일임이 분명했다.

강하민은 짜증 섞인 얼굴로 푸념하듯 말했다.

"손님은 무슨! 불청객이지."

회사에선 직분에 맞게 서로를 대하자는 약속도 잊을 만큼 강하민은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뭐래요?"

"……."

옆에 앉는 시운을 슬쩍 바라본 강하민은 한숨과 함께 조금 전 있었던 일을 한 줄로 요약했다.

"회사를 세 배에 사줄 테니 검은돈 불리는 하수인이나 하란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을 리는 없겠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했다.

시운은 강하민이 왜 화가 나 있는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진심이냐?"

진심으로 째려보는 강하민의 시선에 시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설마요. 농담, 농담입니다."

지금의 자금 규모를 서너 배 늘리는 건 자신도 얼마 걸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너한테 연락이 갈 수도 있어."

"전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주의라서. 실수로 받더라도 바로 끊어버릴 테니 걱정마세요."

"걱정은 무슨…."

제안을 거절했는데도 연신 불편한 기색인 강하민의 모습에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시운도 알만했다.

"삼정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죠?"

"…아마도."

회사를 세우는 과정과 지금껏 운영해오면서 어떠한 위법 행위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상대는 대기업.

무슨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물고 늘어질지 모른다.

'위기 알림권이 있으니 신변의 위험은 미리 대비할 수 있고….'

제안 한번 거절했다고 극단의 수를 써오지는 않겠지만, 장기우의 경우를 보면 안심할 수만도 없다.

시운은 정보 이용권을 한 장 써서 삼정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아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리 안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방식이라면?

가령 국세청을 동원해 세무조사라도 하겠다고 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정보 이용권이 4장.'

여유롭지는 않다.

차라리 삼정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하는 게 나을 거라고 시운은 판단했다.

강하민과 시운이 예상한 삼정, 아니 신수겸의 보복은 며칠 뒤에 생각보다 치졸하고 거친 형태로 다가왔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

검정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 사무실로 밀고 들어왔다.

오후 3시 17분.

금일 주식 시장이 마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각이었다.

"주가 조작 혐의로 미래투자신탁 압수 수색을 하겠습니다. 증거물 확보해요."

압수수색영장을 보이며 말한 젊은 검사의 지시에 수사관들이 검찰 마크가 찍힌 파란 박스에 서류 파일과 컴퓨터 본체를 옮겨 담기 시작했다.

"강하민 대표이십니까?"

그들의 행태를 가만히 지켜보던 강하민이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함께 가시죠."

"…체포 영장은 없으신 것 같은데요."

응하지 않겠다는 그의 대꾸에 검사는 피식 웃었다.

"임의동행입니다. 원한다면 영장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죠. 근데 그땐…, 손목이 아주 많이 아플 겁니다."

"…좋아요. 갑시다."

두 명의 수사관이 강하민의 양옆에 붙었다.

수갑만 안 채웠지 흡사 범죄자 취급이다.

"대표님…."

직원들 모두 출입구까지 따라 나오며 그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강하민은 직원들을 바라보며 애써 웃음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잘못도 없으니 금방 나올 겁니다."

그 말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검사가 콧방귀를 뀐다.

"창립하고 한 달간 다들 고생 많았잖습니까. 잠시 쉬어 간다고 생각해요. 곧 다시 봅시다."

시운과 눈이 마주친 강하민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띵-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강하민과 검사, 수사관을 태운 뒤 문은 닫혔다.

시운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하고는 등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불안한 마음을 서로 토로하는 직원들을 뒤로 남겨둔 채, 그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 외장하드도 담아."

"어서어서 옮깁시다."

검찰 수사관들이 증거를 압수하면서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빠득!

생각보다 세게 나온다.

삼정이.

신수겸이.

"…건드렸다 이거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시운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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