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장군? 멍군!(1)
[위기 알림권 - 1,000 EP]
[대상자 등록]
[???] [???] [???] [???] [???]
[구매할 이용권 수 : 0 ▲▼]
[실행 / 취소]
위의 정보 이용권과 동일한 가격이다.
다른 점은 구매 한도가 따로 없다는 것과….
"대상자?"
다섯 개의 비어있는 슬롯에 시운은 미간을 좁혔다.
"위기 알림권이라…."
어떤 용도의 이용권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음, 이건?"
정보 이용권과는 달리 위기 알림권 옆에 도움말 표시가 달려있다는 걸 뒤늦게서야 발견했다.
시운은 손가락을 갖다 대 그곳을 눌렀다.
곧 작은 메시지창이 떴다.
[위기 알림권으로 이용자는 등록된 대상자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것을 72시간 내에 알려주는 '위기 알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보 이용권과 달리 등록된 대상자의 위기를 알릴 때마다 보유한 위기 알림권이 자동으로 사용됩니다.]
[대상자의 신변에 닥칠 위험의 정도를 이용자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설정된 위험도 - 경미 / 경상 / ▶중상◀ / 사망]
"……."
시운은 위기 알림권의 도움말을 한참 동안 말없이 들여다봤다.
그의 입술이 서로 떨어진 건 몇 분이나 지나서의 일이었다.
"하아…, 이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위기 알림권.
이건 정말이지!
"최곤데."
이미 회귀 전과는 다른 삶, 다른 현재를 살고 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불행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는데, 유레카에 이걸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니.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현질을 할 수 있다.
시운은 기쁜 마음으로 포인트 충전 메뉴로 다시 들어가 1,000포인트를 결제했다.
[보유 유레카 포인트 : 1,000 EP]
그리고 이용권 구매 메뉴에서 정보 이용권이 아닌 위기 알림권을 한 장 구매했다.
아직 정보 이용권은 세 장이나 남았던 까닭이다.
월 구매 한도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10월 27일.
이번 달이 지나려면 아직 나흘의 여유가 있다.
정보 이용권은 그 전에 3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여 구매하면 그만이지.
그보다는 언제 닥칠지 모를 신변의 위험에 대한 대비가 우선이다.
오늘, 시운은 장기우의 손을 꽉 쥐며 도발을 했다.
회귀 전의 자신이었다면 시도도 못 해볼 일.
소시오패스 같은 그 자식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떤 식으로 보복해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원래는 경호업체에 의뢰하여 한동안 24시간 밀착 보호를 의뢰할 생각이었는데….
위기 알림권의 생성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위기 알림권.
줄여서 그냥 알림권이라 부르자.
알림권을 구매하니, 유레카 메인화면의 '잔여 정보 이용권' 정보창 아래에 새로운 줄이 하나 생겨났다.
[잔여 위기 알림권 : 1장]
정보 이용권 3장과 위기 알림권 1장.
시운은 흐뭇한 미소로 얼굴을 가득 채웠다.
뭘 먹지 않아도 배부른 듯한 충만함을 만끽한다.
"아, 깜빡할 뻔했군."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린 시운은 손가락을 바삐 움직였다.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 위로 곧 위기 알림권 도움말이 떠올랐다.
[현재 설정된 위험도 - 경미 / 경상 / ▶중상◀ / 사망]
마치 차량 블랙박스의 이벤트 영상 촬영 조건인 충격의 세기를 설정하는 메뉴처럼 기시감이 느껴진다.
"경미면 뭐, 찰과상이나 타박상 정도일 거고…."
경상은 아마도 그보다는 상처의 정도가 심한 골절상이나 자상, 열상 등을 일컫는 거겠지.
중상과 사망이야 말할 것도 없고.
"……."
굳이 경미로 위험도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요리하다 손가락을 칼에 베이는 것도 경미한 부상에 해당한다.
그런 작은 상처가 생길 때마다 10억 원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수백억 원의 자산가로 거듭난 지금의 시운이라도 아찔하다.
"경상으로 바꾸자."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아무리 경상 축에 드는 부상이라 해도 다친 부위와 상처의 종류에 따라선 한동안 몹시 거동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자신은 앞으로 많은 활동을 해야 할 텐데, 그런 일로 발목을 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시운은 위험도를 경상으로 설정한 뒤, 비어있는 다섯 개의 대상자 슬롯 중 첫 번째 칸에 자신을 등록했다.
[대상자의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 정상적으로 등록이 됩니다.]
[첫 번째 대상자 슬롯에 '현시운' 님이 등록되었습니다.]
[대상자 적용 중 - 6%]
남는 슬롯이 아직도 네 개나 있다.
여기에 김현석과 강하민도 추가할까?
앞으로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한 둘이니 말이다.
"나중에…. 나중에 등록하자."
회귀 전에 이렇다 할 사고를 당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자신이 개입하면서 그들의 미래도 조금은 바뀌었겠지만, 아직은 영향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당장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둘을 위한 알림권까지 사놓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남은 생활비 20억 원은 구매 한도가 있는 정보 이용권에 먼저 써야 했으니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시운은 위기 알림권 설정을 끝내고 유레카를 종료시켰다.
정식 이용자로 승급되었다는 알림을 받은 이후부터 줄곧 긴장해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하다.
시운에게 지금 뜨끈한 목욕물이 절실했다.
쌓인 피로만 말끔히 풀어내면, 오늘 밤은 왠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동창회에서 마주한 장기우의 일그러진 표정을 떠올린 시운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욕실로 향했다.
띠링!
그때, 또다시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리며 시운의 발길을 붙잡았다.
"음?"
뭔가 싶어 다시 거실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집어 든 시운은 곧 눈썹을 꿈틀거렸다.
[위기 알림!]
[대상자 '현시운' 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 예정입니다.]
"뭐?!"
대상자 적용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위기 알림권이 사용되었다.
시운은 즉시 잠금을 풀어 유레카 앱에서 보낸 위기 알림 메시지를 두 눈으로 읽어내렸다.
"……."
내용을 확인한 시운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달리 매섭게 변했다.
* * *
한준석과 이동수는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20년 지기 절친이다.
다섯 살에 어린이집에서 만난 둘은 처음 본 날 주먹다짐을 하였고, 그날 서열이 나뉘었다.
이동수를 똘마니로 거느린 한준석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를 주름잡았다.
본인보다 싸움을 못 하는 동네 꼬마들을 줄줄이 거느리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는데.
이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진 활동을 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
남을 괴롭히는 걸 둘 다 좋아했던 터라, 한준석과 이동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동네 양아치로 거듭났다.
군대까지 다녀온 둘은 마땅한 직업 하나 가지지 않은 채, 벌써 몇 년째나 양아치 짓을 일삼고 있었다.
오늘도 길가는 취객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 푼돈을 뜯어낸 둘은 술이라도 한잔할 생각에 단골가게로 향했다.
치익- 틱! 티딕-
노릇하게 구워진 돼지 껍데기에 소주를 곁들이는 한준석과 이동수.
이때, 가게 문이 열리더니 웬 낯선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남자는 한준석과 이동수의 테이블로 성큼 다가오더니 허락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뭐야, 당신? 뭔데 남의 술자리에 함부로 끼어들어?"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이동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험상궂게 인상을 썼다.
남자는 이동수의 반응에 씩 웃음을 짓더니 허락도 없이 젓가락을 들어 돼지껍데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격분한 이동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한준석도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둘을 번갈아 보며 돼지껍데기를 씹던 남자는 젓가락을 내려놓고선 말을 건넸다.
"너희, 신동우 알지?"
"!!"
"도, 동우 형님?"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자, 강남의 뉴월드 파 행동대원인 신동우는 둘에게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한준석은 조금 전과 달리 조심스러운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동우 형님을 아십니까?"
"응, 중학교 동창이거든."
신동우를 언급하자 금방 꼬리를 내리는 둘을 속으로 비웃은 남자는 다시 젓가락을 들어 돼지껍데기를 몇 점 집어먹었다.
입안에 감도는 기름기를 소주 한 모금으로 씻어낸 그는 방금과 달리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동우한테 소개받아서 왔어. 너네 일 처리 하나는 그렇게 깔끔하게 한다며?"
"네? 아, 네… 뭐."
신동우처럼 정식으로 조직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일손이 부족할 때 불려가 한쪽 팔 거들고는 했었다.
보통은 개발지구 철거민을 내쫓는 건설 용역이었는데,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곧잘 들었지.
남들보다 몇 푼 더 챙겨 받기도 했었고 말이다.
남자는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수표를 두 장 꺼내어 한준석과 이동수 앞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수표의 금액을 확인한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만 원. 선금이야. 제대로 일만 마무리하면 각자에게 4천만 원씩 더 챙겨주지."
"……."
"……."
남자의 말에 한준석과 이동수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돈에 욕심은 났지만, 제시하는 액수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의뢰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긴장한 둘의 모습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쫄지들 마. 전에 했던 건설 용역 일이랑 비슷한 거야. 누굴 담그거나 파묻어 달라는 소린 안 할 테니 지레 겁먹지 말라고."
남자의 말에 확 구미가 당긴 둘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둘의 반응에 작게 웃으며 남자는 그들이 해줄 일에 대해 조용히 말했다.
"딴 거 없어. 한 녀석 손만 좀 봐주면 돼. 팔다리 중 어디 하나 병신 만들면 더 좋고. 그땐 2천만 원 더 얹어주지."
목표물에 관해 설명하는 남자의 날카로운 눈매가 서슬 퍼렇게 번뜩였다.
* * *
하루 뒤, 야심한 밤.
강남 역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을 배회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검정색 야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그들은 바로 한준석과 이동수였다.
품에 지닌 잭나이프를 꺼내 잘 벼린 날을 확인하는 한준석.
그와는 달리 이동수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준석아,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 우리 이 일 하지 말자."
이동수의 말에 한준석을 혀를 짧게 찼다.
"무슨 겁쟁이 같은 소리야. 이번 일에 얼마가 걸렸는지 몰라서 그래? 각자에게 오천만 원이야. 합하면 1억이라고, 1억!"
"그, 그래도…."
염려의 빛이 역력한 20년 지기의 얼굴에 한숨을 몰래 쉰 한준석은 다독이듯 말했다.
"동수야. 우리가 언제까지 동네에서 삥이나 뜯으며 살 순 없잖아. 이번 일로 한몫 단단히 챙겨서, 응? 제대로 폼 나게 살아보자. 1억 원이면 뭔들 못하겠어. 안 그래?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엑셀 한 번 시원하게 밟아보자고."
"……."
한동안 대답이 없던 이동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 한준석은 아까부터 예의주시하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달래 아파트 501호.
오늘 자신들의 목표물이 거주하는 곳이다.
한 시간 여쯤 흘렀을 때, 501호에 켜져 있던 불이 모두 꺼졌다.
이에 한준석은 이동수의 팔을 살짝 쳤다.
"이제 들어가자. 장비 제대로 챙기고."
"…알았어."
이번 일을 의뢰한 남자는 무슨 수를 썼는지 목표물의 거주 아파트 현관 출입 카드까지 공수해줬다.
둘은 인적이 드문 단지 안을 가로질러 아파트 현관에 도착했다.
삑- 드르륵!
출입 카드는 제대로 작동했다.
한준석은 품에 넣은 잭나이프를 다시 한번 더듬으며 이동수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5층에 도착한 둘은 501호 앞에 챙겨온 장비를 꺼내놓았다.
디지털도어락을 무력화시키는, 전문털이범들이나 사용할 법한 전기충격 장비.
이것 역시 의뢰를 한 남자가 구해다 준 거다.
이 정도의 준비성이면 굳이 자신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한준석은 뇌리에서 그 생각을 지웠다.
'5천만 원. 아니지? 한 곳 병신 만들면 2천만 원을 더 준다고 했었지. 그럼 합쳐서 7천만 원!'
대신 달콤한 보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파칫! 스으윽-
디지털도어락에 갖다댄 전기충격 장비에서 불꽃이 한번 튀더니 잠금쇠가 힘없이 풀렸다.
"들어가자."
작게 속삭이며 한준석이 앞장선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선 둘은 눈빛과 손짓으로 목표물의 방으로 짐작되는 안방을 향했다.
끼이익-
없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이 방이 아닌가?'
다시 다른 방으로 향하는 둘.
이곳에도 없다.
"……."
뭔가 이상한데?
이젠 마지막 방만이 남았다.
'제발 여기에는 있어라, 좀!'
속으로 기도까지 한 한준석은 긴장된 얼굴로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안으로 미는데….
창고 용도로 쓰는 방인지,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만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준석아…."
이동수도 직감했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그리고 그때!
덜커덩-
자신들이 따고 들어온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