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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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위기
“애틀랜타 퍼스트 내셔날 뱅크의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복일모의 보고에 규태가 슬쩍 이마를 찌푸렸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잡아먹어 나갔다.
예전 같으면 승인허가를 지연하며 딴지를 걸 연준도 재무부도 이번에는 바싹 긴장했는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럼 전부 얼마야?”
“지금까지 연준의 지분을 32.5%까지 확보했습니다.”
“그거 말고 진짜로 얼마냐고?”
세단계이상의 과정을 거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서도 지분을 가진 은행들의 인수 작업을 했으니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훨씬 지분이 많았다.
피곤한 얼굴을 한 복일모가 투덜거렸다.
“그것까지는 오선한 사장 쪽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모릅니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정 궁금하시면 그쪽에 물어보던가요.“
“내가 저쪽 일까지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불만이냐?”
“야휴, 그럴 리가요. 이번 일을 하면서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잤는데요. 다른 작업까지 함께 했으면 전 죽었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중요한 일에 자신을 따돌렸다고 여겼는지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
농담처럼 빙글거리며 웃으면서 말하던 규태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웟다.
“내가 너한테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은건 진짜 위험하기 때문이야.”
“위험이요? 누가 습격이라도 한답니까?”
“습격 정도는 우스운 일이지. 네 주변 경호가 강화된 거 느껴지지 않았냐?”
“경호원숫자가 늘어난 것도 갔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렇게 위험감지가 무디니 험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정말 걱정이었다.
언제나 팽팽하게 곤두서 위기를 감지하는 자신의 촉은 이 시간에도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로스차일드라!
모건이니 록펠러니 아무리 미국에서 힘을 쓴다고 해봐야 결국에는 로스차일드의 대리인, 그들의 손아귀 안이었다.
당장 시티의 지분 35%를 추가로 인수하면서 경영권이 넘어가자 규태의 촉이 미친 듯이 위험신호를 알려왔다.
기본에 가지고 있던 지분까지 합치면 40%, 이건 천하의 누가와도 경영권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시티와 AIG의 지분 장악은 로스차일드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중대한 도전이었다.
거기에다가 연준의 지분을 절반가까이 가져왔으니 몸조심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자세한 것은 알거 없고 어디 다닐 때 경호원들 옆에 꼭 붙어있어.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테니까.”
“정말요?”
놀란 복일모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세한건 해롤드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가르쳐 줄 테니까.”
경호하는 사람만 아니라 경호받는 사람도 움직임을 조심해야 하니 행동요령을 세세하게 설명을 해줄 것이었다. 그전에 당연히 험악한 소리를 잔뜩 듣겠지만.
눈치없이 함부로 움직이는 복일모를 경호해야하는 입장인 해롤드가 예전부터 아주 싫어 했었던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보고를 하는 해롤드의 얼굴은 비장했다. 그만큼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였다.
“중동에서 움직이던 PMC 3개 대대병력의 움직임이 사라졌습니다. ”
“전부터 의심하던 조직들인가요?”
“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자금줄을 따라가다 보면 적들과 깊은 연관성이 보입니다.”
군대와 마찬가지인 PMC는 자금을 잡아먹는 귀신이다.
뒤에 배경이 없다면 덩치가 커지면서 버티지 못하는 게 일반적.
PMC로 포장해서 움직이는 이유는 실전훈련을 위해서다. 제아무리 뛰어난 자들을 뽑아놔도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
규태도 마찬가지였다.
PMC를 만들면서 휘하의 무장 세력이 합법적으로 많은 실전경험을 쌓았다.
“이쪽도 대응을 하죠.”
맞기만 하는 건 규태의 성질과 맞지가 않았다. 맞기전에 미리 때리는게 규태의 방식이었다.
그동안은 여러 번 참아야 했었다.
적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달랐다. 금융위기가 닥치고 지나가면서 적들도 분열하기 시작했다.
“당연합니다. 그렇게 정체를 감쪽같이 숨겼으니.”
해롤드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규태가 운영하는 PMC의 숫자는 다섯, 그중의 하나가 저들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용한건 타이거 홀딩스의 임원중 하나가 행동이 수상하다는 것. 제 딴에는 감추려고 애를 썼지만 내부감시의 눈길을 번뜩이던 해롤드에게 결국 잡히고 말았다.
믿었던 부하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게 해롤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로스차일드가가 유럽만 아니라 전 세계를 암중에서 주무른 게 하루 이틀입니까?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들까지 손을 썼다고는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제아무리 철저하게 뒷조사를 한다고 해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로스차일드 놈들은 정말 발을 안 걸친 데가 없더군요...... 설마 우리내부까지 파고들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로스차일드의 계략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분가의 호프만이 규태를 비밀리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호프만과 만나 적의 사정을 소상히 알게 되면서부터 규태의 위험감지 수준이 평상시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까지 내려갔다.
그전까지는 규태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었다.
“그만큼 저들이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처리를 하실 겁니까?”
“계획대로 움직이죠. 이제 와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요.”
규태가 비장의 와인을 하나 뜯었다.
“이건 해롤드가 좋아하는 1982년에 생산된 샤토 페트루스 Chateau Petrus입니다.”
꿀꺽 해롤드의 입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선한과 함께 도쿄에서 마셨던 1982년산 보르도 와인 샤토 페트루스 Chateau Petrus의 2008년 가격은 1억을 넘었다.
오랫동안 용병생활을 하던 해롤드가 좋아하는 것은 와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와인이 샤토 페트루스 Chateau Petrus.
워낙 소량만 생산되어 희귀성이 붙은 데다 맛도 나쁘지 않은 와인이었지만 규태는 크게 좋아하지 않았기에 보관만 하던 와인이었다.
1989년에 30만 원짜리 와인이 2008년에는 1억 2천만 원을 넘어 거래됐다.
1,700년대부터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 로스차일드의 역사야 말하면 입이 아플 뿐이다.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다섯 아들로부터 역사가 시작된 로스차일드는 많은 분파로 나뉘었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라고 생각하는 가문은 네이선의 가문, 흔히 말하는 영국분파다.
그리고 이번에 규태에게 붙기를 희망한 분파는 독일분파. 프랑크푸르트 분파였다.
독일분파의 로스차일드는 2차 대전 발발 전에 히틀러와 추종세력들에게 궤멸되다 시피 했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피해는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 마이어를 시조로 둔 독일분파를 괴롭혔다.
규태가 따라준 와인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마시던 해롤드가 말했다.
“그들만은 분열하지 않을 줄 안았는데요.”
로스차일드의 문장은 다섯 개의 화살을 움켜쥔 주먹이다.
“기나긴 세월 앞에 누군들 변하지 않겠어요. 이젠 같은 가문이라기엔 너무 혈연관계가 멀어졌잖아요.”
피처럼 붉은 포도주잔을 앞에 놓고 규태가 중얼거렸다.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건 없습니다. 준비해두세요. 지난번에 받았던 선물까지 이전에 한꺼번에 갚아주도록하죠.”
“....준비하겠습니다.”
긴장속에서 다음 상황을 준비중이던 규태의 LA 저택에 찾아온 사람은 리처드였다. 금융위기동안 다 죽어가던 리처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까다롭던 내부의 반대세력들도 대대적으로 정리를 마쳤다.
밖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건강의 이유를 들어서 사직한 FRB의 이사만 셋이었다.
규태가 가진 지분은 리처드에게 위임해놓은 상태. 날카로운 칼을 손에 들고는 거침없이 휘둘렀다.
“얼굴이 보기 좋아졌네요?”
“조부 때부터의 숙원이 이루어졌는데 나쁠 일이 있겠나.”
“조부 때부터요?”
“내 조부님은 FRB가 사기업들의 손아귀에 있는걸 아주 싫어하셨거든.”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이엄가가 규태의 손을 잡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
“유럽 말이야. 지금 난장판이던데 방법이 없겠나? “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설마 연준이 유럽을 돕겠다고요?”
“그럴 리가 있겠나? 유럽통합하고 유로화를 쓴다고 거들먹거리던 꼴이 보기 싫었는데 한번 호된 맛을 좀 보여줄 참이지. 연준이나 행정부에서도 분위기가 그래.”
리처드의 말이 대다수 미국인들의 생각이었다. 자신들이 금융위기에 휩싸여 잇을 때 눈치만 보던 유럽에 금융위기가 넘어간 것을 박수치면서 좋아하면 좋아했지 도움을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는 달러여야 했다. 유로화 따위가 아니라.
미국이 모기지론으로 한방 맞은 것처럼 유럽은 국채의 부실화와 싸워야했다.
가장 문제가 큰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과, 스페인만 아니라.
독일을 제외한 모든 유로존 가입국가에 과도한 국채발행이 문제였다.
단일통화를 사용하게 되면서 환율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막으려면 국채발행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꽤 시끄러울 거예요. 방법이란게 별거 있나요. 돈으로 메꾸는 수밖에요."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거겠지. 자네 혹시 유럽을 돕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내가 왜요? 그리스에서 지원요청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딱 짤라서 거절했어요."
리처드도 마찬가지 생각인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로군. 그리고....... 몸조심하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자들이 아니거든.”
어쩐 일로 바쁜 사람이 이곳까지 행차를 하셨나 했더니......
“조심하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나름 준비도 마쳤고요.”
“자네 주변 경호가 살벌하기는 하더군. ......그래도 조심하게. 늙으니까 걱정만 앞서는 모양이야.”
연준의장이란 자리에 앉아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신변을 걱정해주는 리처드의 말에 규태의 가슴 한편이 따듯해졌다.
리처드는 규태에게 언제나 든든한 기둥 같은 사람이었다. 바쁜 일정 탓에 서둘러 돌아가는 리처드의 뒷모습을 보며 규태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 나갔다.
[그리스 국채 만기연장 거부]
[180억 달러의 국채만기를 연장하지 못한 그리스 디폴트 선언할까!]
국채만기 연장이 어려워지면서 느긋하던 그리스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설마 유로화를 사용하는 그리스의 국채를 인수할 이들이 없을까 가볍게 여겼던 국민들도 국가부도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IMF의 지원을 받던지 독일과 프랑스의 자금지원을 받던지 둘중의 하나였다.
결국 그리스정부는 그나마 후유증이 약할 것으로 판단되는 독일정부의 지원을 선택했지만 이것 역시도 만만치 않은 대가가 필요했다.
국민연금의 대폭적인 삭감이었다.
연금 삭감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령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하고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혼란상황이 고스란히 CNN을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는 중이었다. 아들을 옆에 두고 TV를 보던 캐서린이 머리를 흔들었다.
“서민들의 연금 삭감문제가 크긴 큰가봐.”
“연금생활자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장 절반이 넘게 깎인다니까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겠지.”
“연금 재원부족이 그렇게 심각한가?”
“표를 얻으려고 일찍 은퇴하면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놔서 적자가 아주 심각했다더군.”
“어디나 정치인이 문제야.”
“진짜는 그런 정치인을 뽑은 유권자들이 더 큰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