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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203화 (203/220)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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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START 1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월스트리트의 건물 사이에서 우뚝 솟은 타이거 펀드의 본사건물 최상층에서 규태는 어둠에 잠긴 도시를 보았다.

자금시장의 경색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 또 그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미재무부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위험을 알고는 있지만 부실규모를 최대 1,000억 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단순하게 자금지원만 하면 그칠 줄 알고 있을 터였다.

“어제 유럽시장은 어땠어?”

“잠잠합니다. 큰 변동 없이 전체적으로 약세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사무실에 나온 것은 서서히 그리스문제가 터지기 시작할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과다한 부채문제가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집에서 보고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머물고 있는 뉴욕의 집에는 통신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결코 에단에게 시달리기 싫어서 도망쳐 나왔다던가 그런 게 아니다.

정말이다.

아빠를 너무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은 에너지가 정도 이상으로 넘쳐흘렀다. 점점 아들을 돌보기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규태는 생각했다.

창밖으로 어둠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시가지를 보면서 규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것도 그렇고 에단이 나이를 먹으면서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어디에서 정착할지가 고민이었다.

부부 둘 만이라면 팔로알토에서 그냥 살겠는데 지진이 문제였다.

뉴욕은 심각한 교통문제와 치안문제 때문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가 조금 꺼려졌고 역시 LA에서 머물면서 학교를 보내는 게 제일이다 싶었다.

이 문제는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캐서린과 협의를 해야 할 일이지만 아내도 규태의 의견에 반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규태의 눈에 부스스한 몰골로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복일모가 들어왔다.

“넌 거기서 계속 뚱하니 뭐하고 있냐?”

“이 시간에 잠을 자다가 깬 제 얼굴이 좋기를 바라면 그건 양심이 없는 겁니다.”

“.......”

이건 부하 놈이 상전도 아니고 지 기분을 거침없이 토로하는걸 보면 확 잘라버리고 싶지만 제 놈 어머니가 손을 붙잡고 잘 봐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 그러기도 뭐했다.

“아니 애랑 놀아주기 싫다고 이 새벽부터 무슨 난리입니까? 그리스일이 급한 것도 아닌데.”

“아! 너도 당해봐 이게 할 짓인가. “

“그냥 놀아주면 되죠. 핑계를 대고 빠져나옵니까?”

“기운이 딸린다고! 기운이.”

“이젠 나이가 있으시니까 그러실 때도 됐죠.”

“그만 이죽거리고, 아테네지사에선 뭐래? 예정대로 채권발행한데?”

“조금 전에 연락해 온 대로라면 250억 유로의 국채발행안이 국회에서 그냥 통과 될 것 같다는데요. “

“빌어먹을 놈들, 매일 잘도 싸우면서 이런 건 꼬박꼬박 빠르게 처리한단 말이야.”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그리스는 통화정책의 가장 큰 수단중 하나인 환율 결정권을 잃어버렸다.

유로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는 급속하게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마구 국채를 발행했다. 유럽중앙은행이 경고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턱없는 국채발행을 저지해야 하는 국회도 한통속.

그리스의 부채문제는 브레이크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아마 서브프라임문제가 터지면 역사대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채문제도 함께 도매금으로 올라갈 것이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 다잖습니까. 그리스 정부입장에선 함안들이고 재정적자를 해결하는 셈이니 포기할 수가 없는 거겠죠. 우리한테도 국채인수제의가 왔는데 거절했습니다. 이자율이 높아서 프랑크푸르트 쪽에선 담당자들이 아쉬워하던데요. 우린 현금으로만 굴리는 중 아닙니까.”

“미쳤냐. 그걸 사게. 지금이야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코 한번 잘못 꿰이면 작살난다.“

그리스는 부도가 예정된 부실기업이나 마찬가지.

높은 금리를 준다는데 혹해서 끌려들어 갔다간 큰코다치고 나온다.

“다른 데는 많이들 사던데요?”

“다른데 어디?”

“투자은행들하고 연기금들이요. 요즘 현금 투자할 곳이 없잖아요. 모기지쪽은 쑥대밭이고.”

“쯔쯔, 그 자식들 내년만 되면 우리한테 사달라고 바지잡고 애원할거다. “

“그럴까요?”

“이제부터 위기 시작이야. 정신 똑바로 챙겨서 따라와라. 돈 몇 푼 안 되는 이자율에 혹해서 유럽채권에 투자하는 바보짓에 끌려 들어가면 그때는 정말 쪽박이야.”

“아이고 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장인 것도 아니고.”

“이런 자식이! 주인의식도 없이.”

“주식한주 안 가진 제가 왜 주인의식을 가져야합니까. 평소 보스의 말씀 아닙니까. “

“끙, 한마디도 안 지는구먼.“

“장난은 그만두시고, 정말 유럽 쪽이 흔들릴까요?”

“넌 눈 뒀다 뭐하냐. 국가 부채가 심각하잖아? 점점 규모가 늘어나는데 그리스에서 이걸 갚을 능력이 있다고 보이냐?“

“힘들겠죠. 그래도 유로존이지 않습니까.”

이게 문제였다. 힘들면 유럽중앙은행이 도와주겠거니 하면서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부채규모가 너무 커지면 유럽중앙은행도 손을 들어버릴걸. 재정상태가 좋은 독일이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 거야.”

“독일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리스를 도와줘야 한다는 겁니까.”

“죄? 유로존 만들어서 꿀을 빤 죄지.”

독일통일문제로 흔들리던 독일을 살린 것 유로존의 형성과 확대였다.

유럽 내에선 경쟁자 없이 강력한 산업경쟁력을 무기삼아 독일통일의 후유증에서도 벗어났고 이후로도 쭉 잘나갔다.

유로존 통합이 없었다면 독일은 통일후유증으로 일본과 비슷한 꼴을 당했을지 몰랐다.

그러라고 미국이 반강제로 들이민 게 플라자 합의였으니까.

플라자합의로 불어나는 달러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자산버블 붕괴라는 치명타를 맞으며 침몰한 일본경제는 지금도 계속 침체 중이었다.

앞으로도 언제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유럽증권시장이 개장할 시간이 되자 모니터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복일모가 이마를 찌푸렷다.

“역시 그리스국채발행에 부정적인 반응이네요. 당분간은 약세겠는데요.”

그리스 국채의 추가발행소식은 악재로 받아들인 유럽주식 시장이 하락했다.

특히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뒷배가 되어주어야 할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가장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니터로 보이는 유럽각국의 증시상황이 썩 좋지 못한걸 확인한 규태가 그제야 손수 드립한 커피를 마셨다.

규태가 좋아하는 에티오피아 시나몬의 달콤 쌉싸름한 커피 맛이 오늘따라 착착 달라붙었다.

옆에서 덤으로 끼어든 복일모에게도 규태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역시 보스, 커피드립실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니까요.”

엄지를 치켜드는 복일모의 아부에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새벽에 회사에 나오게 만들었다고 불퉁하던 복일모의 목소리도 커피 한 모금에 조금은 평화로 와졌다.

“내가 좋아하니까. 자주 하다보면 실력도 느는 법이지.”

그렇게 둘은 새벽의 월스트리트와 그 너머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이는 커피를 함께 마셨다.

사무실 한편에 위치한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깨어난 규태가 처음 들은 소식은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의 파산신청소식이엇다.

전부터 재정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흘러 다녀서 업계사람들이야 무덤덤하게 반응했지만 일반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하던 대중들에게 방아쇠를 당긴 격이라고 할까.

잠잠하던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부족문제도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파산규모도 크지 않은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군요.”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가 평소에 안정적인 투자를 한다고 광고를 많이 해서 더욱 그런 겁니다. 규모는 10위권이지만 다른 곳보다는 안전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욱 충격을 받는 겁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샨이 규태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베이스턴스와 메릴린치이야기는 또 뭡니까?”

“자금사정이 좋지 않답니다. 어제 한차례 지점에서 전산처리문제로 예금지급이 지연된 일이 있었습니다. “

“저런! 운이 없었네요. “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을 하필이면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I)가 파산신청을 한 게 문제였다.

“베어스턴스가 1분기에 53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고 하지만 그건 최대한 숫자를 줄인 겁니다, 사실은 120억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메릴린치는 89억 달러고요. 2분기 실적은 그보다 심할 거란 겁니다.”

“저런! 자칫하면 회사가 흔들거리겠네요.”

고객자산이 많아서 그렇지 자본금에 버금가는 손실이 한해에 발생할 수 있단 소식은 엄청난 악재였다.

“그래서 연준에선 두 곳을 우리가 인수하면 어쩠겠냐는 의사를 물어왔습니다.”

“어디요? 타이거 펀드가요?”

타이밍 빠르게 투자자산을 대폭 줄인 리만브라더스와 타이거 펀드가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월가에서도 유명했다.

투자해야할 곳이 많은데 쓸데없이 투자를 줄인다고 당시에는 엄청난 손가락질을 받았다.

“예, 두 곳을 인수하면 빠르게 승인을 해주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급하니까 별소리를 다하네요. 전혀 관심 없다고 전하세요.”

“욕심이 나지 않으십니까?”

“평소라면 욕심이 나긴 하겠죠. 두 곳을 인수하면 IB은행(투자은행)에선 우리를 따라올 곳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두 투자은행은 부실자산이 얼마가 될지 추정도 되지 않습니다. 자칫해서 독바른 미끼를 물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우리에게 가져올 텐데요. 가격도 대폭 낮추어서요.“

규태는 자신이 있었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현금가진 놈이 왕이었다.

위기가 정점을 찍을 때면 공포가 함께 밀려온다. 공황이라는 공포에 질린 미 재무부와 연준이 두 투자은행을 곱게 포장해서 규태의 앞에 대령할 것이었다.

그전에 먼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규태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연기금중 가장 규모가 큰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의 아론 스튜어트를 자극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베어스턴스의 사장인 샘 모리나로가 보았다면 끔찍하게 여겼을 그런 웃음이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의 아론 스튜어트는 친분이 있는 이문한의 전화를 받았다.

함께 규태에게 갔다가 호되게 당하면서 왕래가 뜸해졌기에 아론은 더욱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헤이, 아론, 드디어 알아냈어. 오라클이 프라임 론에 관련된 상품들을 리만에서 제거한 이유 말이야.”

“그게 뭔데? 내생각대로 모기지론 관련 상품들의 투자리스크가 커진 거지? “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상품내용을 분석해보니까 시장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엄청나게 높았다는 거야. 그래서 리만 브라더스에서 모기지론 관련 금융상품들을 날린 거라고. 부도위험이 엄청나게 늘어, 구체적으로 수치를 넣어서 돌려보니까 그 말이 맞았어. 우리 쪽도 모기지론과 관련된 상품은 정리를 하는 중이야.”

“그래 그렇지 그래서..... 알았어. 나한테도 네가 넣었다는 수치를 보내줄 수 있어? 정보 줘서 고마워. 나중에 내가 술한잔 살게.”

아론 스튜어트는 평소에도 투자 위험을 낮추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에서 아론에게 요구하는 것도 리스크를 관리해달라는 것.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에게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이 만든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에다가 구체적으로 바뀐 숫자들을 대입해본 아론 스튜어트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굳어졌다.

앞으로 주택가격이 5% 하락하면 전체 12조 달러가 넘는 모기지 시장중 10%가 문제를 일으킨다.

이보다 더 주택가격이 떨어져 부실이 15~20%까지 늘어나면서 피해를 추산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된다.

피해액이 3조~4조 달러가 넘으면 전체 금융시장이 붕괴된다.

이건 대공황의 전조였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료를 출력하면서 아론 스튜어트는 전화기를 붙잡았다.

“이사장님 자리에 계시지? 지금 보고할게 있다고 전해. 따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개소리하지 말고 당장 전하라고 지금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가 망하게 생겼는데 무슨 헛소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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