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202화 (202/220)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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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금융위기

모기지론 대출의 연체율,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연체비율이 올라가면서 줄을 이어 폭탄이 터졌다.

주택가격의 하락 때문에 경매로 나온 주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걸 받아줄 매수세가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다시 경매로 나온 매물이 주택가격 하락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주택 담보비율이 강화되면서 주택시장은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가장 잘나가던 부분이 엉망이 되었으니 자금시장도 마찬가지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급하게 자금을 구하려면 예전과 달리 높은 금리를 준다고 해도 섣불리 응하지 않았다. 다들 눈치 채고 있는 거다.

자금의 빙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런 와중에 월스트리트 저널이 설레발을 떨었으니 지점 문을 열자마자 미친 듯이 자금 인출 요구가 쏟아졌다.

“어떻게 됐어?”

“오전까지 지점에서 인출한 자금이 18억 달러입니다. 이젠 조금 인출요구가 주춤해졌습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로군.”

“정확한 상황은 오후 영업마감까지 기다려봐야겠지만 위기는 지났다고 판단됩니다.”

칼처럼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을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베어스턴스의 최고자금담당 책임자인 리처드 마틴은 골치가 지끈거리는지 책상 서랍에서 두통약을 꺼내 먹었다.

“두통약을 사탕처럼 잡수시는군요. 그거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내성이 생기고요.”

“이것뿐인지 알아. 요즘은 위장약도 달고 살아. 조만간 혈압까지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

“정말 종합병동이네요.”

지점 자금담당 총책임자인 웨렌으로서는 눈앞의 상사를 보면 정말 승진하기 싫었다.

리처드 마틴이 CFO의 자리에 올랐다고 축하를 해준 게 2년 전, 조금만 더가면 CEO까지 한순간이라고 들떠있었는데 현실은 잔인했다.

지난 2년간 마틴의 이마는 엄청나게 후퇴했다.

머리카락을 몽땅 잃고도 모자라 두통약과 위장약을 비타민 약처럼 먹어야 한다면......

“보고할 내용들을 미리 준비를 해줘. 영업마감 전에 샘이 찾을게 분명하니까.”

“아까 보니까 CEO실에서 고함소리가 들리던데요.”

“보나마나지. 그 성깔에 가만히 있었겠어. 월스트리트 저널하고 한판 붙었겠지.”

미련한 짓이었다.

보나마나 정확한 자료가 있다고 뻗댈게 분명했다. 신문사 놈들이 그런 게 하루 이틀인가.

이건 샘이 실수한 거다.

물어보길 뭘 물어보나.

개도 아니면서 물긴. 샘이 연준에 문의를 한 게 사실이니까 할 말이 없었다.

자기 딴에는 자금사정이 어려워지면 연준이 어디까지 돕나를 정확하게 알고 싶었겠지만 자금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베어스턴스 정도 되면 막바지까지 몰리면 연준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자신을 포함한 윗대가리들의 자리가 사라지는 게 문제지.

리처드 마틴은 앞에 있는 웨렌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자리가 날아가면 그 다음은 이놈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노릴.....

거기까지 생각하던 리처드 마틴은 머리를 흔들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자금담당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한꺼번에 와장창 날아간다. 지금 대표가 날아가고 새로 CEO에 오르는 놈이 누가 될지 몰라도 100% 자신만의 연줄로 자금담당 책임자 자리를 메운다.

샘과 공동운명체가 된 게 아니꼬왔지만 어쩌겠나 그게 현실인데.

그리고 진짜 문제는 베어스턴스의 자금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노려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하는 마틴의 모습을 뚱하니 보고 있던 웨렌이 물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정말 연준에 자금지원을 물어본 게 사실입니까?”

“아니라면?”

“뭐 그렇게 믿어야죠.”

이놈도 어지간히 닳은 놈이 아니로군.

예상보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웨렌의 모습을 보며 리처드 마틴이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불연 듯 입맛이 썼다.

자연스럽게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마틴의 모습에 웨렌이 이마를 찌푸렸다.

“담배 끊은 거 아니었습니까?”

“이게 없으면 버티지 못해. 어제 병원에 갔더니 혈압 약을 처분해 주더군, 돌파리같은 의사 놈이 비싼 진료비를 받으면서 한다는 말이 일도 줄이고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더군. 미친, 그래 스트레스를 줄이면 몸이 좋아지는걸 누가 몰라.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

불을 붙인 담배를 빡빡 피워대며 리처드 마틴이 연신 투덜거렸다.

“병XXX, 샘 모리나로, 말도 없이 설치기를 왜 설쳐서 문제를 키워.Fuc#@^&&$#@#.”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리처드 마틴은 가슴속의 불길을 잠재웠다.

한참동안 저 혼자 화를 내던 마틴이 입을 열었다.

“샘이 연준에 자금지원을 물어봤다는 건 사실이야.”

웨렌이 너무 놀라 경악했다.

“저런 미ㅊ......“

“거기까지 샘이 자금문제를 잘 모르니까 아마추어 짓을 한거지.”

자금은 월가에서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문제 취급을 받았다. 제일 대접을 받는 건 투자부분, 그다음은 영업, 그리고 한참을 지나야 자금 부분이었다.

지금이야 자금문제가 꼬이니까 권한이 올라갔지만 그래봐야 먹어야 하는 약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다.

지금 CEO인 샘 모리나로는 자금문제에 대해서는 백지였다.

그런 주제에 겁도 없이 연준에 자금지원문의를 하다니 문제가 있다고 광고하는 꼴이 아닌가 말이다.

“하여간 미리 자료준비 해두고. 알지? 내가 한말 어디 가서도 하면 안 되는 거.”

“옙, 제가 바봅니까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

웨렌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리처드는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웠다.

평소 같으면 질색을 하며 한마디 했을 담배 냄새도 웨렌이 군말 없이 참는걸 보면 진짜 자신이 불쌍해 보이긴 했나보다.

‘빌어먹을, 똥이다.’

정말 개똥같은 상황이었다.

반년전 샘 모리나로가 리만 브라더스의 모기지 관련금융상품들을 인수하자고 제의했을 때 부딪히기 싫어서 찬성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되었다.

자그마치 2,000억 달러.

그 막대한 물량을 좋다고 받았으니.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커져갔다. 자그마한 흠으로 알았던 상처가 곪아서 상품 전체에 문제를 일으키기 일보직전이었다.

지금이야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연체율이 높아진다는 정도지만 프라임론 전체가 흔들거리면......

어떻게 해서든 자사의 모기지론 부분을 줄이려고 해봤지만 거친 반발에 부딪혔다.

지금상황에서 어떤 미친놈이 제 값주고 모기지론 파생채권들을 사들인단 말인가? 손해 없이 모기지론 채권을 팔아먹을 대상을 찾아보라고?

이거 아무래도 엄청난 상황에 처한 것 같아서 뱃속이 간질거렸다.

지금, 더 늦기 전에 가지고 있는 암덩어리들을 던져야 한다고 예감이 속삭였고 기걸 이사회에서 논의해보았지만 대답은 하나같이 부정적.

당장 회계에 손실로 잡혀버리면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운 임원들이 전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터였다.

자금담당으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최대한 장기자금을 싼 이자로 끌어와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는 게 고작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헤매는 꼴이. 조금 지나면 정말 무서운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창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던 리처드 마틴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지랄 맞네. 지옥이 따로 없구먼.”

리처드 마틴이 지금이 지옥이라고 투덜거렸지만 진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이는 따로 있었다.

베어스턴스의 모기지론 담당 책임자인 앨런 슈워츠는 방금 샘 모리나로CEO와 통화하면서 엘리트로서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자신인생 최고의 치욕을 느껴야 했다.

얼마나 욕을 먹었던지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식혀보려 했지만 조금도 식혀지지가 않았다.

말이 되는가? 자신이 실무책임자이긴 하지만 진짜 일을 추진한 사람은 샘 모리나로 CEO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샘은 쏙 빠져나갈 기세였다.

내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임을 논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터라 더 이상 앨런도 거침이 없었다.

이사회에서 발언할 내용을 가다듬던 앨런은 생각할수록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느닷없이 리만의 직원들을 채용하고 더해서 리만이 취급하던 모기지론과 MBS, CDO를 인수할 때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최고경영자인 샘의 손을 거쳤었다.

자신이 한일이라고는 이사회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던 것.

그런데 문제가 생기니까 자신에게 모두 떠넘기고 책임을 져라?

“흥, 내가 혼자만 나갈 줄 알고. 그렇지 않아도 네가 지시한 내용은 모두 담아뒀어.”

앨런은 최고경영자인 샘을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면 어쩌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를 고심했다. 경력이나 나이를 보면 이제 재취업도 힘들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된 일인지 몰라.”

혼자 씩씩거리던 앨런이 마음을 바꾸어먹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반년 안에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난파하는 배에 버티고 있다간 진짜 인생도 같이 끝장난다.

내일 이사회에서 자신의 해임이 결정 난다고 해도 퇴직금은 챙길 수 있었다.

모기지론 시장의 어려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서브 프라임 론의 연체율이 3%까지 올라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진짜 등에 소름이 돋았었다.

같이 보고를 들은 바보 같은 샘은 내막을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앨런과 같은 전문가들은 그게 얼마나 무서운 소리인지를 잘 안다.

베어스턴스가 떠안고 있는 모기지론 파생상품의 규모는 3,700억 달러.

더 공포스러운 건 이 가운데 얼마나 되는 부분이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서브 프라임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도 프라임부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연체율이 올라가지도 않을뿐더러 자금 상환도 순조로웠다.

그런데 맛있는 과일 속에 들어가면 안 될 이물질이 끼어들어 있다는 게 문제.

위기상황에서 언제 상품안의 내용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겠는가. 대충 봐서 전부 쓰레기 처리를 할 것이 뻔했다.

그럴 때 얼마나 많은 손실이 잡힐까? 아마도 절반 가까운 모기지론 채권들이 손실로 잡힐 것.

돌아가는 정황이 심상치 않게 되면서 앨런도 밤을 세워가며 가지고 있는 상품내용을 뜯어 보았다.

결과는 진짜 충격적.

서브 프라임 론에서 파생한 CDO가 버젓이 최적격등급을 받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졌다.

신용평가기관들이 당연히 정크등급의 판정을 내려야 할 CDO가 포함된 금융상품들이 최적격등급을 판정했다.

여기까지 떠올린 앨런은 숨이 막혔다. 제아무리 연준의 도움을 받더라도 베어스턴스는 파산을 피할 수 없다.

이게 문제가 되면 앨런도 물귀신처럼 같이 끌려가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이사회 구성원이라 상급자의 해고라는 한마디에 경비에 쫓겨 짐을 싸는 신세가 아닌 게 다행.

엘렌 슈워츠는 자신의 일처리 중에 문제가 될게 있었나를 부지런히 살폈다.

그리고 문제가 될 법한 부분은 꼬리를 잘랐다.

월가에서 회사에서 잘린 마당에 애사심이란 게 있을 리도 없었고 퇴사 후에 소송에 시달리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늦은 새벽까지 엘렌 슈워츠는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지우는 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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