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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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시작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은 느끼기 힘들겠지만 돈이 많다는 건 그만큼 적도 많다는 소리다. 규태를 없애고 싶어 하는 이들을 세자면 미국에서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숫자가 나올 것이었다.
“해롤드가 보고하는 서류가 있습니다. 책상위에 놓아두었습니다.”
“왜 그걸 지금 말해!”
애타게 기다리던 서류였다.
다급하게 봉투안의 내용을 훓어가던 규태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연준의 주주명부였다.
1907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모건은 로스차일드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후 금융위기가 지나간 다음 모건은 미국의 금융계를 장악했다. 심지어 모건이 만든 은행권이 미국의 대표통화로 상용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었다.
결국 1913년에 연준이 만들어지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영향력이 큰 모건을 배제할 수가 없어서 사기업과 공기업의 중간 형태로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이랬으니 연준에서 모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벌써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모건의 자산이 어느 정도까지 늘어났는지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뒤를 이어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 석유기업을 일으켜 대부호로 성장한 록펠러가가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5개의 회사로 분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모건은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깊숙하게 몸을 낮췄다.
그런 덕분에 반독점법의 철퇴에서 벗어나 미국의 정계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남을 수가 있었다.
그런 모건가가 절대로 놓지 않고 쥐고 있는 게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이사회였다.
1910년대엔 국민들이 잘 모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한나라의 중앙은행이 일개 가문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보통 스캔들이 아니다.
그래서 모건은 연준의 지분을 복잡하게 쪼개서 여러 가지 명의로 분산해서 지배권을 행사했다.
연준의 주주구성이 어떤지를 아는 것이 특급기밀로 취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미국정부나 모건이나 지분문제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자신의 책상위에 놓인 연준지배주주들의 목록은 돈을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규태는 손을 비볐다. 이제 준비는 대충 끝났으니 맛있게 차려질 식사를 꿀꺽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연말이 되자 규태는 캐서린과 에단을 데리고 뉴욕으로 갔다. 여느 해였다면 가족들이 LA로 찾아왔을 것이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부모님 두분다 미국행이 시들해지신 모양이었다.
“아빠, 여기는 무척 추워요.”
센트럴 파크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콘도에서 연말을 보내게 된 게 기쁜지 아침마다 조깅을 같이 하자며 조르는 에단의 성화 때문에 규태는 뉴욕에 괜히 왔다고 투덜거렸다.
오늘아침도 부부가 자는 침실로 기어들어온 이들놈이 함께 나가자고 생떼를 부렸다.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규태가 투덜거렸다.
“여기 괜히 왔어 LA에 그냥 있을걸 그랬네. 그랬으면 에단녀석이 이렇게 나를 괴롭히지 않을텐데 말이야.”
“애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빠가 그것도 못해줘요. 당장 옷갈아 입고 나가서 놀아줘요!”
설레발을 치는 아들놈 때문에 일찍 일어난 마누라의 성난 등짝 공격에 규태의 입술이 튀어나와도 할 것은 해야 했다. 어수선한 머리를 매만지고 시원한 찬물에 세수까지 한 규태가 간단하게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겨울이 되면서 나뭇잎이 전부 다 떨어지면서 황량해진 센트럴 파크지만 아들의 손을 잡고 뛰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는 게 신기했는지 연신 폴짝 거리던 에단의 기운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같이 놀아주다가 아이의 기운을 마흔이 넘은 육체가 도저히 받아줄수가 없어서 공원 벤치에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버렸다.
“보스, 전화가 왔습니다.”
경호를 위해 따라나선 경호 팀장 제시먼드가 급한 전화라며 핸드폰을 건네 왔다.
“모기지론 2위 대출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내스가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방송이 나갈 겁니다.”
다급한 복일모의 목소리가 핸드폰너머로 들려왔지만 잠시 규태는 조금 멍했다. 가만히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붕떳던 몸과 마음에 새롭게 활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이제부터 줄줄이 망하는 회사들의 이름이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경호원과 함께 공원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규태는 속으로 광소를 터트렸다.
사태의 내용을 보고하는 차분하게 복일모의 목소리가 그렇게 달콤하게 느껴질수가 없엇다.
이제부터 80년대부터 20년이 넘게 준비하고 원하던 것들을 차지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할 시간이었다.
***
“아메리칸홈모기지 인베스트먼트도 재정이 간당간당하답니다. 조만간 파산을 신경할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연준에서 모기지론 대출업체들과 저축은행들에게 투자주의를 날렸습니다. 서브 프라임의 연체율이 급증해서 재정안정성이 낮아진다는 경고입니다. “
회의실에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정보들을 하나둘 풀면서 회의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총력전이었다.
투자수익도 거두고 사람들의 능력도 테스트해야 할 시간. 규태는 회의실로 모은 투자관련 임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니다.”
"그것보단 주식투자비중을 늘려가는게........"
여러 가지 투자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규태의 마음에 쏙드는 투자안은 따로 있었다.
“시중자금이 경색될 우려가 큰데 신용부도스왑(CDS)에 투자하면 어떻겠습니까?”
“CDS는 무슨! 덩치가 큰 실물자산의 가격하락을 대비하는 편이 수익률이 더 높을 겁니다.”
회의실에 중앙에 앉아서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이 저마다 난상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규태가 옆에 앉은 레온에게 눈짓을 했다.
저런 기특한 소리를 하는 놈들이 누구냐는 소리였다.
레온회장이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리만 브라더스의 채권투자담당 본부장 피터 왈포드입니다.”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샨이 함께 입을 열었다.
“실물자산투자를 주장하는 놈은 타이거 펀드의 상품선물 담당책임자인 웨브라 존 포드이고요. 우리는 그냥 에브라고 부릅니다.”
“피터 왈포드라? 저기 피터본부장 그 의견 조금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웨브라책임도 마찬가지. 난 두 가지 투자 이야기가 전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난상토론을 벌이던 두 사람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규태가 말을 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함께 점시이나 합시다. 나머지 이야기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회의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준비를 해주고요.”
규태의 이 지시로 아랫것들이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회의준비를 해야겠지만 알게 뭔가. 막대한 연봉을 지급하는 건 다 이런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일해라 아랫것들아.
규태가 분명하게 투자방행을 짚어주면서 점심 식사 후 시작된 오후회의는 쉽게 이야기가 흘러나갔다.
먼저 CDS에 관련된 회의가 시작되었다.
“베어스턴스의 자금이 꼬였다고 합니다. 메릴린치도 마찬가지고요.”
2006년까지 아주 잘나가던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의 스텝이 꼬인 것은 리만의 탓이었다. 아니 리만 브라더스에서 가지고 있던 MBS와 CDO까지 알뜰하게 가져간 끝에 어마어마한 자금경색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역사에서는 2008년 3월에야 망하지만 벌써부터 빨간불이 들어와서 유동성 위기에 흔들렸다.
함께 자리를 한 리만 브라더스임원들은 두곳이 휘청거린다는 소식에 하나같이 고소하다는 얼굴이었다.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렸다.
노망났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레온회장이었다.
“허허, 이젠 제가 먹은 욕을 갚을 차례가 된 겁니까? 어지간히 뒤에서 씹어댔어야죠.”
젊잖기로 소문난 레온회장이 이를 갈 정도였으니 정말 심하게 욕한 모양이었다.
규태가 레온회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젠 두 곳은 흔적도 남지않을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기다리다보면 그렇게 되겠네요.”
레온회장도 규태의 예측대로 시장이 흘러가는걸 보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투자를 집행해야할지를 갸름하는 모양이엇다.
그건 오른편에 앉은 샨회장도 마찬가지.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운 현금다발로 위기에 빠진 경쟁자를 두드려 패는 일만 남았다.
“말이 나오는 두 곳을 집중 공략하도록 하죠. 나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건은 어떻습니까?”
“보수적으로 자산을 움직인다고 알려져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1위업체인 리만을 공략하는데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가 앞장섰지만 모건과 골드만도 떨어지는 과실을 먹으려고 달려들었었다.
결과 모건의 모기지론 관련투자금액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내버려두면 이걸 빠르게 반년 안에 털어버리지만 그걸 눈뜨고 지켜볼 규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규태도 모건에서 인수하는 줄 알았으나 골똘히 남은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모건이 어떤 인간들인데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 그걸 인수한단 말인가.
모두 31개가 넘는 연기금들에게 2,000억 전부를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연기금들은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걸 막으려면 미리 정보를 흘려서 연기금들이 모건의 모기지론 관련투자채권을 인수하는 것을 방해할 계획이었다.
그러기에 적합한 인물도 이미 알고 있었고.
“내가 요구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의 CDS를 최대한 많이 파는 것과 그 작업에 반드시 모건과 골드만을 엮어넣은겁니다. 더 요구한다면 AIG까지 함께 물고 들어 갈수 있다면 최적이겠네요.”
규태의 요구사항이 전달되자 실무진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앞선 회의가 길어지면서 늦은오후에 시작된 상품선물회의는 시작하자마자 불꽃이 튀었다.
국제유가는 중국이 국제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20달러미만에서 놀던 유가가 100달러를 넘었다. 조만간 국제유가가 140달러를 돌파하리란 게 중론이었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국제유가지만 최대수요국인 미국의 경기가 박살나면 급락할 것만 남았다.
얼마까지 떨어지느냐가 문제지 하락은 기정사실.
제아무리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이지만 세계최대의 소비시장은 미국이었다.
“그러니까 국제유가와 철강, 비철금속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가격이 떨어질 거란 소리로군요. ‘
“그렇습니다. 지금 예상대로 금융위기가 온다면 상품선물에 숏포지션을 가져가야 합니다. 금선물을 매수하면서요.”
경기가 어려우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홀대받던 금과 은의 가격이 올라간다.
회의에 참석한 상품선물 담당자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상품선물에 얼마나 투자를 하면 될까요?”
회사전체의 투자포지션을 배분하는 건 최고책임자의 몫이다.
잠시 이마를 긁으며 생각에 잠겼던 규태가 결정을 내렸다.
“전부 5,00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합니다. 상품선물을 매도하고 금선물과 은선물을 매수하도록 하죠. 구제적인 투자자금배분은 에브가 맡아주세요.”
레버리지까지 감안한다면 어마어마한 투자였다. 규태의 입만 바라보던 담당자들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투자금액이 크고 성공확률도 높은 만큼 나중에 받게 될 성과급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 될 것이었다.
특히 책임자로 지목된 웨브라의 얼굴은 그보다 좋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그의 이력서에 빛나는 성과로 기록될 것이었다. 그토록 원하는 타이거펀드의 CEO자리도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아서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그의 입가가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규태가 직원들을 채근해서 준비를 하는 사이에도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금융기관의 부도는 하나둘 늘어났다.
시중자금은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차갑게 경색됐다.
시장을 위기에 빠트리는 모기지론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AIG가 5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예고하면서 차갑던 금융시장을 더욱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모기지대출업체들이 하나둘 부도를 맞으면서 위태롭던 자금시장은 새롭게 보도된 월스트리트저널의 신문기사 하나로 시베리아처럼 변했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유동성위기! 연준에 구제금융요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