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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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시한폭탄
엄청난 규모가 된 모기지론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최종적으로 여파를 감당해야할 기관이 어디던가.
바로 연준이었다.
말이 쉬워 15조 5천억 달러지 이게 부실화 되면 어디까지 파장이 커질지 몰랐다. 쏟아지는 물량폭탄이 터질 것이고 주택가격은 가속이 붙어 더욱 하락할 터.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오는지 리처드가 이마를 움켜쥐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정말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 문제가 생기면 연준으로서도 방법이 없어. 돈이 한두 푼이라야지 미친놈들 어떻게 이걸......”
리처드가 분노를 터트리는 대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모기지론의 발행을 늘린 은행과 저축은행, 그리고 그들 파생상품화해서 팔아먹은 투자은행들이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르는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은 연준의 직원들도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가 재무장관으로 재직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었다. 그 몇 년 사이에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해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입니다.”
“알지, 내가 왜 모르겠나. 요즘도 대출광고가 얼마나 많은데.”
버블이 끼려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 TV만 틀었다하면 주택대출 광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주택가격이 상승했으니까 문제가 없었지만, 가격상승이 주춤하면······ 어떻게 될지는 짐작하시겠죠?”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주택 대출금 밀리면 담보로 잡은 주택 팔아서 갚으면 된다는 말이 통용이 되지만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깡통주택들이 늘어난다.
담보로 잡은 주택을 팔아도 대출금을 전액 갚지 못한다는 말이다.
“얼마나 버티겠나? 이건 금리를 인하해서 잔뜩 바람을 불어 넣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리처드의 질문에 규태가 코등을 긁었다.
“아마도 내년, 아니면 내후년 초반부터 심각한 문제가 줄줄이 터질 겁니다.”
“휴우, 그래 내가 봐도 그렇군. 주택가격이 언제까지나 오른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만 있는 게 아니니까 거품은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지.”
리처드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거 그냥 내버려 두세요. 억지로 모기지론 보증을 막는다던지 하지 마시고.”
“뭐라고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린가! 무슨일이 벌어질지 뻔히 아는데 내버려두라니! 그건 엄연한 직무유기야.”
버럭 고함을 지르는 리처드의 얼굴을 보며 규태가 검지를 흔들었다.
“아니죠, 아니죠, 이건 전적으로 탐욕에 가득한 금융 자본가들이 제 무덤을 파고 드러누운 겁니다. 악착같이 로비를 해서 글래스 스티걸 법을 폐지하고 규제를 완화하면서 돈벌이에 급급해 하더니 자기들 손으로 무덤을 판 꼴이죠. 그걸 왜 말립니까? 가만두면 알아 서들 망할 텐데.”
그제야 규태의 생각을 짐작한 리처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하자는 건가? 망할 은행들은 그냥 망하게 내버려두자고?”
“예, 그래야죠.”
단호한 규태의 말에 리처드가 이마를 찌푸렸다. 이마에 패인 굵은 주름살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자넨 이일로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르게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개XX를 하려고 나를 여기까지 부른 거냐고! 지금까지 내가 자네를 잘못 생각한 것 같으이.”
얼굴까지 시뻘겋게 붉어지며 화를 내는 리처드를 분노를 규태는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명문가에 태어나서 엘리트교육을 받은 리처드였다.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탐욕에 눈먼 자본가들.
월가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전혀 월가사람답지 않은 사람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분노를 듣고 있는 규태를 보며 리처드가 폭발했던 화를 억눌렀다.
리처드가 가만히 자신을 노려보자 쏟아지는 분노어린 고함을 듣고 있던 규태가 태연스럽게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하신 겁니까? 목아프실텐데 이제 물이나 드시죠.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 목이 막혀버린 리처드가 거칠게 규태가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됐다.
“어쩌자는 건가?”
“리처드가 나서서 이걸 막고 싶어도 이미 늦었습니다. 정치가들이나 행정부에서도 이걸 터트리려고 하지 않을거고요. 진실을 안다고 해도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고 할겁니다. 자칫하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테니까요.”
“끄응,......”
리처드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왓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규태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 누구도 위험을 경고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들지 않을것이었다.
“리처드가 나서봐야, 돌만 맞아요. 예상했던 사태가 터지면 리처드의 탓을 하며 원망하는 자들만 늘어날거고요. 연준이 주택대출을 막아서 어쩌구 하면서 리처드를 원흉으로 몰라갈걸요.”
맞는 말이었다. 리처드정도 되는 연륜을 가진 사람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번 사태를 미국 금융계를, 아니 세계금융계를 뒤엎는 기회로 만들죠.”
“계획하는 방법은 있나?”
“아마도 모건가에서 이번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내년쯤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면 다급하게 현금을 마련할겁니다. 아마도 1,600억 달러쯤 될 것 같네요.”
원역사에서 내년에 모건의 다이만 사장이 급하게 만든 현금이 그 정도 금액이니까.
“......”
“타이거 펀드는 얼마나 많은 현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제가 계산해보니까 대충 1조 5천억 달러쯤 되더군요. 리만 브라더스와 블랙홀 펀드까지 끼어 넣으면 동원 가능한 현금이 두 배쯤 될 겁니다. 어마어마하죠?”
말만 들어도 진땀나는 액수였다.
“내가 사장자리에 있을 때보다 엄청나게 많이도 늘었군.”
“그래니까 회장자리에 있으면서 낚시만 다니지 말고 회사투자결과 보고서같은걸 제대로 잘 읽으라니까요. 샨이 투자를 잘하기도 했지만 이번에 엘 고어가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느닷없이 인프라 펀드를 만든다고 해서 주식과 채권을 팔 기회를 만들어 주었거든요.”
가진 투자자산을 현금화 하고 싶은데 엘 고어가 마침 알맞은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거기에 레온회장이 리만을 뒤흔들면서 가지고 있는 부실폭탄들을 다른 투자은행들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폭탄이 터지면?
전생처럼 모건이 베어스턴스를 털도 안 뽑고 삼키거나 BOA가 메릴린치를 인수하는 일은 맹독 바른 먹잇감을 삼키는 꼴이 된다.
먹어만 준다면 해피하지.
그렇지 않아도 BOA는 규태가 노리는 먹잇감의 하나였다.
시티와 BOA, AIG가 전부 목표물이었다. 진짜로 노리는 목표는 따로 있지만 그건 꽤나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돈이 많아 행복하겠군. 나는 골치가 아파죽겠는데.”
“에이, 왜 그러세요. 이게 다 연준장악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입니다. 저만 좋으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자네의 게획이 성공한다고 해도 모건에서 타이거로 연준의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이지 않나.”
“단순하게 본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리처드의 생각보다는 엄청나게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저는 모건처럼 냉혈한은 아니거든요. 탐욕스럽지도 않고요. 그동안 저를 지켜보셨으면서 그런말을 하세요.”
처음으로 규태는 자신의 본심을 리처드에게 털어놓았다.
“엄청난 욕심꾸러기로군. 연준을 삼키겠다. 하아!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네. 자네 눈에는 모건이 우습게 보이나?”
미행정부가 연준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한나라의 중앙은행을 민간은행들이 장악하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지만 그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연준의 지분구조또한 철저한 극비로 붙여져서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요? 지배구조만 확실하게 안다면 어려울 거 뭐가 있겠습니까? 아수라장이 펼쳐질 텐데 누가 저를 막겠습니까?”
빙글거리는 규태의 얼굴을 보며 리처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연준의 지분을 가진 은행들만 인수하면 그만이다. 평소라면 온갖 곳에서 간섭과 방해공작이 펼쳐질 테지만 대공황을 목전에 두고 은행과 투자은행들이 도미노처럼 뒤로 넘어가는 위급상황이라면 위험을 대비하다 못해 기다리고 있는 규태를 막아설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모건도 그런 과정을 거쳐 연준의 지배권을 장악했으니까.
리처드는 가만히 의자에 길게 몸을 기댔다.
“지분을 얼마나 거둬들일 수 있다고 보는가?”
“정확하지는 않아도 추가로 얻을 지분이 30% 언저리가 될 것 같은데요?”
“이미 자네가 가진 지분이 10%가 넘었지?”
“예, 그 정도 될 겁니다.”
모건가가 연준을 암중에서 주무른다지만 지분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과반에 한참 못 미친다.
모기지론이 터지면 모건이 아무리 발악을 한다고 해도 규태가 부실 은행들을 사냥해 연준의 지분절반가까이 가져올 수 있었다.
모건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우호지분들은 입장이 다른 법. 망하느니 은행을 규태에게 넘기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위기상황속에 규태의 공격을 받는 모건이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모건이 공격을 받고 가만있지 않을 텐데 준비는 철저하게 하고 있는 건가?”
“물론이죠. 현금을 쥐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상으로 밀려드는 자금인출 요구를 견뎌야 할 겁니다.”
은행의 최대악재가 무엇인가?
공황을 눈앞에 둔 위기상황 속에서 몰려드는 자금인출요구를 견디지 못하면 파산이다. 제아무리 미국 금융계의 황제인 모건이 주인인 은행이라도 이런 평범한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가지고 있는 현금을 제외하고서라도 여러 명의로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을 전략까지도 짜고 있었다.
캐미칼은행이야 내년에 엄청나게 늘어나는 수신고 증가에 기뻐하겠지만 내후년이 되면?
아마 새파랗게 질려 사색이 될 것이다.
“혹시라도 은행들이 자금지원을 하더라도 요청은 거절될 걸세. 그정도는 가능해.”
시중자금이 경색되면 매달릴 곳은 오직 연준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으니까.
하지만 이번 연준의장은 달랐다. 은행들이 자금지원을 요청해서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었다.
그래서 싫다는 리처드를 억지로 등 떠 밀어서 연준의장자리에 앉혀놓은 거니까 말이다.
규태가 빙긋이 웃었다.
“그거면 됩니다.”
***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CalPERS)은 한국의 국민연금과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함께 세계 3대 기관투자가다.
2,000억 달러에 가까운 막대한 투자금액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전체자산의 60%가까이 주식과 같은 고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규태는 큰 예고 없이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온 캘퍼스의 자산운용담당자인 아론 스튜어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면 큰 고객이 될법한 캘퍼스의 운용담당자라면 당연히 문앞까지 달려 나서서 극진한 접대를 하는 게 도리지만 어디 규태가 그런 입장인가.
돈을 싸 짊어지고 와서 투자를 하겠다는데도 거절하는 게 타이거 펀드였다.
그래서 아론과는 접점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혹까지 데리고 나타났으니 규태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국민연금의 자산운용본부장이시죠? ‘
“옙, 아직 기억해주시는군요.”
군대신병같은 빠릿빠릿한 목소리로 이문한이 대답을 했다.
규태는 느닷없이 찾아온 두 사람에게 커피한잔을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