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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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스턴스
구제 금융을 두 회사에 각각 1,000억 달러씩 풀고 공기업으로 전환하면서 간신히 파산을 면했다.
“프라임 모기지론은 그래도 버틸 만 하겠지만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의 상환율이 낮아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경매물건들이 늘어나게 될테고 전체적인 모기지론 자체가 풍선처럼 터지게 될 겁니다. 그걸 리만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위험이 닥치기 전에 빠져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달달한 꿀을 뿜어내는 꿀통을 버려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레온이 모기지론의 파생상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워낙 거기에 걸린 이득이 많기 때문.
2,005년 한해에만 87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이 만들어졌다.
또 모기지론 파트를 담당하는 직원의 숫자만 500명에 육박했다. 그들의 자리를 없애면 이직러쉬가 일어날것이고 필연적으로 엄청난 투자자산 유출이 일어난다.
레온의 미련을 규태가 차갑게 잘라버렸다.
“이미 모기지론에 대한 투자규모가 직간접적으로 1조달러를 넘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서 시간을 질질끌다가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도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미련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에 인적자원의 유출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을 테고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월가로 쏟아져 나올 테니까요.”
규태의 차가운 말에 레온의 정신이 화들짝 깨어났다.
“그말은 투자은행들이 무너진다는 소립니까?”
“아마 살아남는 투자은행들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될 겁니다. 정부나 연준이 구제 금융을 해주기에는 너무 규모가 커서 손을 들겁니다. 투자은행과 은행, 보험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연준이 어디 손을 들어줄 것 같습니까? 다 살릴 수는 없으니 일부분은 포기하겠지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등골이 서늘한 소리였다.
레온은 잔뜩 미련이 남는 얼굴로 자료를 다시 읽었다.
납득하기는 싫지만 규태의 말을 들을수록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가 뻔히 눈에 들어왔다.
모기지론 시장이 붕괴되면 연준은 은행을 살리려고 하지 투자은행은 망하던지 말던지 내버려 두는 방향으로 나아갈 터.
잔뜩 굳은 얼굴을 한 레온이 뉴욕으로 돌아가고 다시 규태에겐 일상의 평화가 찾아왔다.
***
베어스턴스의 뉴욕본사에서 근무하는 빅터 케이스는 오랜만에 대학동창 로한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워낙 바쁜 회사일 때문에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가끔 시간이 되면 만나서 술 한 잔을 하는 친구였다.
대학동창들 가운데 월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서 어울리다보면 좋은 정보가 나올 때도 있었다.
친구가 일하는 투자은행인 리만 브라더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이었다.
스티브 글래스법이 사라지면서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부풀려가는 투자은행이지만 리만의 투자수익률이 워낙 높다보니 압도적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리만브라더스로 밀려들었다.
그곳의 주인은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나이였다.
포브스의 재산집계에선 빠져나갔지만 이미 그의 재산규모가 1조 달러를 넘었을 거란 말이 무성했다.
IT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닷컴버블에도 조금도 손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막대한 차익을 거두어들였다는 소문까지 있는걸 보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만나기로 한 단골술집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사내가 혼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였다.
“왜 청승맞게 혼자서 술 마시고 있는 거냐? 회사에서 문제라도 생긴 거야?”
“빅터, 앉아라. 제기랄, 이번에 회사에서 구조조정 발표가 있었다.”
“구조조정? 그렇지 않아도 잘나가는 리만에서 갑작스럽게 무슨 구조조정?”
“회장이 미쳤나. 갑자기 모기지론 파트를 날려버렸어.”
“모기지론 파트를 날려?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긴 아주 잘나가는 파트잖아?”
“그러게 말이야.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내던 파트인데 갑자기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인원을 대폭 줄였다. 나머지 인원들로 어떻게든 꾸려나가라고 하는데 나 원 이거 기운 빠져서. 앞으로 회사에선 모기지론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라고 하더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파생상품파트에서 일하며 잘나간다고 콧대를 세우던 녀석이 늘어진걸 보면 안타깝긴 하지만 빅터는 궁금한 걸 물었다.
“모기지론 파트를 전부다 날리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절반정도 줄인다더군. 그것 때문에 회사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급작스럽게 모기지론쪽의 MBS하고 CDO 거래규모도 축소하란 명령이 떨어져서 제레미 본부장이 회장실로 쳐들어가서 난리를 부렸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잘 안 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등줄기가 서늘해지지만 남의 회사가 잘 안 된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회장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대로 가는 거지.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회사가 아주 뒤숭숭해. 회사의 지시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 때려치우겠다는 직원들도 엄청 많고.”
“너는 해당사항 없는거야?”
“없긴 왜 없겠냐? 자리는 지키겠지만 언제 내자리가 없어질지 몰라 불안하다. 제기랄, 지난달에 골드만에서 오라고 할 때 그냥 가는 건데.”
자리가 불안해서인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시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빅터가 곤란한 표정을 했다.
로한의 이야기대로라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리만 브라더스는 월가 투자은행답지 않은 엄청난 자충수를 두고 있었다.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 모지기론을 버리는 엉뚱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거야? 대주주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잖아?”
“대주주는! 우리 투자은행의 대주주는 하나밖에 없어. KT가 이미 대부분의 주식을 인수했다고 하더군.”
리만이 상장회사이면서도 시장에서 거래가 말랐다했더니 대주주가 꾸준하게 주식을 사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다른 은행에 자리를 알아봐야지. 자리만 지키면 뭐하냐고 당장 성과급이 대폭 날아가게 생겼는데.”
“하긴 그렇긴 하다. 거래규모가 줄어들면 성과급도 줄어들지.”
빅터가 기억하기로 작년에 받은 로한의 연봉과 성과급은 전부 150만 불, 성과급이 날아가면 그 반도 받지 못한다.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뉴욕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러다간 당장 살고 있는 아파트도 비우게 생겼다고.”
“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월세가 비싸긴 하지.”
당연히 비쌀 수밖에. 로한이 사는 지역은 집값이 비싼 맨해튼에서도 센트럴파크에 인접한 고급 콘도미니엄이 엇다. 매달 내야하는 월세만 해도 5,000달러가 넘었다.
로한과 술을 마시면서 빅터는 머리를 굴렸다.
친구의 어려움이 공감이 가기도 하고 어째서 리만이 이런 미친 짓을 벌였을까를 생각하느라 그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걸 내일 윗사람에게 전달하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를 고심하느라 술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리만의 갑작스런 투자포지션 변동은 잠시 동안 월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미친 짓이란 손가락질이 대부분.
모기지론과 파생금융상품의 취급을 엄격하게 제한한 리만의 실적은 그대로 떨어져서 압도적으로 1위를 자랑하던 투자은행의 규모가 크게 위축되었다.
몰려들던 투자자금들도 주춤하는 기색.
1위 자리를 노리는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와 베어스턴스에게는 커다란 호재였다.
베어스스턴의 경영자인 샘 모리나로는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했다.
그가 생각할 때 난데없는 리만 브라더스의 헛발질은 메릴린치나 골드만과의 차이를 줄이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 추가적인 인원들은 모두가 넘어오기로 했다고?”
“예, 연봉협상까지 마쳤으니 이제 사표만 내고 건너오면 그만입니다.”
“잘됐군. 잘됐어!”
샘은 모처럼 엄청난 수익을 거둬드릴 뛰어난 인재들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 크게 기뻤다.
리만에서 모기지론 투자는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화수분이었다.
그런 화수분을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한순간에 포기해 버리는 리만의 경영자인 레온회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나이가 많아져서 은퇴를 해야 할 나이가 되자 미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걸 막아야할 대주주마저도 손을 놓고 있다고 하니 이거야 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월가에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멍청이는 드물었다.
특히 리만의 모기지론 관련파트의 인재라면 월가에선 어느 투자은행이던지 양손을 벌려 환영할 인재들이었다.
작년에만 4,500억 달러의 거래실적을 기록하고 순이익만 87억 달러를 낸 알짜 부분이었다.
올해에는 1조 달러가 넘는 거래실적에 150억 달러의 수익이 예상했는데 이걸 날려버린 것이다.
투자부분은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도 모기지론 파트만큼은 덩치를 키워서 꾸준하게 수익을 낼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베어스턴스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의 덩치는 경쟁사들에 비해서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다.
못마땅한 건 경쟁사인 메릴린치 역시도 발 빠르게 나서서 상당수의 리만 직원을 강탈해갔다는 것.
“그래 얼마나 투자금액이 넘어온다고 했나?”
“직원들이 건너오면서 약속한 투자금액이 1,800억 달러가 됩니다. 직원들이 회사에 자리를 잡게 되면 아마도 3,000억 달러정도는 늘어나게 될 겁니다. 돈 많은 개인이나 기관들 상당수가 담당하는 직원들을 보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리만의 직원영입 보고를 하는 제임스 케인COO의 말에 흥이 오른 샘 모리나로가 큰소리를 냈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베어스턴스의 총투자자산은 1조 달러를 간신히 넘었다. 1조 5000억 달러가 넘는 골드만삭스나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메릴린치에 비하면 투자자산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고민을 하던 샘에게는 달콤한 단비 같은 소식.
계획대로만 자산이 움직인다면 리만은 2조 달러 미만까지 투자자산이 떨어지고 베어스턴스는 메릴린치의 코밑까지 자산이 늘어나게 된다.
마음 같으면야 단숨에 메릴린치를 제치고 싶지만 이번에 베어스턴스정도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투자금액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베어스턴스의 규모가 비슷해진다.
조금 더 투자금액을 늘리게 되면 언젠가는 리만을 제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규모를 늘리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겁니다. 리만이 어떤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는지는 몰라도 타격이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제임스 케인COO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다.
그럴수록 입가가 점점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평생의 소망이던 투자은행 1위자리가 가시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CEO의 자리에 있을 때.
자신의 경영능력을 불신하던 이사회에게도 거대한 한방을 먹여주는 셈.
“그래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라고. 그래야 그놈들이 남아있는 직원들을 끌고 올 것 아닌가. 이제 리만은 글렀어.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한답시고 돈이 되는 사업을 포기하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투자은행을 접어야죠. 이 세상에 무조건 안전한 투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레온은 이제 은퇴하고 리만은 은행으로 바꿔서 현금장사나 해야 해. 투자한 주식들도 정리를 한다면서 지금같이 시장상황이 좋은 때에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나이를 먹다보니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
“우리야 좋지. 이렇게 달콤한 과실을 따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다 회장님께서 빠르게 결단을 내리신 덕분입니다.”
제임스 케인과 샘 모리나로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레온회장을 한참동안 비웃었다.
리만이 모기지론 파트를 구조 조정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샘 모리나로는 그들을 베어스턴스에 데려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움직여서 알짜배기들만 빼올 수가 있었다.
이제 베어스턴스의 모기지론 투자금액은 6,000억 달러를 넘었다. 약속된 금액까지 전부 건너오면 8,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 수수료만 해도 얼마인가!
이사회에서도 빠르게 용단을 내린 자신의 결단력을 치켜세우면서 조금은 불안하던 자신의 경영능력도 재평가를 받았다.
내년에 베어스턴스가 기록할 이익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또 그로인해 늘어날 성과급을 생각하면 샘 모리나로는 자다가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걱정하던 회장연임도 이젠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