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모기지론 투자를 줄여라
타이거 펀드의 72층짜리 뉴욕본사에서 모이는 사장단 모임은 분기별로 개최된다. 규태가 지배하는 타이거펀드와, 그 모회사인 타이거 홀딩스, 야후 홀딩스, 타이거 벤처의 대표와 경영진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시장전망과 투자전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외부에서도 신경을 바싹 쓰고 정보를 캐내려고 동분서주했기에 회의내용은 극비에 붙여졌다.
이번 안건도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에 회의장에 나타난 이들은 하나같이 이번 회의의 내용에 대해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심각하게 논의를 했다.
하나같이 보안각서를 쓰고 핸드폰까지 반납하고 들어온 회의장은 화려하지만 단출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겉옷을 벗은 규태는 자료를 나누어주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리 메일로 통보를 받으셨겠지만 이번 안건은 조금 큽니다. 엘 고어 대통령이 내게 요구하는 네오인프라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섭니다. 샨은 어떻게 생각해요?”
규태의 질문에 샨 나링햄이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단순하게 미국채의 매입을 위해서라면 지금도 충분한 자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아봐야 2천억 달러의 채권인수를 요구할 테니까요. 하지만 보스가 바라는 건 다른 투자들까지 이번기회에 줄여버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어디까지 투자를 줄여야 하는지가 관건이겠죠.”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와서인지 샨은 규태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워커홀릭이지만 시간을 배분하는 것에 능숙해지면서 여자 친구와도 좋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타이거 펀드의 투자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대부분 주식투자와 채권투자에 묶여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7,800억 달러가 뉴욕,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의 증시에 주식과 채권으로 투자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700억 달러를 단기성 투자로 보유하고 있고요.”
“다른 회사들의 사정은요?”
“야후 홀딩스는 IT부분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야후에서 분사해 나간 회사들의 지분보유는 계속 늘리고 있지만 외부의 지분도 계속 지분을 조정하는 추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스와 퀼컴, 선 마이크로의 지분보유를 점차 줄이고 인텔과 애플의 지분보유를 늘리고 있습니다. 해외투자지분은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지분을 계속 보유중이고 여유자금은 단기적으로 운영하는 350억 달러를 현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두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걸 보면 전부 처분했나보네요.”
중국증시의 IT대장주중 하나인 바이두의 전망은 그렇지 좋지 못했다. 때가 되면 처분하란 지시를 내렸었는데 모두 처분이 끝난 것이다.
“예, 가지고 있던 바이두의 지분 25%를 블록딜로 넘겼습니다. 210억 달러로 넘기면서 이익이 그대로 장부에 잡혔습니다. 모두 지시에 따라 현금자산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타이거 벤처의 자산은 모두 1,200억 달러이고 투자금액은 275억 달러입니다. 나머지는.......”
한참 보고를 듣던 규태의 시선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가볍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오장우였다. 블랙홀 펀드를 만들어서 독립해나간 것으로 외부에 비춰지지만 사실 블랙홀 펀드의 지분 절반은 규태의 것이었다.
그동안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회의에 참석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함께 자리를 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외부적으로 가장 이름이 알려진 펀드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블랙홀펀드였다.
타이거펀드나 야후홀딩스는 극도로 폐쇄적으로 운영해서 투자자들만 이름을 알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블랙홀은 전 세계에 펀드를 파는 뮤추얼 펀드의 성격을 가졌다.
당연히 내부적으로 인원도 많았다.
타이거 펀드는 모두 합쳐봐야 700명이 되지 않았고 야후홀딩스나 타이거 벤처도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블랙홀의 인원수는 전 세계에 퍼져있지만 벌써 5,000명을 넘어갔다. 그만큼 전ㅅ계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 블랙홀의 대표 자리에 앉아있는 오장우는 규태보다는 월가에서는 더욱 유명 인사였다.
“요즘 블랙홀이 아주 잘나간다면서요? 펀드수익률도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팔았어요?”
규태의 질문에 회의장내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귀를 쫑긋 세웠다.
블랙홀의 펀드 판매량은 외부로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명칭으로 팔기 때문에 추산하기도 까다로웠다.
“잘 팔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리만과 시티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서 지난달까지 1조 달러에 가까운 펀드를 팔았으니까요.”
“어휴, 1조 달러라니 듣기만 해도 엄청나네요. 수수료만 해도 얼마예요.”
“모두가 보스덕분입니다.”
“그런 소리는 됐고요. 지금 블랙홀은 자금여유가 얼마나 됩니까?”
“투자한 자금은 전부 9,200억입니다. 나머지는 펀드환매에 대비해서 현금으로 가지고 있고요.”
말이 현금이지 단기성자금으로 돌리고 있단 소리였다.
“주로 채권은 모지지론에서 파생된 상품에 투자하고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그쪽이 수익률이 높으니까요. 서브프라임 모지기론의 파생상품수익률이 12%까지 올라갔습니다.”
규태가 이마를 찌푸렸다.
“벌써 거기까지 올라갔나요? 이거 곤란하네.”
“뭐가 말입니까? 아직까지 위험도는 크게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오회장 눈에는 그게 정상으로 보입니까? 내가 보고 받은 바로는 조금씩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다면서요?”
“확실히 정상은 아니지요. 하지만 주택가격 상승폭이 워낙 빨라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이 제대로 터지려면 2년이나 남았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 회의석상에서 이런 말을 하면 질타를 받기 마련이지만 규태는 이런 모습을 크게 탓하지 않았다. 솔직히 모기지론과 그 파생상품의 판매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주체 못할 정도로 늘어나는 수수료 수익으로 월가는 축제 판이었다.
이쪽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규태의 태도가 월가에서 보기엔 아주 이질적, 나쁘게 말하면 꼴통에 가까운 짓이었다.
규태가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하는 말은 아주 극비로 다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참석자들에게 더 까다롭게 보안을 요구한 것이고.
회의내용이 외부로 퍼져나가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것이었다.
“제가 볼때는 앞으로 2년입니다. 지금 월가에서 모기지론을 가지고 온갖 장난질을 치면서 수익을 올려대고 잇는데 저는 이걸 2년으로 봅니다. 기본적으로 투자적격심사도 없이 이름만 가지고 신청하기만 하면 서브프라임 론을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연체율이 올라가면 반드시 터지게 돼 있어요. 제임스, 내가 말을 한대로 월가에서 파는 모기지론 파생상품들의 구조분석을 해봤습니까?”
규태가 호명한 제임스 디엘은 금융상품 개발 전문가였다.
능력있는 월가의 전문가답게 칼날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가졌지만 최고위층의 회의에 참석한 것이 처음인지 규태의 호명에 당황하던 그가 만들어 가져온 자료를 꺼내들었다.
회의실의 정면에 비추는 자료들을 제임스가 하나 둘 풀어놓을 때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묶여 있는 모기지론 채권들의 등급이 아주 엉망입니다. 신용등급이 우수하다고 표시되어있는 금융상품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들어가 있습니다.”
“도대체가 그게 가능한 겁니까? 말이 되지 않잖아요? 어떻게 서브프라임이 안전하다고 하는 최고등급 금융상품에까지 들어가게 된 겁니까? 그걸 신용평가기관에서 눈뜨고 지켜보기만 한다고요?”
제임스의 분석을 믿을 수가 없어 했다. 그만큼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규태의 말처럼 서브프라임이 터지면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린다는 소리였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고등급의 우량금융상품에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서 서브프라임 등급의 낮은 채권상품들이 세탁되어서 최고등급에까지 들어가서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용평가기관과 월가의 은행들이 전부 짝짜꿍이 되었다는 말이 되겠죠. 그 사람들도 전부 수수료에 눈이 멀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쓰레기 정크본드들을 세탁해서 최고안전등급의 상품으로 팔고 있단 소리로군요.”
“그렇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앞으로 얼마나 규모가 늘어날지 모른다는 겁니다. 모기지론을 이용해서 만든 금융상품의 숫자는 점점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수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빨라진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똥을 포장해서 금으로 바꾸어 비싸게 팔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으니 불안을 느끼지 못하면 비정상이다.
똥을 아무리 잘 포장해도 똥이다. 절대로 금이 될수없었다.
이어서 규태가 공을 들여 뽑은 투자 위험관리매니저인 린저 모한이 나서서 모기지론의 규모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모지기지 론의 보증기관인 프레디맥과 페니매이가 작년까지 보증한 모지지론의 규모가 5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올해 말까지 그 규모가 7조 8천억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에는 적어도 10억 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 정도라면 시장에서 감당 가능한 겁니까?”
“절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택가격이 지금의 추세대로 안정이 되면 연체율은 급증하고 자연스럽게 경매로 나오는 주택의 숫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퍼엉~ 터지는 겁니다.”
린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린저의 발표내용대로라면 프라임 론을 기반으로 한 모든 금융상품들이 안에 폭탄을 안고 있단 소리. 그게 언제쯤 터질지가 문제지 극도로 부실한 금융상품이란 것이 분명했다.
규태가 가지고 있는 투자사들도 상당수가 수익률이 높은 이쪽에 투자를 하고 잇다는 것이다.
그래도 조심을 하고 있었던 타이거 펀드는 큰 문제가 없지만 블랙홀에서 판매한 펀드에서 사들인 채권투자의 2/3가 모지기론에서 파생한 상품들이었다.
펀드 판매금액이 크다보니 최대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금융상품에 투자를 많이 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량과 우량 채권들이 섞여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이거 제대로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자산 유동화 증권인 MBS에 부채담보부증권인 CDO까지 모기지론을 이용한 파생금융상품들이 늘어나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썩은 똥이 섞였는지를 알아내는 게 더욱 불가능해졌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얼마나 많은 채권이 문제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상품을 만든 자들조차도 모를 겁니다.”
회의장이 잠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언제 터질까요?”
“내년까지는 큰문제가 없을 겁니다. RM(위험관리부서)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폭탄은 늦어도 97년 여름이후에 터진다고요.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프레디맥과 페니매이가 결국 두 손을 들 겁니다. 정부에서 감당할 수치를 아득하게 넘어가 버리니까요. 처음에는 추가적인 부실이 발생해도 정부에서 악착같이 덮을 겁니다. 자칫하면 대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아시겠지만 부실규모가 연준이나 정부에서 막아내기에는 힘든 규모입니다. 아마 문제가 생길 때 모지지론의 전체규모가 12조 달러를 넘어설 걸로 추정되는데 이걸 어떻게 막습니까? 그전까지는 모기지론과 관련된 투자를 정리하고 투자비율도 낮추어야 합니다. 커다란 쇼크가 금융시장을 휩쓸 게 될 테니까요.”
생각보다 위험이 들이 닥치는 시기가 늦다는 것은 알게 된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얼굴은 어두웠다.
앞에 나서서 시장붕괴의 위험을 경고하는 린저의 모습이 마치 묵시록에서 세상의 파멸을 예고하는 천사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말을 아끼며 회의장을 지켜보던 규태가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모기지론과 연관된 신규 상품 투자를 멈추도록 하고 내년하반기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모기지론과 연관된 투자를 금지합니다. 그리고 97년부터는 최대한 현금보유를 늘립니다. 특정한 회사의 주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다 파세요. 쿼터별로 모든 회사들의 투자자산을 감독할 예정입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현금으로 들고 있어서 투자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들려도 전 무시할겁니다. 하지만 말한 대로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는 소리가 들리면 제가 직접 책임을 물을 겁니다. “
규태가 투자한 펀드의 투자규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예전처럼 빠른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거기에 언제까지 규태가 일일이 모든 일들을 간섭할 수도 없고.
펀드의 실질적인 주인이 투자수익을 무시하겠다는 소리는 펀드운영자들에게 커다란 자유를 가져다준다.
제일 고민이 지시대로 펀드를 운영하면 필연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걸 무시하겠다는 소리를 했으니 대부분의 자산운용자들은 환영할 소리였다.
물론 높은 투자수익으로 많은 성과급을 받는 이들은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뿐이다.
펀드를 떠나봐야 공격적인 자산투자로 97년 모기지론 보증기관들이 손을 들고 서브프라임이 터지면 커다란 타격을 받고 월가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맞이하겠지만 말이다.
회의를 마치고 심각한 얼굴로 돌아가는 임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멍청이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리가.
탐욕의 월가에서 일하는 자들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당장의 성과급이 줄어드는 걸 참는 자는 드물었다.
언제나 욕심 많은 바보는 나오기 마련이다.
“다음에 면담이 약속된 사람이 레온회장인가?”
실질적으로는 규태가 주인이지만 대외적으로 시선을 가릴 필요가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회사가 리만 브라더스였다.
원역사에선 버티지 못하고 6200억 달러짜리 파산을 하며 서브프라임사태를 촉발한 투자 은행으로 기록되며 역사에서 사라지지만 이젠 역사가 바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