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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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를 하나 샀습니다.
알레스카에 만들어진 데이터 센터는 지역의 정치인들과 함께 준공식을 갖았다. 사람들을 만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규태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식에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던 준공식의 규모가 갑자기 커졌다.
알레스카 주지사와 상원의원도 참석해서 사진을 찍고 규태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저들이 요구하는 것이야 조금 더 알레스카에 투자를 늘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사람들 상대하는걸 오랜만에 했더니 정말 귀찮군. 이걸로 열 일곱 번째 데이터 센터가 만들어진 거지?”
“예, 다음 달에 연달아 세 개만 만들어지면 전부 20개의 데이터센터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큰 수익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타이거 펀드로 떠난 오선한을 대신해서 규태를 수행한 복일모의 말처럼 데이터센터는 한마디로 큰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다.
막대한 자금이 소모되지만 수익성을 높지 않았다. 더욱이 부실을 숨기고 분식회계를 일삼으면서 M&A로 덩치를 불려나간 월드컴과 엔론이 무너지면서 더욱 서버에 투자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태는 꾸준하게 데이터 센터와 회선사업에 힘을 쏟았다,
“먼 장래를 보고 하는 투자야. 당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뒷짐 지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밀려나는 게 이판이야.”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들어가는 자금이 너무 막대하지 않습니까?”
“뭐가 막대해 내가 계획한 데이터센터를 전부 건설해도 100억 달러 안쪽이야. 이정도로는 내 재산에 흠집도 나지 않는다고.”
이미 규태의 자산은 대외적으로 공개된 부분만 5,000억 달러를 넘었다. 아예 규태는 전 세계 부자순위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포브스에게 요구해 관철시켰다.
2020년을 넘어서도 자신의 부를 따라온 사업가는 없다.
다른 이들과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재산을 공개해서 적을 더 만드는 건 사절이었다.
당연히 포브스에선 규태의 요청을 거부했지만 규태가 포브스의 지분 28%를 인수하면서 대주주가 되자 입장을 바꾸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예 규태의 재산은 부자들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규태가 빠진 포브스 1위의 부자는 빌 게이츠가 되었다.
“네에~ 부자라서 좋으시겠습니다. 이렇게 보스가 자기자랑질이 심한데 선한형은 어떻게 참았나 몰라.”
“복군, 진짜 죽고 싶냐? 자랑질?”
“에이, 통이 크기로 유명한 보스께서 말장난 한 번에 너무하시네.”
이죽거리던 복일모가 규태의 말 한마디에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부자가 된 이후로 불편한 게 주변에 편하게 말을 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충실하게 규태의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던 오선한이 타이거 홀딩스 부대표로 옮겨가게 되면서 불러들인 사람이 복일모였다.
한국의 벤처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있던 복일모는 규태가 부르자 냉큼 달려왔다.
워낙 사회초년병이던 시절부터 쌓아올린 친분 때문인지 복일모는 규태를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캐서린의 밑에서도 일을 해서인지 둘의 사이도 좋았다.
규태가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투자한 회사를 컨트롤할 인물로 복일모는 최적이었다.
규태의 눈에 준공식에 참석한 야후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가 기상악화로 조금 연착하면서 준공식 행사에 늦은 규태가 아직 슈미트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에릭 사장, 요즘 잘하고 있다면서요? 제리에게 이야기는 잘 듣고 있습니다.”
야후의 사장으로 규태가 영입한 인물은 에릭 슈미트였다. 원래라면 구글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되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규태가 재빨리 손을 써서 낚아챈 것이다.
관리형 CEO지만 전 직장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자바개발을 지휘하기도 해서 첨단 기술에도 밝은 인물이었다.
그가 사장을 맡은 이후 어수선하던 야후의 분위기가 많이 안정되었다.
그러면서도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으니 에릭 슈미트에 대한 내외의 평가가 높아졌다.
규태의 팔로알토 저택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를 해서 자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규태는 에릭 슈미트와 자주 만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대로만 하세요. 내가 자주 안 만나준다고 삐진 건 아니죠? 부담 갖지 말고 마음껏 경영을 해보라는 의미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원 역사에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멱살 잡고 끌고 가서 구글을 크게 성공시킨 사람이다.
능력을 믿기에 마음껏 경영을 하라고 전권을 쥐어준 것이다.
“제리대표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슈미트를 보며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영에 어려운 것 없나요?”
“크게 없습니다만......”
에릭이 말을 흐렸지만 뒷말이 어떤 것인지는 규태는 금방 알아먹었다.
“레리하고 세르게이가 말을 잘 안 듣죠?”
야후의 각 부분을 나눈 사장자리에 오르자마자 망둥이 기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두 사람이었다.
“말 안 들으면 줘 패세요. 두 놈은 말로하면 들을 놈들이 아닙니다. 정안되겠으면 나를 부르던가요.”
제리가 대표로 있을 때도 지지리 말을 듣지 않고 제고집대로 해버리는 놈들이었다. 너무 고집을 부리면 진짜 규태가 박살을 내버렸다.
제리보다 카리스마가 약한 에릭의 말을 얼마나 잘 듣겠는가.
한마디로 천둥벌거숭이인 두 사람의 천적이 규태였다.
규태의 말에 두사람이 어지간히 속을 썩였는지 에릭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데이터센터의 준공식이 끝나고 앵커리지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구태는 복일모에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물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에릭사장이 둘 때문에 어지간히 속썩이나봐?”
“말도 못합니다. 두 사람 같은 부하들을 거느려야 한다면 전 CEO사절입니다. 에릭사장이 워낙 성격이 좋으니까 끌고 가는 거지. 가끔 보면 미친놈들 같다니까요.”
“두 놈이 천재라서 그래. 평범한 사람하고는 아예 생각이 다른 거지.”
“그러니까요. 프로그램 개발하는 거보면 인간 같지가 않다니까요. 그래서 내버려 두는 겁니까?”
“조여 봐야, 자기 사업하겠다고 튕겨져 나갈 놈들이야. 최대한 뽑아 먹을 건 뽑아 먹어야지. 에릭도 그런 생각일걸.”
“와!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다니는 에릭사장도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
“그렇지 않으면 사장실격이야. “
“정말 힘드네요. 그놈의 사장자리.”
“그러니까 연봉이 비싸지. 에릭사장 연봉이 얼만지나 알아?”
“압니다. 알아요. 연봉만 2천만 달러가 넘잖아요. 성과급하고 스톡옵션은 제외하고.”
“그래 그러니까 참는 거야. 하루 종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일에 미치고, 사람이라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과 월급을 보면 마음이 달라지지.”
“알레스카는 9월인데도 제법 쌀쌀하네요.”
“나중에는 9월에도 더울 거다.”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여기 알레스카예요! 알레스카! 한겨울에는 사람을 동태로 만든 다고요.”
규태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코웃음을 치는 복일모였다.
“그럼 내기할래?”
“내기요?”
내기소리가 나오자 확 찌그러 드는 복일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규태와의 내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됐습니다. 내가 믿을게요. 앞으로 알레스카가 더워진다는 말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진짜로 믿는 기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지구의 대기오염과 해양오염이 심각해지고 북극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진짜 알레스카나 캐나다 북부지역이 폭염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아는 규태였다.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21세기 내내 지구를 괴롭힌 문제였다.
화석연료의 사용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플라스틱의 대체제가 개발되면서 그나마 지구는 안정을 찾게 된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아직은 덜 오염된 알레스카는 황량하지만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잘 적응하시고?”
“팔로알토 날씨가 너무 좋다면서 진작 왔어야 한다고 제 등을 때리시던데요.”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는 건 아들이 나이를 먹어서도 마찬가지.
“날씨가 마음에 드셨나 보구나.”
“그것만이 아니라 조금만 나가면 주변이 숲이잖아요. 사는 곳 주변도 번잡스럽지 않고요. 그게 마음에 드셨나 보더라고요.”
“영어는? 사람들하고 만나면 그게 불편하실 텐데?”
“기초영어부터 배우고 계신데. 아주 잘 배우고 계십니다. 따로 만나는 사람도 있나보던데요.”
어딘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복일모의 반응에 규태가 피식 웃었다.
“어머니가 남자 친구라도 만드셨나 보구만. 투덜거리지 말고 잘해드려라.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노총각으로 살래.”
“아! 집에서도 들볶이는데 보스까지도 그러세요.”
“네 어머니를 뵐 때마다 그 말씀을 하시니까 그렇지. 주변에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시키라고.”
“아! 진짜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해서.”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러시는 거지. 그런데 넌 언제까지 엄마라고 부를 거냐?”
“몰라요, 한번 어머니라고 불렀다가 대판 혼났다니까요. 절대로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잔소리도 엄청나게 들었다고요.“
“너도 그러냐?”
“보스도요? “
“그래 내가 미국으로 갈 때 형제들 모아서 신신당부하시더라. 난 또 무슨 중대발표나 하는 줄 긴장했었는데 말이야. 자식들한테 어머니 소리를 들으면 진짜로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이 드시니 보더라. 그래서 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 아마 내가 환갑이 되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에구,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주변에 사람들 있으면 엄마를 부르는 게 어쩐지 낯 뜨거워진다니까요. 꼭 저 사람은 나이 먹어서 어린아이처럼 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죠.”
“어쩌겠냐. 어머님이 좋아하시는데. 다른 효도는 못해도 그거라도 해드려야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동안 지루함을 떨치던 두 사람의 눈에 푸른 바다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다위에 늠름하게 모습을 드러낸 목적지인 커다란 덩치의 요트도.
길이가 187m가 넘는 초대형 요트를 주문한지 반년 만에 인도 받게 되었다.
오라클 사장인 래리도 선 라이스란 이름이 붙은 128m크기의 요트 주인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주주중 하나인 폴 엘런도 얼마 전 3억 달러짜리 대형요트를 사들였다.
규태의 요트는 이 시대에서 단연 최대의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고 가격도 그만큼 비쌋다.
값비싼 인테리어도 인테리어지만 요트 자체에 세대의 헬기가 상시로 머물른다.
세대의 헬기가격만 해도 상당히 비쌋다. 한 대는 규태가 이동용으로 두 대는 자체무장까지 갖춘 경호용 헬기였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대형요트를 받게 된 것은 노르웨이의 조선사에 미리 주문을 넣었던 주문자가 닷컴 버블의 여파에 떠밀려 파산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큰 요트를 주문하십겁니까? 전에는 크게 관심도 없던 양반이? 도대체 얼마짜리야? 대충봐도 요트가 휘황찬란하네?”
“살아보니까 혼자 살면서 돈 안 쓰고 지내봐야 별거 없어. 이젠 와이프하고 자식도 생길 것 같으니까 팍팍 쓰면 살려는 거지.”
남이 들으면 이해가 잘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복일모는 대강 뜻은 짐작했다.
“그러니까 혼자 살 때는 돈 쓰는 게 시큰둥했는데 가족이 생기니까 막 쓰고 살아 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 아닙니까? 쉬운 말을 정말 어렵게 하시네.”
깐죽거리는 복일모의 뒤통수를 보며 한 대 후려칠까 잠깐 고민하던 규태였지만 요트에서 손을 흔드는 반가운 얼굴을 보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