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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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시도
네바다의 저택 벙커에 틀어박혀 있으면 진짜 할 일이 없어진다.
처음에는 일이 라도 해볼려고 바동거리지만 외부와의 연락도 수시로 하지 못하는데 일은 무슨 일.
나중에는 저절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하기 마련이다.
외부에 많이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다크웹은 재미있는 시궁창이다. 수십 년을 벙커에 틀어박혀서 지내다 보니 알고 싶은 않은 사실들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초보자들은 다크웹에서 길을 잃기 마련이다. 수많은 정보가 쓰레기처럼 뒤엉켜서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몇 개 사이트는 진짜 정보를 거래하는 곳이다.
“제기랄 목표가 나네.”
다크웹의 몇 개 사이트에 들어가서 돌아가는 추세를 살펴보면 공기가 읽힌다.
“뭐가 말입니까?”
혼자서 기보를 보면서 바둑삼매경에 빠진 오선한이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다크웹의 정보교환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분위기가 그래요. 내가 표적이 된 건 눈치 챈 모양이에요.”
“아쉽네요. 대통령 쪽이면 좋았을 텐데요.”
“이거 잘못하면 내가 미끼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규태의 말에 오선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바둑판을 바라보던 시선이 규태에게로 향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뇨 전부를 잡아내기가 진짜 힘들거든요. 그럼 미끼를 던져서 물기를 기다리는 게 빠르죠.”
목표가 아니었다면 규태도 당연히 사용할 수법이었다.
대통령이야 잘못되건 말건 나만 아니면 되니까.
“어떻게 그런 사이트들은 아신 겁니까?”
오선한의 질문에 규태가 이마를 긁었다.
“여기 만들 때 마크하고 제리도 끼었거든요. 레리 녀석도 힘을 보탰고. 그래서 몇 개는 관리자나 마찬가지예요.”
“맙소사! 진짜 이거 걸리면 골치 아픈 거란 사실은 아시죠.”
“걸려봐야 큰일은 없을 겁니다. 정보거래에 직접 관여하는 건 아니라서. 그냥 보는 거죠.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작은 비용을 들이는 거래는 직접이용하기도 하지만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양파 같은 면모를 보였다. 규태의 옆에 거의 붙어있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게 거의 없다고 여겼는데 전혀 의외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제가 모르는 사실이요? ‘
“글쎄요, 다른 게 있었나?”
규태가 오선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봐야 떠오르는게 없었다.
“이것도 슬슬지겹네요. 다른걸 봐야하나.”
“다른 거라면 ? 어떤 내용들입니까?”
조금 흥미가 살아났는지 오선한이 규태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여긴 없는 게 거의 없는 편인데 보는 걸 추천하지는 않을게요. 진짜 보면 구역질나는 영화나 하드코어쪽 장르도 적지 않게 떠돌아다니니까.”
오선한이 이마를 찌푸렸다.
“그 정도입니까?”
“예, 세상에 XX들하고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건 사실이니까요.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쌍욕하고 나오는 사람이 많더군요.”
“알고 싶지 않네요.”
“정말 몰라도 돼요. 그나저나 대통령 쪽은 어쩠데요?”
“오전에 연락이 왔는데 최대한 경호실과 협의해서 행사일정을 줄이고 있답니다. 슬슬 와병중이란 이야기를 흘리고 있답니다.”
“아이고! 고어도 힘들겠네요. 나도 이렇게 지겨운 데. 그 양반도 얌전하게 틀어박혀 있으려면 어지간히 고역일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보스는 어떻게 이런 생활이 아주 능숙하십니다.”
“흠, 뭐 모처럼 즐기는 휴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이렇게 아내하고 떨어져 있으면 크게 나쁠 게 없잖아요.”
“듣기에 아주 위험한 발언이네요.”
아직까지 적당한 짝을 만나지 않고 독신생활을 즐기는 오선한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나중에 결혼을 해보면 알게 될 겁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4,5년은 산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인데요.”
“신입 같은 경력직원이라고 해두죠.”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나중에 꽤 유명해지는 말인데 오선한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긴 규태가 말을 해놓고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 같은 인생 2회차라면 모를까 적은 돈 주면서 고급인력을 부려먹기 바라는 고용주의 욕망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말이었다.
“한국은 어쩠답니까? 요즘 통 신경을 못 썼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는 새로운 펀드 발매 때문에 조금 시끄러웠습니다. 기룡증권에서 판매한 펀드가 대성공을 거두었지 않습니까? 2차로 발매한 펀드가 또 대박을 터트려서 한참동안 한국이 떠들 썩 했습니다.”
“대박이요?”
“나스닥 하락에 투자한 리버스 펀드 말입니다.”
“아! 그거요.”
규태도 오선한의 말에 무심코 지나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규태가 직접 운영하는 펀드가 아니라 잊고 있었지만 나스닥 하락에 배팅한 펀드의 수익률도 엄청났을 것 같았다.
“투자수익률이 2,000%를 훌쩍 넘어서 한동안 한국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어마어마하네요.”
“진짜는 국민연금 아닙니까. 금리선물 투자로 35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 국민연금 조기 고갈을 막으셨습니다.”
나스닥이 붕괴되자 미국채선물 가격이 급등했다.
경기 과열을 우려해서 6.9%까지 올랐었던 기준금리가 2.5%까지 하락했다.
타이밍을 노린 국채선물 투자가 성공하면서 규태가 한국에서 아주 영웅소리를 듣게 됐다는 말이었다.
“이젠 알아서 하겠죠. 국민연금은 수익률보다는 안정을 우선해서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으니까요.”
“가끔 운영본부에서 연락이 오기는 합니다. 투자방향을 코치해달라고요.”
“언제까지 공짜로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수수료내고 펀드 가입하라고 했습니다.”
“타이거 펀드요 아니면 블랙홀이요?”
“수수료 내라니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던데요.”
“펀드 수수료가 비싸기는 하죠. 잘못하면 뒷말 나올 테니까 그 사람들도 함부로 가입하긴 어려울 겁니다. 자칫하면 자산운용본부는 뭐하는 곳이냐고 욕을 먹을 수도 있고요.
규태가 국민연금 운영권을 일시적으로 가져온 건 IMF로 국민연금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수수료만 받고 운영을 해주었다.
그렇긴 하죠.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아는 법이죠.
“둘리 뭐요?”
“아직은 유행하지 않나보네, 하여간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오선한은 가끔 영문 모를 말을 하는 규태가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그냥 넘어갔다.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세세하게 캐물어봐야 답변을 듣기도 어려웠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하드디스크에 자료를 꽉꽉 채워서 틀어박히는 것이다.
영화와 책을 담기만 해도 한두 달은 큰 어려움 없이 훌쩍 보낼 수 있다.
***
“제이씨 뉴욕인근에서 두 팀을 잡았답니다. 테러용의자들은 전부 사살했습니다.”
“그럼 이제 절반은 잡은 셈이로군요.”
FBI의 대테러 전담요원인 린든은 함께 동행하는 제이란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기분이 다운됐다.
테러리스트 다섯을 사살하는데 죽거나 부상당한 인원만 여덟이다. 셋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나머지 다섯도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커다란 중상을 입었다.
“도대체 이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린든의 의문은 당연했다. 정보를 입수하고 체포에 나선 대테러 전담요원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훈련을 받는 정예요원들이다.
정보를 미리 알고 잠복하고 있었는데도 이정도가 당했다는 건 상대가 보통이 아니란 소리였다.
사망자들은 하나같이 한방에 헤드 샷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보호헬멧까지 관통하는 특수 탄환을 사용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일 리가 없었다.
“모르는 게 좋습니다. 다만 실력이 좋은 테러리스트라고 알고 있으면 됩니다.”
상부에서 동행을 강요한 대테러전문요원이란 소리에 군인출신이라는건 짐작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이 고약하다는 것쯤은 짐짝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그렇지 NSA, CIA등등 미국에 정보기관이란 정보기관들은 하나씩 발을 걸쳤다.
상부에서도 진짜 골치아파한 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자산의 보고라인에 대통령경호실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주시죠. 이자들이 노리는 게 대통령입니까? ‘
“진실을 알고 싶습니까?”
제이의 푸른 눈이 린든을 바라보았다. 언제보아도 경험 많은 베테랑 린든도 감당이 되지 않는 기묘한 시선이었다.
수많은 사선을 거친 사람들만이 가지는 눈빛.
특수부대출신인 린든도 군대생활내내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기운을 가진 사내였다.
“예, 알고 싶습니다. 어재서 동료들이 이렇게 죽어가면서까지 테러리스트들을 막아야 하는지 알아야겠습니다.”
아직 차가운 날씨에도 린든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이는 잠시 망설였다. 소속인 FBI에서도 정확하게 노리는 테러의 대상까지는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통령일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짐작하는 대상은 둘입니다.”
대통령이 테러의 대상의 됐다는 사실을 듣고 린든의 몸이 굳어졌지만 아닐 수도 있단 소리에 물밀듯이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났다.
“다른 하나는 누굽니까?”
“린든도 이름정도는 아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유명하니까요.”
“내가 정치인중에 아는 사람은 드물 다니까요. 유명하다면 연예인입니까?”
“KT(규태)가 대상입니다.”
“KT요? 벤처투자자아닙니까? 어쩌다가 테러의 대상이 됐단 겁니까 그것도 대통령과 함께요? KT는 부자라지만 민간인 아닙니까?”
규태가 부자로 유명하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에는 대통령 정도의 비중을 가지지는 못했다. 대통령과 함께 테러대상자로 지목됐다면 이유가 있을 터.
“글쎄요, 그자들에게 뭔가가 거슬렸나보죠.”
“허참! 이젠 부자들까지 테러의 대상이 되는 건가보군요.”
제이라는 암호명을 사용한 피터대령은 그들의 진짜 정체가 NSA소속의 최정예요원이란 것까지는 밝힐 수가 없었다.
또 오염된 명령으로 인해 자랑스러운 미국의 특수요원들이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을 만들었다는 것도.
이제 남은 암살에 나선 요원들의 숫자는 여섯. 하나같이 최우선으로 경계등급을 정해 보이는 즉시 사살이 원칙이었다.
잠시 밖을 나와서 담배를 입에 문 그의 핸드폰으로 정해진 미리 메시지가 들어왔다.
‘라스베이거스 만납시다.’
미리 계획한 작전이 성공했다는 신호였다.
서둘러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 사무실로 돌아간 그의 눈에 사고로 자동차가 반파되어서 병원으로 실려 간 유력한 정치인환자의 입원소식이 들려왔다.
주변을 지나던 방송국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는 사진속의 주인공은 한동안 그의 머릿속을 지끈거리게 만들었던 주인공이었다.
또 다른 인물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사고를 전하는 와중에 짧게 단신으로 지나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TV를 보던 린든이 중얼거렸다.
“체니 상원의원이 죽었다는군요. 정치인치고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텍사스 댈러스지부에 근무할 때 스치듯이 안면이 있었거든요.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나이도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까운 사람이 죽었네요.”
하고많은 지부 중에 댈러스지부 근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제이는 가볍게 린든의 말에 동조했다.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사무실의 전화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제이와 린든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이 기다리던 전화였다.
- 목표물을 찾았읍니다. 이자식들 네바다로 몰려들고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