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럼스펠드의 경고
“그쪽은 전혀 예의가 없네요. 하긴 그런 협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것도 아니고요.”
럼스펠드의 경고는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엄연한 협박이었다. 테러로 뒤숭숭한 와중이다보니 물리적인 테러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쪽과는 완전하게 척을 졌다는 소리였다.
규태와 레드넥에 기반하는 하는 공화당 강경파와는 이미 적이란 소리였다.
“골치 아픈 자들이야. 이번선거는 이겼지만 다음 선거는 모른다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적으로 돌리면 꽤 시달리게 될 걸.”
당장 올해 말에 상원과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고 3년 후면 대통령선거가 다시 있다.
“그럼 선거 때마다 그놈들 상대를 지원해서 낙선시켜 버리면 되겠네요. 그자들이 제가 밖으로 나서지 않으니까 물로 본 모양이네요.”
얼마나 자신을 우습게봤으면 몸조심하라는 협박을 태연스럽게 지껄일까.
조금 아껴두었던 자료지만 공화당 강경파를 조질 자료는 꽤 많았다.
평소와 다르게 얼음처럼 차갑게 변한 규태가 뿜어내는 살기에 간 큰 터너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휴,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군. 살살하라고. 살살. 너무 시끄러우면 저들도 무슨 수를 쓸지 몰라. 거친 자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
한판 크게 붙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자 터너가 머리를 흔들었다.
“어차피 그자들하고는 같이 갈수가 없으니까. 먼저 때리지는 않겠지만 시도를 한다면 같이 해주겠습니다.”
말 그대로 어떤 수단이라도 거침없이 사용하겠다는 소리에 터너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동안 꽤 자주 만나면서 규태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오늘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이고! 난 모르겠네. 여하튼 몸조심하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규태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터너가 잠시동안 횡설수설하다가 떠나가자 규태는 오선한과 해롤드를 불렀다.
“터너가 조금전에 나를 찾아와서 전해준 말이 럼스펠드가 나한테 몸조심하라고 했다고 하더군.”
규태의 말에 해롤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경호를 대폭 늘리겠습니다. 현재 12명이 경호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걸 로는 부족합니다. 경호인원을 세배로 늘리겠읍니다. 만에 하나 습격을 받게 되면 저놈들도 꽤 많은 숫자를 동원 할 테니까요. 외부출입을 잘 안하시니까 이동중에 습격을 받을 확률이 높겠군요. 캐서린의 경호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내에서 습격을 한다고요?”
해롤드의 반응에 깜짝 놀란 오선한이었다.
“보도가 통제되어서 그렇지 미국에서 총격전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갱들의 총격전에 휘말렸다고 하면 큰 이슈가 되지 않으니까요. 럼스펠드 쪽은 블랙워터같은 질 나쁜 PMC하고 깊게 연관되어있습니다. 용병하고 갱들을 고용해서 언제라도 습격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동에 지금보다 더욱 신경을 써야겠군요.”
“예, 조심을 하는 게 좋습니다. 당장 지난번에 스위스에 동행했던 사람들을 이쪽으로 불러오겠습니다.”
“적을 상대할 때 화력은 강할수록 좋으니까. 추가적으로 실력좋고 믿을만한 사람들을 장기 고용하세요.”
고용비용이야 많이 들겠지만 위험에 노출되면 아낀 비용이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큰 타격을 입는다.
규태가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경호를 강화하도록 지시를 마친 해롤드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죠?”
규태의 말에 해롤드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합니다. 전쟁을 할 때 제일 피해가 적은 방법은 적이 때리기 전에 먼저 때리는 겁니다.”
“그렇죠! 먼저 때려야죠. 적이 때리기를 기다리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죠.”
마주보며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규태와 해롤드의 모습이 너무 사나 와서 옆에서 지켜보는 오선한의 몸에 오도독 소름이 돋았다.
***
“네이선하고 투자문제로 만날 일이 있어서 오스틴에 가려고 했다가 취소했어. 요즘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해롤드가 될수있으면 외부출입을 삼가해 달라고 하더라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캐서린의 말에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썩 기분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건 사실이야.”
“낮에 루드 터너가 왔었다면서? 루드하고 싸우기라도 한거야?”
“그게 아니라, 루드가 나한테 경고를 전하려고 왔었어.”
“경고? 무슨 경고?”
“레드넥친구들이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야.”
“그자들하고 싸우기라도 한거야? 레드넥하고 붙어봐야 진창 싸움일 텐데?”
“내가 지지한 엘 고어가 대통령이 되면서 어쩔 수가 없이 서로가 적이 될 수밖에 없었거든. 조금은 너무 나선 게 아닌가 하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진짜 잘한 일이었어.”
부시가 대통령이 됐으면 저놈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규태의 약점을 쥐고 흔들려 들었을 것이다.
엘고어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다음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나올 확률이 높았다.
12년간 민주당에서 연속해서 대통령이 나왔으니 미국국민들의 마음이 다음선거에선 공화당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럼스펠드나 딕 체니 같은 레드넥 떨거지들이면 곤란했다.
럼스펠드나 그 뒤에 있는 딕 체니까지 하나같이 규태와는 상극이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이렇게 조심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당분간은 그리고 공화당에서도 쓸 만한 사람을 찾아봐야지.”
“공화당에서? 하긴 나쁜 생각은 아니야. 럼스펠드 떨거지들을 밀어내겠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규태가 염두에 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살살 눈웃음을 치는 캐서린의 모습을 보면 나이답게 않게 장난꾸러기였다.
눈치가 엄청나게 빨라 속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속일 마음도 없었고.
“매케인 상원의원이 어떨까 싶어.”
“존 매케인이라면 내가 봐도 나쁘지 않은데. 존은 다른 공화당 늙다리들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지.”
부시후보가 강경파 공화당을 대표하는 세력이었다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반대편에 서있었다. 해군 4성장군 출신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베트남전에서 몰던 비행기가 격추되어 5년간 포로생활을 했다가 송환되었다.
상원의원으로 있으면서 개혁적인 입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평판도 좋았다.
지난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경선에서 부시에게 밀려났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당내 입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속한 세력이 당내 기반이 점점 무너지는 게 문제야. 대선후보에 나서려면 조금 더 지지세를 넓혀야 하는데 말이야.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에 나서면서 기반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조금 더 자기세력을 확장해야해.”
공화당내에선 개혁파에 속하다고 봐야 했지만 이게 약점이었다. 미국공화당의 기반은 점점 레드넥으로 대표되는 세력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가난한 백인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공화당 강경파들의 입지는 넓어지는 반면에 이에 반대되는 세력은 확실하게 집결하는 지지기반이 약화되고 있었다.
이걸 반전시키려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힘들었다.
“먼저 헬리버튼 사장이었던 체니를 날려버려야겠어.”
“그 뚱땡이를 왜?”
“럼스펠드가 앞에서 날뛰기는 하지만 진짜 뒤에서 술수를 부리는 건 그 작자거든.”
“그래? 하긴 그 사람 겉으로 봐도 음흉하게 생기긴 했지.”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후보로 나선 것도 자천이었던 것 알아. 부시가 부통령 추천하라니까 미적대다가 은근슬쩍 자기가 부통령 자리를 꿰찼단 말이야.”
“웃기는 자식이네.”
“아버지 부시도 자기 아들주변에 얼쩡거리는 딕 체니하고 럼스펠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었거든.”
캐서린과 규태는 한참동안 이제 적으로 마주한 딕 체니와 럼스펠드의 욕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진짜 그 작자들이 무슨 일을 벌이기는 할까?”
“체니가 깊게 연관된 게 블랙워터야.”
“나 그거 들어봤어. PMC인데 아주 안 좋은 말이 많이 나오는 회사지? 들리는 소문이 아주 좋지 않은 회사던데.”
역시 벤처투자업계에서 오래 일을 한 캐서린이라 아직 대중들은 모르는 많은 회사들을 알고 있었다.
원래 블랙워터는 이라크 전에 깊숙하게 관여하면서 사세가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 하지만 규태의 간섭으로 이라크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블랙워터가 돈을 벌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이를 가는 게 이유가 있기 해.”
“그게 뭔데?"
“그 작자들이 이라크에서 크게 한탕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
“이라크? 그래서 요즘도 이야기 나오는 대량살상무기 어쩌구가 그 작자들이 만든 이야기라고? 역시 개자식들이라니까!”
“그 작자들만 아니라 여러 세력이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엮여있지. 이스라엘은 이라크를 손봐주고 싶어 하고 미국의 강경파들은 큰 전쟁을 일으키길 원하거든.”
캐서린이 주먹을 쥐고 붕붕 휘둘렀다.
“진짜 그 작자들 싹 쓸어버려야 한다니까. 전쟁을 일으켜서 돈을 벌 궁리만 하는 작자들 말이야. 그런 기사가 나올 때 이번에도 군수기업들이 한탕하려고 난리를 치는 가보다 했더니 진짜였네?”
실리콘 벨리에서 오래 일한 캐서린은 골수 민주당 지지파였다.
“그걸 내가 막아버렸거든. 이번에 테러 책임을 물어서 정부내부가 물갈이가 됐잖아. 물갈이 대상자들이 이라크전쟁에 찬성하던 세력들이야.”
”와아! 진짜 규태한테 이를 갈만도 하네. “
“이야기를 들으니까 무섭지 않아?”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경호원들이 잔뜩 지켜 줄 텐데 뭘. 그런데 규태도 조심해, 그 작자들은 이익이 걸린 일이면 물불 안 가리잖아.”
캐서린의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한테 적이 한둘인가. 해롤드가 철저하게 경호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믿어야지.”
“해롤드라면 유능하니까 나도 불편해도 참을 수 있어.”
“지난번처럼 여자경호원들이 배치될거니까 불편하지는 않을 거야. 당분간은 조심하도록 해.”
***
엘 고어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새롭게 NSA국장으로 임명된 조지 클라크 중장은 NSA내에 공화당 강경파의 손발을 다수 잘라내는데 성공하면서 조직을 상당부분을 장악했다.
국방부의 산하조직으로 출발했기에 현역장군이 국장으로 임명되는 NSA는 보수적인 세력이 강한 조직이다.
그런 조직의 장악에는 전전임 NSA국장인 알렉산더 육군대장의 도움이 컸다.
오랫동안 NSA의 국장자리에 앉았던 알렉산더는 군부 내에서 인망이 높고 NSA의 조직에도 밝았다.
911테러조직의 테러정보를 입수하고도 이를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는 정보조직에 대한 숙청작업에 적역인 사람이지만 전면으로 나서기는 그랬다.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본부에서 알렉산더는 오랜 부하를 손님으로 맞았다.
“오랜만이네. 콩고에 가있다고 들었네.”
“한동안 아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동네는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사건사고가 끝이 나지 않더군요.”
“그쪽이야 영국 놈들이 싸질러놓은 똥치우느라 엉망이지 않나.”
알렉산더도 아프리카의 정치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알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자기들 마음대로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독립이후에도 아프리카에는 국지전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