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82화 (182/220)

#182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럼스펠드의 경고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전화 통화내용을 떠올리며 레온 헤스는 이마를 긁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 스트레스가 많아져서인지 머리카락은 아침마다 한 움큼 빠지고 찬란하게 빛나던 금발도 은빛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점점 늘어나는 스톡옵션과 월급통장을 보면 사직하고 싶은 마음이 아침안개처럼 사라진다.

레온이 리만 브라더스의 CEO에 취임한 이후로 회사도 주욱 성장해서 주가는 다른 투자은행에 비하면 30%이상이 높았다.

작년의 이익이 58억 달러, 올해도 이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아지지는 않을 전망이었다.

뉴욕증시에서 리만 브라더스의 주식매물도 조금씩 감소했다. 대주주 쪽에서 소문내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모양.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 60%이상의 지분은 대주주 측에서 가지고 있다고 봐야했다. 나머지는 연기금이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고 증시에 흘러 다니는 지분은 이제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전화통화를 끝내고 레온은 가장 먼저 해외투자담당 임원인 제롬을 찾았다.

“조금 전에 연락이 왔는데 대주주께서 앞으로 꾸준하게 중국투자를 늘리라는군. 그쪽의 전망이 좋다면서.”

레온회장의 말에 이야기를 듣던 제롬 트리뷴이 반색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책임지는 해외투자규모가 늘어난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건 참 반가운 지시네요. 때마침 시기도 맞았고요.”

“어째서?”

“요즘 중국에서 투자요청이 끝이지 않습니다. 미국에 자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중국시장에 투자하면 수익률도 나쁘지 않고 게다가 지금 중국에 인맥을 만들어두면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긴 하겠지. 자네가 말하는 인맥은 상해방 쪽인가?”

눈치 빠른 투자 은행가들은 이미 중국으로 달려가서 투자할 구석이 없나를 살피고 있었다. 중국정부와 공산당에 친한 인맥이 없으면 중국에서 큰 사업은 포기해야했다.

리만은 그들보다 한 발짝 뒤늦게 출발하는 셈. 이건 중국투자에 소극적인 대주주의 영행이 컸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투자를 요청한 항주 당서기가 상해방쪽 인물이더군요.”

상해방은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지배세력이다.

“2003년이면 후임자로 후진타오가 결정되지 않았나?”

“이미 상해방이 중국의 주요포스트를 꽉 잡고 있는데 국가주석자리가 넘어간다고 몰락할 리가 없습니다. 이건 소문인데 강 주석이 물러난 뒤로도 절대 군권은 놓지 않을 거랍니다.”

“그쪽도 꽤 시끄럽겠군.”

“절대 권력을 넘기는 일인데 말처럼 매끄럽게 진행되겠습니까. “

“미국시장투자는 당분간 지켜봐야겠지?”

“제가 보기에 미국시장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내는 건 한동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국시장의 투자열기는 닷컴버블의 붕괴이후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가지고 있는 자산규모만 3000억 달러가 넘고 현금 자산 규모만 800억 달러가 넘어 조속하게 투자처를 찾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래 중국에 투자한다면 어디가 좋을 것 같은가?”

“광주와 상해가 앞으로도 계속 유망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미 투자계획이 대부분 잡혀있습니다. 저희 쪽에는 소주와 항주의 지방정부에서 투자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금을 요청하는 게 지역개발이겠지?”

“예, 낙후된 지역의 부동산을 재개발하는 일은 투자에 실패확률이 낮으니까요.”

중국의 부동산시장에 이제 확실하게 불이 붙었다고 봐야했다. 경제개발의 필요 자금을 부동산 개발로 끌어올리는 건 개도국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다.

겸사겸사 권력자들의 주머니도 채워 넣고.

“그쪽 당서기가 요청했다고 했던가?”

“예, 양웬이 뒷돈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저희들의 지분도 정확하게 챙겨준답니다.”

무려 100억 달러의 개발공채를 인수하고 5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는 도합 150억 달러의 투자였다.

이것 말고도 꾸준하게 리만에 투자를 요청하는 곳은 많았다.

“추진해보게. 공채도 적당히 들고 있다가 다른 놈들에게 넘기면 될 것 같고. 엄청난 이익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군.”

보고를 하러들어왔던 제롬이 나가자 레온은 의자에 앉아서 골똘하게 대주주의 투자지시를 다시 한 번 되짚었다.

늘 대주주는 두루뭉술하게 앞으로의 투자방향을 알려준다.

그걸 어떻게 받아먹느냐는 레온의 몫이었다. 함께 있던 제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리만은 석유와 금 선물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란 지시였다.

혼자 생각에 잠겼던 레온이 다음 임원을 불러들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자원의 가격이 올라갈 것 같다는 말이지?”

“석유건 구리, 아연, 철, 금이건 하나같이 전부 가격이 올라갈 전망입니다. 농산물의 가격도 마찬가지고요. 12억의 중국시장이 조만간에 활짝 열리지 않습니까?”

“중국이 WTO가입이 그 정도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건가?”

레온이 부른 아론 테일러는 리만 브라더스의 자원투자를 담당하는 임원이다.

리만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주식과 채권투자에 집중하면서 살짝 주요 포지션에서 벗어나면서 아론의 회사 내 입지가 크지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자원투자부분은 꾸준하게 수익을 내면서 자리를 지켰다.

“이미 돼지고기와 대두의 가격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런가? “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식재료가 돼지고기랍니다. 그걸 요리하는 게 필요한 게 기름이고요. 게다가 중국경제의 성장률은 이미 7%이상입니다. 이것도 보수적으로 추정한 거고 낙관적인 전망치는 10%를 넘습니다. “

“놀라운 일이로군.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건가?”

“미국이 경제성장률이 회복되었다고 해도 3%를 넘기기는 힘듭니다. 중국시장의 성장률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원자재의 소모량도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힘듭니다. 석유와 석탄, 철강 같은 원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한다면 국제 자원가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격이 폭등하겠군. “

아론과 대화를 나누면서 레온은 규태가 리만의 자원투자를 늘리라는 지시를 이해했다. 이건 누가 봐도 황금시장이었다.

“대주주가 자원 거래 쪽의 투자 포지션을 늘리라더군.”

“정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다섯 배까지 투자포지션을 늘려주겠네. 이사회를 거쳐야겠지만 큰 반대는 나오지 않을 거야.”

이사들도 눈치가 있으면 자신의 결정에 거스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미 과반의 이미 대주주의 지분은 과반을 한참 넘겼고 대주주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회사경영을 맡겼다. 거기에는 이사들과 임원들의 인사까지도 포함된다.

“하아, 정말 이제부터 제가 능력을 보여줄 때로군요.”

“그래 한번 잘해보게. 회사에 두 개나 자네위로 빈자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자리이야기에 아론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리만 브라더스의 CFO인 제임스 스튜어드가 은퇴하면서 자리가 하나 생긴데다가 기존에 레온이 차지하고 있는 투자총괄 임원자리도 이번기회에 적임자를 찾겠다는 소리였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일 기분 좋은 일이 위로 승진해서 올라가는 게 아닌가.

힘을 얻어서 돌아가는 아론의 모습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대주주가 전적으로 힘을 실어 준다지만 이젠 슬슬 자신도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였다.

회사내부의 젊은 피들에게 경쟁을 시켜서 이기는 놈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전에는 혈연과 연줄로 비루한 능력을 가지고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놈이 있었지만 자신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한 그 꼴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실적을 보여주는 자만이 이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

***

911테러로 충격에 빠져들었던 미국사회도 이젠 안정을 되찾았다.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아프간 전쟁도 승리선언으로 마무리가 되면서 미국인들의 관심은 국가안보와 먹고사는 문제로 향했다.

별 제지 없이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이 많아지며 미국입국은 확실하게 어려워졌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국토안보법안도 예전과 다르게 커다란 반대 없이 통과되었다.

그만큼 911테러는 미국인들의 생각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틀어박혀서 혼자 놀고 싶어 하는 고립주의 성향이 기저에 짙게 깔려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911이후로 진짜 바쁜 사람은 루드 터너였다. 그가 중점적으로 관장하는 CNN과 CBS 방송은 테러가 발생한 이후부터 눈코 뜰세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오랜만에 시간이 났다면서 팔로알토에 들린 루드의 모습은 크게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여긴 웬일이에요? 또 잠적하려고요? ‘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잠적은!”

규태의 말에 펄쩍 뛰지만 루드의 눈동자가 거칠게 춤을 추는걸 보면 보나마나였다.

“이번엔 누구랑 사라지는 건데요?”

“흠흠, 그게 말이야. 끝내주는 여자를 발견했거든.”

“제인은 어쩌고요?”

아내는 어디다 처박아두고 또 잠적하냐는 규태의 말에 어지간한 터너도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보나마나 이번에도 이혼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바람둥이 치고는 꽤 오랫동안 제인과 함께 산다 싶었다.

제인이 터너의 어린 시절부터 이상향이었다니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하긴 한 것이다.

“나에게 결혼이란 게 맞지 않았다는 걸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네.”

“오호! 그렇군요. 정말 좋은 소리네요.”

“........”

“결혼이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나한테 결혼하라고 한동안 결혼생활을 찬미하던 사람은 어디 갔나 보죠?”

“......그렇게 비꼬진 말고.”

이번이 세 번째 결혼파경 이었으니 어지간한 터너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진짜 제인을 찾아가서 위로라도 해줘야겠네요. 그럼 둘이 이혼합의는 한건가요?”

“그래 최종적으로 재산문제도 끝냈으니 이젠 발표만 남은 셈이지.”

“그래서 도망가는 거로군요.”

할리우드를 노리는 파파라치들이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터너가 아무리 CNN과 CBS를 이끌고 있어도 이번 같이 큰 사건은 막지 못한다.

“흠흠, 남아 있어봐야 파파라치들이 극성을 부릴 테니까.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최선이야.”

“그런데 웬일이에요. 터너가 이렇게 친절하게 찾아와서 잠적사실을 알려줄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말을 돌리지 말고 찾아온 이유를 밝히라는 말에 터너가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어제 럼스펠드가 나에게 찾아와서 온갖 험한 소리를 하더군.”

터너의 말에 규태가 얼음처럼 차가운 웃음을 웃었다.

“보나마나 나한테 경고하는 소리겠군요. 그자식이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던가요?”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결국은 자네한테 몸조심하란 소리였지. 자네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엘 고어의 편을 들어서 일을 벌였다면서.”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것으로 여기고 있다가 졌으니까 울분이 풀리지 않는 건 이해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닌다는 건 죽고 싶다는 소리였다.

젊은 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인간관계도 깨끗해서 43살의 나이에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방장관을 연임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쟁이가 되었다.

원래라면 부시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말아먹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최악의 국방부장관이란 평가를 듣는 인물이었다.

부통령으로 부시와 함께 출마한 딕 체니가 럼스펠드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이 레드넥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 매파의 상징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부시행정부에서 진짜 실질적으로 실권을 쥔 인물은 부통령 딕 체니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