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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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선
제리의 말은 야후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책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인터넷 검색시장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유지중인 야후라고 해도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엄청난 공격을 받을게 뻔했다.
경쟁포탈들이 때다 하고 이를 갈며 덤벼들 것이었다.
“끄응, 이거 아주 어려운 문제로구나.”
“내가 말했지. 유료화이야기를 꺼내거나 사용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경쟁포탈들이 만세를 부를 거라고.”
그렇게 한국에서 인터넷 포털의 절대강자였던 다음이 무너졌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점유율이 밀려나면서 한 번도 뒤집지 못하고 결국에는 카카오에게 기업을 넘기고 흡수합병 당한다.
순간의 선택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아직까지 제대로 현금이 나오는 캐시카우를 만들지 못한 인터넷 기업들은 조급증을 느껴야 하지만 야후는 꾸준하게 현금을 벌어다 주는 야후 마켓과 야후 게임을 가지고 있다.
두 부분에서 나오는 현금수입으로 꾸준하게 흑자폭을 늘려가면서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 독보적인 주가흐름을 보여주었다.
“올해 야후의 매출하고 흑자가 얼마나 되지?”
“50억 매출에 17억 달러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어.”
“확실히 예전보단 많이 늘어났군.”
“매출과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지. 그만큼 투자도 많이 해야 한다는 게 골치 아프지만.”
“야후 홀딩스 수익을 보니까 어떠냐?”
한때는 꾸준하게 늘어나는 이익과 현금을 전부 가져가서 야후 홀딩스에 묶어두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닷컴버블에 활발하게 증자를 해서 거두어들인 현금으로 야후 홀딩스는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300억 달러의 원금을 700억 달러에 가깝게 불렸으니 야후는 말 그대로 현금부자였다.
“고오맙게 생각한다. 네 말대로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투자를 해두었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아니면 증자를 추가로 할 뻔했어.”
“지금 증자를 하면 받아줄 투자자는 있을 것 갔냐?”
“......”
자신감이 넘치는 제리지만 쉽게 대답을 못했다.
그만큼 닷컴버블이 꺼지고 난 뒤의 실리콘 벨리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아직도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새로 생겨나는 벤처기업보다는 문을 닫는 벤처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저히 망하지 않을 생각했던 기업들도 차례로 휘청거렸다.
규태와 제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마크가 끼어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위기가 계속될까? 대통령이 바뀌고 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냐? 엘 고어는 평소에도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잖아.”
“글쎄, 그걸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냐?”
“넌 감이 좋잖아. 그러지 말고 한번 예측을 해보라니까?”
함께 있던 제리까지 더불어서 눈빛을 빛내는 걸 본 규태가 머리를 내저었다.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규태가 입을 열었다.
“아마 최소 1년은 이 어려운 시기가 계속된다고 봐야지. 닷컴 버블이 어마어마 했잖냐. 그 여파가 쉽게 가라앉기를 바라는 건 무리야. 그렇다고 해도 이게 무한하게 계속 진행되지는 않을 거야. 내년 가을쯤 되면 가라앉지 않을까 한다.”
원 역사에서는 2002년이 되어서야 닷컴버블 붕괴의 파장이 가라앉고 나스닥이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일찍 살아날 것 같았다.
살아나려고 할 무렵에 재를 뿌렸던 엔론과 월드닷컴을 미리 잘라버렸기에 낙폭이 깊지만 일찍 살아날 기반을 만들어 두었다.
아직도 위기가 계속 될 거란 전망에 두 사람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것도 잠시 성격 좋은 마크가 입을 열었다.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애플주식은 왜 계속해서 쥐고 있는 거야? 넌 잡스를 좋아하지 않잖아. 이번에 전부 팔아 버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계속 사들이더라. 오라클도 마찬가지고.”
“사업을 개인감정으로 하냐! 내가 개인적으로 잡스나 래리 엘리슨을 좋아하지 않는 거랑은 별개라고.”
“이 자식은 애플에 꿀이라도 발라 뒀나봐. 수시로 애플의 제품 개발 진행 상황을 체크 한다니까. 야후에도 조금 그렇게 해봐라. 바빠 죽겠는데 한손 보태지는 못할망정.”
“신제품 개발 진행 상황? 애플에서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거야? 잡스라면 기대해도 되잖아?”
누구보다 신제품 개발에는 관심이 많은 마크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 슬슬 정수리 쪽으로 머리 경계선이 후퇴하는 놈이 이런 눈빛을 하는 건 언제 봐도 역겨운 일이다.
“언제 적 잡스라고 이제 한 물, 아니 두 물은 간 사람인데.”
마음속으로 잡스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규태가 애플에 많은 관심을 두는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잡스가 MP3 플레이어를 만들고 있는데 개발자금이 부족해서 내가 자금을 투자했지.”
“MP3 플레이어? 그건 조금 기대 밖인데. 이미 제품이 많이 나와있는거잖아. 생산하는 회사가 한 두곳도 아니고, 잡스라면 아예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 낼 줄 알았는데.”
마크의 실망했단 반응에 규태가 혀를 찼다.
“애플은 이제 막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신개념 제품 개발은 무슨. 지금 만들고 있는 제품이 성공해서 현금이 쌓이면 그때 잡스가 능력을 발휘해도 하겠지.”
“신제품 개발은 무슨, 잡스가 언제 적 잡스냐? 마크 이 녀석은 잡스를 추종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니까.”
제리가 코웃음을 쳤다.
규태는 제리가 잡스에게 경쟁심을 가지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실리콘 벨리의 전설중 하나로 자리 잡은 잡스에게 경쟁심을 가질 만큼 그가 관장하는 야후의 성장은 빨랐다.
“넌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데이터 센터는 꾸준하게 만들고 있지.”
“그럼 그게 핵심이라면서. 현금 자금이 만들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데이터 센터를 만들고 있다. 이게 엄청나게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한꺼번에 진행하기는 힘들고 거기에다 물류보관센터까지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게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더라.”
미래 아마존의 역할을 야후에게 맡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아마존이 어려움을 겪을 때 파산시켜 버린 것이니까. 경쟁자는 싹을 잘라버려야 후환이 없다.
“그래서 하기 싫다고? 하기 싫으면 말해.”
“아니 그건 아니고.”
죽는 소리를 하고 엄살을 피우는 제리의 기세를 규태가 꽉 눌러버렸다. 실리콘 벨리에서 제법 이름값이 올라갔다고 슬슬 규태의 머리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미리 미리 기세를 죽여 놔야했다.
제리 녀석은 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구석이 있었다.
“마윈하고는 요즘도 연락을 해?”
“가끔 마윈이 너한테 고맙다고 말을 전해달라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손정의 사장이 이번에 대규모로 알리바바에 투자했다던데? 들은 거 없어?”
“그건 손사장이 알아서 결정한 거야. 나는 거기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래 잘못안건가?”
“내가 관여한 투자는 텐센트하고 바이두지. 그쪽은 손사장도 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있더라고.”
마크와 제리가 이야기를 듣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갑자기 왜 그래?”
“두 회사 말이야 성장세가 미쳤더라. 텐센트의 QQ만 해도 가입자숫자가 5000만이 넘었더라. 조만간에 1억을 찍겠던데. 앞으로도 이런 성장속도라면 얼마까지 가입자가 늘어난다는거야?”
“바이두도 마찬가지야. 야후 차이나나 차이나 닷컴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지? 정말 중국의 인구가 많기는 한가봐. “
총인구수가 12억이나 14억이니 말이 많았지만 확실히 중국의 인터넷 가입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어지간하면 가입자숫자가 훌쩍 1억을 넘어가니 그 인구의 위력 앞에 입을 저절로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싫으냐?”
“아니 좋다고, 우리도 투자한 게 있으니까. 지금이야 큰 수익이 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겠지.”
마원을 소개한 사람답게 제리도 알리바바에 개인적으로 지분을 투자했다. 옆에 있던 마크도 은근 슬쩍 한 다리를 끼었다.
텐센트와 바이두에도 2%가 넘는 지분 투자를 하면서 앞으로 기대가 되는 중국 인터넷 기업에 모두 투자를 하게 된 셈이었다.
“기대? 야! 너희들 이제 10년만 지나면 그 주식들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될 거다.”
“에이! 그렇게 까지야 되겠냐? 중국의 경제규모가 커져야 하는데 그정도까지는.”
“내말을 믿기 싫으면 관두던가.”
알리바바는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면서 주가가 올라가기 시작해 1조가 넘는 시총을 가진 기업이 된다.
텐센트는 나스닥에는 상장하지 못했지만 비슷한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이 된다.
바이두는 이 둘에 비해 작지만 그래도 전성기에는 2000억 달러가 넘는 규모를 성장하는 기업이다.
믿지 못하겠다는 마크와 제리의 반응에 규태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둘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라도 추가로 투자해야 하나?”
“여유자금이 조금 남아 있는데.”
호들갑을 떠는 친구들의 모습에 규태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쪽에서 잘도 추가 투자를 받아주기도 하겠다. 앞으로 추가투자는 고사하고 가지고 있는 지분도 뱉어내라고 덤벼들 걸.”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우린 미국투자자들인데 가지고 있는 주식을 강탈한다고?.”
냉큼 믿지 못하는 마크와 다르게 대만출신인 제리는 규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중국시장은 조금 달라. 규태의 말처럼 언제라도 권력자가 기업에 끼어들 수 있는 풍토라고.”
선뜻 믿지 못하겠단 반응을 보이던 마크도 제리까지 그렇게 말하자 납득을 했다.
“하긴 거긴 공산국가지.“
경제성장을 위해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언제라도 얼굴을 돌변해서 개인의 재산을 침탈하는 걸 예사로 여기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독재국가들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중국은 그렇게 깽판을 치고도 버틸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랄까.
“그러니까 너무 깊숙하게는 들어가지 말고, 팔고 나올 때 힘들다.”
이젠 척하면 척이라고 규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둘 모두 금세 알아차렸다.
“응, 알았다.”
중국의 투자문제를 이야기하다보니 앞으로 중국의 절대 권력자로 부상할 인물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미리미리 약을 쳐놔야겠지.
상해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주석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곧바로 쳐내는 괴물 같은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다.
무색무취한척 하면서 지방정부를 전전하며 기회만 엿보고 있을 승냥이를 어떻게 꼬드겨서 이득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