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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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 왕조
2000년은 LA 레이커스의 전성기가 시작된 해였다.
조던이 은퇴하고 뚜렷하게 왕조를 건설한 팀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샤킬 오닐과 코비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감독 필 잭슨을 영입해한 레이커스는 99-2000 시즌 내내 승승장구했다.
서부 컨퍼런스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새크라멘토 킹스를 3:2로 힘겹게 꺾고 피닉스 선스를 4:1로 가볍게 제압했다. 이어진 포틀랜드와의 시리즈는 최종 7차전까지 가는 악전고투 끝에 4:3의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인디애나와의 대망의 파이널.
규태는 바쁘게 몰두하던 업무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았다.
“아이고, 진짜 오랜만입니다. 야구장에서 자주 가시는 것 같던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레이커스 사장 제리웨스트가 오랜만에 얼굴을 본 규태에게 투덜거렸다.
구단을 인수하면서 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서 사실상 관심을 끊다시피 했던 것이다.
제리 웨스트를 사장자리에 앉히고 전권을 넘기고 풍부한 자금을 지원했다곤 해도 바로 옆에 있는 다저스에 보인 관심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말로만 약속하지 말고 행동을 보여 달란 말입니다. 행동을.”
누가 영감 아니랄까봐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는 제리웨스트를 이런 저런 말로 달랬다.
제리 웨스트가 입으로는 불평을 늘어놓아도 풍부한 자금을 지원하면서도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는 규태에게 큰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 더 레이커스에 신경을 써달라는 투정이었다.
경기 전의 행사가 진행되는걸 보며 제리 웨스트가 규태에게 말했다.
“지난 포틀랜드와의 경기는 진짜 아찔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지 모할 정도로 접전을 벌였으니까요.”
“저도 TV로 경기를 지켜봤지만 진짜 힘들게 이기더군요. 4쿼터 중반까지 75 : 60으로 끌려갔으니.”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막판에 선수들의 슛 감각이 살아나면서 경기를 뒤집었지만 규태도 설마 지는 것인가 잔뜩 긴장하면서 경기를 지켜봤었다.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경쟁자들은 많았다.
경기시작과 함께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레이커스였다.
전문가들은 골밑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레이커스의 우세를 점쳤지만 게임은 해봐야 아는 것이다.
경기초반부터 골밑을 압도한 샤킬이 연속해서 점수를 얻어냈다.
통쾌한 샤킬의 덩크슛이 들어가자 작년에 새롭게 지어진 19,000석의 홈구장 스테이플스 구장을 가득채운 레이커스의 팬들이 지르는 환호성으로 실내가 윙윙거렸다.
확실히 규태가 즐겨보던 다저스 야구장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레이커스 팬들 가운데 다저스 구장은 자주 찾았던 규태가 팀을 인수한 이후로 자주 찾아오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규태가 파이널 경기를 직관하는 것은 이런 불만을 잠재우고 마이클 조던의 불스왕조이후로 새롭게 왕조를 구축하는 레이커스의 경기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NBA는 마이클 조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급속하게 시장규모가 커졌다. 선수들의 연봉도 2,000년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올라갔다.
경기전에 규태에게 털어놓는 제리 웨스트의 걱정도 빠르게 늘어나는 선수연봉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였다.
“샤킬 오닐이 버티고 코비의 기량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서 레이커스의 우승가능성이 높지만 앞으로도 어떻게 이전력을 유지할지가 관건입니다.”
“NBA는 셀러리 캡을 위반하면 벌칙이 너무 쌔서. 올해가 3,400만 이죠?”
돈이 없는게 아니지만 셀러리 캡을 넘었을 때 처벌조항이 강력했다. 아직 신인인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리를 잡으면 확실히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였다.
래리 버드 조항같은 예외조항을 최대한 활용해서 샐러리 캡의 부담을 줄이는게 팀전력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최대한 이리저리 맞춰봐야죠.”
“최악의 경우에는 사치세를 부담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돈이 없는게 아니니까요.”
제리 웨스트에게 만족할만한 대답이었는지 규태의 옆에 앉아 늘어놓던 잔소리가 줄어들었다.
“저기 잭이로군요. 손이나 흔들어주세요.”
할리우드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인지 특히 영화배우와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레이커스를 많이 응원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팬은 역시 잭 니콜슨이었다.
평소에도 시간만 나면 경기를 보러 오는 열성팬인 잭 니콜슨이 88년의 우승이후로 12년 만에 파이널에 진출한 레이커스의 경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 경기를 지켜보러 달려온 잭이 규태를 보고 경기시작 전에 손 인사를 했다.
이미 파티장에서 만나 서로 안면은 익힌 사이였다.
코비의 시원한 3점 슛으로 24점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레이커스가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가자 경기장의 응원열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규태도 제리와 함께 초반부터 훌쩍 점수를 쌓아가는 선수들을 보며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1차전은 샤킬오닐이 날아다닌 경기였다.
1쿼터에 33 : 18 로 앞서나가더니 3쿼터까지도 쭉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4쿼터까지 40 포인트의 득점에 1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인디아나의 골밑을 폭격했다.
상대적으로 인디아나의 레지 밀러는 16개의 슛을 던져 하나만이 들어가는 극악의 난조를 보였다.
3쿼터까지 12점까지 격차가 줄어들었지만 마지막 4쿼터 들어서 샤킬 오닐이 다시 한 번 폭발적으로 상대 골밑을 터트리면서 104 : 87로 1차전을 잡아냈다.
2차전 1쿼터 접전을 벌이다 코비가 발목 부상을 당해 밖으로 실려 나가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레이커스에는 백전노장인 라이스와 하퍼가 있었다.
샤킬을 막는 반칙 전략을 들고 나온 샤킬은 40개가 넘는 자유투를 던졌다.
성공률이 50%가 넘지 못했지만 샤킬의 골밑 위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40득점 24리바운드를 기록한 샤킬의 활약덕분에 111: 104로 2차전까지 승리를 거두었다.
이틀 동안 스테이플스센터에서 파이널 경기를 규태였지만 인디에나 폴리스에서 벌어지는 3,4,5차전의 경기는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
3차전은 레이커스의 패배, 4차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다가 샤킬이 6반칙 퇴장을 당하면서 또다시 패배를 당하나 했지만 코비의 연장 마지막의 골로 레이커스가 승리를 거두었다.
5차전은 인디애나의 에이스 레지 밀러와 제일런 로즈가 함께 폭발하면서 2쿼터까지 30점이 넘는 점수 차로 벌어지며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다.
시리즈전적 3승 2패를 기록한 가운데 6,7차전은 다시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플스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
규태는 인디애나까지 찾아가 파이널 경기를 관전하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잡힌 잡스와의 약속 때문에 원정경기를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라면 가볍게 여겼겠지만 잡스는 달랐다.
잡스는 다시 애플로 복귀한 이후로 명성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다 죽어가던 애플은 잡스의 복귀이후로 아이맥의 판매호조로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닷컴버블의 붕괴는 애플의 주가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다.
59달러가 넘었던 주가가 20달러 선까지 대폭하락하고 현금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앞으로의 주가전망도 좋지않았다.
규태는 52%의 주식을 가진 대주주의 권한으로 잡스의 애플복귀를 지원했지만 이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내버려 두면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테니까. TV로 레이커스의 파이널 5차전을 지켜보던 규태가 33점의 점수 차로 대패한 결과에 한숨을 쉬었다.
“5차전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서 걱정이네요. 잡스는 어떤 일로 만나고 싶다고 하던가요?”
“특별하게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선한의 말에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절반이상의 주식을 가진 대주주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는 건 잡스다운 행동이었다.
잡스도 규태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규태와 잡스의 사이는 데면데면했다.
서로 소 닭보듯 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서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걸까요?”
“아니면 신상품을 개발하는데 내부의 반대가 심해서 우리쪽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 일수도 있죠.”
규태가 기억하기론 이시기쯤이면 아이팟의 개발이 한참 진행 중일 것이었다.
2001년 처음으로 판매되는 아이팟은 무겁고 가격도 비싸다는 이유로 전문가들로부터 실패작이 될 거란 소리를 들었지만 반대로 대성공을 거둔다. 2004년 MP3시장의 점유율 70%를 기록하며 애플 회생의 상징적인 제품이 된다.
잡스의 마케팅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
애플의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와 팔로알토는 바로 인접해 있다.
“오랜만입니다.”
악수를 나누며 살핀 잡스의 얼굴색은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병을 앓기 전이라 그런지 한참이나 젊어보였다.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았는데 받아줘서 고맙네.”
“잡스가 만나기를 원하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죠. 요즘 아이맥이 잘 팔린다면서요.”
내부가 훤하게 보이는 아이맥의 성공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애플을 살린 건 물론이고 스티브 잡스의 이름도 다시 한 번 부활시켰다.
“그 정도야 뭘. 나니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야.”
잡스답지 않게 겸양을 떠는가 했더니 역시 잡스는 잡스였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애플에서 내년에 시판할 신제품의 개발 자금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네.”
규태가 짐작하던 요청이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이 자금사정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신제품을 개발하는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시장이 좋으면 증자를 해서 개발 자금을 마련했겠지만 애플이 상장된 나스닥의 상황은 진짜 엉망이었다. 2,000선이 깨진다 싶더니 어느 사이 1,500까지 주가가 내려앉았다. 극단적인 비관론자들은 나스닥 지수 1,000이 깨질까 두려워했다.
지하실 밑에 지하2층이 존재하는 꼴이다.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되어서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은 어려웠다.
“정확하게 얼마를 원하는 겁니까?”
“3억 달러를 지원받기를 원하네. 요즘 재정사정이 좋은 곳은 자네쪽이 유일하더군.”
“전에 말하던대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하려는 거로군요. 사내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사내에서 반대의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내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한 MP3의 개발에 회의적이었다. MP3 제품은 선발주자로 나선 기업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블루오션을 넘어 레드 오션에 가까운 시장에 굳이 애플이 진입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그건..... 이걸 한번 보게.”
잡스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와우! 이걸 벌써 만들었구나!’
보여준 것은 아이팟의 최초모델과 거의 흡사했다.
원형모양의 휠이 장착된 하얀 색깔의 제품은 단번에 규태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만큼 시대를 앞선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잡스가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위해 디자인 담당 조너선 아이브가 갈려나간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규태는 시치미를 뚝 때고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애플에서 개발 중인 MP3 모델이네. 늦어도 내년까지는 제품을 생산해서 유통할 생각이야. 멍청이들은 모르겠지만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야. 기존에 시중에 돌아다니는 MP3는 이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아.”
잡스는 아이팟을 하나의 패션용품처럼 선전해서 팔았다.
아이팟은 경쟁제품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제품이 발매되자마자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젊은 미국인들은 하나의 유행처럼 아이팟을 소유하길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