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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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의 분식회계
눈빛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이미 지난 과거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아마존은 버블이 붕괴된 이후에 살아남았지만 계속 불안한 상태를 유지했다. 워낙 전국적인 물류 거점을 만드는 돈이 막대하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아마존의 비상이 시작된 것은 물류의 배급망이 정비된 이후다. 막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미 야후 마켓이 물류망을 선점하며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어 나갔다.
야후는 자체적인 자금조달로 충분히 전국적인 물류망을 갖출 능력을 보유한 조직.
닷컴버블에도 가장 주가하락이 작은 종목의 하나였다.
1/4분기의 영업이익이 벌써 5억 달러를 넘었다.
“이번 위기에서 살아만 남는다면. 살려줄 필요가 있는지는 고민을 해봐야지.”
생각해보면 굳이 엄청난 경쟁상대가 될 아마존을 살펴줄 필요가 없었다. 아마존의 대주주인 제프는 나중에 아마존 주가가 폭등하면서 세계제일의 부자자리를 다투는 부호가 되었지만 직원들의 급여나 복지는 최악을 달리는 블랙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다.
“매킨지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사실 제프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캐서린은 이미 규태가 제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나도 그래. 내가보기에는 제프는 슬픔은 나누려고 들고 기쁨은 혼자 독식하려는 인간처럼 보여 살려준다고 해도 나중에는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단 말이야.”
인간성을 따지자면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조프나 비슷한 인간들이지만 능력은 꽤 차이가 난다.
제프가 뛰어난 점은 위기를 극복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과 많은 회사 지분을 손에 쥐고 있어서 주식평가차익이 크다는 것뿐.
잡스가 죽은 이후에 후계자로 제프가 물망이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누구도 제프를 스티브와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잠시 고민을 한 규태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웬만하면 역사를 바꾸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마존은 밟아줄 필요가 있었다. 원 역사에서도 블랙기업으로 악명높았던 아마존은 이미 직원들을 갈아넣어 비용을 최소화하는 기업이었다.
벌써부터 싹이 노란 아마존을 굳이 살려서 키워줄 필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존은 그냥 포기하도록 할게. 방금 아마존에 자금투자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어.”
“호오! 그럼 야후 마켓을 더 키우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마존이 문을 닫으면 나중에 독점시비가 걸릴 것 같으니까 야후마켓은 분사를 하는 게 좋겠지. 이베이를 조금 키워줘서 독점논쟁에서 벗어나야지.“
그나마 온라인 마켓에서 야후마켓과 경쟁을 벌이던 아마존이 무너진다면 남는건 이베이 밖에 없었다.
“그럼 나도 이베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겟네.”
규태와 대화를 하면서 투자할 기업을 정한 캐서린이었다.
“온라인 시장의 마켓 셰어를 나누어야 한다면 확실히 아마존보다는 이베이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야후 홀딩스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오선한도 적극적으로 아마존의 지원에 반대했다.
달려온 제리도 아마존보다는 이베이에 대한 지원을 선호했다. 어지간히도 주변에서 미움을 받는 제프였다.
그리고 타이거 펀드와 타이거 벤처, 야후 홀딩스의 아마존 지원 거절소식은 실리콘 벨리에 금방 퍼져나갔다.
가뜩이나 자금이 바닥난 아마존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
규태의 방에 모여서 출근하자마자 하는 회의는 가벼운 차 한 잔을 놓고 구태와 마크, 제리가 함께 수다를 떨 듯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지만 평소와는 달리 오선한과 해롤드까지 참석한 오늘 다루는 내용은 다루는 내용은 외부에서 들으면 정말 곤란한 내용이었다.
“아마존의 제프 사장에게서 수차례 연락이 왔지만 보스의 지시대로 비서실에서 모두 거절했습니다.”
“잘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아질 겁니다. 지시하지 않은 회사의 방문요청은 모조리 거절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나스닥 사장기업가운데 일부분을 제외하면 비틀거리지 않는 회사가 없었다. 원역사의 닷컴버블보다 더 혹독한 시련이 닷컴기업을 뒤덮었다. 비서실로 자금 지원을 요청이 쇄도했지만 미리 약속을 잡지 않는 한 모두 거절이었다.
그다음주제는 월가와 실리콘 벨리 양쪽에서 관심을 갖는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사가 어떻게 굴러가는 가였다.
규태가 해롤드를 보고 물었다.
“AOL은 회사사정이 어떻다고 합니까?”
“합병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말이 평등한 합병이지 실제로는 AOL을 중심으로 타임워너를 인수한 계약이지만 주가하락으로 AOL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합병회사의 이사회에서 AOL출신들이 힘을 잃고 밀려나고 있습니다. 쉬쉬해서 그렇지 올해 발생한 적자규모가 심각하단 말이 있습니다.”
“적자가 그렇게 심각한가요?”
“인터넷 접속서비스(ISP)시장에서 AOL이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터넷 접속서비스의 이용자들이 매달 일정한 돈을 내는 유료사이트에서 큰 메리트를 찾지 못해서 무료접속서비스의 이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 사업구조가 잘못된 게 아니라니까. 이제 AOL은 저무는 해고 우리는 떠오르는 해라고 할 수 있지. 하하하.”
제리가 콧대를 높게 세웠지만 자리에 함께한 누구도 그걸 탓하지 않았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야후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였다.
규태의 권유대로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닷컴 주식을 전부 정리하고는 야후와 SSC의 지분투자를 늘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투자한 자산가치가 올라간다는 소리인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제리사장의 말대로 당장 야후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하게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경쟁 사이트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야후의 아성을 당장 무너트리는 건 힘들어 보입니다. 보수적이고 조직을 중시하는 타임워너와 진취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AOL의 만남은 실패했습니다.”
“실패정도가 아니라 역대급 폭망이 나올 것 같은데요?”
규태의 암울한 전망에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망한다고 해도 한때 AOL의 시가총액이 3000억 달러에다가 타임워너도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를 넘겼던 대규모 기업 간의 합병이었다.
AOL 타임워너는 어느 정도 삐걱거리다가 서서히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마 그렀기야 하겠어? 손해를 보기는 보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안갈 것 같은데?”
“.......”
규태의 말에 다들 의아해했지만 이어지는 규태의 설명에 점점 빠져들었다.
“인터넷 유료접속서비스 가입자 숫자가 닷컴버블이후로 급격하게 줄고 잇는데 이런 추세라면 현재 AOL의 시장점유율이 50%에서 10% 밑으로 추락하는 게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내가 볼 땐 2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 AOL 타임워너의 적자폭이 해마다 커지면서 2002년에 1,000억 달러의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며 역대 최악의 합병으로 기록된다.
“내부적으로는 어때요? 제럴드 레빈하고 스티브 케이스가 경영권을 두고 엄청 싸움을 벌일 텐데.”
“보스의 말씀처럼 지금 AOL 타임워너는 기업문화의 차이로 인한 경영의 혼선을 빚는데다가 닷컴버블의 충격을 직격으로 두드려 맞은 AOL의 주가하락으로 지분구조는 AOL이 55%로 타임워너보다 많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제럴드 레빈 CEO가 이사회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애초에 실리콘 벨리에서 성장한 젊은 벤처기업가 스티브 케이스와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적인 미디어 기업의 노련한 능구렁이 제럴드 레빈 사이의 권력 다툼은 누가 봐도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규태가 해롤드의 보고에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부터 잘못된 결합이었어요. 1년만 지나도 두 회사의 합병은 역대급 M&A의 실패사례로 꼽히게 될 겁니다. 만약 내가 AOL 타임워너의 경영자라고 해도 이질적인 두 기업을 제대로 융합시키고 정상궤도로 진입시키려면 10년은 고생할걸요.”
인터넷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만큼 콘텐츠의 소비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콘텐츠를 보유한 기업의 가치가 증가하지만 규태가 볼 때 아직은 두 산업의 결합은 너무 일렀다.
마블이나 DC 정도의 기업과 인수합병이라면 지금이라도 환영이지만 타임워너 같은 공룡처럼 큰 덩치를 가진 콘텐츠 기업과의 합병은 시기상조였다.
규태가 MGM과 디즈니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야후와 디즈니의 합병을 추진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질적인 기업들을 하나로 묶으려 시도해봤자 남는 게 없는 작업이었다.
차라리 지분만 소유하고 경영은 지금처럼 따로 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닷컴버블의 붕괴 전에는 AOL 타임워너의 합병처럼 디즈니와 야후의 합병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AOL 타임워너의 잘못된 결합이 주는 폐해를 보면서 그런 소리가 사라졌다.
“어휴, 잘못했으면 박살날 뻔 했다. 나도 타임워너는 조금 탐이 났었거든. 제럴드 레빈 그 작자, 말을 얼마나 잘하던지 네가 말리지 않았으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
원래 역사에서 제럴드 레빈은 루드 터너를 꼬드겨서 CNN을 먹고는 그대로 팽해버린 악마의 주둥이였다.
스티브 케이스가 제럴드 레빈의 화려한 혀놀림에 넘어가서 빠르게 합병을 추진했지만 결과물은 역사에 남을 실패작이 될 확률이 점점 커져갔다.
제럴드 레빈의 합병 레이더에 야후도 들어 있었던지 제리가 몸서리를 쳤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잖아 제럴드 레빈의 혀를 조심해야 한다고.”
“겉보기는 신사처럼 멀끔하게 생겨서는 속은 뱀이나 다름없으니.”
“레빈이 타임워너 같은 대기업에서 CEO에 올라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권력다툼을 벌였겠냐. 너같이 순진한 녀석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야.”
여느 때 같으면 반발했을 제리도 보는 게 있는지라 규태의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그러게 말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심각하게 반성하고 있다. 이질 적인 기업을 묶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넥타이 맨 인간들하고 청바지 입은 인간들이 모여서 의견을 모으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이야.”
제럴드 레빈 실책이라면 나스닥시장이 이렇게 갑자기 무너질 줄 몰랐다는 것 정도.
“그래도 지분은 AOL이 55%로 많이 가지고 있잖아? 스티브 케이스가 순순히 밀려날까?”
“AOL 대주주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레빈의 편을 들어주니까 문제지. 중립적인 이사들이 보나마나 레빈의 손을 들어줄 테니까. 이사회에서 스티브 케이스의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걸.”
마크가 옆에서 혀를 찼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렇게 편을 나눠 싸워봐야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어지간히 싸워대는 모양이로군.”
“다 망하는 회사라고 해도 경영권을 두고 권력다툼을 하는데 두 곳은 합병 전까지 둘 다 아주 잘나가는 회사였잖아. 나중에 어떻게 되던 지간에 일단은 권력을 손에 쥐고 보는 게 중요하니까.”
밖에서 보니까 손에 팝콘을 들고 재미있게 싸움구경을 하는 것이지 싸우는 당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칫 다툼에서 밀려나면 밑에 딸린 수많은 부하들의 목이 날아간다.
“SSC는 어때?”
“주식분할이후로 주가가 내리기는 했지만 50달러 선에서 굳건하게 버텨주고 있으니까. 큰 위험을 없는데 이베이가 어려운 모양이야. 대금지급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어.”
아마존을 포기하고 이베이를 살리는 쪽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정작 투자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려고 미적거리고 있었다.
최대한 자금지원을 미루고 미뤄 이베이의 자금사정이 바닥을 칠 때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시간을 두고 느긋하게 투자를 결정하자. 우리가 급할 건 없으니까.”
“그 말에 동의.”
“나도 찬성.”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밖으로 흘러나가면 진짜 곤란한 이야기야. 이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알고만 있고 다들 입조심들 해. 오늘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알지?”
새삼스럽게 거듭 보안을 강조하는 규태의 발언에 참석자들이 바싹 긴장했다.
“뭔데 그래?”
“내가 해롤드에게 조사하라고 한 정보가 있거든. 해롤드, 월드컴과 엔론의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둘 다 부실하기 그지없습니다. 월드컴과 엔론 모두 모회사의 부실을 유령자회사에게 몰아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하고 있습니다. 월드컴의 밝혀진 부실규모가 250억 달러, 엔론은 200억 달러까지 밝혀냈습니다. 두 회사의 분식규모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만 상당수의 다른 기업들도 이런 식의 회계처리는 조금씩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분식회계요?”
“그게 가능해요? 분식회계를 하는데도 증권거래소가 가만히 있는 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