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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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주식줍기
나스닥의 폭락으로 고통을 받는 건 벤처기업만이 아니었다.
한때 실리콘 벨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밀려오던 벤처투자자들도 커다란 손실을 입고 가진 자산을 정리해야 했다.
벤처 캐피탈도 마찬가지 커다란 손실을 입은 펀드들이 하나 둘 청산되었다.
문을 닫는 벤처 캐피탈의 숫자가 1/3, 커다란 손실을 입고 활동을 정지한 벤처 캐피탈의 숫자가 1/3, 살아남은 벤처캐피탈도 숨만 쉴 뿐 신규 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허리케인에 휩싸인 벤처 캐피탈업계에서 유일하게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은 곳이 타이거 벤처였다.
“신규 직원모집은 안할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왜요? 지금 있는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죠.”
나스닥의 침체가 기대보다 길어지며 감원이라는 검은 먹구름이 실리콘 벨리를 덮쳤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오라클같이 확실한 자금원이 있는 기업들도 제일 먼저 한일이 구조조정이었다.
나스닥이 활황일 때 벤처 캐피탈도 극심한 인력 쟁탈전에 휩싸였었다.
아니면 캐피탈을 그만두고 물주를 잡아서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많았다.
제일 규모가 큰 타이거 벤처도 엄청난 인력 유출에 시달려야 했었다.
한때는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 차릴까를 고민했던 직원들은 몰락하는 나스닥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타이거 벤처는 구조조정이란 명목 하에 사람을 자르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강현은 망한 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력들이 아까워서 그런 소리를 했겠지만 캐서린은 이제 벤처 캐피탈에 종사하는 인력의 풀을 한번 조정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아는 창업주들은 망하거나 망할 예정이었다.
차라리 새롭게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자를 데려다가 벤처투자자들로 키우는 게 장기적으로 나았다.
워낙 호황이 몇 년 동안 이어지다 보니 전문적인 벤처 투자자들도 허파에 바람만 들어서 사회 초년생일 때 대충 대충 일을 배운 사람들도 많았다.
“E 마운틴에 제법 유능한 인력들이 있습니다. 거기가 문을 닫아서 나온 사람들이 있는데요. 조셉은 캐서린도 전에 데리고 오고 싶어 했잖아요?”
“그건 예전 이야기고요. 이젠 시장이 변했잖아요.”
당분간 벤처창업 열기는 싸늘하게 식어서 새로 창업하는 기업들은 투자자를 찾기가 힘들다. 그들이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릴 곳은 당연히 타이거 벤처였다.
타이거 벤처의 경쟁자들도 많았지만 위기가 닥쳐오자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자금이 부족해서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곳은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자금을 투자하고 관리해야 하는 벤처회사들의 명단도 대폭 줄어들었다. 아직 IPO를 하지 않은 회사들 대부분이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중이었다.
“자금을 요청한 곳이 암젠과 시벨시스템스인가요?”
“예, 다른 곳들의 자금요청도 있었지만 자금지원요청이 가장 큰 곳이 두 곳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이름을 날린 암젠은 나스닥에 상장되어있지만 지속적인 연구투자로 추가적인 자금투자가 필요했다.
“두 곳에서 요청한 자금이 전부 얼마나 되죠?”
“암젠이 3,000만 달러 시벨 시스템스가 1,500만 달러의 자금을 요청했습니다.”
캐서린은 잠시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고심했지만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두회사에 자금지원을 하되 지분으로 받는 걸로 하죠.”
두회사의 IPO를 진행한 건 타이거 벤처가 아니었었지만 상장 전부터 5% 남짓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요청한 자금을 지원하면 암젠의 지분 4%와 시벨 시스템스의 지분 7%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나요? “
급격한 시장상황의 변화는 전반적인 업무의 폭주를 불러왔다.
“이디지털이 어제날짜로 최종부도처리 됐습니다.”
이디지털은 타이거벤처의 자금 2,500만 달러가 투자된 곳이다. 문제라면 이곳에 투자한 것이 캐서린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
캐서린은 타이거 벤처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유능한 파트너들을 영입해서 벤처기업들을 선정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겼었다.
“이디지탈은 분명 내가 정리하란 지시를 내린 것 같은데 아직 전부 정리가 안됐나요? 담당 책임자가 누군가요?”
“존이 최고책임자입니다.”
“이디지탈이 문을 닫으면 존이 맡은 벤처섹터에서 발생한 손실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강현이 가지고 있던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6,700만 달러의 투자자금이 날아갔습니다.”
“하! 그게 전부인가요? 이디지탈 말고 존이 담당한 섹터에서 발생한 손실이 전부 얼마나 되죠?”
파트너가 책임지는 투자부분에 대해서는 캐서린도 최대한 자율권을 주었었다.
“투자한 벤처기업 가운데 열다섯 곳이 무너지면서 전부 4억 5천만 달러가 날아갔습니다.”
“망한 회사가 어디어디인가요?”
“이디지탈과 코즈모, 이토이스, 자린닷컴,........, 유커머스가 문을 닫고 파산했습니다.”
회사이름을 들을 때마다 캐서린의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내려앉았다.
“하아! 진짜 할 말이 없네요.”
캐서린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분명히 나스닥이 좋지 않을 거라고 파트너들에게 명단을 던져주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지분을 정리하란 지시를 내렸는데 깨끗하게 무시를 당해버린 것이다.
“이디지탈하고 코즈모는 내가 지분을 정리하라고 한 기업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존 이 개자식이 내 지시를 깨끗하게 무시했다는 소리군요.”
얼음처럼 차갑게 변한 캐서린의 얼굴을 보며 강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존이 맡고 있는 펀드의 손실에 크지만 다른 벤처펀드들하고 비교하면 결코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닙니다.”
강현은 존과 큰 친분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조언을 할 필요는 있었다.
존이 맡고 있는 펀드의 투자금액은 전부 80억 달러, 지분가치가 하락한곳도 잇고 부도가 난 곳도 있으면서 가치가 반이하로 떨어졌지만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실적은 아니었다.
진짜 좋지 않은 곳은 벤처펀드의 가치가 1/10로 떨어진 곳이 즐비했다.
아예 투자한 회사들이 전부 망해버려서 정리가 된 곳도 많았다.
“그건 변명할 거리도 못돼요.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지정한 종목으로 펀드의 반은 채워야 했잖아요. 반 토막이 났다는 건 나머지 회사들의 선정이나 관리가 엉망이었단 소리 아닌가요.”
“존은 벤처기업들의 창업자들과 친분이 깊습니다. "
“아하! 이제 전부 망한 벤처 기업 창업자들, 그 작자들의 뒤를 봐주다가 내 지시를 개 무시하다가 이렇게 됐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벤처 펀드의 규모가 커지면 투자지분과 관계없이 유능한 직원들을 파트너로 승진 시켜 주어야 한다.
유망한 벤처의 창업자들과 사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타이거벤처에도 열다섯 명의 파트너가 존재했다.
내부규정으로 정해진 기업투자를 제외한 자율적인 투자부분에서 존의 실적은 제로에 수렴한다는 소리였다. 아니 마이너스면 마이너스를 기록했지 이익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건 존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파트너들의 실적도 보나마나 비슷할 것이었다.
분명 타이거 펀드는 나스닥의 폭등으로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매년 사상최고의 실적을 경신했었고 투자부분을 대거 정리한 탓에 올해도 실적이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파트너들이 자신의 지시를 말도 없이 거스르고 친분이 있는 벤처투자자들의 사정을 봐주다가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봐줄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너무 무르게 보였던 걸까?
캐서린은 이번기회에 회사 내부의 기강을 잡을 필요를 느꼈다. 회사의 규모와 이익이 단기간에 커지면서 흐트러진 기강을 이번기회에 잡을 필요가 느껴졌다.
“존에게 연락해요. 당장 내방으로 오라고.”
***
“진짜 엉망이었다니까! 그동안 바빠서 내부단속을 너무 허술하게 했나봐. “
규태와 만난 캐서린이 투덜거렸다.
캐서린은 한바탕 타이거 벤처를 뒤엎어 버렸다.
벤처캐피탈이 자유분방한 분위기일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월스트리트보다 보수적인 측면이 강했다.
캐서린 그린같이 벤처투자자로 성공해 이름을 날리는 여자는 보기 드물었다.
내부단속을 하는 김에 말을 듣지 않았던 파트너 다섯을 날려버렸다. 타이거 벤처의 지분 대부분이 규태의 소유였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펀드를 운영할 사람이 부족하지 않겠어? 나간 사람들이 관리하던 회사가 있을거 아냐?”
“휴우! 새로 구해야지. 외부에서 인력충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추가로 사람을 뽑아야겠어.”
타이거 벤처의 내부문제는 캐서린에게 전부 일임한 규태였다.
“알아서 해. 손해가 큰 거야? ‘
“다른 회사에 비하면 크지 않지만 내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게 정말 화가 나는 거야.”
규태는 캐서린의 냉정한 반응에 머리를 흔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캐서린의 성미를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매서운 암사자의 성질머리를 건드렸으니 보복은 당연히 감수를 해야 했다.
한참동안 규태에게 푸념을 늘어놓던 캐서린이었다.
“참! 제프가 한번 보자고 연락을 해왔던데.”
제프라?
“그 대머리하고 사적으로 아는 사이야?”
내 여자의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이 나오면 남자는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
“제프? 아니 내가 아는 사람은 와이프야. 매킨지 베조프. 그리고 제프가 머리가 없기는 하지만 아직 대머리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렇군.”
실제로 아마존 초창기에 제프의 아내인 매킨지가 한 일은 많았다. 고집 세고 바람기가 다분한 남편 베조프와 이혼하기 전까지 매킨지는 유능한 동업자였다.
제프가 아니라 아내 매킨지와 친분이 있다는 말에 규태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이런 규태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캐서린의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오올! 지금 질투하는 거였어? ‘
“질투는! 그냥 기분이 나쁜 거지.”
“그게 질투라니까.”
막상 규태와 사귀고는 있지만 캐서린은 워커홀릭이었다. 일을 줄이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진짜 이렇게 둘이서 다정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함께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래 질투라고 하고 만나면 제프가 뭘 원할 거 같아.”
“뻔하지 자금지원을 요청할걸. 아마존의 현금이 바닥났잖아.”
벤처바닥은 바닥이 좁아도 한참 좁다.
캐서린과 같이 유능한 벤처투자자는 아마존과 같은 IT회사라면 대략 내부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원 역사에서 아마존은 전문가들의 예측과 다르게 극적인 흑자를 기록하며 닷컴 버블의 충격에서 살아남는다.
말 그대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 투자를 받을 각오인가 보네? “
“제프가 아마존 지분의 양보를 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할지는 모르지. 현재 상태라면 회사가 내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캐서린은 아마존투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프 베조프가 나중에 세계제일의 부자가 된 건 아마존의 지분을 철저하게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제프는 아마존을 설립한 초기부터 외부의 투자자금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태의 투자제의를 거절한 것도 지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는 소리.
얼마나 많은 지분을 뜯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금을 투자하면 살아남기야 하겠지. 예전 주가를 되찾으려면 한참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
“그럼 아마존이 살아남으면 나중에는 투자전망이 있다는 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