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닷컴 버블의 붕괴
“그런 고민을 하면 뭐 합니까. 나스닥이 무너진 건 투자자들의 과욕 때문이지요.”
“그래도 누구하나를 정해서 원망을 돌리게 만드는 건....... 국민연금과 바이 나스닥 펀드 수익률을 보고 규태가 미국인인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는 걸 알아두게.”
리처드의 말처럼 규태가 과연 미국사람인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압니다. 우리가 잘나가는 게 배 아픈 사람들이 유포한 말일 겁니다.”
주가 폭락으로 타격을 입은 건 월스트리트도 마찬가지. 큰 피해 없이 미리 대피한 타이거 펀드를 보면 배가 아픈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한국의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시비를 거는 놈들도 있었다.
나는 손해를 보고 남이 돈을 벌면 배가 아픈 건 만국공통이었다.
규태의 불만은 다른것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 우리가 주식을 판 건 어떻게들 알아가지고.”
투덜거리는 규태를 보며 리처드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조심을 해서 숨겼다고 해도 우리가 투자한 벤처기업의 투자지분이 확 줄어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모르겠나.”
리처드의 말처럼 규모가 너무 커서 주식을 판 것을 완벽하게 숨기기는 힘들었다.
“욕을 하려면 하라고 하죠. 조만간에 다른 이슈 때문에 우리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걸요.”
“이슈? 어떤 이슈?”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미리 알려주면 재미가 없죠. 그런데 워렌하고 연락은 자주 하나요?”
“아침에도 통화를 했네. 나스닥이 폭락하면서 목소리에 기운이 넘쳐흐르더군. 나스닥이 급등할 때는 아주 다 죽어가더니 이젠 아주 팔팔하네.”
나스닥의 주가가 급격하게 내리면서 이름값이 가장 높아진 사람은 끊임없이 나스닥의 거품론을 주장하던 워렌이었다.
연 초반까지만 해도 이젠 워렌은 한물갔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놈들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이젠 오마하의 현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 다음으로 이름값이 높아진 사람이 규태였다. 규태가 폭락전에 나스닥 과열을 경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또다시 인터뷰를 원하는 이들로 몸살을 앓아야했다.
미국의 일반 투자자들이 나스닥의 폭락으로 허드슨 강 수온을 체크하는 가운데 유독 한국만은 난리였다.
코스닥역시 나스닥과 마찬가지로 폭락해서 주가가 엉망이었지만 코스닥의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은 사람들은 일부분.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입한 바이 나스닥 펀드의 수익률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나스닥의 폭락으로 펀드수익률을 까먹지 않을까 고민했던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거의 변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투자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나스닥 펀드의 수익률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떠들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러니까 가진 주식을 다 팔았다고?”
“그래 그러니까 객장에 내걸어둔 펀드수익률이 거의 변함이 없지. 지금까지는 너무 큰 폭의 수익률에 익숙해져서 잘 몰랐지만 매일 조금씩 올라가는 게 보이지. 그건 주식을 팔고 채권을 샀단 소리거든.”
펀드에 투자를 오래한 직장동료의 말에 모두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나저나 만기가 돼서 찾을 수 있다면 어디에 투자할 생각이야?”
“나야 뭐 빚 갚고 이미 분양받은 아파트의 잔금으로 납입하면 남는 게 별로 없는데.”
“난 차를 바꾸려고 나머지는 다시 투자를 했으면 좋겠는데 기룡증권에서 다른 펀드 안 만드나.”
“만들 기야 하겠지. 운용을 지금처럼 우리 대주주님께서 하시느냐가 문제겠지.”
이들이 다니는회사는 IMF가 부도가 난 기아자동차엿다.
규태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름을 기룡자동차로 바꾸었다.
“우리 대주주님께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 아니야. 이번 건은 IMF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맡은 것 같은데 추가로 돈도 안 되는 일인데 맡으려고 하시겠어. “
“그건 그래. 나 같아도 안한다. 난 펀드 수수료가 얼마인지 자세하게 읽어봤거든. 진짜 수수료가 거의 없어. 이런 펀드는 처음 본다니까. “
허접한 펀드매니저가 붙어도 이익을 보면 엄청난 수수료를 떼어간다.
바이 나스닥의 펀드 수익률은 1호부터 13호까지 2400%에서 1800%까지 다양했다. 500만원을 넣었던 사람들은 1억이 넘는 자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마저 남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며 조규선은 모처럼 희망에 부풀었다.
다니던 자동차 부품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길바닥에 나앉은 조규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아자동차가 경력직원들을 대거 모집하면서 새롭게 직장을 얻은 것을 물론이고 이제 투자한 자금이 엄청나게 불어서 돌아왔으니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집문제를 해결할 타이밍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여서 투자펀드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함께 모인 이들도 대부분 조규선과 동병상련.
기존에 회사에 근무하던 이들도 기아가 부도가 나면서 대현과 합병하면 쫓겨날 것을 각오하던 처지였었다.
이들의 처지가 바뀐건 규태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대규모로 직원들을 뽑으면서부터 였다.
“하여간 우리 대주주님은 정말 한국의 히어로시라니까. 바이 나스닥으로 서민들 돈벌어줘. 국민연금 투자로 대박나게 해줘. 규태님 만만세다.”
규태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소리를 태연스럽게 입에 담는 직원들이었다.
IMF위기가 지나가고 망한 회사를 인수하면서 대규모로 사람을 뽑아서 실업자를 줄이고 바이나스닥 펀드를 만들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해준 규태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나갔다.
무심결에 규태를 욕하는 이들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
거대한 폭격을 맞은 전쟁터의 폐허같이 음산한 기운이 실리콘 벨리를 뒤엎었다.
나스닥이 폭락을 거듭하자 하늘모르고 치솟던 실리콘벨리 주변의 부동산 가격도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버린 회사와 재정난에 견디지 못하고 몸집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을 단행한 회사에서 밀려난 고급인력들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너무 흔하게 눈에 띄었다.
이런 와중에도 야후는 밀려난 고급인력을 뽑아 덩치를 키웠다.
그렇게도 쓸 만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 더니 나스닥의 주가가 땅바닥을 향해 처박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잔뜩 얼어붙은 벤처 캐피탈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회사를 창업하려는 이들도 사라졌다.
아침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도 실리콘 벨리의 경기가 싸늘하다는 것이었다.
“팔로알토도 경기가 싸늘하다고. 건물주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무실이 절반이 비었데.”
밀려드는 자금을 주체하지 못하고 벤처기업들이 고급 장비를 아낌없이 사들였지만 이젠 터무니 없는 헐값에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잘 뽑고 있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바쁜지 알아. 이번 달만 해도 서른다섯 명을 받았다고 면접을 본 사람은 그 다섯 배야.”
어지간히 힘이 들었는지 마크가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에서도 자리를 잃은 이들이 연락을 해오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쉽게 입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정보를 확하게 가려내야 해서 리쿠르트 업체의 도움까지 받고 있었지만 시간과 인력은 턱없이 자랐다.
정말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쩔쩔매던 게 몇 달 전이었다.
“네가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되냐?”
규모로 다지자면 야후의 인력충원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3월부터 4월까지 두 달 동안 850명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면접에 참가했던 제리도 한 달이 지나자 혀를 내두르곤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면접에 나서지 않고 직원들에게 맡겼다.
그래도 최종 입사결정자는 제리였기에 엄청나게 일이 많았다.
“사무공간이 부족하지는 않고?”
“부족하지. 그래서 신축건물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급격하게 직원의 숫자가 늘어나다보니 기존 사무실로는 공간이 부족해서 팔로알토의 빈 건물을 계약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지만 업무효율이 떨어졌다. 이전부터 계획하고 준비 중이던 신축 건물로 완공되면 그곳으로 회사가 옮겨간다.
“나스닥이 언제까지 하락할까? 아주 불안해 죽을 맛이다.”
아무리 준비를 단단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불안하기는 했다.
야후의 사업구조나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지만 나스닥 하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당장 야후 가만 해도 최고점대비 1/3까지 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상은 추가하락을 하지 않아서 제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활황기에 준비한 자금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추가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심심하면 찾아와서 대출 좀 받으라는 은행원들의 발길이 뚝하고 끊긴 건 당연하고
“너무 한 것 아니냐? 호황일 때는 제발 대출 좀 받으라던 놈들이 아예 발길을 끊었다니까.”
투자하기 위해 줄을 서든 투자자들도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은행대출 갚으라는 소리만 안 해도 다행이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우산을 사라고 징징거리고 비가 올 때 우산을 치워버리는 게 은행이다.
실제로 많은 벤처들이 은행의 대출회수와 벤처캐피탈의 자금회수로 문을 닫았다.
“아크리모가 문을 닫은 건 들었냐? ‘
“거기가 뭐하는 회사냐? “
규태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마크는 알고 있었는지 깜짝 놀랐다.
“하드 디스크 만드는 곳인데 서버 쪽에서는 제법 이름이 난 회사야. 아주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어도 제법 나가던 회사인데 요즘 자금문제가 어렵다고 하더니 문을 닫았네.”
닷컴기업만이 아니라 장비제조업체들도 매출격감을 이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수수 무너지는 회사들 가운데 이 긴 고통을 이겨낸 살아남은 회사들이 독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아마존은 어쩠데? 거기도 엄청나게 힘들 건데?”
아마존은 사를 만든 이후로 한 번도 흑자를 보지 못한 회사였다. 나스닥의 주가 폭락에 직격타를 맞아서 128달러까지 올랐던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며 12달러까지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회사가 망할 것 같은 위기에 빠지면서 조만간에 부도날 회사에 꼽히는 중이었다.
대표인 프 베조프의 괴팍한 성질머리까지 들먹이면서 아마존의 위기가 실리콘 벨리에 퍼져나갔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겠지. 거긴 우리 투자도 거부한곳 아니야."
아마존이 나스닥에 상장하기전에 규태가 투자를 하려고 시도했었지만 제프 베조프가 단칼에 거절했었다.
당연히 좋은 느낌을 가질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소프트뱅크도 심상치 않다던데?”
규태의 충고를 무시한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도 나스닥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1,200억 달러로 평가되던 소프트뱅크의 시가 총액이 1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자금이 부족하면 회사 문을 닫겠지.”
규태는 조금 손정의에게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직접 일본까지 가면서 위기를 경고를 해주었는데도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다.
지금쯤 규태의 충고를 무시한 걸 후회하고 있겠지만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급한 사람은 손정의지 규태가 아니었다. 정 급하면 자기가 여기로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