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59화 (159/220)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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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가을로 접어들면서 나스닥이 날개를 달았다.

상장된 기술주들의 주가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면서 단기간에 두 배 이상 오르는 종목들이 속출했다.

말 그대로 첨단주와 아무런 연관도 없으면서 회사이름에 닷컴을 달기만 해도 주가는 가파르게 올라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의 개발에 성공한 암젠은 400달러 밑까지 하락했던 주가가 다시 한 번 가파르게 상승했다.

톰 시벨이 창업한 고객관리시스템(CRM)시장의 45%를 점유한 시벨 시스템스의 주가도 125달러에서 출발해서 순식간에 300달러까지 올랐다.

마이크로 소프트와,퀼컴, 인텔, 오라클,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주가도 빠르게 상승했다.

하나같이 규태가 국민연금에서 투자받은 자금으로 새롭게 투자한 종목들이었다.

레버리지 기법을 이용해서 투자를 했기에 총액 300억 달러의 나스닥 투자는 폭발적인 이익을 올렸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까치 울음소리를 들으니 이문한은 기분이 좋았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국민연금의 자산운용본부장의 자리를 맡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정말 엄청난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다. 미국에서 살아온 15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올 초만 해도 진짜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

실직으로 인해 연금가입 자격을 상실하면서 국민연금을 돌려달라는 신청이 폭주했고 국민연금 전체가 휘청거렸다.

투자자산은 전부다 휴지조각이 되고 국민연금의 현금자산도 바닥을 드러냈다.

자칫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고서도 투자자산을 정리해야 하는 벼랑까지 몰렸었지만 법이 바뀌면서 국민연금은 기사회생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했다.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 청와대로부터 내려온 은밀한 지시는 이문한의 가슴을 두드렸다.

월가에서 15년의 경험을 쌓았다고 하지만 보수적인 월가에는 분명히 유리천장이 존재했다. 이문한이 고객연봉을 부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한참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동료와의 승진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미국에 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유리천장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다가왔다.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지난밤의 뉴욕증시를 확인하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미국시장의 주가상승은 어제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다우보다 나스닥의 상승폭이 컸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면서 저절로 이문한의 입에서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의 눈에 손에 자료를 든 정차장의 모습이 보였다.

“좋은 아침, 정차장 어제는 잘 들어갔나? 모습이 왜 그래?”

“본부장님!”

“아이고 놀라라! 목소리가 왜 그렇게 커? 무슨 일이 있어? ‘

“이거 한번 보십시오!”

“이게 뭔데? 어라? 투자결과를 메일로 보내온 건가?”

겉표지에 쓰인 회사이름을 본 이문한은 저절로 긴장이 돼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바득바득 우겨서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 펀드의 운용 보고서였다. 한 달에 한번 투자보고서를 받는 것으로 계약이 돼 있었다.

잠시 투자보고서를 살피던 그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거 정말이야? 숫자를 잘못 보낸 게 아니래?”

“실수는 없었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고 그쪽에 확인했습니다.”

종이에 적혀있는 너무 커다란 숫자를 보니까 이문한은 전혀 현실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전에도 엄청나게 큰 자금을 다뤄보긴 했지만 이번 보고서에 담긴 금액은 차원이 달랐다.

한 달간 벌어들인 투자수익이 45억 달러.

환율이 떨어지긴 해어도 6조에 가까운 막대한 금액이었다.

나스닥의 시황이 계속 좋아서 막대한 투자수익을 거둘 것을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휴우, 이거 기대는 했지만 너무 엄청난 수익이라 머리가 띵하구만.”

“이사장님께 보고를 하셔야죠.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계실겁니다.”

“회의시간에 보고를 하겠지만. 허참! 이거 원!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거지?”

15년을 월가에서 구른 이문한도 쉽게 받아들일수가 없는 막대한 투자이익에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침회의시간에 이문한이 지난달에 투자한 투자금액의 수익을 알게 된 국민연금이 발칵 뒤집혔다.

기쁜 소식은 빠르게 청와대까지 올라갔다.

찬바람이 불어오지만 나스닥의 뜨거운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97년 7월에 1,000달러를 넘은 나스닥은 98년 10월에 1,400을 돌파했다. 여느때처럼 대전의 집에서 가벼운 일들을 처리하던 규태였다.

함께 한국에 온 캐서린은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서 생각보다 시간이 남았다.

지난 밤의 나스닥 시황을 함께 살피던 오선한이 물엇다.

“어제도 올라서 이제 1,410이 됬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올랐으니 나스닥에도 조정이 오지 않을까요?”

쉬지 않고 우상향하며 주가가 오르는 모습을 보면 조정기가 오지 않을까 했지만 규태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까지는 연습게임입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지금부터요?”

눈이 저절로 동그래질 소리였다. 이미 타이거 벤처에 투자했던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수익을 보고는 투자한 금액을 찾아갔다.

캐서린이 만류를 해도 막대한 수익에 눈이 돌아간 투자자를 만류할 방법이 없엇다.

타이거 벤처펀드의 상당수를 청산해야 해서 최고책임자인 캐서린이 미국으로 돌아

간 것이다.

“바이 나스닥 13호는 판매가 됐습니까?”

1호부터 시작한 나스닥 투자펀드는 어느 사이 12호까지 판매가 되었다. 오늘 발래 될 펀드는 13호.

이것까지 판매하고 나면 진짜 끝이었다.

“이미 예약한 손님이 많아서 금방 매진이 되었습니다.”

가입자의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고 금액도 최고한도가 정해진 펀드지만 그동안 투자한 사람들이 커다란 수익을 거두었다는 소문들이 퍼져나가면서 펀드가 만들어지자마자 당일에 매진되는 호조를 보였다.

2년 만기의 폐쇄형 펀드로 만들어서 돈을 찾아가지는 못해도 수익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통장한번 찍어보면 금방 표시된다.

만들어진지 얼마되지않은 1호 펀드의 수익률이 벌써 34%.

이제까지 국내에서 팔린 펀드 어떤 것과 비교해도 놀라운 투자수익이었다. 닷컴 버블이 무너지기 전에 나스닥 지수는 5천 인근에 도달한다.

지금의 주가와 비교해도 1년 반만에 3.5배의 주가상승이 있다는 소리였다.

“최고투자금액 제한 때문에 1인당 투자금액이 너무 적다는 불만이 높습니다.”

“불만이 있으면 투자하지 말라고 하세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바이 나스닥펀드’가 만들어진 목적은 무너진 실직자가정에게 최소한의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투자수익에서 거두는 비용도 최소한의 것만을 받고 있었다.

이런 배부른 투정소리까지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바이 나스닥 펀드’를 통해 모집해서 미국 나스닥에 투자한 총액이 18억 달러였다.

“또 다른 불만은 한국에도 코스닥이 있는데 미국에만 투자 하냐는 겁니다.”

한국 코스닥시장의 투자는 규태도 잠깐 생각을 해봤지만 포기했다.

덩치가 작아서 주가조작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코스닥도 마찬가지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규태는 대답대신에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의 주가를 보았다.

가을에 막 상장해서 주가가 28,000원에서 3만원을 넘나드는 주식이었다.

“펀드를 만들어서 이런 종목에 투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올라가지 않을까요? 요즘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분야의 주식이 아닙니까?”

규태가 오선한에게 보여준 주식은 새롬기술이었다.

액면가 5천원일 때 3만 원 정도에서 놀던 주식이 찬바람이 불면 미친 듯이 올라간다. 500원으로 액면 분할한 다음에 유, 무상증자를 테마로 해서 20만원까지 주가가 올라간다.

100% 무상증자를 한 다음에도 20만원을 다시 한 번 찍었으니 불과 반년사이에 100배에 가까운 주가상승을 보이는 역대급 종목이었다.

한때 시가총액이 삼성전자에 버금가게 주식이 올랐다.

이것하고 비슷하게 움직임을 보인 종목은 여럿 있었다. 나중에야 주가가 폭발하면서 시가총액도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지금의 코스닥 시장은 전부 합쳐봐야 규모가 얼마 되지 않았다.

펀드를 만들어서 코스닥에 투자하면 백이면 백, 나중에 주가조작논란에 시달리게 된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의 상당수가 망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규태는 코스닥 투자를 포기했다.

한마디 규태가 투자하기에는 코스닥 시장이 너무 작았다.

규태가 머리를 내저었다.

“코스닥은 시장 규모가 작아서 뒷말이 무성할 가능성이 높아요. 펀드를 만들어서는 투자하지 못하지만 오 실장도 이 주식에 투자 해봐요. 나중에 짭짤한 수익이 나올 겁니다.”

규태의 말에 오선한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규태가 수익이 난다고 말한 주식치고 오르지 않은 주식이 없었다.

“언제 팔면 될까요?”

당장이라도 주식을 사려고 달려갈 것 같은 오선한의 모습에 규태가 웃었다.

“주식을 사고 나면 알게 될걸요? 봄이 오기 전에 팔면 될 겁니다.”

가장 주가가 높은 꼭대기에서 팔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겠지만 적당한 수익을 내고 팔고 나가면 그뿐이다.

주식을 사서 들고 있기만 해도 엄청난 수익이 나오는 종목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가보세요.”

규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밖으로 달려 나가는 오선한의 모습에 규태는 혼자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 종목을 사두면 돈이 될 것 같다고?”

아이고! 아버지!

식사시간에 눈을 빛내는 사람이 또 있었다.

오선한이 어지간히 설레발을 떨었는지 식사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하나같이 규태의 입을 보고 있었다.

“그거 사지 마세요.”

“왜! 올라간다면서.”

“나중에 주가조작문제로 시끄러울 거거든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주가가 나중에는 바닥을 기게 되면서 새롬의 사장은 결국 교도소로 가게 되고 회사는 문을 닫는다. 주가조작의 범인들은 주범들은 따로 있지만 사장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규태의 말에 부친이 순순히 포기를 했다.

“끄응, 그렇다면 야. 포기를 해야겠지만 어쩐지 아쉽다.”

쩝하고 입맛을 다시는 부친을 보니 종목을 찍어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왜.”

“종목 하나 찍어드려요?”

“투자할만한 종목이 있냐?”

식구들이 밥을 먹다가 다시 규태를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어지간한 종목을 알려줬다가 나중에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잠시 이마를 긁적인 규태가 입을 열었다.

“다음이라고 아시나요?”

“다음?”

“나 거기 알아! 인터넷 포털 사이트잖아!”

그래도 젊은 여동생이 빠르게 알아들었다.

“인터넷 포탈이 뭐냐?”

“아빠! 컴퓨터 켜고 인터넷 한다고 들어가면 처음 들어가는 사이트 있잖아.”

여동생의 말에 부친이 그제야 이해를 했다.

“아! 거기가 다음이냐?”

국내 인터넷 포털의 첫 번째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두 곳이 다음과 야후 코리아였다.

“그런데 거기는 오빠가 하는 회사하고 경쟁사 아냐?”

“내가 투자한 야후 코리아는 당분간 상장계획이 없거든.”

야후코리아의 지분은 야후 본사와 규태가 반반씩 들고 있었다. 상장을 해도 버블이 끝나고 상장할 생각이었다.

“다음에 투자하면 정말 돈이 될까요?”

식사를 하다가 던진 매제의 질문에 규태가 퉁명스럽게 답을 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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