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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58화 (158/220)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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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두 사람의 양자회동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이 났다.

삼정의 오회장이 바라는 것은 대현과 손을 잡고 타이거 펀드에게 정확하게 말하면 규태를 압박해 지분을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김규태의 힘이 세더라도 자신과 정 회장이 손을 잡으면 한국에서 못할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자신의 거듭된 설득에도 정 회장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잔뜩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돌아가는 오회장의 모습을 보며 뒤에 남아있던 정종문이 혀를 찼다.

“쯔쯔, 사람이 화장실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저 사람이 꼭 그짝이구만.”

“요즘 삼정전자의 반도체가 잘 팔리지 않습니까. 환율 때문에 미친 듯이 수출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본전 생각이 나겠지요. 벼랑 끝까지 벗어난 오회장 입장에선 지분을 거저 강탈당한 것처럼 느끼지 않겠습니까?”

정 회장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이 공손하게 답변했다.

경쟁사를 가진 대현의 입장에선 삼정이 돈을 버는 게 마냥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삼정이 반도체사업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 담는다는 말이로군. 셋째 놈은 잘 준비를 하고 있겠지?”

“예, 이미 128MD램의 생산시설을 확장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나이를 먹은 자신이야 얼마나 살지를 모르는데 후계자를 고르는 게 너무 늦었다. 큰아들과 셋째아들을 두고 누구로 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마음을 정했다.

욕심대로라면 자신이 정한 후계자인 셋째에게 모두 몰아주고 싶었지만 이미 장성한 다른 아들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손을 잡은 게 김규태였다.

대현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자금이 소모된다. 돈을 벌 때는 엄청나게 벌어들이지만 손해를 볼 때는 또 그만큼 엄청난 손실을 보는 업종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확대되고 휴대전화 시장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D램 반도체시장의 주력이 64MD램에서 128MD램으로 옮겨가고 막대한 수요가 생겨났다.

환율까지 도와주면서 반도체 공장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예전에 삼정이 휘청거릴 때 알아봤지만 반도체라는 게 정말 돈먹는 하마로군.”

대현전자에서 발행한 회사채를 타이거 펀드가 인수하면서 투자 자금은 충분했다.

회장 자리를 아비에게 물려받은 오가 놈이 와서 제아무리 징징거려도 정 회장의 입장에선 코웃음만 나왔다.

3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수혈해주는 대가로 정 회장이 해줘야 할 일은 한국재계의 반발을 막아주는 대가였다. 이미 타이거 펀드가 전환사채를 통해 인수한 주식의 처리방안까지 은밀하게 청와대와 교감을 나누었으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간 큰 놈은 없을 것이었다.

정 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인생의 마무리로 반도체 사업을 일으키는 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그 최후의 작업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부실기업을 인수하면서 최대한의 가격을 지불했다. 몇 푼 되지도 않은 돈을 아끼려고 들다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질색이었다.

부실화된 대출금을 깎아주는 건 공적자금의 지출로 해결해야하기에 부실기업인수를 몰아 받은 뒷소문은 없을 수가 없었지만 규태가 기업을 인수한 가격을 듣고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아자동차와 한보철강, 동아건설과 같은 부도기업들이 규태의 손에 들어왔다.

대출자금의 부실화를 걱정하던 은행들의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너무 비싼 가격이 아닙니까?”

오죽하면 오선한이 투덜거릴 정도로 규태의 부실기업 인수가격은 파격적이었다. 8조 5천억의 부채 중에서 3조만을 탕감 받고 대출이자가 비싼 3조원을 갚아버렸다.

거기에 인수자금으로 10억 달러가 들어갔으니 자연히 비싸게 사들였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기아치 인수자금은 달러화 자금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벌어들인 이익만 해도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미 2,000원대부터 들여온 자금은 충분했다. 거기에 한은이 발행한 외평채를 담보로 해서 빌린 원화자금이 넘쳐났다.

말 그대로 자금 걱정 없이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진 법정관리 기업들을 줍기만 하면 됐다.

“다른 주주들이 뭐라 할까 걱정입니다.”

“왜요? 누가 다른 말을 해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만에 하나를 걱정하는 겁니다.”

“문제없어요. 투자한 기업들이 살아나면 투자자들도 만족할겁니다.”

규태의 말에 오선한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게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금방 한국경제가 살아나겠습니까?”

지금까지 타이거 펀드의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기적인 투자에 집중해서 많은 수익을 거두어 왔는데 이번 투자는 회수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선한으로서는 왜 이렇게 한국에 퍼주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투자자는 수익을 보고 덤벼들어야지 너무 온정에 이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규태의 뜻은 확고했다.

“살아날 겁니다. 옆에 중국이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중국은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으로 커질 겁니다.”

IMF가 끝난 후 한국경제는 바로 옆에 위치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가파른 성장과 함께 커간다.

적어도 2010년까지의 중국은 도광양회라는 등소평의 유훈에 따라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는 나라였다.

중국시장이 커진다고 중국에 직접 투자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나중에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커지지만 중국경제의 성장은 침체에 빠진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성장 도력이 되어 주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그 영향을 한층 강하게 받았다.

“글쎄요? 과연 중국이 그 정도로 커지겠습니까? “

오선한이 대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이제 중국은 개도국의 단계에 들어선 후진국이었다.

자체적으로 경제발전에 들어가는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선진국의 투자를 간절하게 바라는 거지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규태의 가장 최측근인 오선한조차도 쉽게 규태의 말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믿기 힘들면 내기를 할까요?”

내기 소리가 나오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오선한의 태도가 급변했다. 이제까지 돈에 관련되어 내기에서 오선한이 규태를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믿겠습니다! 보스의 말이 그렇다면 믿어야죠.”

“아쉽네요. 오랜만에 오 실장 주머니를 털어볼까 했는데.”

“아이고! 가난한 샐러리맨 주머니를 노려서 뭐하시겠다고요.”

“오 실장이 가난하다고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보는 규태의 눈빛에 할 말이 없어진 오선한이 어색하게 뺨을 긁었다.

그동안 받은 월급은 월가의 CEO들 뺨을 왕복으로 후려갈기고 규태가 챙겨준 지분의 평가금액만 해도 억만장자를 넘어선 오선한이었다.

“흠흠, 말이 그렇다는 소립니다. 말이. 그런데 보스, 철강이나 자동차, 항공 쪽은 부채만 줄이면 어렵지 않게 경영한다고 해도 자동차는 내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번에 인수한 기아만 해도 자체적인 엔진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내수시장말고 수출을 염두에 둬야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닙니다.”

세계시장에 나가려면 자체적인 엔진제작을 필수였다. 지금까지는 일본이나 독일에서 엔진을 수입해 자동차를 만들었다.

대현자동차에서도 꾸준하게 노력해서 자체적인 엔진 제작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세계기준으로 볼 때는 미흡한 제품이었다.

“그걸 왜 고민합니까?”

“예?”

놀란 오선한에게 규태가 되물었다.

“자동차 연구소를 미국에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

말문이 막힌 오선한이었다. 확실히 미국에서라면 자체적인 엔진제작쯤은 어렵지 않았다. 정 기술이 부족하다면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하면 그뿐이다.

나스닥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지만 닷컴기업 한정이다.

자동차와 관련된 산업은 소외되고 있었다.

그 바람에 GM,포드, 크라이슬러와 같은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의 주가도 힘을 받지 못했다.

규태가 자동차 연구소를 세우고 경험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면 전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들 것이었다.

“그럼 디트로이트에 연구소를 만들 계획이십니까? ‘

“아니요, 거긴 안 됩니다. “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자동차 회사의 몰락과 함께 도시 전체가 슬럼화 된다. 한때 미국을 대표하던 자동차 도시는 엄청나게 긴 세월이 지나서야 회복을 하게 된다.

그런 도시에 연구소를 만든다고 쓸 만한 인력이 몰려들 리가 없었다.

“실리콘 벨리에 연구소를 세울 겁니다. “

“그쪽에는 첨단 기업들만 몰려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지요.”

엔진 개발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전기차 시대가 온다. 미리 준비하려면 실리콘 벨리 쪽에 충분한 대지를 확보하고 연구소를 만들어 대비를 해야 했다.

거기에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빠르게 오르는 실리콘 벨리지역에 미리미리 넓은 땅을 확보하는 것은 덤이었다.

규태는 회사로 찾아온 진정 재무장관과 자리를 함께했다.

“예상보다 빠르네요?”

규태의 생각보다 빠른 일처리였다.

“대통령께서 이일에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계십니다.”

“그래도 너무 빠른데요?”

“실무진에서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서 투자금액이 빠르게 확정될 수 있었습니다.”

“실무진에서요?”

제아무리 대통령 중심제인 나라이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더라도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장 차관이나 국민연금의 기금을 관리하는 실무진이 반발하면 아무래도 일의 진행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문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월가의 메릴린치 출신입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최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더군요.”

그 말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몰라도 월가에서 규태의 이름은 널리 퍼져나갔다. 악명 쪽이 더 크겠지만 하여튼 규태는 지금까지 투자해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투자자였다.

그 말에 본적도 없으면서 호감도가 올라갔다.

“그래서 결정된 금액이 전부 얼맙니까?”

“일단 채권투자를 하려던 금액을 일부 돌리기로 했습니다. 이 금액도 스왑거래를 통해서 투자를 해주시는 조건입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이라면 미국채인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었다.

환율이 높아서 투자를 미루고 있었는데 이 자금을 규태가 만드는 펀드로 돌리겠다는 소리였다.

이제 막 1,370원대로 접어든 원화환율이 시간이 흐를수록 달러화 대비 점점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 상태에서 연리 6.7%의 미국채에 투자하는 건 환차손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금액이 전부 얼마나 됩니까?”

“총 투자금액이 8조 정도 됩니다.”

8조라면 현재 환율로 60억 달러, 그 정도라면 충분했다.

투자은행과 손을 잡고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리만과 시티은행과 손을 잡고 규태는 국민연금에서 투자한 자금으로 만든 펀드의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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