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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57화 (157/220)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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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나스닥이라? 거긴 이미 너무 주가가 오르지 않았나?”

상고를 졸업 후에 젊은시절 사업을 한 경험 탓인지 대통령은 미국의 주가까지도 빼꼼하게 보고를 듣는 모양이었다.

“이제 부터가 시작입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주가가 더 크게 오를 겁니다.”

“나스닥이라?”

대통령으로서도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의 운영권한을 개인에게 넘겨준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고심하는 대통령을 보며 규태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신다면 국민연금 전체투자자산의 10%를 제가 만드는 펀드에 맡기면 어떻겠습니까?”

“10%를 말인가?”

“예, 그 정도라면 지금 현재의 국민연금 자산 운영계획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빼낼 수 있는 최대치가 될 겁니다.”

“한번 고민해 보겠네.”

청와대에서 대통령 면담을 끝낸 규태는 여의도의 기룡증권 사옥으로 돌아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봉만 사장과 소진세 사장이 규태를 맞이했다.

“대통령 면담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이야기는 아니고 국민연금 문제랑 기존에 전환사채로 전환한 주식의 처리문제를 이야기 했습니다.”

“어떻게 처리를 하시려고요?”

“전환사채로 전환한 주식들은 시차를 두고 국민연금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두 사람도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이 가진 지분이 너무 많아서 정부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이야기였다.

“국민연금은 자산의 10%를 새로 만드는 펀드에 맡겨달라고 했습니다.”

“예? 그걸 받아들인답니까? ‘

“......”

두 사람은 규태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긴 국면연금은 대단히 보수적으로 운영한다. 수익보다도 안정성에 투자우위를 두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채권투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마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과 규태는 달랐다. 이미 규태는 노르웨이 연기금의 위탁자산운용 요구를 거절했었다.

한국 국민연금에 비해 북해 석유를 팔아서 만드는 노르웨이의 연기금 규모가 한참 더 크다는 건 규태의 자존심을 건드렸었다.

이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

규태의 생각은 단순했다.

저쪽이 석유를 팔아서 만든 자금을 쌓아올린다면 우리는 주식을 팔아서 만든 자금으로 쌓아올리면 된다.

대통령에게 말 한대로 3년만 주식을 운영하고 나면 지금 전체 자산보다 적어도 다섯 배 이상의 자산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손을 뗄 생각이다.

“한국항공 임시주총을 개최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정부와 협의를 마친 사항이었다. 청와대까지 다녀온 규태의 지시에 두 사람도 그대로 따랐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된다고!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거야!”

잔뜩 화가 난 오회장을 비서실장 장학수가 달랬다.

“계속 연락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면담이 이루어질 겁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삼정만이 아니었다. 그룹 전체가 흔들거리는 대운이나 알토란같은 핵심 사업들의 주식이 통째로 넘어간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기업의 경영권이 넘어가 버릴 위험에 놓인 기업들은 설마설마하던 한국항공이 임시주총을 통해 경영권이 넘어가 버리자 다급한 마음에 계속해서 연락을 취했다.

하나같이 비서실에서 커트.

전경련 회원 중에 누구하나 만났다는 사람이 없다.

“이거 그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겠네!”

답답한 마음에 건강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오희건이었다.

IMF위기가 닥쳐오자 코너에 몰린 건 삼정전자도 마찬가지였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위기가 지나고 나자 다시 황금기가 돌아왔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반도체 가격도 급격하게 회복을 했고 환율까지 도와주는 바람에 사상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면 뭐하는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번다고 지금 삼정이 그 꼴이었다.

추정하기에 삼정전자의 주식을 40%넘게 보유하는 곳이 기룡증권이었다.

얄밉게 도 김규태 그놈은 전화사채 지분 25%말고도 꾸준하게 삼정전자의 주식을 사들였다.

삼정전자만이 아니라 전기, SDS까지 지분 투자를 늘렸다.

“그쪽에서는 경영권과 관련해서 크게 노리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한국항공을 먹었잖아.”

“거긴 이미 문제가 많은 곳이 아닙니까. 재무부 차관을 만났을 때도 정부에서 보낸 사인은 더이상의 추가적인 경영권 탈취는 죄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전대회장이 물러난 이후에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제간의 다툼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는 곳이다.

거기에 재무구조가지 엉망이라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 없다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삼정전자나 대현자동차는 경우가 달랐다.

한때의 위기가 지난 다음에 불이 활활 타듯이 최고의 실적을 거두었다. 말 그대로 찍어내는 대로 돈이 되는 판국이다.

그런데 전화사채로 인해 회사의 최대주주가 홀라당 타이거 펀드로 바뀌어버렸다.

이건 죽 쒀서 개준셈이다.

“우리 지분이 얼마나 되지?”

“회장님 지분까지 합쳐서 32%가 우호지분입니다.”

“국민연금하고 은행들 지분까지 전부 합쳐야 36%로군.”

타이거 펀드의 지분에 비하면 열세였다. 게다가 경영권 탈취를 위한 지분싸움이 벌어지면 18%의 지분을 보유한 다른 외국투자자들이 누구에게 더 우호적일지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한때 3만 5천원까지 떨어졌던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해서 10만원이 넘었지만 오희건은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청와대도 재벌들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

잠시 말없이 담배를 피우던 오희건이 결단을 내렸다.

“대현의 왕회장하고 약속을 잡아.”

삼청동의 이름 높은 요정에서 둘은 약속을 잡았다.

고즈넉한 풍경소리가 울리는 곳은 서울에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다.

“이렇게 보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참 얼굴 뵙기 힘듭니다.”

“나야 뭐, 이제 늙어서 기력이 없어서 인지 사람들 만나는 것도 힘에 겹네.”

오희건이 정종문회장과 만나기를 꺼려한 이유는 아무래도 껄그럽기 때문이다.

정종문회장은 이제 고인이 된 그의 부친과 함께 한국재계를 양분하던 거물이다. 부친은 돌아갔으니 홀로 남은 재계의 거목.

둘이서 사업이야기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오희건 쪽이 껄끄롭다.

전경련의 회의에도 자식들을 보낼뿐 직접 참가하지 않아서 얼굴을 보는것도 오랜만이었다.

가볍게 들여온 식사를 하고 차까지 마시면서 두 사람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이제 배도 찼으니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를 말해보게.”

“타이거 펀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 때문에 나를 보자고 했고 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대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왕회장의 반응이 이상했다.

대현도 마찬가지 대현자동차와 건설, 중공업이 전환사채로 물렸다. 전체 지분의 1/3이 한사람의 손에 들어갔으니 난리를 칠 것이라고 여겼는데 너무나 태연한 반응이었다.

“난 이전에 연락을 받았네.”

“연락이요?”

금시초문의 소리에 정종문이 머리를 흔들었다.

“전환사채로 전환한 주식들의 주주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이네.”

이런!

오희건은 입안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누구한테는 지분을 가지고도 내버려 둔다고 연락하고 누구는 그 문제로 마음이 달아서 속이 문드러져도 피하기만 하다니.

“저는 수차례 만나자고 연락을 했어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럴 거야. 나도 한번 보자고 했더니 한사코 피하더군. 그래도 자네는 전에 한번 보지 않았나. 이건 뭐 미국 대통령 만나기보다 한번 얼굴보기가 힘들어.”

그제야 오희건은 속이 조금 풀렸다. 대현만 따로 특별취급 해주는 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이건 비밀이네만 그놈이 아마도 주식을 행사할일은 없을 거네. 대통령에게 호언장담했다니까 믿어도 되겠지.”

“예? 그게 어디서 나온 소립니까?”

“자넨 아직 못들었나 보구만 청와대에서 나온 이야기라네.”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삼정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 이제 그룹에서 회장 자리를 차지하며 전체를 확실하게 장악한 오희건이었지만 외부의 영향력은 부친이 살아있을 적과는 확연하게 떨어졌다.

아직은 대현을 넘어서지를 못했다.

벌써 대통령과 나눈 이야기 내용을 알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었다.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제까지 보다 그룹 정보팀을 활성화 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에게 들으라는 소리로군요.”

“그래 그 말이지. 만나주지는 않아도 한국항공과 같은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일 걸세. 그놈이 내가 억지로 만나고 싶다고 만나 줄 위인도 아니고.”

가진 힘을 따지자면 이미 김규태의 힘은 한국대통령을 능가했다.

“그놈이 난 놈은 난놈이야. 나이가 얼마나 됐다고 월가에서도 그놈 말이라면 꼼작도 못한다고 하지 않나.”

“소문이 과장되지 않았겠습니까. 월가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렇게 휘둘리겠습니까?”

오희건의 말에 정종문이 이마를 찌푸렸다.

‘내가 자네 부친한테 부러운 게 하나가 있었는데 말이야. 제일 부러운 게 자네였네. “

“......”

“자네가 그렇게 똘똘하다고 돌아가신 자네 부친이 나를 볼 때마다 얼마나 칭찬을 했는지 몰라.”

오희건은 전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늘 엄하게 꾸짖는 부친만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습니까.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하게 혼내시는 모습만 기억이 납니다.”

“휴우, 자네 부친도 참 엄청난 사람이야. 쇠는 달구어야 더욱 강해진다고 믿었던 분이셨지.”

“......”

“폐 일언하고 내가 영국에 금융쪽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조선소건설자금을 들여올 때 친분을 쌓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알고 있던 시티의 은행가가 그러더군. 월가나 시티에선 김규태가 어떤 주식에 투자를 했는지 알아내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한다고 말이네.”

“그 정도입니까? 시티의 투자은행도 그렇게 한단 말이죠.”

“그래 그놈이 한국에 알려진 것보다는 외국에서 더욱 엄청난 놈이더군.”

“한국에서는.... 이런 그렇군요.”

느끼는 게 있는 오희건이었다.

앞에 놓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정종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네도 느끼는 게 있나보군. 한국에서 떠들썩하게 알려졌어도 투자자가 아니라 야후같은 첨단벤처기업의 창업자 쪽으로 더 크게 알려졌지. 신문에선 연일 야후이야기가 쏟아져 나오지 않았나.”

“이미지 메이킹이로군요.”

“그래 그거야! 내가 볼때는 거기에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탐욕에 찌든 월가의 투자은행가가 아니라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로 승부하는 벤처 기업가의 탈을 뒤집어 쓴 김규태의 언론 플레이에 많은 사람들이 놀아났다는 소리였다.

"그놈이 워싱턴 포스트의 대주주에 CNN, CBS의 실제 주인이 아닌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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