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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56화 (156/220)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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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장관이 너무 자주 바뀌네요. 지난번에 연락을 받았던 분이 아니네요.”

“비상시국이다 보니 그렇습니다. 전부터 애타게 한번 뵙고 싶었는데 진짜 얼굴 한번 보기 힘드네요.”

재무장관 진정은 재무부로 찾아온 규태를 반갑게 맞았다.

“제가 너무 바빠서 그렇습니다.”

말속에 뼈가 들어 있었지만 규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받아쳤다.

규태의 태연스런 대꾸에 진정이 말문이 막혔다. 여느 때 같으면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실랑이라도 하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늘 계약이 성사되면 그동안의 지긋지긋한 고생이 끝이 난다.

이미 약속한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약속대로 외평채를 300억 달러어치 인수하시는 겁니다.”

진정은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물론입니다. 세부적인 조건은 이미 협의가 끝냈으니 장관님이 사인만 하면 곧바로 인수금액이 한국은행에 입금될 겁니다.”

“휴우, 이렇게 위기가 끝이 나는군요.”

진정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을 외평채 발행 서류에 써넣었다.

그리고 규태가 마저 사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외평채 발행총액 300억 달러.

외환위기전에 한국이 가지고 있던 외환보유고가 한방에 채워진다.

이 돈이 들어오면 찌질 하게 돈은 주지도 않으면서 이리저리 간섭만 하려고 하는 IMF와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자율 15%짜리 외평채를 발행하면서 진정은 감개가 무량했다.

재무장관에 취임한 이후에 무려 세 번이나 미국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달하고 돌아왔었다.

IMF도 강압적인 지시만 늘어놓았지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미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IMF든 세계은행이든 업무가 마비된 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일본은 한국보다 처지가 더 좋지 않았다.

전임자의 건강악화 때문에 급하게 재무장관의 자리에 올라서보니 진짜 앞이 캄캄했었다.

서류에 사인을 마친 규태가 일어나 진정에게 악수를 청했다.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이 열심히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재무부에 들러 형식적인 외평채 인수서류에 사인절차를 끝낸 규태는 곧바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미 약속을 잡은 터라 형식적인 검문과 몸수색을 마치고는 새로운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했다.

“진 장관에게 연락을 받았네. 자네에게 커다란 빚을 졌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초췌해진 대통령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대통령에 취임하고부터 온힘을 다하던 일이 끝난 것이다.

“별말씀을요. 하셨던 약속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미 외평채의 인수 조건으로 한국항공의 경영권인수를 허가 받았다. 사적인 기업 간의 일이지만 한국의 재벌은 특수한 상황.

재벌의 주력사업을 인수받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할 정도로 바닥에 떨어져서 언제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생각보다는 큰 어려움 없이 내려진 결정이었다.

“한국항공의 공적자금 투입은 거절하라고 지시를 내렸네. 은행들도 자금 회수를 시작할걸세.”

“감사합니다. 이제 주주총회만 열면 되겠네요.”

빠른 시일 내에 주총을 열어 기존의 경영진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인물들을 경영진으로 선임할 계획이었다.

이미 추가적인 주식 매입을 시작해 절반의 지분을 넘어섰다.

국민연금과 은행까지 규태를 지지하고 있어서 경영진 교체는 확정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항공의 회사 재무구조가 엉망이던데, 잘 이끌어나갈 자신은 있나?”

“대규모증자를 통해서 자본구조를 개선할 생각입니다. 미국은행에서 장기 자금 차입도 진행하면 자금문제로 속 썩을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시티은행과 말을 맞추어 놓았다.

경영권을 인수하면 대대적인 감자와 함께 증자를 진행하면서 기존대주주의 지분을 날려버릴 에정이었다.

“어허! 그렇게 만 해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군. 그래 추가적으로 회사를 인수할 생각은 없나?”

오랜 야당 세월을 보내면서 재벌그룹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한 대통령은 기존의 재벌구조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규태에게 더많은 회사를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제안에 당혹한 규태가 머리를 긁었다.

“이거 엄밀하게 말하면 금산법 위반입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회사를 인수할 계획은 없습니다.”

“법은 바꾸면 그만이야. 인수자금은 충분한가?”

“진짜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인수자금은 뭐 어떻게든 될 겁니다.”

“법하나 바꾸는데 어려울 게 뭐가 있나.”

간단한 이야기만 나누다가 나올 생각이었던 규태였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전향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는 게 이상했다.

외평채 인수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엔 대통령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호의적이었다.

“대통령께서 제게 바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겁니까? “

“자네 회사들을 살펴보았네. 증권사에서 대대적으로 사람들을 뽑고 있더군. 투신과 종금사도 마찬가지고. 한국항공도 인수하면 인력을 조정할건가?”

기룡증권이 회사가 사라져서 실직한 직원들을 1000명 넘게 새로 뽑았다. 투신사와 종금사도 마찬가지, 길거리 가을낙엽처럼 즐비하게 떨어진 퇴직자들을 정신없이 채용했다.

“아니요. 재무구조를 개선한 다음부터 신규직원들을 대규모로 채용할 계획입니다.

물론 일부 직원들은 먼저 구조조정을 해야겠지만 요.”

기존 대주주의 손발을 잘라내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네! 기존 재벌들은 재무구조 개선하라니까 제일먼저 하는 게 인력의 구조조정이었네. 지놈들은 쏙빠지고 대규모로 직원들을 잘라내는걸 대책이라고 내놓는걸 보면 속이 터지네. 그리고는 정부에 손을 벌리는 게 그놈들이야.”

흥분한 대통령이 탁자를 쳤다.

“재벌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손해는 남의 손에 넘기고 이익은 자신이 가지려고 덤벼들죠.”

“남의 손이란 게 결국은 국민의 혈세를 노리는 게 아닌가. 제 놈들이 경영에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실업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면 대기업의 절반은 이번에 문을 닫게 만들어야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과격한 소리였다.

재벌들이 들었다면 기겁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대통령님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에 주는 충격이 너무 큽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네. 그래도 기존에 망한 회사들을 다시 그놈들 손에 쥐어주는 건 내키지가 않아. 시간이 흐르면 지금도 법위에 군림하려는 놈들이 어떻게 행동하겠나?”

대통령은 위기가 지난 다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IMF가 지난 다음에 재벌의 시장 독점은 더욱 강해졌다. 대통령 단임제가 성공적으로 안착되면서 정치권력의 힘이 빠지고 재벌들의 지배력은 더욱 강해졌다.

“제멋대로 행동하려고 들겠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자네를 키워주는거네.”

대통령의 지금까지 발언이 단순한 감정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 란 소리였다.

“저도 마찬가지 사람입니다.”

“아니! 자네는 기존 재벌들과는 다르네. 자네가 살아온 과정을 안기부에서 철저하게 조사를 했는데 정말 놀답더군. 게다가 자네가 만든 펀드 말이야. 나도 찬찬히 들여다보았더니 실직자들에게 펀드 가입우선권을 주었다면서?”

아무리 실직을 해도 완전히 거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1년 후에 나올 펀드 수익이면 다시 힘을 되찾을 기반정도는 되어줄 것이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네. 그래서 내린 결론이야. 자네가 부실기업들을 인수해서 정상화 시킨 다음에 대규모로 인력을 충원해주게.”

대통령의 뜻은 규태가 부도가 난 기업들과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들을 인수해서 실업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소리였다.

규태의 속에 있던 생각과 부합되는 제안이었다.

IMF가 오자 기업들은 파견근로자들을 늘려 달라고 주문하고 관철시켰다.

그전까지는 당연하게 정규직원이 되기 위해 잠깐 지나는 과정인 수습기간을 늘렸고 계약직이란 것도 만들어 냈다.

한마디로 싼값에 사람을 사서 쓰다 버리겠다는 소리였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앞에서 목소리 큰 노동조합도 힘을 잃었다. 평생을 기득권과 싸워온 대통령의 입장에선 이제부터가 진짜 위기상황이었다.

“재벌들이 입맛대로 바꾸려고 하는 비정상적인 노동시장을 제가 바꿔주길 바라시는 거로군요.”

대통령이 무릎을 쳤다.

“그렇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바로 그거네. 내말대로 자네가 앞장서서 나서주게. 법이 가로막는다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법을 바꿔주겠네.”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였다.

규태가 솔직하게 별로 돈도 되지 않는 한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그가 회귀하기 전처럼 한국의 상황이 엉망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기업들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의 취업률은 바닥을 기었다.

직원채용을 거대한 권력처럼 휘둘러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극대화 시켰다. 재벌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살기 힘든 사회였다.

헬 조선이란 말이 나오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그 모든 것의 출발점부터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였다.

“너무 제가 가진 회사들이 커지는 게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이미 십대그룹의 1/3의 지분을 가진데다가 추가적으로 기아와 한보 같은 기업들을 인수하면 급격하게 추가 규태에게 쏠린다.

“하나만 약속해주게. 자네가 가진 대기업 주식 지분은 국민연금에만 팔겠다고 말이야.”

“......”

국민연금으로 주식을 사는 건 한계가 분명했다. 주식투자란게 수익이 왔다 갔다 해서 안정성이 떨어졌다.

그래도 국민연금으로 규태가 가진 지분을 천천히 인수하면 한국정부로서는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마련한 셈이 된다.

대통령의 말에 규태의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국민연금을 3년만 제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국민연금을?”

잠시 대통령도 말을 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해마다 연금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계획보다 연금지급 시기가 늦춰지고 받는 금액도 줄어들 겁니다.”

“......”

대통령도 비슷한 보고를 들은 바가 있었다. 지금처럼 국민연금을 지급하려면 국가 보조를 받아야 하는데 국가의 재정으로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을 보전해주기도 빠듯했다.

결국에는 규태의 말처럼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자네에게 전권을 준다면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가?”

“나스닥에 투자하겠습니다.”

투자할 곳은 널렸다. 이제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의 주가는 광란의 질주를 한다.

규태가 선별한 나스닥 상장기업에 투자하면 엄청난 수익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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