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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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도대체가 어떻게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는 거냐!”
규태의 생각처럼 제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동안 음악시장의 크기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제리였지만 스티브가 음원유통 시장을 노린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둘 사이에 끼어서 골치가 아프군. 네가 생각해도 이건 돈이 되는 것 같지? 웃기지도 않는 화난척은 그만하고.”
규태도 제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눈치 챘냐? 그렇게 티나냐?”
“엉! 무지하게 티난다.”
“그런데 이게 진짜 돈이 될까? 스티브가 벌이는 일이니까 일단 끼고는 싶은데 확신은 들지가 않네?”
음원유통 사업의 과실이 어떨지 대한 확신이 없으니 의문이 많아보였다.
제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날지 몰라도 사업적인 감각은 뛰어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성격이 좋지 않은 걸로 실리콘벨리에서 악명이 높지만 이런 쪽은 역시 스티브가 몇 수 위였다.
“돈이 될 거야. 스티브가 노리는 건 생태계라고 하지만 사실 돌려 말하자면 유통의 독점이란거지.”
“독점이라? 음원유통의 독점이란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리를 향해 규태가 못을 박았다.
“그런데 이거 너는 못해. 시도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
“왜! 내가 못한다는 거냐! 나를 지금 무시하는 거냐! 스티브는 할 수 있는데 나는 못한다는 말이지.”
규태의 말에 정말 기분이 나쁜 듯 이번에는 진짜로 펄쩍 펄쩍 뛰는 제리였다.
“응, 너 음반회사의 대표나 오너들을 설득할 수 있겠냐? 그 고집쟁이들을?”
대인관계에서 강점을 가졌다고 보기에 제리는 그쪽 능력이 딸렸다. 특히 음반회사의 대표들과 협상을 하기에 협상력이 떨어졌다.
음반회사의 대표쯤 되면 거의 요괴로 취급해도 무방했다. 경험이 거의 없는 제리를 협상장에 내세웠다가는 가벼운 후식거리였다.
“끄응,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자신이 생각해봐도 음반사의 대표들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제리가 나지막한 탄식을 터트렸다.
“너는 못해도 스티브는 잘해낼걸.”
업계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젊을 때부터 IT업계 스타였던 데다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무장한 스티브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는 이가 없었다.
협상기술은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음반사대표들을 가볍게 요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사람이었다.
원래에도 별다른 것 없이 음반회사를 설득해서 음원유통에 성공한 스티브였다. 지금은 규태가 뒤에 있으면서 무제한의 자금지원을 받는 처지.
이건 스티브에게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던 제리가 입을 열었다.
“네가 나 대신에 나서면 되잖아?”
“야! 애플의 최대주주가 나야. 애플 주식의 55%를 넘게 사들였다.”
규태가 대량으로 사들이고 아이맥도 성공을 거두면서 애플 주가도 많이 올랐다.
규태가 난색을 표하자 제리도 어쩔 수가 없었다.
“넌! 끄응, 네 말대로 애플도 네가 주인이구나.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눈치를 보아하니 스티브에게 음원유통의 권리를 통째로 뺏길 것 같아 제리가 발을 동동 굴렀다.
말을 하지 않을까하다가 규태가 입을 열었다.
“넌 가만히 눈치 보다가 업혀가는 전략을 써라.”
“업혀간다고? 어떻게?”
“응, 스티브가 협상을 해도 모든 곳에 말 빨이 먹히지 않을 거야. 보나마나 스티브는 독점을 원할 거거든.”
잠시 스티브의 행동을 그려본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부터 철저하게 독점을 유지하면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게 애플이다.
스티브가 물러나면서 잠시 그런 기조가 흐려졌지만 복귀이후로 다시 독점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기존에 다른 기업들에 주었던 애플제품의 생산라이센스도 전부 회수했다.
당연히 애플과 독점적인 음원유통 계약을 맺기를 원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틈을 노려라 이거구나.”
“그래 독점으로 애플에 음원을 공급하는 게 싫다는 음반사도 많이 나올 거야. 내가 볼때는 자체적인 유통망을 건설하겠다는 음반사도 나올걸? 성공하기는 힘들겠지만.”
“왜? 자체적인 유통망이 성공하기가 힘들다고?”
“음반사에서 만든다고 누가 들어나 주겠냐? 야후정도나 되야 유통이 가능하지 자체적인 유통망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봐야 실패할 확률이 높아.”
오프라인 음원유통은 온라인과는 확실하게 영업적으로 차별이 된다.
음원 가격도 문제고 다운로드를 하려면 손쉽게 접근 할 수가 있어야 했다. 음원을 이용하는 연령은 대부분 젊은 층이라 게임과 함께 유통하면 더욱 쉽게 시장을 장악할수 있었다.
가만히 규태의 말을 듣던 제리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런 전략이라면 확실히 승산이 있겠군.”
미리 준비를 했다가 애플이 치고 나가면 곧바로 패스트 팔로우 전략을 사용하라는 규태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제리를 설득해 돌려보내고는 온몸이 축 늘어졌다.
스티브 못지않게 제리도 고집쟁이였다.
애플의 시도는 초창기에는 그리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 못하지만 자리를 잡으면 엄청난 캐시카우가 된다. 애플은 지나치게 폐쇄적인 환경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서 반대쪽의 규모가 커지기 마련.
아이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폐쇄적으로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의 규모보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시장 규모가 더 컸다.
이쪽을 제리가 이끄는 야후가 먹어버리면 규태는 양손에 떡을 쥐게 되는 것이다.
‘흐흐흐,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음원유통은 한번 선점하면 쉽게 계약당사자를 바꾸지 않는다. 이후에 엄청나게 커질 시장이 통째로 규태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즐겁지 않을리가 없었다.
***
애플과 야후의 음원유통 문제를 둘에게 미루어 버리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던 규태를 한국으로 잡아 끈 것은 아버지의 전화 때문이었다.
“아니 정말 그렇게 괴롭혀요!”
당장이라도 쫒아가서 혼쭐을 내주겠다는 규태의 말에 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 아니 괴롭힌다는게 찾아와서 살려살라고 하소연을 하는데 아주 미치겠다.
이건 신종 괴롭힘인가?
-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 네가 한국에도 들리지않으니까 재벌들이 아주 미치려고 한다.
하긴 규태가 마음만 먹으면 경영권을 홀라당 빼앗길 위기에 처한 재벌들이지만 규태를 압박하느건 불가능했다.
이젠 월스트리트에서도 규태에게 밉게 보이려는 놈들이 없는데 한국재벌이라고 해봐야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역유지에 불과했다.
해서 직원들을 보내서 하소연을 주구장창 늘어놓으니 어지간한 부친도 견뎌내지를 못하는 것이다.
도대체가 정부와 기업들의 등살에 못 살겠다는 아버지의 하소연에 어쩔 수가 없어서 규태는 한국을 향해 전용기를 띄웠다.
“제기랄 도대체가 쉴 틈을 주지 않네. 주지를 않아.”
“투덜거리지 말라니까요.”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캐서린이 규태의 옆구리를 질렀다.
“아참! 캐서린이 그러면 흉기라니까! 바쁘다면서!”
맞고 사는 남편이 서러움이 이럴 때마다 규태를 괴롭혔다. 규태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사람이 아니지만 캐서린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삼보를 배우고 있었다.
“흥, 그러니까 내가 함께 온 게 못마땅하단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규태가 꼬리를 말았지만 캐서린의 목소리는 계속 올라갔다.
“유럽에 틀어박혀 있던 것도 이해해 주고 또 돌아와서도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도 이해를 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죠!”
“내가 잘못했다니까!”
캐서린의 말에 규태는 납작하고 엎드렸다.
여자 경험이 쌓이면서 배운 것은 여자가 목소리를 올리면 그냥 나 죽었습니다하고 납작 엎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여자와 말싸움을 해봐야 어지간한 남자는 그냥 무너진다.
한참이나 잔소리를 들은다음에야 겨울 풀려난 규태였다.
“야! 내가 혼나는 게 그렇게 좋냐?”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복일모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걸 들은 규태다.
“웃기는데 어떻게 합니까? 고소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런! 이걸 죽일 수도 없고!”
뭐라고 한소리를 하려다가 이빨도 안 들어갈 것 같아서 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해서인지 복일모가 예전처럼 기어올랐다.
한번 날을 잡아서 버릇을 고쳐줘야 할 것 같았다.
준비한 차에 올라타면서 투덜거리던 규태는 다시 날아오는 캐서린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느끼고 쓴 입맛만 다셨다.
“자자! 화는 그만 내시고 얼른 차에 오르시죠. 캐서린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미군기지의 비행장을 이용해서인지 주변은 조용했다.
마중 나온 비행장의 책임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규태는 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한 규태가 집안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를 반갑게 불렀음에도 할머니는 규태를 지나쳐 캐서린을 안았다.
‘이런’
“에구 우리 강아지.”
다 큰 처자의 엉덩이를 토닥이는데도 캐서린은 그저 웃음만 띄고는 할머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도 규태를 그냥 지나쳐 캐서린을 반겼다.
“멀리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다.”
“멀기는요! 비행기타고 누우면 금방인데요. “
“그래 우리는 너밖에 없다.”
뭐가 너밖에 없다는 건지? 이젠 집에 와도 반기는 이도 없는 규태는 씁쓸했다.
온 집안의 관심은 오로지 캐서린에게로 몰려들었다.
“쯔쯔, 이제 오라비는 우리 집에서 개털이야. 오랜만에 집에 와서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부모님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나오던 여동생의 얄미운 말에 규태가 이를 갈았다.
“그래 너라도 관심을 가져줘서 고오맙다. 너는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냐? 집에 있어야 할 시간아니냐?”
“호호호, 내가 아이를 가져서 말이야. 요즘은 여기서 살아.”
입덧이 심해서 몸조리를 한다고 친정에 왔다는 여동생의 말에 규태가 가만히 따져보았다. 조카를 가졌다는 시기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희 집에서 아주 난리가 났겠구만.”
“그럼 집에서 처음이잖아. 내가 처음 스타트를 했으니까 오라비도 얼른 따라오라고.”
할머니와 부모님도 외손자를 기다리다보니 친손자가 더욱 간절한 모양이었다. 이제 식만 올리지 않았지만 캐서린은 집안에서 큰며느리로 모두가 인정하는 모양새.
가뜩이나 까탈스런 애가 아이를 가졌으니 집안에서 어떤 유세를 부리고 있을지 생각하니 저절로 혀가 차졌다.
“쯔쯔, 매제가 고생이 많겠구나.”
“그럼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마음껏 부려 먹어보겠어.”
턱도 없는 소리였다. 가뜩이나 집안에서 목소리가 큰 여동생이다.
‘하여간 결혼은 무덤이라니까. 내 여동생이니까 봐주지 저게 뭐가 좋다고.’
“집안이 넓으니까 운동은 되겠다.”
규태가 머물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안해서 집을 새로 지었었다.
집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게 설계를 한집이라서 아주 넓은 집이었다. 주변에 따로 인가도 없어서 경호를 하기에도 불편이 없었다.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