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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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정리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일본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가뜩이나 버블붕괴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금융시장은 초토화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세계 100대기업에 많은 이름을 올렸던 은행과 증권사들이 겨우 파산을 면하고 목숨만 연명했다.
일본과 유럽 정부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진 것만으로도 클린턴은 만족했다.
미국의 투자은행들도 유럽금융위기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클린턴이 규태를 보자고 한 것은 요즘 들어서 심각해지고 있는 LTCM의 문제 때문이었다.
LTCM은 러시아 국채에 투자한 자금이 물리면서 전체 포트폴리오가 어긋났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 1조 2천억에 달하는 투자 포트폴리오가 금융시장을 위협하게 된다.
“자네도 알테지만 LTCM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나?”
“좋은 회사니까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됩니다.”
규태의 말처럼 LTCM은 계속해서 시장평균보다 높은 이익률을 보인 뛰어난 펀드다. 그래서 막대한 투자자금들이 펀드로 몰려들었다.
“당장 유동성이 문제잖나! 유동성이.”
저절로 클린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마나 부족하답니까?”
“당장 필요한 자금이 300억이라고 보고를 들었네. 소문이 퍼져나가면 그 금액으로도 부족할지 모르지.”
투자자들이 서로 다투어서 투자금을 회수해가겠다고 나서면 어떤 금융기관도 버텨낼 수 없다. 그만큼 엄중한 상황이기에 미국 정부에서도 LTCM의 위기는 철저하고 함구하고 비밀을 유지했다.
“연준에서 자금을 지원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딴청을 부리는 규태의 모습에 클린턴이 역정을 냈다.
“자꾸 그렇게 말을 돌릴 건가? 이번에 내가 자네를 많이 봐줬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아닌가보군. 내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규태는 속으로 혼자 투덜거렸다. 어쩐지 유럽을 뒤흔드는 큰 사고를 친후에도 일처리가 순조롭더라니.
정부에서 규테에게 바라는 게 있으니 압박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뭡니까?”
“자네가 LTCM에 자금을 지원하게 타이거 펀드는 지금 자금이 넘치고 있잖나. 유럽에서 빼낸 자금이 있지 않나.”
“......”
LTCM의 처지를 정확하게 알고있는 규태에게 클린턴의 요구는 크게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사람은 쉽게 해답을 던져주면 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한다.
한참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뜸을 들인 후에야 규태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존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죠.”
규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린턴이 손뼉을 쳤다.
“좋아, 이일은 자네가 해결하는 걸로 알지.”
클린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LTCM의 문제를 규태가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난 듯이 행동했다.
정치가다운 술수였지만 규태는 묵묵히 받아주었다.
그의 말처럼 이번에는 클린턴의 신세를 진 게 분명했으니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LTCM은 규태가 맡아서 처리를 해주어야 했다.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클린턴은 다음일정을 위해 바쁘게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사라졌다.
대통령의 일과는 분초를 다툴 정도로 일이 많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귀찮아하는 규태에게 대통령이란 직책은 전혀 부럽지가 않앗다.
클린턴과의 만남을 끝낸 규태는 다음날 오마하로 전용기를 타고 떠났다.
네브래스카의 최대도시이지만 오마하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도시다.
미주리 강 서안에 위치한 인구 40만의 도시지만 오마하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도시의 주요산업도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을 가공하는 산업이었다.
규태가 이 한적한 도시를 찾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의 하나가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를 찾은 규태는 생각보다 작은 회사규모에 놀랐다. 인원도 적어서 클 필요가 없었다.
“여긴 어쩐 일인가?”
갑자기 회사에 나타난 규태를 보고 워렌이 깜짝 놀랐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하나인 규태가 예고도 없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워렌이 보고 싶어서 왔지요.”
“실없는 소리하지 말고. 늙은이 얼굴봐서 뭐가 좋다고. “
“사실은 워렌보다는 멍거를 보고 싶었거든요.”
워렌과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찰스 멍거 부회장은 대중적으로 이름난 사람이 아니었다.
법률가 출신으로 펀드를 운영할 때도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뛰어난 투자자였다.
“이런! 자네에게는 나보다 멍거가 더 반가운 사람이라 이거지.”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화려하지 않은 워렌의 사무실에 멍거가 찾아왔다.
“여기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니까 자네도 알지?”
“모를 리가 있겠나. 반갑네.”
환대를 해주는 멍거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 규태는 한참동안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멍거와 워렌은 나이를 먹어 사업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이내 의기투합해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었다.
내재가치보다 가격이 낮은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두 사람이다.
규태의 투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기에 규태의 투자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참동안 질문공세에 시달리던 규태는 자신이 만든 밑천을 탈탈 털리고서야 풀려났다.
우렌과 멍거,두 사람의 최대관심은 최근 들어서 급등하는 기술주에 대한 투자였다. 격론을 거듭한 끝에 버크셔는 기술주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의 관점에서 나스닥에서 주가가 요동을 치는 기술주는 절대로 투자를 할 수가 없었고 해서도 안됐다.
규태와 의견이 갈린 것은 이 부분이었다.
기술주 중에서 최소한 많은 매출과 이익을 거두는 마이크로 소프트에 대한 투자는 이들의 투자 철학에도 크게 위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규태뿐만이 아니라 부하직원들도 기술주의 투자를 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두 사람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기술주의 주가는 미친 듯이 올라가는데 버크셔 해서웨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까. 나중에 워렌이 버크셔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워렌은 이제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사라질 것 같던 워렌과 버크셔 해서웨이가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는 것은 닷컴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커다란 이익이 눈앞에 있음에도 자신의 투자 철학을 반드시 지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중할 가치가 있었다.
“기술주의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 전통 굴뚝주에서 찾아보지 못한 성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서 그 미지의 가능성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도대체가 얼마나 IT와 닷컴기업의 규모가 커질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은 내가 대접하도록 하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모시겠네.”
그가 말하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이 뭔지를 훤하게 아는 멍거가 뒤로 빠졌다.
“난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서 점심은 둘이 하도록 하지.”
“멍거야 약속이 있다니까 어쩔 수 없고 자네는 시간이 되지?”
“당연하죠, 워렌이 사주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네요.”
“하하, 기대하게.”
“이런 워렌! 내가 한방 먹었네요.”
워렌이 규태를 끌고 간 곳은 맥도날드였다. 그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 맞기는 했다.
워낙 자주 가는 곳이었는지 누구도 워렌을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뉴욕에 워렌이 나타났다 하면 꽤나 시끄러웠을 것이다.
주문한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말 엄청나게 두툼한 페티를 집어넣은 햄버거였다.
“이렇게 먹고도 건강이 유지가 되요?”
“물론이지, 나는 아침에도 햄버거로 식사를 한다고.”
투자를 한 기업을 너무 사랑해서 맥도널드를 즐겨 찾는 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게 정말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주문한 맥도널드를 받아와서 한입 크게 베어 무는 워렌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보였다.
워렌은 100살 가까이 장수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사로 그게 가능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식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로 해야 해. 그게 오래 사는 길이야. 설령 짧게 산다고 해도 원하는 걸 먹다가 죽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어쩐지 내가 오마하로 가서 워렌을 만나면 대접하는 식사를 기대하라고 빌이 그러더니. 빌에게도 맥도널드를 사줬나요?”
“당연하지. 이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네. 그리고 햄버거에는 역시 코카콜라지.”
햄버거와 함께 옆에 놓은 커다란 크기의 코카콜라를 마시며 연신 코카콜라를 칭찬했다.
그가 젊은 시절에 큰 성공을 거둔 코카콜라의 주식 상당수는 팔았지만 사랑은 여전했다.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온 사무실에서 규태는 이곳에 방문한 진짜 이유를 말했다.
“클린턴을 만났는데 LTCM을 인수하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인수가 아니라 유동성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라는 소리였지만 규태는 사실을 슬쩍 비틀었다.
LTCM에 유동성 문제가 생겨나자 그곳을 노리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그들중에 가장 큰 거물이 워렌이었다.
“끄응, 그래서 자네가 여기까지 달려온 거로군. 어떻게 내가 노리는 곳이란 걸 알고 있었나?”
이전 역사에서는 결과적으로 너무 재다가 워렌은 LTCM인수에 실패했다.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면 LTCM투자는 매력적이다.
창립자인 존 메리웨더는 살로몬 출신의 채권전문가이고 숄즈와 머턴같은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들도 파트너로 함께 일을 했다.
인적자원들이 하나같이 탐이 나는 곳이다. 타이거 펀드의 규모가 커지면서 채권투자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데 LTCM의 채권운영인력을 흡수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전에는 LTCM은 연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파산을 면한다.
타이거 펀드가 유동성을 공급한다면 LTCM도 어려움을 벗어날 확률이 높았다. 지금 월가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곳은 누가 뭐래도 타이거 펀드였다.
“타이거를 무시하는건가요? 월가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긴, 이번에 일을 벌인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루기엔 껄끄러운 면이 많아서 규태가 밖으로 직접 드러나지 않았지만 월가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제가 가진 돈이 많은걸 아니까 LTCM을 해결하라는 부탁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자네가 유동성을 공급하면 펀드는 어려움을 넘길 걸세.”
지금까지의 훈훈했던 사무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상좋은 이웃집 노인네같은 외모의 워렌이지만 엄연한 거물 투자자였다. 자신이 손해보는걸 죽도록 싫어하는.
“먼저 워렌이 LTCM의 인수를 존에게 타진해 보세요. 제겐 아직 시간이 있거든요. 망하기 전에만 인수를 하면 됩니다.”
LCTM 투자이야기가 나오자 날카로워졌던 워렌의 눈초리가 규태의 말에 부드러워졌다.
“내가 펀드를 인수해도 자금지원을 해주겠다는 건가?”
“미국 정부에서 바라는 건 금유시장의 안정입니다. 지금 그대로 회사를 유지하건 워렌이 경영권을 가져가건 안정만 되면 된다는 소리입니다.“
“자네가 투자를 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면 LTCM이 위기를 넘기는 건 한순간이겠지.”
워렌과 규태가 손을 잡았다면 돈을 빼가려던 투자자들도 마음을 달리 먹을 것이다.
“존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창업자는 그대로 두지요. 유능한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너무 예상하지 못했었던 일이 벌어진 거니까요.”
“흐음.”
LTCM은 설립초기부터 워렌과 연관이 깊었다.
살로몬 채권투자팀에서 나온 존 메리웨더가 투자자로 염두에 뒀던 사람이 워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