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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45화 (145/220)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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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위기? 같이 죽자!

캐서린이 말을 하다가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만 해도 커다란 시장이다. 평소 규태의 성격이라면 최대한 일본에 가깝게 접근해서 투자를 지휘했을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캐서린이 이마를 짚었다.

“정말 미쳤군요! 이건 정말......”

여기까지 말했다면 캐서린은 이미 규태가 어떤 짓을 하려는지 전부 알아차렸다는 소리다.

“맞아 다음목표는 이탈리아야. 셜리가 미친 듯이 열광을 하던데.”

앤디와 셜리의 콤비는 미친 듯이 시장을 뒤흔들 면서 이익만 쏙 빼가는 거래방식 때문에 월가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그 둘을 한꺼번에 이탈리아에 풀어놓겠다는 말에 캐서린은 잠시 이탈리아인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리라화를 흔들 만 한 게...... 맞아! 피아트와 르노의 합작이야기가 나오다가 중단되었죠. 이걸 엮으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캐서린은 점점 규태의 투자전략에 접근해 나갔다.

어차피 갑판 위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었기에 규태는 느긋하게 캐서린이 답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은행! 은행을 노리고 있어요!”

“그래 크레디토 이탈리아노가 목표야.”

“......‘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규태는 더 미쳤다. 국책은행으로 출범한 크레디토 이탈리아노는 93년에 민영화된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거대은행이었다.

밀라노증시에 상장된 은행을 노리다니 정말 기가 막혔다.

“이탈리아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민영화 되었다고 해도 지분이? 채권! 그래 채권발행량이 많은 가요?”

“캐피탈리아란 은행과 거래를 하면서 많은 투자를 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어. 원래 계획은 두 은행을 합병해서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은행그룹을 만들려고 했는데 유로화 통합문제 때문에 미루어졌지. 캐피탈리아는 작년도에 투자실패로 엄청난 손실을 거두었고 은행이 흔들거리고 있어. 문제는 이 두 은행의 합병에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사실이야.”

유럽을 노리면서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얻어낸 귀중한 정보였다.

“오 마이 갓! 이런 판국에 두 은행의 합병문제가 거론되고 정치권까지 물고 들어가면 핵폭탄이 터지는 거야!”

듣기만 하던 캐서린이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엄청나게 부패했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이게 정치 스캔들로 비화되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거기에다가 프랑스에서는 총리의 자금유용까지 터질 거야.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정계를 뒤흔들고 뒤이어 금융까지 흔들어버리겠다는 규태의 계획은 듣고만 있어도 아찔했다.

“이 계획을 안다면 당장 DGSE(프랑스 정보국) 요원이 달려와서 총들고 난사를 할 거야! 이 미친 놈 @#@$%@”

한국어를 배우면서 규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던 캐서린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부모님의 앞이라고 성격에 맞지 않게 어지간히 얌전한 척은 다하더라니. 화가 나니까 어김없이 본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내가 약간 미치긴 했지.”

“정말......”

캐서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개 개인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뒤 흔들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아무리 개인의 부가 많다고 해도 이건 도를 넘었다.

“어떻게 할 셈이야.”

“그냥, 캐서린의 예상대로 이리저리 흔들면서 기회를 엿보는 거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눈꼬리가 하늘을 향한걸 보면 정말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규태, 오늘 진짜 죽.고.싶.어?”

“하하하, 캐서린의 생각보다 투입되는 자금이 많은 뿐이야. 소로스가 영국을 흔들 때 동원한 자금이 얼만줄 알아?”

“글쎄?”

“정확하게 동원된 자금을 추산하긴 어렵지만 대략 1100억 달러가 동원되었지. 이건 자체자금만이 아니라 함께 움직인 자금까지 포함한 금액이야. 그런데 이번에 동원되는 자금이 얼만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타이거 펀드의 자금규모는 철저하게 비밀이잖아!”

타이거 벤처를 운영하는 캐서린도 정확한 타이거 펀드의 자산규모를 알지 못했다. 그만큼 엄격하게 자산 규모를 비밀로 유지했다.

이제 재무장관의 자리에 있는 리처드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되는 전체 자산은 타이거 펀드만 5,000억이 넘었다. 오장우가 운영하는 라이징드래곤 펀드는 450억 달러, 리만에서도 500억 달러를 동원했다.

전부 합쳐 대략 6,000억 달러가 한꺼번에 움직인다. 이걸 막을 방법은 애당초 없었다.

정치권을 건드리는 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뿐.

규태가 왼손의 다섯 개 손가락을 쭉 폈다.

“이게 대답이야.”

규태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정말이야? 500억은 아닐 테고 5천억?”

머릿속에서 쉽게 상상할 수도 없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응, 내가 이런 일에 농담이나 하고 있겠어. 여기까지! 난 이제부터 노코멘트야.”

캐서린은 규태의 대답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더 이상 말하고 있을 힘이 없었다.

그만큼 규태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현실감이 없었다.

타이거 펀드의 규모가 커진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줄이야.

캐서린이 예상했던 자금은 이것보다 한참 적었다.

거기에 두 나라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달려들 피에 굶주린 상어 떼들이 한 무리였다.

96년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0.6%, 이전의 마이너스성장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경제 침체는 계속 이어졌다.

공공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해서 이탈리아정부는 계속해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진행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때에 리라화가 공격을 당하면 버틸 수 있는 힘이 크게 떨어졌다.

한참동안을 이리저리 작전의 성공가능성을 생각하던 캐서린은 이번 작전의 이유를 알지 못해 머리를 긁었다.

‘단순하게 이익을 볼 거라고 생각했으면 일본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맞을 텐데?’

부자는 망해도 남은 게 있는 법이다. 아직 일본경제는 세계경제 3위 독일과 4위 프랑스를 합친 크기보다 컸다.

먹음직한 일본을 두고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럽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건드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느긋하게 누워서 선탠을 하고 있는 규태를 보며 캐서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지난번에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제 와서 말을 바꾸면 어쩌자는 거요!”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르는 한국재무장관 강정식의 분노가 회의실을 쩌렁하게 울렸다.

“미안하다면 다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히로시 일본 대장상과의 전화통화를 끝낸 강정식은 가뜩이나 불면에 시달리느라 올라가버린 혈압 탓인지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틀 전에는 분명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던 히로시 대장성이 돌연 마음을 바꾸어 자금지원을 분명하게 거절했다.

회의실에 모여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재무부의 고위관료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자금지원에 긍정적이라 사실은 사면초가 상황인 대한민국에게 정말 가뭄 끝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지면 시행할 후속조치들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냈었다.

다 된밥이라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는데 일본의 자금 지원 거절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성미 급한 이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미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망하면 일본은 멀쩡할 줄 아는 거랍니까.”

1차관이 목소리를 높이며 울분을 터트렸지만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나마 정신을 가까스로 수습한 강정식이 김창석을 보았다.

일본의 자금지원이 무산되었으니 마지막 희망이었다.

제발..... 김규태대표만 마음을 먹으면 한국의 외환위기는 단숨에 넘을 수 있었다. 김규태가 세계제일의 부자라던데 300억 달러만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외환위기는 그냥 넘어가는 거다.

“김 대표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룡증권 소사장은 연락이 될 거 아니야!”

“아직까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정보부의 말로는 유럽에 있을 거라는데 정확한 위치는 자신들도 모른답니다. 그리고.....”

“뭔데 말 흐리지 말고! 빨리 말해! “

“지지난해에 김규태대표가 기업들하고 회사채 발행계약을 할 때의 계약서 사본입니다.”

“그게 어때서?”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십시오.”

강정식은 노안 때문에 애용하는 안경을 끼고 서류를 하나하나 훑었다.

“특별한 게 없잖아?”

“뒤쪽에 빨갛게 표시한 부분이 있습니다.”

김창석의 말에 강정식을 뒷장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김창석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찾아냈다.

그리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번 빌어먹을! 누가 이런 멍청한 계약을 한거야. 이건 독소조항이잖아. 환율이 급변하면 회사채가 전환사채로 바뀌게 되다니 이렇게 되면 대기업들은 전부 경영권이 넘어가는 거잖아.”

잘 보이지 않게 빼곡하게 작은 글씨로 적힌 특약사항에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 있을 시에 전환사채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발행자들도 환율이 이렇게 까지 변동할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침통한 표정의 김창석이었지만 뒤늦게 알았다고 해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건 고스란히 김규태의 손에 한국경제가 넘어가는 계약이야! 막을 방법이 없어?”

누가 봐도 그랬다.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지분이 단숨에 김규태의 손에 30%가까이 넘어간다.

“사정이 이러니 김규태가 우리를 도울 리가 없습니다.”

어쩐지 한사코 자신들을 피하려는 게 수상쩍다 싶었더니 이런 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강정식이 김창석을 보며 물었다.

“이게 전부 얼마어치나 발행 된 거야?”

“지금까지 파악한 게 150억입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기업들이 정확한 내용을 숨기고 있지만 모든 회사채가 같은 특약을 달고 발행했다면 200억 달러가 넘을 겁니다.”

“...... 하! 엎친데 덥쳤구만. 이런 계약을 했다면 그자가 우리를 도울 리가 없겠지.”

가만히만 있어도 한국경제가 손에 들어오는데 괜스레 한국을 돕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어 보였다.

강정식은 천장을 보았다. 부총리 겸 재무부장관의 자리에 취임하자마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경제위기를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이젠 막다른 골목이었다.

시시각각 한은이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떨어졌다. 아침에 들은 보고로는 80억 달러까지 외환보유고가 줄었다.

기업들의 줄도산도 계속되었다.

남아있는 기업들도 달러가 없어서 원자재를 수입하지 못하고 아우성을 쳐댔다.

더 이상은 자신의 힘으로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남은 선택이 강정식에겐 사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국경제에도.

말할 기운도 없이 힘이 빠진 강정식은 손을 내저어 서 모여든 관료들을 흩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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