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43화 (143/220)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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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위기

영국인들이 제일 증오하는 미국인이자 과부제조기란 소리를 듣는 악당이지만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악명을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92년 100억 달러의 투자금으로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하고 무너트리면서 80%의 수익을 거두었었다.

유럽경제 통합을 준비하기 위한 환율조절메커니즘(ERM)의 허점을 이용하여 영국 파운드화를 매도하고 독일 마르크화를 매수하는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런 투자는 월가에서 경제와 환율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정석적인 투자였다.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많은 이익에 열광했지만 당한 영국인들은 소로스를 욕했다.

그가 만든 퀀텀은 공매도로 성공을 거두면서 헤지펀드의 대명사처럼 불리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반대로 그만큼의 악명도 쌓았다.

이번에는 태국이었다.

소로스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 태국은 이미 주변 국가들과 통화스왑동맹을 맺으면서 단단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욕먹는 것만 따지면 내가 세계에서 일등일거야. 사실은 자네가 나 대신에 욕을 먹어야 하는데 말이야. 내가 한건 자네가 계획한 일들을 승인해준것 밖에 없었다고.”

뜬금없는 푸념이었지만 함께 자리를 한 소로스 펀드의 수석펀드매니저인 드라켄밀러는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악명높은 헤지펀드의 운용자인 조지 소로스는 묘하게 도덕적인 관념이 강했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이 아니라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철학교수를 하지 않았을까?

펀드밖의 사람들은 믿지않겟지만 소로스를 잘아는 퀀텀의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생각이었다.

“원래 앞장서는 대장은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막대한 돈을 버는 일인데 욕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소로스는 눈앞에서 느물거리는 드라켄밀러를 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자신의 투자 감각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떨어지지만 그가 영입한 수석 펀드매니저인 드라켄밀러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소로스의 악명을 드높인 영국의 파운드화 공격도 실제로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태국투자역시 마찬가지로 드라켄밀러가 대부분의 투자플랜을 짰다.

“제기랄! 자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할 말이 없잖나. 그래 자네가 장담한 대로 준비는 다됐겠지?”

드라켄밀러는 대학을 졸업하고 월가에 발을 들이민 후에 한 번도 연수익률 30%를 넘기지 못한 적이 없는 뛰어난 펀드매니저였다.

25년간 연 30%의 수익률 달성은 소로스도 워렌 버핏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엇다.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얼굴로 소로스의 말에 대답했다.

“예, 다른 펀드들에게 대략 이야기를 흘렀습니다.”

“타이거는? 거기가 제일 중요해 그쪽에서 이상하게 방향을 틀면 우리만 골탕을 먹는 거야.”

월가에서 현금동원능력이 제일 뛰어난 펀드라면 단연 타이거 펀드였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펀드가 커지는 속도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당연하죠. 대표인 샨 나링햄과 입을 맞춰두었습니다. 바트화 매도에 200억의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이로군. 거기 보스가 나를 피하는 것 같아서 좀 속이 달았었거든. 내가 연락을 해도 만나주지를 않더라고.”

“월가 사람이 이익을 보게 해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드라켄밀러의 말에 소로스가 피식 웃었다. 자신역시도 퀀텀을 만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익을 마다하는 월가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그렇지! 월스트리트에선 이익이 곧 신이지. 다른 펀드들은?”

“우리가 시작하면 따라올 겁니다.”

여러 번 확인했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최종 투자자금들을 확인했다. 드라켄밀러의 계산대로라면 바트화는 최소한 50%는 절하를 해야 했다.

태국의 외환보유고가 3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지만 이번 투자에 동원하는 자금은 전부 2000억 달러.

퀀텀이 치고 나가면 이미 들어가 있는 선진국들의 투자자금들도 일시에 빠져나올 계획이다.

작년기준으로 일본이 1,186억 달러로 가장 많고, 독일 417억 달러, 프랑스 400억 달러, 미국 342억 달러, 영국 264억 달러였다.

“그럼 시작이로군. 이제 내일부터 세상이 시끄러워질 거야.”

태국 최대 금융회사인 finance one사가 부동산부문대출로 파산하면서 촉발되었고, 그 후 태국 정부가 추가 부실화의 우려가 있는 은행과 금융회사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증액 적립할 것을 명령하면서 확산되었다.

「태국 경제위기로 가는가. 태국 제일의 금융기관 finance one 파산!」

「태국무역적자 심각, 올해도 이어질 듯」

「태국 제2의 멕시코가 되나?」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와 같은 경제신문들이 일제히 태국의 경제실상을 떠들어댔다.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분위기가 월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경제전문가들이 TV에 나와 침을 튀기며 태국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격정적으로 토론했다. TV프로그램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태국이 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거기에 화력을 더한 것은 뒤이어 들려온 태국의 대형 부동산 기업인 부시라시의 파산소식이었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비틀거리던 SET지수(Stock Exchange of Thailand)가 치명타를 입고 급락세를 보였다.

태국 경제계에선 당장이라도 고정환율제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터져 나왔지만 태국재무장관은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앞으로도 계속 지금의 환율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킷 태국재무장관은 바트화를 공격하는 헤지펀드들을 욕하면서 현재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CNN에서 생방송으로 보도하는 태국재무장관의 기자회견을 규태는 타이거 펀드의 임원들과 함께 TV를 시청했다.

TV속에서 재무장관은 거듭해서 태국의 경제가 탄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책회의를 위해 일본에 머물고 있던 아라타 히로시 일본지사장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태국의 현재사정을 제일 잘 아는 이들은 직접 투자를 한 일본의 증권사였다.

“태국정부가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

“급속하게 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는 버티겠지만 다음 공격에는 버티기 힘들 겁니다.”

“벌써요?”

“상반기 태국의 무역적자가 심각합니다. 엔화가 급속하게 절하되면서 태국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95년 80엔까지 강세를 보이던 엔 달러환율이 1년 동안 급속하게 절하되면서 115엔까지 내려갔다.

달러화에 연동해 움직이는 바트화가 급속하게 절하되는 엔화 때문에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를 보고 있었다.

이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태국정부에 불리한 사실이었다.

“6월? 늦어도 7월이면 결국 손을 들겠네요.”

“예,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날겁니다. 태국뿐만이 아니라 통화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이미 외국투자자들이 두 나라에서 철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쿠알라룸푸르와 자카르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태국에서 시작한 불꽃이 차근차근 기세를 올려서 동남아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불길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사정권에 들어간다.

“그때까지는 우리도 지켜보기만 합시다. 들어가 봐야 크게 먹을 것도 없는 시장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일본정보라면 모를까 동남아는 너무 규모가 작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피라미들과 아귀다툼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규태의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국에는 씨를 뿌려두었으니 수확할 시기만 정하면 되고 일본도 마찬가지.

미국정부가 펄쩍 뛰겠지만 일본도 이번의 위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잠시 머릿속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고심하던 규태가 오선한에게 물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습니까?

“한국정부에서 보스를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있나보군요.”

“머리가 있다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태국이 당하는걸 보면 말입니다.”

“지금 내가 만날 필요가 없겠죠. 유럽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합시다. 어차피 당분간은 투자때문에라도 유럽에 있을 생각이니까.”

한국정부의 관리들과 만나봐야 도움을 애걸하는 하소연이나 들어줘야 한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독이 발린 미끼도 잔뜩 한국에 뿌려 두었으니 반드시 한국은 흔들려야 했다.

“일본은 어떻게 할까요?”

“계획대로 합시다. 어차피 일본 금융기관들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일본이 아시아에 투자한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1100억이 넘었어요. 그걸 한꺼번에 떼인다고 생각하면 넘어갈 금융기관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일본지사에서 타이밍을 잘 살펴서 달러화를 보내라고 하세요.”

동남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시장이 작아서 먹을 살점이 별로 없었다.

동남아는 아귀처럼 달려들 헤지펀드들에게 맞기고 타이거가 노릴 곳은 덩치가 큰 일본이었다. 일본증시에 공매도를 치고 달러화를 일시에 송금하면 외환시장이 타격을 입는다. 그사이에 베어 먹을 살점이 양쪽으로 제법 두둑할 것이다. 규태에게 일본은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일본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공매도를 칠 주식들은 확보해두었습니까?”

“연기금의 담당자들에게 이미 손을 써두었습니다. 대만과 한국에까지 외환위기의 불씨가 당겨지면 그때를 노릴 계획입니다.”

규태가 생각할 때도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여름과 가을 태국에서 시작한 불길이 옆집을 태우고 홍콩과 대만,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을 향할 때 일본까지도 휘청거리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이익을 거둘 곳은 유럽시장이었다.

이미 타이거 펀드는 역외펀드를 동원해 유럽에서 리라화와 프랑화 국채를 잔뜩 사들였다.

르노와, 피아트,푸조의 주식들도 은밀하게 사들였다. 가지고 있는 채권과 주식을 한꺼번에 던지면 유럽에도 위기상황이 전파된다.

그때가 되면 아시아로 달려갔던 투기자금들도 새로운 먹잇감의 출현을 알게 될 것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고래도 상처를 입으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 떼를 이기지 못한다.

타이거펀드는 아시아에서 만족스런 수익을 얻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다.

“아직도 연락이 안되나?”

“업무 때문에 유럽으로 갔다고 합니다. 연락처를 달라고 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떻게 해서든지 김 대표하고 만나야해!”

“만나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와의 만남을 피하는 걸 보면 만나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강정식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재무장관 자리에 올랐을 때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한국은 태국과는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나. 제조업이라고 해봐야 일본의 하청기지 노릇을 하는 태국이다.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고환율이 되었으니 나라가 성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재무장관 자리에 올라보니 한국경제도 심상치 않은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뒷골이 당길 정도로 커다란 위험신호가 덮쳐왔다.

“청와대에선 뭐라고 합니까?”

“제기랄 환율에는 손대지 말라고 만 하고 있어! 절대로 국민소득 10,000달러를 지켜야 한다는 거야.”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같은 개혁적인 성향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던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이 다가오자 서서히 레임덕에 빠져들어 갔다.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국민소득을 일만 달러를 넘겼다는 치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를 하지만 주변의 돌아가는 사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전년도의 경제가 아주 엉망진창이었다는 점이었다.

12월에 마감한 전년도 경제지표를 떠올린 강정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역수지적자 규모가 300억을 넘어섰다.

올해도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잠정집계된 1월의 무역수지 적자가 30억달러를 넘었다. 역대 최악의 숫자였다.

미국이 강한 달러를 부르짖으면서 1달러에 120엔까지 오른 환율 탓에 수출이 막혀버렸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의 가격은 올라가고 수출하는 제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올라 대외경쟁력이 떨어졌다.

해결방법은 환율에 손을 대서 원화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인데 청와대에선 한사코 환율을 그대로 두기를 원하고 있으니 답이 보이지가 않았다.

“청와대에 대통령과 독대를 하면서 강력하게 권유를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날부로 옷을 벗게 될 거야.”

“그럼 어떻게 합니까.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납니다. 단자사들이 가지고 있는 태국회사채가 휴지조각이 될 예정입니다. 서둘러 보유하고 있는 태국회사채를 매각하도록 했지만 매수세가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총액이 120억 달러를 넘습니다. 그것도 최소한입니다. 단자사들과 다른 금융기관들이 숨기고 있을 투자금액까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경제위기가 코앞에 다가오자 일제히 금융기관의 투자내역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정말 아찔할 정도였다.

이재국장 김창석의 한탄이 강정식의 폐부를 아프게 찔렀다. 김창석이 맡은 이재국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핵심적인 자리였다.

강정식이 재무장관의 자리에 오르면서 예전부터 함께 일했던 김창석을 끌어올린 것이다.

평시라면 재무부에서도 핵심포스트에 올랐으니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며 다녔겠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자칫하면 그의 관운이 끝날 수도 있었다.

담당 국장이 눈앞이 캄캄하다는데 장관이라 해도 따로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태국이 모라토리움을 해버리면 태국에서 발행한 회사채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그 돈을 고스란히 일본 금융기관에 갚아야 하는 단자사들은 줄도산이다.

“최소한 일본정부에게 만기연장이라도 받아내야 합니다.”

위험을 미루는 것이지만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대출상환 기간이라도 늘려야 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빛이 보일 것 같았다.

“알았네. 내가 일본 대장성장관과 이야기를 해보도록하지.”

재수 없는 히로시 미쓰즈카 대장상과 통화를 하는 것이 크게 내킬 리가 없었다. 그래도 사정을 해서라도 대출기한을 연장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강정식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가 눈에 환하게 보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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