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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41화 (141/220)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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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일상

“이렇게 둘이서만 있으면 가족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식사를 하면서도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캐서린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니 가족들이 등을 떠밀던데 이미 내 얼굴은 실컷 봤다고 말이야. 둘이 시간을 가져서 빨리 잘 됐으면 바라는 모양이야.”

그 말대로 LA에서 시간을 보내려던 규태를 밀어낸 것은 가족들이었다. 막내와 여동생이 쑥덕거리더니 가족회의 결과라고 팔로알토 집으로 쫓겨났다.

주말에 캐서린과 함께 찾아올 것을 바라는 가족들의 모습에 가볍게 웃고 말았다.

“정말? 그래도 문제가 없을까?”

“가족들이 바라는 건 내가 빠르게 결혼하는 걸 테고 기왕이면 아이까지 하나 낳으면 더욱 좋아하겠지.”

가족들이 규태가 캐서린을 만난다고 하자 난리를 치는 것이 이해가 되긴 했다. 이 시기에 남자가 서른이 넘으면 노총각소리를 들었다.

거기에다 결혼생각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며 다녔으니 가족들이 캐서린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했다.

“......정말 그럴까?”

얼굴 색깔이 발그레한 모습이 예쁘긴 한데 아직 아이생각까지는 없는 규태였다. 이럴 때는 말을 돌리는 게 상책이었다.

“한국어 공부는 어떻게 되고 있어?”

캐서린은 외국어를 아주 잘한다. 규태가 말을 돌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캐서린이 입을 삐죽거렸다.

“흥, 잘하고 있어 다음에 가족들하고 만날 때는 깜짝 놀랄걸?”

“와우! 정말,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장난 아니겠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규태의 모습에 캐서린이 피식 웃었다.

“기대하라고!”

“그런데 둘이 있을 때는 왜 한국어를 안 쓰는 거야?”

“아직은 내가 말하는 게 완전하지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 원래 내 생각은 짠하고 놀라게 주려고 그랬거든!”

“네가 그렇다면 나도 한번 기대해볼게.”

머리가 좋은 데다 언어에 대한 감각도 탁월한 캐서린이다. 자신 있다고 하면 거의 네이티브 수준까지 올린 다음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에리히가 준비한 칼바도스까지 한잔마시고 나자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이렇게 한가하게 분위기를 잡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겠지만 캐서린에게 할 말이 있었다. 아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의류시장은 어떨 것 같아?”

“앞으로 별다를 게 있겠어? 지금처럼 명품과 일반의류시장이 함께 흘러가겠지. 사람들은 앞으로 시장규모가 커질 거라면 글쎄 난 그렇게 보지 않는데. 성장한다고 해도 의류시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경쟁자들이 치열하게 난립한 의류시장에 대한 캐서린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첨단 기술주의 투자를 주업으로 삼는 캐서린에게 의류란 이미 한물 간 아이템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의 조류는 변한다.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살아남는 건 소수의 패스트 의류업체들과 명품 회사들의 가치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캐서린도 자라(ZARA)는 알지?”

“자라라고? 스페인의 의류회사 값싼 의류를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알고 있어.”

“자라의 성장세가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

유럽의 저가 의류까지는 캐서린의 눈길이 닿지 않았다.

“유럽의 저가의류시장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쯤은 듣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성장성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캐서린의 모습에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엄청난 속도로 회사가 커지고 있거든! 미국에도 비슷한 갭(GAP)이 있지. “

“나도 그 회사 옷을 즐겨 입거든. 한 일 년 가볍게 입었다가 버리면 되니까 편하더라고. 가격부담도 없고 내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드니까 좋아.”

이미 억만장자에 올라선 캐서린이지만 소비패턴은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 유니클로라는 회사가 있어. 그 회사도 패스트의류를 만드는 회사인데 투자할 만 해.”

규태의 제안에 캐서린의 눈에 불이 반짝하고 들어왔다.

허투루 회사를 말하는 법이 없는 규태다. 한번 회사이름이 흘러나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큰 성공을 거두는 기업이 된다.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니까 분명 비상장 회사였다.

“일본회사면 도쿄증시에 상장되어 있을까?"

“아니 아직 비상장일거야.”

아직은 SPA라는 회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잡지 못했지만 도쿄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시기였다.

SPA는 미국 브랜드 ‘갭(GAP)’이 86년에 선보인 모델로 의류기획과 디자인, 생산, 제조, 유통과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아서 하는 의류 전문점을 말한다.

백화점과 같은 비싼 유통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곳을 피해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을 설치하고 비용을 절감해서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식의 유통업체이다.

고객수요와 시장상황에 따라 1~2주라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다품종 대량공급’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커다란 장점이다.

미국에서는 SPA를 패스트 패션이라고도 불렀다.

애초부터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를 즐겨하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방식의 개념이다.

유니클로의 창업자인 야니아 타다시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경영하다가 84년에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점을 내며 사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회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의 불황에 가성비를 인정받으면서 부터였다.

“갭의 주가는 별 볼일 없잖아?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데?”

뉴욕증시에 상장된 갭의 주가는 10불에서 30불선을 오르내렸다.

시장을 개척했지만 정작 앞으로 제일 크게 성장할 시장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미국시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유럽시장은 자라와 H&M이 잡아먹고 있으니 남은 것은 아시아시장이다.

“일본시장은 어떻게 생각해? SPA가 일본시장에서 먹힐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일본경제가 엉망이니까 일본에 만들어진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겠지.”

경제가 활황세를 보일 때 명품을 빨아들이던 일본이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로 소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일본정부가 내수를 살리려고 해도 백약이 무효했다.

“유니클로? 유니클로라고 했지!”

일본경제가 아무리 엉망으로 죽을 쑤고 있어도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경제대국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캐서린이 유니클로라는 이름을 몇 번 되뇌는걸 보며 규태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보나마나 당장 비행기를 잡아타고 일본으로 달려갈 것이었다.

한번 눈이 돌아간 캐서린을 막을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도 없었다.

***

“거기는 어때요? 요즘 워낙 조용해서 말이지.”

중국의 경제성장이 이제 시작되면서 많은 자금이 몰려들었다. 한발 빠르게 중국에 진입한 타이거 펀드 쪽의 우선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투자자금들은 이익 앞에선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 여기에 큰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 기반 조성은 끝나고 건물들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푸동지역에 하나 둘 고층 건물들이 올라갔다. 빠르게 착공한 건물들은 이미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완공되어 입주자들을 기다렸다.

“제임스는 올해도 산야로 갔나요?”

나이를 핑계로 제임스 릴리는 겨울철마다 샨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 춥지도 않은 상해의 겨울이었다.

- 여전합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나서시니 까요.

중국의 일은 대부분 로드릭의 손에서 처리가 되고 있으니 큰 탈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해 인터내셔날은 세 개의 고층건물에 대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추가로 올라가는 다섯 개의 고층 건물에 대한 지분도 보유하고 있어서 상해 인터내셔날은 바쁘게 움직였다.

“별일이 없다니 다행이로군요.”

- 추가로 올라가는 건물들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이젠 경쟁자가 너무 많아졌어요.

천안문 사태로 주춤하던 외자가 중국경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빠르게 들어왔다. 특히 경제 불황으로 갈 곳을 잃은 일본 자금의 유입이 빨랐다.

“해외투자자금이 몰려드는 건 조금 기다리면 해결이 될 겁니다.”

-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니요? 무슨 일이라도 생깁니까?

로드릭은 규태의 말이 조금 뜬금없게 들렸다.

“그런 게 있습니다. 손회장은 요즘도 상해에 자주옵니까?”

나중에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아시아가 쑥대밭이 된다는 걸 굳이 설명한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옵니다. 저희가 있는 같은 건물에 아예 사무소를 차렸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까요. 중국시장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을 겁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중국이라 움직임이 느리긴 하지만 확실히 조금씩 성장속도가 올라갔다.

- 손회장이 맡고 있는 투자펀드가 하이얼에 20억 달러규모의 투자를 했습니다. TCL하고 메이디에도 지분투자를 성공했습니다.

손정의의 투자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중국기업들은 벤처기업이나 마찬가지다. 하이얼은 조금 사정이 나왔지만 다른 회사들은 아직 외형이 형편없었다.

거기에 중국인 특유의 관시와 만만디 때문에 좀처럼 외국인이 투자를 하기도 힘들다.

손정의는 중국의 선발 주자인 가전 기업 중에서도 알짜배기만을 쏙 빼내어서 투자에 성공한 것이다.

투자한 기업들 전부가 다 중국을 대표하는 백색가전기업으로 성장한다.

“잘하고 있네요.”

투자한 기업의 이름을 들으면서 규태는 정말 만족했다.

투자나 주식이나 결과를 알고 있으면 쉬워 보이지만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손정의가 바쁘게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름값을 하고 있으니 규태가 따로 조언할게 없었다.

-그런데 보스, 중국에는 안 오십니까?

규태의 이름값이 올라가면서 중국지도자들이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태는 조금도 중국 땅에 발을 디디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전생에서 멋모르고 들어간 중국에서 1년간 연금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렸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전쟁의 와중에서 애꿎은 규태가 피를 본 것이었다.

그때이후로 규태는 절대로 중국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관시를 사방에 깔아두었지만 규태가 출국금지에 연금까지 당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없었다.

당하고만 있을 규태가 아니었다.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중국 지도부의 비자금을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중국정부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규태를 보는 중국정부의 시선이 의심에 가득차긴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워낙에 솜씨 좋은 해커에게 맡겨서 일을 처리한 탓에 흔적이 남지 않았다.

‘결국에는 내가 한 짓인지 알아낸 것 같단 말이야. 중국 국가안전부가 카를로스 녀석에게 도움을 준걸 보면 말이야.’

하여간 중국이라면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들었다.

“안갑니다. 여기서도 할 일이 많아요.”

단호한 규태의 거절에 로드릭이 입맛을 다셨다.

타이거 펀드의 최종보스인 규태의 중국방문을 기다리는 중국지도부가 많았다.

자신의 관시인 황줘나 제임스와 친분이 잇는 주룽지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보스가 중국에 들어온다면 강택민 국가주석까지도 관심을 보일 것 같은데 규태가 중국방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니 더 권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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