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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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커스 인수
“아니 그것보다는 말이죠. 형님이 레이커스를 인수한다는 말이 나오던데요?”
“그 이야기 누구한테 들었냐?”
아직은 주변사람들도 모르는 비밀협상을 어떻게 한국에 있는 매제가 알았는지 싶어 규태가 인상을 썼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협상에 나선 오선한과 실무자들이 고작일 텐데, 어디서 이야기가 샜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어지는 매제의 말을 듣고는 김이 빠져버렸다.
“집사람이 그러던데요? 이거 비밀입니까?”
“당연히 비밀이지. 미국에서도 일의진행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리고 인수를 검토 중이지 아직은 몰라. 그런데 미려가 어떻게 알았지?”
“그거 꼭 하면 안 됩니까?”
규태는 머리를 쳤다. 이제야 기억이 났지만 매제는 열혈 농구팬이었다. 보통은 마이클 조던에 열광하는데 이놈은 80년대부터 농구에 미쳐서인지 매직 존슨의 광팬.
나중에 들었었지만 88년에는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을 가지고 레이커스 경기를 보러가려고 시도했다가 그때부터 썸을 타고 있던 여동생 미려에게 한소리를 듣고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다고 들었다.
“가격을 논의 중이니까 적당한 가격이라면 야 인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현 구단주인 부스도 선수를 보는 안목이나 구단운영이 나쁜 구단주는 아니다. 하지만 규태에 비하면 자금조달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레이커스를 인수해서 드림팀을 만드는 것도 나쁘.....
그렇게 되면 마이클의 복귀와 함께 3번의 파이널 우승이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닐까.
조던의 팬이었던 팬심 때문에 잠시 레이커스 인수가 망설여졌다.
이전처럼 샤킬 오닐을 데려오고 코비 브라이언트도 입단하니까 리빌딩을 하기에는 좋았다.
레이커스가 제대로 굴러가는 건 99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사정이 이러니 앞이 보이지 않아서 구단주인 부스가 팀을 팔려고 하는 거겠지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매제에게 물었다.
“인수를 하게 되면 누구에게 구단운영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냐?”
야구야 워낙 규태가 광팬이었으니까 과거의 기억이 선명했지만 농구는 그다지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었다.
질문을 꺼내기 무섭게 매제 녀석이 말했다.
“당연히 제리 웨스트죠.”
여기도 제리야?
다저스의 제리와 야후의 제리에 이어 또 다른 제리의 등장이었다.
“제리 웨스트가 뭐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유명하냐?”
이런 무식한 사람이 있냐는 눈빛을 보내는 매제의 시건방진 모습에 화를 내려던 규태였지만 이어지는 말에 화낼 타이밍을 놓쳤다.
“레이커스의 레전드잖아요. 70년대 레이커스의 상징이요. 지금은 부사장으로 있는데 이사람 눈이 정확하다고 소문났어요.”
“70년대에도 잘나갔다고? 우승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
“70년대에는 72년 한번밖에는 파이널 우승을 못했지만 50년대와 80년대엔 파이널 우승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한마디로 야구에 양키스가 있다면 농구에는 레이커스가 있다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무시를 당했다 느꼈는지 매제가 펄쩍 뛰며 항변을 늘어놓았다.
“그래봐야 최근엔 디비전우승도 간당거리잖아. 내말이 틀려.”
“......”
할 말이 없어서 원통하다는 매제 녀석의 눈빛공격을 가분히 무시한 규태지만 팀을 인수하면 맡길 인물로 제리 웨스트를 고민했다.
“인수협상을 하고있으니까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건 알지?‘
“당연하죠. 제가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거운 사람도 아니지.”
특히 술을 마시면 입이 가벼워진다.
연속으로 말로 얻어맞은 매제가 의기소침해 하자 규태가 어깨를 두드렸다. 놀리기는 했지만 드센 여동생하고 사느라 고생이 많을것이엇다.
둘이 친구라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서도 항상 잡혀사는 매제였다.
“제리 웨스트가 유능하긴 하다는 거로군요.”
“레이커스에서만 15년을 뛴 레전드에다가 감독을 지냈고 12년을 단장으로 있었다가 작년에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95년에는 NBA경영자상까지 받았고 선수를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단장으로 있으면서 발굴한 선수가 제임스 워디, 블러디 디박, 세발로스같은 레전드급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성적이 왜 이 모양이래요?”
“아무래도 구단주의 입김 때문에 팀운영에 대한 전권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단장으로 있는 미치 컵책이 구단주의 심복이랍니다.”
“부스가 강한 성격이긴 하죠. 단장자리에 심복을 앉혀놓고 간섭하면 어쩔수가 없겠죠.”
직접적인 친분은 없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레이커스의 구단주인 부스도 보통 성깔이 아니었다. 심복을 주요 포스트에 앉혀놓고 시시콜콜한 일까지 간섭해대면 아무리 유능해도 버틸수가 없다.
대충은 가격협상이 마무리 되면서 12,700만 선에서 인수가 무리될 예정이었다.
“오 실장은 어떻게 생각해요? 내 지인이 제리 웨스트를 전권을 가진 사장으로 올리자고 추천했는데?”
지인이 누군지는 오선한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규태의 주변에서 농구에 관심을 가진 인물은 하나밖에 없엇다.
하지만 이럴때는 뻔히 알면서도 의뭉을 떨어야했다.
“그 지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 같습니다. 제리 웨스트만큼 레이커스를 확실하게 휘어잡을 카드가 없습니다.”
인수협상에 임하면서 정보원들을 동원해 레이커스 주변을 살핀 오선한의 발언은 규태가 마음에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인수가 결정되면서 첫번째로 잡은 약속이 레이커스의 부사장인 제리 웨스트와의 만남이었다. 웨스트는 외모만 보면 농구선수출신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188Cm의 훤칠한 키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신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규태가 약속장소에서 웨스트를 맞이했다.
앞으로 전권을 쥐어줄 사람을 미리 만나보는 건 당연했다.
“구단인수가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다음부터 주변에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레이커스의 인기가 좋은지 몰랐습니다.”
다저스의 구단주인 규태가 레이커스를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가자 한동안 쏟아지는 지인들의 전화에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
잘 아는 사람이면 그나마 나은 데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까지 한결같이 구단인수를 반겼다.
규태가 레이커스를 인수했다면 선수영입자금에 아낌없이 자금을 사용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저도 반갑습니다.”
날씨와 주변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해 가벼운 이야기를 한동안 나누었다.
“앞으로 구단의 전권을 제리 부사장에게 아니 이젠 사장이 되겠군요. 하여간 사장님께 맡길 생각입니다.”
규태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웨스트의 얼굴이 가볍게 달아올랐다.
미리 대충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눈앞에서 구단주에게 전권을 맡긴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제게 전권을 주신다는 의미는 정확하게 어떤 뜻입니까?”
“선수의 영입과 구단운영에 대한 전권입니다. 다만 자금은 제가 최종결제를 하겠습니다.”
“지금 다저스에서 하는 그대로로군요.”
사실 웨스트도 다저스의 제리 단장과 친분이 있었다.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인기구단이다 보니 연결이 없을 수가 없었다.
구단운영에 간섭을 받지 않는 제리단장에게 부러움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차례였다.
“10년쯤은 마음대로 운영하십시오. 아니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 이상도 구단운영에 힘을 써주세요.”
이제 환갑에 가까운 나이의 제리 웨스트였다. 사실상 종신직을 제의받은 셈이었다.
“정말 거침이 없으시군요.”
어지간한 제리 웨스트도 처음 보는 규태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제가 농구팀 운영은 잘 모릅니다. 선수를 보는 눈도 뛰어나지 않고요. 가진 건 돈이니 믿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운영을 하도록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규태는 앞으로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이들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해마다 페이롤을 5천만 달러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하는 제리 웨스트였다.
70년대까지 농구선수들은 수입이 많지가 않았다. 80년대 들어서 매직 존슨이 나타나고 NBA의 인기가 올라가고 90년대 들어서 마이클 조던이란 불세출의 스타가 출현하자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선수들의 연봉은 그리 높지 않았다.
미식축구와 인기 1위를 다투는 야구선수들의 연봉도 이제 막 급커브를 그리며 올라갔다.
막대한 자금을 쓰겠다는 소리지만 현실의 벽을 높았다.
“95-96년 NBA 셀러리 캡이 2,300만 달러입니다. 이걸 초과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만.”
“이런! 피해갈수는 없습니까? 야구는 사치세만 내면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까?”
“농구는 야구와 다르게 사치세 부담도 큽니다. 샐러리 캡 제도의 제제도 강력하고요.”
규태는 모르던 사실이었다.
“예외조항이 있기는 합니다만......”
“사치세는 얼마가 되도 상관없습니다. 팀을 재건하는데 최대한 주력해주세요.”
구단주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다른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조던이 돌아오는 시카고 불스가 상대라면 만만치가 않습니다. 조단이 예전 그대로의 실력이라면 당분간 파이널은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문제는 조던의 불스였다.
“실력은 그대로 일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사실은 제가 전에 불스를 인수하려고 제의를 헸었습니다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하하, 그랬군요.”
기분이 나쁠 법도 하지만 웨스트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시카고 불스는 자신이 돈이 많다면 한번 노려볼 마음을 가질 정도였으니까.
“조던의 나이가 있으니까 그 이후를 노려보도록 합시다.”
조던은 복귀 후에 3년 연속 파이널 우승이후 은퇴하게 된다.
“그래서 제가 노리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다.”
“누군데요?”
“올랜도 매직에서 뛰고 있는 샤킬 오닐이라는 센터입니다.”
규태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선수 보는 눈이 있다고 하더니 과연이었다.
이전에도 웨스트가 노리다가 영입에 성공한 선수였다. 대단히 성공적인 영입이어서 조던의 은퇴이후 레이커스는 파이널을 노리는 강팀이 된다.
샤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샤킬은 아직까지 연차가 쌓이지 않아서 파이널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올랜도를 강팀으로 만든 골밑의 무법자였다. 나가는 경기마다 평균 20득점에 10리바운드는 거뜬하게 해주는 대형 센터였다.
“신인으로는 코비 브라이언트를 노리고 있습니다. 레이커스의 드래프트 순위가 늦어서 선수를 하나 보내더라도 드래프트 순위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도 이전과 똑 같은 일처리였다.
“알겠습니다. 제리 사장님이 그렇게 봤다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단장인 컵책은 이번에 물러나게 될 겁니다.”
순순히 구단주의 승낙을 받자 제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단장 자리에 있으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컵책이 물러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팀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든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