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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36화 (136/220)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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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올까요?

남녀 간의 문제는 나이를 많이 먹어도 경험이 쌓여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난제였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규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당사자를 찾아갔다.

마냥 피하기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항상 일문제로 자주 마주하던 얼굴이지만 막상 사귀는 일로 단둘이 앉아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한참동안 어떤 말을 꺼내야 해야 할지를 망설이던 규태가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사귀는 문제 말입니다.”

성격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다소곳하게 앉아서 규태의 말을 듣는 캐서린을 보며 규태가 가볍게 헛웃음을 웃었다.

웃는 규태를 새초롬하고 바라본 캐서린이 물었다.

“그동안 우리 사귀는 문제를 깊이 생각은 해봤나요?”

“그럼요 요 며칠 사이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는지 머리가 뽀게 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 혼자만 고민한 게 아니라니까 다행이네요.”

여전히 단정한 자세로 규태와 이야기를 나누는 캐서린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어쩐지 살도 조금 빠진 것 같고 그가 알던 캐서린 그린이 아닌 것 같았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몰라도 이러고 있는 건 캐서린 같지가 않네요. 평소대로 해요.”

규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캐서린이 다소곳한 자세를 풀었다.

“아! 이런 건 정말 취향이 맞지가 않아요. 강현이 조언을 해줬는데, 이게 한국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이라던데요. 규태도 여자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나요? 나한테는 얌전한 여자가 좋다고 노래를 불렀잖아요.”

“캐서린이 잘못안겁니다. 솔직히 요즘 남자들이 그런 걸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아니에요.”

“그럼 규태는 어떤 여자를 원하는데요?”

“잘 알잖아요?“

“알기는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그렇게 신호를 줘도 모른 척 해놓고.”

원망하는 눈빛을 한 채 눈물까지 그렁거리자 규태가 이마를 긁었다.

역시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규태는 쓰게 웃었다.

“이렇게 합시다. 당장 결혼이니 뭐니 하는 건 너무 앞서가는 것 같고 지금부터 나도 마음을 열테니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집시다. 단 천천히요.”

뭐가 못마땅한지 뽀로통한 표정을 지은 캐서린이었지만 규태도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규태에게 엄청난 양보였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건가요?”

어쩐지 얼굴이 간지러웟지만 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낯이 간지로왔지만 규태는 묵묵히 캐서린이 쏟아내는 말을 들어주었다.

최소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잘해도 욕은 먹지 않는다.

한참동안을 캐서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될 수 있으면 사업이야기를 빼 놓으려고 했는데 둘이 붙어있으니 그게 않됐다.

남들이 본다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캐서린의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진짜로 사귀기로 한거야? 캐서린이랑? 진짜로? 장난이 아니라 정말?”

몇 번이나 다시 물어보던 제리가 경악을 했다. 다저스에 있는 제리 말고 야후에 서식하는 제리였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그냥 제정신이냐고 물어봐라.”

“흠흠!.”

제리가 답변을 못하고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사업적으로 부딪힐 일이 많은 제리다 보니 캐서린의 성질머리를 직접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 많이 당했나 보다?”

캐서린은 수틀리면 들이박고 보는 성격이다. 돌려 말하는 것도 없고 오로지 직진이다.

“지가 게으름부리다가 욕 좀 얻어먹은 것 가지고 꽁해가지고는.”

어느 사이 들어왔는지 규태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은 마크였다.

“게으름부리는 건 캐서린이 못 참지.”

“제리가 된통 당했었다. 내가 봐도 살벌하긴 하더라. 워라벨 이야기를 꺼냈다가 탈탈 털리는게 얼마나 불쌍하던지.”

벤처 기업가란 다른 말로 공돌이 너드들을 모아서 갈아 넣는 사업가다. 벤처 하는 놈이 워라벨을 따지고 있으면 애당초 글러먹은 놈이다.

“그런데 나하고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잖아?”

당연히 없을 수밖에, 규태가 제리가 노는 꼴을 그냥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네가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이 당했을걸. 그때 저 녀석 얼마나 분했는지 울더라.”

“엥? 울어?”

“아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함부로 그런 거짓말을 날조하지 마라.”

마크의 폭로에 제리가 버럭하고 화를 냈다.

규태가 마크를 돌아보자 어깨를 들썩 하는 모습을 보면 제리가 울었다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캐서린이 돈받아 먹고 게으른 꼴은 보지 못하지.”

“크윽! 마녀라니까.”

어쩐지 분하다는 표정을 하고 주먹까지 불끈 쥔 제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규태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울었던지 울지 않았던지도 상관없었다.

오죽하면 천사같......

이건 아닌 것 같고 하여튼 캐서린이 들들 볶았을까 싶었다.

하여간 너드들은 들들 갈아서 사흘에 한번 씩은 볶아줘야 일을 제대로 한다.

“그래서 네가 타이거 벤처의 자금투자를 질색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거로군.”

규태의 시선이 마크를 향했다. 어설프게 눈길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캐서린의 들볶임을 당하까 싶어서 투자받는걸 기피한 모양이었다. 제리가 당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자신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반대한 모양이지만 잘못 짚었다.

“흐흐, 너도 한번 당해봐라. 그 맛을 한번 보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거다.”

어쩐지 얄미운 미소를 입에 건 제리가 놀리던 마크에게 반격했다.

“끄응, 아직까지는 사업이 잘굴러 가니까 별탈이 없는데 내년이 문제지.”

마크가 새로 만든 회사인 PGS는 순조롭게 업무영역을 넓혀 나갔다. 가장 큰 인터넷 쇼핑사이트인 야후에 순조롭게 도입됐고 다른 회사들에도 도입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큰 성공 포인트는 역시 청소년 카드였다.

일정금액까지는 회사가 먼저 지불하고 나중에 요금을 지급받는 방식은 많은 자금이 필요로 한다.

자금이 넘쳐흐르는 타이거 펀드를 배경으로 둔 PGS만이 가능한 서비스였다.

사업적으로 잘나고 있지만 내년에는 더욱 시장 규모가 커질 전망이었다. 그러면 기업공개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벌써부터 슬슬 기업공개이야기를 하고 있다니까.”

“기업공개? 그걸 할 필요가 있을까? ‘

기업공개를 하려는 목적은 자금조달이다. 세 사람의 투자금에 타이거 펀드의 자금지원까지 풍족하게 받고 있는데 굳이 상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버틸 수 있겠냐?”

“뭘?”

“캐서린이 상장하자고 엄청나게 괴롭힐 텐데? 투자했으면 회수를 할려고 하는게 당연한거 아냐?”

“안 그럴걸?”

“정말?’

규태의 말에 마크가 반색을 했다.

“아니 왜? 도대체 왜? PGS만 상장하지 않겠다는 거냐?”

절규하는 제리였지만 규태의 대답은 심플했다.

“나중에 하는 게 더 돈이 될 테니까.”

서둘러 봐야 버블에 휩싸여서 고생을 할뿐 자금도 충분한데 사서 고생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 시장이 제대로 성숙하는 건 역시 10년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이다. 거품에 휘말리는 건 야후하나로도 충분했다.

어쩐지 혼자만 당한 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한 제리를 애써 무시한 규태였다.

혼자서 뭉크의 절규 놀이를 하는 제리를 두고 마크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시카고에 유망한 정치 지망생이 있는데 선거자금을 지원할 마음은 없냐?”

“정치 지망생?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냐? 너도 자금은 충분하잖아? 지망생이라면 큰선거에 나가는 것도 아닐텐데 자금이 많이 들어가지도 않을거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규태를 보며 마크는 쉽게 마음속의 말을 털어놓지 않았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지원하겟다고 했지만 그래도......”

마크가 제리의 눈치를 보았다.

“흥, 앞으로 제대로 클 신인인지를 알고 싶다는 거잖아.”

정말 어이가 없는 소리엿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넌 정치 쪽에도 선견지명이 있다고 사람들한테 알려져서 그래. 시장도 한번 약속도 없이 찾아온걸 억지로 돌려보냈다.”

“어디의 시장이 찾아왔다는 거냐?”

“샌프란시스코, 그쯤되면 욕심이 있을테니까. 알고싶었겠지.”

“선견지명이라? 아! 클린턴을 지원한 것 때문에? ‘

“클린턴뿐만 아니라 네가 조지 부시를 지원해서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이겼잖아. 다음은 몰라도 다다음 대통령선거에 강력한 후보자라던데? 마크도 자기 눈에 보이는 유망한 정치지망생을 들이밀어서 얼마나 클지를 미리 알아보겠다는 생각이겠지.“

조지부시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을 때 지원해서 주지사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꽤나 퍼진 모양이었다.

하긴 조지 부시의 입장에선 놀라운 혜안을 가진 규태의 지원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당사자인 규태의 입장에선 별로 반갑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마크의 이야기는 들어봐야 했다.

“네가 지원하고 싶은 정치 지망생이 누군데 그래?”

“시카고 대학에서 법대에 교수로 있는 사람인데. 흑인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였다.

“흑인이라면 지역정치인으로 끝나겠군.”

제리는 마크의 말에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누구나 당연히 가질 생각이었다. 브래들리 이펙트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LA시장을 역임하고 전국적인 지명도도 있는 흑인 정치인 브래들리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에 나가서 여론조사에선 이기고도 결국에는 분루를 삼키게 만든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였다.

유색인종이 중앙정치무대에 나가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주지사선거에도 물을 먹는데 더 이상 큰 정치인이 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것인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아직 미국은 백인들의 나라였다.

“내가 추천하는 사람은 버락 오바마라고 아주 똑똑한 사람이야. 일리노이 주의 상원의원에 출마할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말이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아주 비전이 있더라. 친화력이 엄청나. 시간이 없어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 같더라니까.”

마크가 하는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름만 들었어도 등에 전류가 흘렀다.

제기랄!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대박이었다.

못 먹어도 고!

당장 OK를 외치려던 규태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슬렀다. 먼저 확인할게 있었다.

“버락이란 사람을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야후에서 일하는 래리를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한다. 원래는 구글의 창업자가 아닌가. 야후에 얼떨결에 딸려와서 제리의 밑에서 지금 한창 구르는 중이었다.

“응, 래리가 어떻다는 거야?”

“래리의 아버지가 미시간대 교수거든. 오바마와 친분이 있다고 했어. 나도 만나봤는데 아주 스마트하고 야망도 있는 친구야. 하버드 법대를 나왔는데 시카고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기 전에는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아내와 함께 시민운동에 힘을 보태고는 있지만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이 정치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어.”

이렇게도 연결이 되나 싶었다.

“네 말을 들어보니까 영리한 사람 같네. 너같은 사람하고 만나서 쉽게 친해진다면 정치인으로 아주 훌륭한 자질을 가졌다고 봐야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래도 정치 자금 지원 문제는 조금 생각해보자.”

규태는 조금 뜸을 들이기로 했다. 규태가 당장 지원을 하자고 나서면 마크가 대뜸 눈치를 챌 염려가 있었다.

가뜩이나 클린턴과 부시를 지원한 문제로 규태에게 관심을 가진 정치가가 많다는데 오바마까지 냉큼 지원했다가 성공가도를 달리면 앞으로 엄청나게 시달릴 게 뻔했다. 오바마가 정치를 시작하려면 아직 남은시간이 충분했다.

정치가에 정치가 지망생에까지 시달릴 걸 생각하자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가뜩이나 벤처기업가로 유명해진데다 성공할 기업을 귀신같이 집어낸다는 소문까지 퍼지는 바람에 지금도 회사밖에는 미래 벤처기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규태와 짧은 대화라도 나누길 원했다.

규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크가 원하던 답변이 아니었는지 얼굴에 그늘에 드리웠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걸 보면 그 정치가 크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어떨 것 같아?”

제리가 타이밍이 좋게 끼어들었다.

오바마가 진짜 친화력이 엄청난 사람인건 분명했다. 정치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얼마 만나지도 않는 마크를 열성 지지자로 만들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규태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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