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34화 (134/220)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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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월드 시리즈

“히로스에는 안보이네요? 같이 오지 않았나요?”

아이들의 모친이자 규태가 만든 사설 미술관의 관장인 히로스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묻는 규태의 말에 오장우가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이번에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일본으로 달려갔습니다.”

“아!”

이건 규태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일에 몰두하는 건 좋지만 자연스럽게 가정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난감해 하는 규태를 보며 오장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히로스에가 좋아하니까요. 싫어했다면 억지로 그만두게 했겠지만 일을 할 때 반짝거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차마 말릴 수가 없더군요.”

이젠 오장우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소프트뱅크의 지분이 5%고 기룡증권의 지분이 3%다.

이외에도 새롭게 만들어진 펀드에 자본을 출자해서 15%의 지분을 확보했다. 가진 금액으로 따지면 재산이 50억 달러는 가뿐하게 넘어갔다.

욕심 같으면 아내가 가정에 충실하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손을 들었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에 빠진 사람은 보고 있어도 빛이 난다.

“형수님이 좋아하는 일이라서 정신없이 몰두하는가 보군요.”

“어쩌겠습니까. 그만두라고 하면 이혼당할 판인데요.”

“설마 그러기야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히로스에가 맡고 있는 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나이 먹어서 이혼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기어야죠. “

“아이들도 다 크지 않았습니까. 형수님도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하실 때도 됐죠. 펀드의 준비는 마무리가 되었나요?”

가만 두면 원망이 쏟아질까봐 규태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하아, 대충은요. 직원들도 자리를 잡았고 영업을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대중의 자금을 모집하는 뮤추얼 펀드가 아니면 펀드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다. 진짜는 이걸 어떻게 제대로 운용하는 가였다.

수익을 내야 펀드는 지속성을 가진다.

“자세한 사업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티격태격하던 막냇동생과 선영이도 다툼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자리에 가서 앉죠. 경기가 시작할 시간도 되었고요.”

복잡한 경기 전 예식들이 대충 마무리가 되었는지 관중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VIP룸까지 쩌렁하게 들려왔다.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규태의 성격에는 크게 맞지 않지만 하여튼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냥 지켜볼 뿐이다.

월드시리즈 1차전이라 경기 전에 하는 일들이 많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막냇동생 녀석이 툴툴거렸다.

“이건 구단주가 너무 나서지 않는 거 아냐? 시구야 초청인사가 한다고 해도 라커룸에 들어가서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할 것 갔냐? 선수들 미팅은 제리가 알아서 했을 거다. 지금쯤은 어디 구석에 틀어박혀서 TV로 경기를 지켜보겠지만 말이다.”

직접 경기를 직관하면 팀이 패배하는 징크스 때문에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보스는 절대로 귀찮은 일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제가 잘 압니다.”

규태와 함께 근무한지 얼마나 됐다고 복일모가 끼어들었다.

“복대리, 넌 이제 학교를 졸업할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학생이냐?”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대학졸업이 늦은 복일모를 규태가 타박했다.

이리저리 말을 한다고해도 규태에게는 전부 핑계로 들린다는 것을 아는 복일모였다.

“아직 1년 남았습니다.”

“졸업만 해봐라. 악착같이 부려먹어 줄 테니까.”

복일모와의 대화에 선영이가 끼어들었다.

“규태아저씨, 복아저씨 바싹 부려먹어요. 볼 때마다 너무 느긋하다니까요.”

볼을 부풀리며 복일모를 괴롭히라는 선영의 주문에 규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막냇동생이라면 몰라도 복일모가 선영이와 만난 접점을 알지 못했다.

“넌 언제 선영이하고 만난 적이 있냐?”

“제가 주말에 따로 갈 곳이 없습니다. 학교에 남아있으면 캐서린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고요. 주말에도 할 일이 있다고 불러내는 데는 환장하겠습니다. “

캐서린이 복일모를 잘 부려먹는다는 소문은 규태도 들었다.

“그래서 LA에 있는 내 집에 가서 논다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요.”

“주말에 시간이 있으면 나랑 어울려서 놀거든.”

보아하니 막내와 복대리가 죽이 맞는 모양이었다. 함께 놀다보니 주인이 없어 만만한 규태의 벨에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참나 원, 간들이 부었구만. 복대리 너는 내 집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드냐?”

직장상사와는 되도록 떨어져 지내는 게 상책이다.

“... 그래도 어쩝니까. 주말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데요.”

“갈 곳이 없긴. 가면 밥 주지, 같이 놀 사람 있지. 재미가 들려서 아주 주말마다 뻔질나게 드나든 모양이로군.”

복일모가 규태의 추궁에 할 말을 잃자 막내가 끼어들었다.

“아! 시끄러워 이제 경기 시작한다. 잔소리는 나중에 둘이 만나서 하도록 하시고 경기에 조금 집중하시죠. 형님. 중요한 경기 아닙니까! 중요한 경기.”

이죽거리는 동생을 보며 규태가 이를 악물었다. 이걸 죽일 수도 없고 남동생이란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천하의 원수의 다른 말이었다.

Hate New York City(뉴욕은 싫어)

It's cold and it's damp(춥고 축축해)

And all the people dressed like monkeys(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원숭이처럼 옷을 입고)

Let's leave Chicago to the Eskimos(시카고를 떠나 에스키모로 가자)

That town's a little bit too rugged(그 마을은 좀 너무 험난해)

For you and me you bad girl(너와 나를 위해 너는 나쁜 여자)

......

......

I love L.A. (We love it)

I love L.A. (We love it)

경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관중들이 응원가인 I love LA를 불러 재꼈다. 보통 경기에 승리했을 때 부르는 노래를 시작부터 부르는 건 아주 예외적인 일.

규태도 함께 소리 높여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1차전 선발로 나선 매덕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1회에 2점을 내주었지만 이내 반격에 나선 다저스였다.

3회까지 2:0으로 끌려가다가 라울 몬데시의 호쾌한 투런 홈런이 터지자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발광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경기감각이 올라오지 않아서 부진하던 라울의 부활이었다.

연이어 4회부터 다저스의 공격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프랑크 토마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연속안타에 4번타자로 나선 캔 그리피 주니어가 그랜드 슬럼을 터트리자 다저스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YES, YES.”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던 규태가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옆자리에 앉은 막냇동생과 끌어안았다.

이 순간에는 얄미운 동생 녀석의 얼굴도 너무나 예뻐 보였다. 격정의 기쁨이 지나가자 자신의 행동이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둘이 시선이 마주치자 멀뚱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여유 있는 점수 차로 이기고 있으니 규태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가볍게 놓아둔 과일로 심심한 입을 달래는데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온 선영이가 규태의 옆으로 다가와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지금 뭐하냐?”

“사진 찍잖아요. 이걸 찍어야 내가 진짜로 경기장에 왔다는 증거가 되죠. 야후 블로그에 올릴 사진이에요.”

“요즘 야후 블로그를 많이 이용하나 보지?”

“그럼요, 친구들도 하나같이 야후에 블로그를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요. 거기에 딱 아저씨하고 찍은 사진을 올려놓으면 누구도 저를 의심하지 않는다고요. 작년에도 VIP룸을 이용했잖아요. 친구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면서 사진을 부탁했거든요. 작년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더니 사이가 나쁜 애들은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놀리기도 했다고요. 흥, 두고 보라지. 내가 이렇게 사진을 올리면 엄청나게 부러워할걸요.”

코웃음을 치며 열심히 규태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고르는 모습은 친구들이 많은 인싸다운 대답이었다.

오빠까지 함께 불러서 규태의 옆에 서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딸아이의 부름을 받지 못한 오장우가 멀찌감치 에서 떨어져 언제나 딸아이가 부를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에고 자식이 원수다.’

“그래 네 마음대로 찍어봐라. 오사장님도 함께 와서 찍어요.”

슬그머니 기회만 엿보던 오장우가 규태의 말에 끼어들자 가만히 있던 막내와 복일모까지 끼어 들어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리저리 포즈를 바꿔가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선영이가 찍은 사진들이 만족스러웠는지 가족과 함께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바탕 사진 타임이 지나자 자리로 돌아온 규태는 자신만 빼놓고 막내와 복일모가 맥주를 마시는 광경을 목격했다.

“너희 지금 뭐하냐?”

“소리를 질렀으면 목이 마른 법이지. 이럴 때는 한잔 해줘야 한다고.”

경기를 보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맥주를 홀짝이던 막내의 말에 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거는?”

“형은 술 안마시잖아?”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내가 술을 안 마시긴! 절주를 하는 거지. ‘

규태가 투덜거리면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었다. 취하면 정신이 흐려지는 게 싫어서 술을 참고 있지만 이런 날에는 가볍게 한 캔 정도는 해줘야 했다.

애들처럼 야구경기를 보면서 음료수나 홀짝 거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9회 초까지 8:3으로 앞서나가자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규태는 9회초 마무리투수가 마지막 타자를 잡아내자 큰 한숨을 내쉬었다. 월드시리즈의 중요한 1차전에서 다저스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월드시리즈 기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부르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회사에는 규태의 말이 절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 케이티가 처리하면 되잖아요?”

“저는 절대로 보스의 결제를 받아야겠어요.”

어딘지 원한이 맺힌 것 같은 캐서린의 모습에 반항하려던 규태는 곱게 마음을 접었다.

절대로 케서린이 SF 자이언츠의 광팬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기를 빌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어디보자 기업공개(IPO)를 하겠다는 회사가 셋이네요?”

다음 달에 타이거 펀드가 투자한 벤처기업의 IPO가 예정된 기업의 숫자가 셋, 그 다음 달에는 넷이었다.

“앞으로 줄줄이 IPO가 대기하고 있거든요. 보스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야구경기가 보고 싶으세요?”

“벤처투자기업의 상장은 캐서린이 전부 맡지.......”

어물쩍 도망가려던 규태는 캐서린의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 공격에 꼬리를 말았다.

“호홍, 그래 지금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할 일을 내팽겨 치고 한가하게 공놀이나 보겠다는 건가요?”

“한가한 공놀이가 아니라.”

“그럼 뭔가요? 야구경기를 보면 하늘에서 돈이라도 뚝하고 떨어진다고 하던가요? 한가하게 공놀이를 보지 말고 일하세요! 일!”

규태가 야구경기를 보면 돈이 뚝 떨어진다. 자신이 다저스의 구단주가 아닌가. 거기에 타이거 벤처의 일은 대부분 캐서린이 알아서 처리를 해왔다.

IPO기업의 주식을 처리하는 문제는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캐서린의 행동은 봐줄 한도를 훌쩍 넘었다.

“지금 SF가 가을 야구를 못한다고 저한테 시비 거는 겁니까?”

화를 내려던 규태는 캐서린의 모습을 보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하의 캐서린 그린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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