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33화 (133/220)

#133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95년 월드 시리즈

경기 중에 얼마나 욕을 퍼부었는지 경기가 끝난 후 가볍게 술을 한잔 함께 하는 터너의 모습에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 않았다.

“제기랄! 이제 3차전이야 2패를 했지만 승부가 결정난건 아니라고.”

“뭐 그렇다 치고요. 할 말이 있다면서요?”

“레빈이 나한테 지분을 넘길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더군.”

“지분 교환을 원하는 건가요?”

“그래, 타임워너하고 TBS의 지분을 교환하자는 거지.”

냉정하게 말해서 타임워너의 지분 인수는 커다란 메리트가 없다.

타임 사와 워너브라더스가 합병하면서 만들어진 타임워너는 터너의 TBS와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체급을 키워나갔다.

CNN, TBS같은 터너가 만들거나 사들인 방송국들이 알짜 역할을 해주면서 타임워너가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지만 터너의 방송국들을 인수하는 건 물 건너 가버린 일.

터너와 친분을 유지하면서 현란한 혀놀림으로 잡아먹을 궁리를 하던 제럴드 레빈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산전수전 다겪은 천하의 루드 터너가 홀라당 넘어갈 정도였으니 독사 같은 혀놀림이 얼마나 매서울까 싶었다.

타임워너의 TBS인수는 많은 돈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지분교환으로 TBS를 인수하면서 터너에게 타임워너의 주식으로 지급했으니까.

한마디로 루드가 된통 물린 셈이었다.

“제라드랄 친하게 지내지 말라니까요. 내가 볼 때는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규태는 터너가 레빈과 개인적으로 어울리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지만 사업적인 제안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커먼 꿍꿍이 속을 감춘 채 이상한 제안을 한 것이다.

“나랑 사적으로 친하다니까. 레빈의 말을 들어보면 주식교환이 나쁜 것 같지도 않고.”

터너의 말에 떠오르는게 있어서 규태가 물끄러미 터너를 보았다.

“루드, 사업하기가 힘들어요?”

“...이젠 나이가 있어서 인지 조금씩 힘이 딸리기는 하더군. 그래서 레빈이 하는 말에 자꾸 끌리는지 모르지. 레빈이 다른 건 몰라도 사업수완하는 기가 막히거든.”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되요. 주변에 사람들 많잖아요. 뒤에서 젊은 사람들을 키워나가는 재미도 있잖아요. 제라드의 제안은 신경 쓰지 말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독단적인데다가 다혈질이라는 터너의 성질머리도 많이 줄었다.

젊었을 때는 성질머리가 정말 엄청났다고 들었는데.

나이들어 이빨 빠진 사자를 보는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아렷던 규태지만 금방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터너와 술을 함께 하며 오늘의 경기결과를 가지고 규태는 슬슬 약을 오리던 규태는 발끈 하는 터너의 성질머리를 코앞에서 고스란히 받으며 다시는 터너를 약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버럭 화를 내는 터너의 고함소리를 바로 앞에서 한번 겪어보니 머리통이 흔들릴 정도였다.

터너하면 어지간한 헐리우드의 노물들도 진저리를 내며 한발짝 물러나는게 이해가 됐다.

4차전 선발투수로 나선 노모 히데오는 6회까지 2실점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박천호가 등판해서 나머지 3회를 지워버렸다.

일찌감치 8점이나 득점을 해서 마무리가 등판할 이유가 없었기에 9회 마지막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고 환호하는 박천호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규태는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5차전은 다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지만 역시 장타력에서 앞서는 다저스가 홈런 두 방으로 2:0의 승리를 거두었다.

4승 1패로 다시 한 번 다저스의 높은 벽을 실감한 애틀랜타였다.

이미 월드시리즈로 진출한 다저스는 반대편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승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달아오른 기분에 터너에게 자랑질을 하다 또한번 터너의 유명한 성질머리를 경험한 규태였다.

***

“더 피터지게 싸웠으면 좋겠어.”

단장실에서 함께 시애틀과 클리블랜드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6차전 경기를 지켜보던 제리가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3승 2패로 클리블랜드가 앞섰으니 둘은 한마음으로 상대팀인 시애틀을 응원했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고, 우리 쪽은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저쪽은 쉬지 않고 혈투를 벌여주면 최상이지.”

“짐 토미가 심상치 않은데. 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선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인디언스는 저 선수가 될 것 같아.”

상대 투수의 빠른 공을 호쾌하게 받아쳐서 담장을 훌쩍 넘기는 짐 토미가 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제리가 걱정을 했다.

짐 토미는 89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에 지명되어 91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시작한 선수로 95시즌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시즌 초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클리블랜드의 강한 상승세를 이끈 사람은 짐 토미였다.

3할 1푼의 타격과 25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3번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포스트 시즌에 접어들면서 타격 감각이 물이 올랐는지 연신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제이콥스 필드의 담장 밖으로 공을 날렸다.

“아이고 미쳐 날뛰는구먼.”

94년 1루수 포지션을 변경한 이후 홈런 20개를 날리며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올해부터 완전하게 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투수진은 오렐 허사이저와 데니스 마르티네스를 앞세운 노장 듀오가 이끌고 줄리안 타바레스, 에릭 플랑크, 호세 메사의 불펜, 매니 라미네스, 짐 토미, 앨버트 벨, 폴 소렌토가 이끄는 타선이 조화를 이루면서 100승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말 그대로 엄청난 강팀이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발진을 불펜과 타선으로 메꾸는 공격에 강점을 가진 팀이었다.

“아무래도 시애틀이 힘들 것 같은데.”

먼저 3승을 거둔 클리블랜드가 6차전에서 승기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리가 머리를 흔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최종전까지 가서 승부가 갈렸으면 했지만 7회가 되기전에 인디언스의 강타선이 시애틀 투수진을 압도하는 중이었다.

앨버트 벨이 때린 공이 담장을 맞추고 2루에 나가있던 폴 소렌토가 가뿐하게 홈으로 들어와 1점을 보태는 모습이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다저스에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약이 끝나고 인디언스로 떠난 허사이저가 에이스의 위용을 되찾은 모습은 어쩐지 입맛이 씁쓸하게 했다.

“그래도 걱정은 안 돼, 선발진이야 우리가 압도하고 타선도 인디언스가 아메리칸 리그에서 ㄴ독보적이었다고 해도 우리도 그에 못지않아.”

제리의 진단처럼 전문가들의 의견은 7:3 정도로 다저스의 손을 들었다.

워낙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드문 독보적인 선발진을 갖춘 다저스였다. 애틀랜타와도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뛰어난 선발진은 포스트시즌에도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문제가 없겠지?”

“코치들이 신경을 쓰고 있는데다 선수들도 워낙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애틀랜타와의 4차전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캔 그리피 주니어의 수비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었다.

캔 그리피 주니어는 워낙 몸을 날리는 수비를 자주해서 잔부상이 많았다.

다저스로 옮겨오면서부터는 위험한 수비를 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수비를 선보였다.

“선수들은 아무런 문제없다니까 너는 그저 우승 후에 지급할 두둑한 보너스만 준비를 하면 돼.”

“OK. 미안하다. 이상하게 월드시리즈가 다가오니까 자꾸 긴장이 되네.”

“선수들도 하지 않는 긴장을 왜 구단주가 하냐.”

제리의 타박에 규태가 머쓱해했다.

월드 시리즈 3연패는 좀처럼 나오니 힘든 기록이다. 오클랜드가 72,73,74년 월드 시리즈를 제패한 이후 20년 만에 나오는 기록이었다.

주변에서도 슬슬 다저스 왕조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3연패 가지고 되겠냐? 적어도 앞으로도 다섯 번은 더 우승을 해야지.”

한술 더 뜨는 제리를 보며 규태가 뺨을 긁었다. 솔직히 전력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주전 선수들의 장기부상이나 이탈이 없다면 무난히 달성이 가능해 보였다.

“햐, 생각만 해도 좋은데.”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부터 왕조의 시작이니까. 선수들도 자신만만해 하는 중이야.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자만할까봐 감독이 억지로 누르고 있지만. 올해까지 우승하면 선수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지?”

“두툼한 보너스와 연봉이겠지. 선수들이 원하는 계약기간도 길어질 테고 연봉도 많이 요구하겠지.”

“그러니까 그걸 준비해 달라고.”

“걱정하지 마라. 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계약이 순조롭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규태의 큰소리에 제리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제리는 눈앞의 월드 시리즈보다 시즌이 끝난 후에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이 고민이었다.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난후의 후유증은 여간 크지 않을것으로 보였다. 선수와 에이전트들이 보통 욕심을 가지고 달려들지 않을 것이었다.

특히나 멘탈이 약한 프랑크 토마스와의 계약이 걱정이었는데 규태가 큰소리를 쳤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제리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걱정이 규태의 주머니 걱정이었다.

***

다저스의 홈구장에서 펼쳐지는 월드 시리즈 1차전 경기에 오장우의 가족들을 초대했다.

해마다 월드 시리즈가 되면 오장우의 가족들을 초대해야 우승을 한다는 징크스가 만들어졌다.

오장우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규태는 슬그머니 함께 나타난 복일모와 막냇동생을 타박했다.

“그렇게 경기장에 오라고 해도 오지 않더니 오늘은 웬일이냐?”

“월드시리즈잖아. 월드시리즈. 나도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녀석들한테 끌려왔어. 그리고 경기를 제대로 보려면 여기보다는 1루 쪽이 나은데. 거길 가야 제대로 응원도 할 수 있고.”

배가 불러 터진 소리를 하는 동생을 규태가 타박했다.

“그러면 거기 가서 응원을 하던지.”

“표가 있어야 가지!”

“월드 시리즈 1차전 표를 구하는 게 쉬운 줄 아냐?”

“내말이! 미친 거 아냐. 표를 구하려고 하니까 싼 게 5천 달러가 넘더라고.”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저스 홈에서 벌어지는 1차전 경기의 암표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구단에서 단속은 하지만 암표상을 막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저씨 그러니까 표를 미리미리 사뒀어야죠.”

훌쩍 커서 고등학생이 된 오선영이 앙칼지게 태진을 갈궜다.

“야! 내가 무슨 아저씨야.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아저씨가 아저씨죠. 오빠는 무슨!”

손을 허리에 올리고 막내와 싸우는 오선영의 모습을 보니 둘의 사이가 친해 보였다.

“둘은 매일 저래요.”

“자주 만났나보다?”

“아저씨 집에 가면 에리히 아저씨가 잘해주거든요. 엄마가 집에 없으면 저하고 선영이가 아저씨 집에 가서 밥을 먹거든요. 아빠도 요즘은 바쁘시잖아요.”

“그래 잘하고 있다. 이젠 다 컸다보다.”

“그럼요 이젠 저도 대학 갈 나이가 다 됐는데요.”

“와! 벌써 그렇게 됐구나.”

진영의 대답에 규태의 입에서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오장우의 집에 초대를 받고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 어리던 녀석이 어느 사이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다니 세월이 흐르는 것을 느끼려면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머쓱해하는 오진영의 뒤에서 오장우가 나섰다.

“스탠포드로 진학 예정입니다.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공부를 잘하더니, 진영이 정도면 스탠포드도 거뜬하죠.”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도 오진영은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오장우는 이젠 기룡 아메리카에서도 손을 떼고 개인적인 인맥을 이용한 펀드를 만들어 독립해나갔다.

물론 이건 외부에 보이기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규태와 친분이 있는 투자자들이 힘을 합쳐서 투자자금을 지원했다.

전부 320억 달러의 자금을 모았으니 처음 시작하는 펀드의 규모치곤 상당히 큰 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