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31화 (131/220)

#131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한인 벤처기업

승패와 관계없이 올타임레전드들로 구성된 다저스가 어떤 경기를 보여줄는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이놈의 일은 정말 끝이 없네.’

혼자 투덜거렸다. 가뜩이나 전체 보유자금의 흐름을 한바탕 뒤흔들 면서 이리저리 자금을 이동시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금의 투자내역을 하나하나 살펴야 했다.

유럽은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서 기존에 이용하던 페이퍼 컴퍼니는 폐쇄하고 새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면 자금 추적이 들어오더라도 폐쇄된 페이퍼 컴퍼니를 발견할 뿐 새롭게 만들어진 회사들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극도로 은밀한 작업이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은 극히 한정된다.

막대한 보수를 지급받고 비밀유지 서약을 한 변화사와 회계사가 한 팀이 되어 작업을 진행하고 최종 검토는 규태가 담당한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해 있던 규태를 현실로 끌어올린 사람은 오선한 실장이었다.

“보스, 바쁘십니까?”

“내가 뭘 하는지 다 알면서 왜 물어요?”

얼마나 보고 있던 서류에 신경을 썼는지 눈가가 짓무르는 느낌이었다.

“저녁시간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퇴근시간이 지났습니다. 가볍게 식사를 하시고 작업을 계속 하시겠습니까?”

“점심도 대충 햄버거로 때웠더니 속이 느글거리네요. 오늘은 그만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겠어요.”

일주일을 바쁘게 살면서 간단하게 먹었더니 한식생각이 간절했다.

“그럼 한식으로 저녁을 준비하라고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쉽게도 주변에 한식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식을 먹으려면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까지 나가야했다.

그래서 규태는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한식요리사를 섭외해서 고용계약을 맺었다.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리콘벨리에서 근무하는 아들 내외와 같이 살기위해 이주해온 나이 많은 아주머니였다.

특별한 것이 없는 소위 말하는 집밥이기에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가벼운 기본반찬정도는 집에서 준비해둔 것을 가져 오고 저택에서 국 하나를 새롭게 끓이는 식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군침이 넘어가네요.”

“역시 한국인에겐 집밥이 최고죠. 미슐렝 쓰리스타 이런 건 제 입맛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규태와 언제나 같이 움직이는 오선한은 함께 값비싼 음식을 먹을 일이 많았다. 모임을 가지고 식사를 하면 보통 최상급의 레스토랑을 예약한다. 따로 음식을 준비한다면 하나같이 최상급 셰프의 손길을 거치는 비싼 음식들이다.

레스토랑을 고르는 기준은 미슐렝 가이드를 기준으로 한다. 최소한 하나이상의 별을 받은 식당들을 고르게 되지만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들은 규태의 입맛에는 크게 맞지가 않았다.

“지난번에는 주변에서 하도 칭찬을 많이 해서 크게 기대를 하고 갔는데 메인요리가 너무 진하고 무겁더군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입맛에 맞춘 거니까요.”

“오사장님 댁에서 초대를 받고 갔고 갔을 때 음식이 제일 입맛에 맞았어요.”

가끔 LA 벨에어의 저택부근으로 이사해 이웃사촌이 된 오장우가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히로스에가 해준 음식이 담백한것을 좋아하는 규태의 입맛에 맞았다.

명가출신답게 공부를 하면서도 요리를 따로 배웠다고 들었다.

그 집에선 한식과 일식의 퓨전 요리들이 주로 나왔다. 요즘은 히로스에도 맡은 일이 바빠지면서 직접 식사준비를 하지 못했다.

“히로스에 형수님 솜씨가 제일 좋기는 한데 워낙 바쁘시니 까요.”

자신이 맡긴 일 때문에 바쁜 사람이니 규태는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못한다.

히로스에는 미술관을 만들며 관장으로 취임해서 활발하게 작품을 사들였다. 거품기 일본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갔던 걸작 미술품들이 하나 둘 규태의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선한이 미술관의 매입현황을 간단하게 보고했다.

“세잔의 작품 2점이 매물로 나왔답니다. 지난달에는 구스타브 클림트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매입했고요.”

“세잔의 작품이야 그렇다고 해도 클림트 작품까지 일본에 가있었어요?”

인상파야 일본 갑부들이 워낙 좋아해서 일본에 잇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지만 클림트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아직 세계적으로 이름값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미친 듯이 가격이 뛰겠지만 말이다.

“유독 클림트와 에곤 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림 매도자의 신원은 히로스에 관장이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히로스에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상사인 규태에게도 그림의 판매자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 준 것이 소문이 나면서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일본 부자들이 히로스에에게 가지고 있던 예술품을 넘겼다.

일본경제가 버블이 꺼지면서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 죽을 정도까지 몰리지는 않았는지 체면을 차리느라 주변에 소장한 그림을 파는것을 숨기기를 원했다.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잘하고 있으니까요. 지난번에는 국보급 고려청자를 사들여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국보 상감청자와 비견되는 명품이 일본수집가의 손에서 벗어나 규태의 수중에 들어왔다.

도자기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규태도 한번 보고는 단박에 빠져들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매물이 많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청자를 많이도 사들였다니까요.”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 봐야죠. 나중에 한국에 박물관을 지으려면 말입니다.”

한때는 국가에 기증할까도 고심했지만 관리가 형편없었다. 아예 박물관을 하나 새로 지을 생각이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물량은 중국에서 출토된 고미술품들이다.

아직 중국의 성장이 시작되기 전이라 고미술품 가격도 저렴했다. 두보의 시가 적혀진 명나라 시기의 유명화가 당인의 그림 이 10억을 넘지 않았다. 세월이 조금만 지나가도 가격은 미친듯이 오른다.

규태의 뜻에 따라 히로스에는 명,청시대의 작품들을 쓸어담았다.

삼국의 고미술품 중에서 제일 비싼 가격은 아직 경제규모가 제일 큰 일본의 고미술품이었다.

***

오랜만에 집에서 한식을 먹으니 입맛이 저절로 돌았다. 금세 뚝딱하고 한 그릇을 비우고 두 번째 공기까지 받아드니까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늦은 밤에 연락을 받고 달려와 식사를 만들어준 조정례는 두 사람이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한식인지를 모르겠네요.”

“오늘 저녁은 유난히 맛있는데요?”

“반찬들이 물 건너온 것들이라 입맛에 맞을 거야.”

“아이고 귀한 반찬이네요.”

“아무리 비슷한 걸 구해서 쓴다고 해도 미국산 재료는 제 맛이 나지 않거든. 마침 내가 아는 집에서 재배한 재료를 보내주어서 어제 만든 반찬들이야.”

“우리가 운이 좋았네요.”

“그래 마침 시간이 맞아 떨어진 거지. 그런데 김사장.”

“예.”

“그러게 부자라면서? 난 몰랐는데 아들내미 내외가 내가 김사장 집에서 일을 한다니까 깜짝 놀라던데.”

“하하, 그런가 보죠.”

규태는 조정례의 말을 가볍게 웃어 넘겼다.

“우리 사장님이 한국에서는 제일 부자이고 세계에서도 몇 번째 안에 들어가는 부자입니다.”

얼굴에 금칠을 하는 건 스스로 하는 것보다는 밑에서 해줘야 맛이 산다.

“아이고! 내가 몰랐네. 하긴, 낮에 보니까 집에 집사도 몇이나 있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더니만 김사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먼.”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규태의 팔로알토 저택에만 일하는 사람이 스물이 넘었다.

말이 사무실과 집이 붙어 있는 것이지 경호원들과 비서진까지 함께 거주를 해야 해서 집의 규모가 다른 곳에 비해 못지않게 컸다.

“집이 얼마나 큰 거야? 걸어서는 대문에서부터 한참 걸리겠던데.”

“1에이커가 조금 안되니까요. 넓기는 넓죠. 집이 지어진 대지규모가 1,200평정도고요.”

사무실과 집까지 포함한 대지의 면적이 0.9 헥타르(3,000평)였다.

팔로알토의 땅값이 그렇게 싸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아주 넓게 터를 잡았다.

“그래 아주 내가 어렸을 적에 살던 서울 집이 떠오르더라니까.”

“이거하고 비슷한 크기라면 북촌에 사셨나요?”

“잘 아네, 그 당시엔 북촌에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이 많았지.”

“저희 집은 남촌이었거든요.”

북촌은 대대로 권문세가들의 저택이 많았고 남촌에는 하급관료나 중인들의 집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고 이제 보니 고향사람이네. 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다니 참 반갑기 그지없네.”

서울 토박이들이 모여 살던 서울 사대문안 사람들은 한국전쟁이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저도 반갑습니다. 서울사람이라고 해도 사대문 안에서 살던 사람을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계속 서울에서 사신 겁니까?”

“그렇지, 내가 시집을 가서 평생 산 곳도 종로니까. 남편이 젊은 시절에 미군정에서 일했거든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네. 그때 얼마나 막막하던지. 일가붙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우리 친정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 종로 피맛골에서 식당을 하면서 어린 아들 녀석 하나 데리고 악착같이 살았지.”

한참동안 아주머니는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도 부르겠다 마음이 느긋해진 규태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음식솜씨만큼 말솜씨가 좋아서인지 아주머니의 말이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조정례여사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후식으로 수정과까지 챙겨주는 신기를 발휘했다.

“이것도 맛있네요.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은데요?”

규태의 칭찬에 조정례여사의 얼굴에 뿌듯한 자부심이 떠올랐다.

“이걸 만드는 비법이 따로 있어. 피맛골에서 식당을 할 때는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

“이렇게 맛있는 수정과를 매일 마실 테니 아드님이 부럽네요.”

인근에서 아들 내외에 함께 사는 조정례였다.

“웬걸 아들 내외가 너무 바빠서 나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

“실리콘 벨리의 기업들이 다 그렇죠.”

실리콘 벨리지역에 산재한 기업들은 잘나가는 기업들은 잘나가는 대로 못나가는 기업들은 못나가는 대로 직원을 들볶았다.

“여기에서 아들 녀석이 회사를 하나 차렸거든.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벤처인가 뭔가를 차렸는데 요즘 여간 힘든 게 아닌 모양이야.”

“무슨 회사요? 한국인이 실리콘벨리에서 벤처회사를 차렸다면 우리도 이름을 알겠는데요?”

“글쎄 난 정확하게 잘은 모르겠고, 여하튼 애플하고 같이 일을 한다고 하던데.”

조정례의 말에 오선한이 눈을 크게 떴다.

“아드님 이름이 혹시 피터 강이에요?”

“맞아! 자네도 내 아들을 아는 모양이로구만.”

해롤드의 신원조회를 통과했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피터 강이라는 이름은 규태도 들어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