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24화 (124/220)

#124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회사인수

기룡증권 기업 인수팀이 대전으로 내려와서 인수작업을 도우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기존에 주식을 사들이던 태평양증권이 예상보다 높아진 주식가격에 매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치고나가 지분을 대거 늘렸다.

주당 매입가격이 15,000원까지 올라가자 부양증권이 손을 털었다.

그들로서는 7,000원대에 사들인 주식을 15,000원에 털고 나가면 그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름이 깊어지는 8월이 되자 중앙투신의 지분 56%를 KT창투와 기룡증권이 사들였다.

주식 매입금액으로 총 450억이 들어갔다.

“태평양증권의 지분은 어떻게 할까요? 아직까지 매각의사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팔지 않겠다면 내버려둡시다. 앞으로 증자를 하다보면 저절로 지분이 줄어들테니까요.”

규태의 계획으로 중앙투자신탁의 자본금을 3,000억까지 증자할 계획이었다. 태평양증권의 자금력으로 따라오지 못할것이었다.

또 다른 인수 대상인 대전단자도 마찬가지로 53%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초기에는 기존 대주주의 반대로 지분인수가 난항을 겪었지만 인수가격을 올리자 크게 어렵지 않게 과반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대전에 머물면서 인수 작업을 지휘하던 규태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과반의 지분을 넘기고 주총을 열어서 경영진을 교체하는 작업까지 마무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두 회사의 임원진을 교체하는 작업은 아무래도 소사장님께 맡겨야겠군요.”

규태가 부르자 대전으로 내려온 소진세의 표정은 밝았다. 2개 회사를 인수하는 바람에 사장자리가 두 개나 생긴 것이다.

밑의 직원들이 승진할 기회가 그만큼 생긴 것이니 표정이 나쁠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가을에 주총을 여는 것으로 하고 증자까지 마무리 하겠습니다.”

두회사 모두 자본금이 충분하지 않았다. 제대로 투자를 하려면 증자는 필수였다.

“회사채발행 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면서요?”

“어제 날짜로 발행금액을 확정했습니다. 재경원에 신고가 끝나면 곧바로 인수할 계획입니다.”

금액과 이자율을 가지고 밀고 당기는 작업을 한 끝에 회사채 발행이 확정됐다.

“회사채 발행 총금액이 전부 얼마나 됩니까?”

“전부 금액이 235억 달러어치가 발행됩니다.”

“금액이 또 늘었네요? “

규태의 말에 소진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꿀 만난 개미떼처럼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겠다고 달려들 다보니 조금씩 금액이 늘어났습니다.”

“그게 독을 잔뜩 바른 거라는 건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군요.”

냉소하는 규태를 보며 소진세가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하나 한국경제의 위기를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만큼 경기가 활황이었다.

“지금 국내경기는 최상이니까요. 그런데 정말로 내년부터 경기가 하강할까요?”

소진세의 말처럼 95년 한국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이 전체 산업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산업비중이 8%, 수출비중이 13%였던 반도체 산업의 성장은 작년부터 이어진 수출호조로 빠르게 비중을 늘려갔다.

“반도체가격이 너무 비정상이지 않습니까. 돌리지 않았던 공장들을 가동하게 되면 물량부족이 해소되고 가격도 많이 떨어질 겁니다. 삼정전자가 2/4분기에 거둔 수익만 1조 2천억이랍니다. 미국과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눈이 돌아가지 않겠어요?”

국내반도체 시장이 활기를 띄는 건 그동안 물량공급 과다로 인한 반도체 가격의 하락에 채산을 맞추지 못한 해외 반도체기업들이 가동률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본 반도체 산업 재제에 직격탄을 맞은 일본 반도체 기업들의 가동률 저하로 인한 반사이익에다가 원도우 95의 판매호조로 인한 반도체 수요의 급증이 복합해서 만들어낸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컴퓨터 교체수요가 끝나는 96년부터 반도체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전문가들의 수요예측으로는 매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던데요? 최소한 2년 이상은 반도체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분석보고서가 많습니다.”

소진세의 말에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전문가들이랍시고 하는 말이 언제 제대로 맞은 적이 있던가요?”

반도체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자 저마다 생산 설비를 늘리는 작업을 서두르는 중이었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수요는 줄어든다.

95년 삼정전자는 2조 5천억 원이라는 창립이후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지만 96년부터는 1600억으로 대폭 이익이 줄어든다.

대현반도체나 LC반도체 같은 후발주자들은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다가 IMF이후에 산업합리화 조치로 합병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솔직히 원화 환율도 요즘은 조금은 불안합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회사채의 발행은 달러로 하고 만기가 됐을 때의 자금도 달러로 결제된다. 원 달러환율이 830원에서 수출이 호조를 보이자 810선까지 내려앉았다.

일부에선 800원 밑으로 내려간다는 전망도 흘러 나왔다.

“일시적인 겁니다. 억지로 원화 강세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OECD가입을 자랑하고 국민소득을 20,000달러로 높이기 위해서 달러강세를 은근히 부추기고 있었다. 원화강세를 방조하다보니 한때 원 달러 환율이 747원까지 오르는 강세를 보였다.

처음에는 환율이 급락할 때 전환사채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회사채발행을 망설이던 기업들도 원화 환율이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이자 부담 없이 회사채 발행금액을 늘렸다.

회사채 발행 초반에야 원화가 강세를 보이니 호구 잡았다고 좋아하겠지만 그 생각이 어디까지 갈까?

소진세가 내민 보고서를 대충 살핀 규태가 물었다.

“한보하고 대운은 확실하게 제외했죠?”

“두 기업의 회사채인수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니까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오고 한동안 그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만 샨대표가 나서서 제대로 된 재무제표가지고 오라고 호통한번 치자 조용해지더군요.”

“쯔쯔, 그게 전부다 국내은행하고 거래하다가 잘못 든 버릇 때문에 그래요.”

국내은행이야 재경원이나 청와대의 전화한통에 벌벌 떨지만 타이거 펀드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제가 얼굴이 다 화끈거렸습니다. 그런데 왜 두 곳을 제외하신 겁니까?”

관치금융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두 곳은 재무구조가 엉망이라서 오래 버티지 못할 회사라서요.”

소사장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한보는 몰라도 대운은 재계 3위의 대그룹이다. 부도가 난다면 보통 큰일이 아닌 것이다.

“그게 진짜입니까? 대운은 매년 흑자가 상당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자세하게 조사해보면 엉망진창일겁니다. 해외자산투자가 부실합니다. 정밀조사를 해보면 하나같이 부실투성입니다.”

대운이 부도가 난후에 해외에 자산실사를 해보니 자산으로 잡힌 것들이 창고에 재고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어서 놀랐다는 신문기사를 떠올리며 규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부도가 나도 적당히 날 기업이라면 파산후 인수도 고려해보겠지만 대운과 한보는 그럴 가치도 없었다.

“한보가 무리한 투자를 한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대운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금액은 대운이 압도적으로 클걸요. 분식회계로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손실금액이 10조가 넘을 겁니다.”

“허허, 정말 그렇다면 껍데기만 남아 있는 거로군요.”

50조가 넘는 자산 가치를 가진 기업이 숨긴 부실이 10조가 넘는다면 정말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워낙 규모가 커서 대운이 넘어가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대운은 IMF가 터져도 워낙 덩치가 커서 버티다가 결국에는 막대한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다.

재벌들이 대마불사를 괜히 신봉하는 게 아니었다.

“이젠 대충 한국의 일도 마무리가 됐고 미국에서도 빨리 오라고 난리니 열흘쯤 있다가 건너갈 생각입니다.”

미국금리인상에 따른 여파가 가라앉으면서 규태를 찾는 이들도 이젠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미국주식시장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시끄럽게 괴롭힐 사람이 없으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쉽네요. 이제 가시면 언제 또 오실 생각입니까?”

“전처럼 소사장님이 미국으로 오잖아요. 상사얼굴을 자주봐서 뭐합니까? 오사장님하고는 자주 연락은 합니까?”

“오사장님은 미국에 꿀이라도 발라놓으셨나. 요즘은 아예 발길을 안 하십니다.”

“한창 바쁠걸요. 팔았던 주식과 채권을 도로 사들이느라고요.”

기룡증권 아메리카의 자산이 훌쩍 늘어나면서 팔았던 주식과 채권의 보유분을 대폭 늘렸다. 타이거 펀드와 함께 떨어진 주식을 사들이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거기서도 첨단 기업주에 중점을 두고 투자를 하는 겁니까?”

“한국하고 마찬가지죠. 이제 본격적으로 벤처붐이 불겁니다.”

“기술주라면 한번 호된 맛을 보지 않았습니까? 다시 첨단주가 주가가 오를까요?”

“작년에 1차로 걸러졌으니 예전같이 터무니없이 주가가 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첨단기술주가 시장을 선도할겁니다.”

“저 같으면 도저히 주식을 살 엄두가 나지 않았더군요. PER가 1,000이 넘는 종목이라니! 저 같은 사람은 가슴이 떨려서 투자 못합니다.”

소진세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기술주는 그러려니 해야죠. PER를 따지자면 투자를 하지 못하죠.”

미래를 아는 규태도 이따금 현기증이 날정도로 기술주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진짜 사자의 심장을 가지지 않는 한 그런 주식을 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투자를 추구하는 소진세의 성격은 첨단주 투자와 맞지를 않았다.

“앞으로도 삼정전자와 한국이동통신의 주식매입은 계속 하세요. 내년에 코스닥이 만들어지면 그쪽 투자도 조금씩 늘려가도록 하시고요.”

“코스닥이 내년에 생기면 주식보유량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잘한 종목에는 손대지 마시고요. 아니 처음에는 투자할 종목도 없겟군요.”

미국의 나스닥을 본따 만든 코스닥의 초기종목들은 매출과 자본이 형편없어서 신뢰를 얻지 못햇다.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 상당수가 IMF에 문을 닫는다. IMF가 지나고 나서야 상장된 기업의 숫자도 늘어나고 거래도 활발해진다.

소진세가 가져온 서류에 사인을 하고나니 저녁시간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나 함께하시죠. 오늘 보면 또 언제 뵐지도 모르는데.”

소진세의 식사제의를 규태는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의 말처럼 미국으로 돌아가면 또 몇 년간은 한국행이 힘들었다.

***

규태가 미국으로 출국하자 한동안 한국은 대규모의 해외차입으로 떠들썩했다.

「타이거 펀드 한국투자 금액 총 235억 달러에 달해」

「성장하는 한국, 아시아의 4용을 넘어서서나. 선진국 문턱에 달해.」

타이거펀드의 채권투자는 한국을 뒤흔들었다 가뜩이나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경제에 투자한 막대한 금액은 가뜩이나 타오르는 불길에다 기름을 끼얹은 활력소였다.

각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고 돈이 들어오자 미뤄두었던 시설투자에 돈을 쏟아 부으며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어섰다.

0